커지는 박지원 역할론

‘정치 9단’ 다시 중앙으로?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고문의 물밑 행보가 민주당 관계자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입방아에는 박 고문이 정치적 영향력을 키우고 있다는 의심부터 당 차원의 경고까지, 다양한 소문이 담겨있었다. <일요시사>에 의견을 전한 민주당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그가 ‘도를 넘어선’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 박지원 고문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옹호했다는 듯한 말을 전했다. 그는 지난달 10일 “문 전 대통령이 ‘민주당이 총단합해서 잘해야 되는데 그렇게 나가면 안 된다. 이재명 대표 외에 대안도 없으면서 자꾸 무슨…’이라고 얘기를 하시더라”며 “이 대표를 중심으로 단합해 달라는 주문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다시 한번 
시험대 서다

그러자 이 대표의 사퇴를 주장하는 비명(비 이재명)계 쪽에선 곧바로 거센 반발이 터져나왔다. 민주당 이상민 의원은 이 같은 주장에 대해 “문 전 대통령이 과도하게 말씀하신 거고 전달한 분도 잘못 전달했다”고 발언했다. 

같은 당 박용진 의원도 “17일 오후 문 전 대통령을 만나뵀다”며 “뭔가 결단하고 그걸 중심으로 또 화합하고 이런 모습 보이기만 해도 내년 총선은 국민 신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격려해주셨다”고 박 고문의 주장을 에둘러 반박했다.

‘문 전 대통령이 이 대표를 옹호했다’는 박 고문의 주장과 ‘해석의 차이’라는 비명계의 의견이 대립하는 가운데, 논쟁의 양상은 진실게임으로까지 번졌다. 비명계는 문 전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지 않았다는 방향으로 논점을 틀었고, 박 고문은 당일 일정에 대해 자세히 증언하며 문 전 대통령 발언의 신빙성을 높였다.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문 전 대통령의 최측근들은 해당 내용을 직접 묻지도, 또 관련 내용을 들었다고 해서 그 내용을 언론에 알리지도 않는 일종의 ‘관습’ 같은 것이 있다”며 “박 고문의 발언이 진짜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언론에 알리는 일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라 꼬집었다.

“정계 원로인 박 고문이 왜 그런 행위를 했느냐”는 <일요시사> 질문에는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런저런 소문이 많이 들리고 있는데, 최근 당원 대상 강연에 본인을 초빙해달라는 요구를 수차례 했다”고 대답했다.

그는 박 고문이 민주당에 복당한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고, 당내 영향력 있는 자리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을 조심스럽게 내놨다.

박 고문은 지난해 말, 민주당 탈당 6년 만에 민주당에 복당 신청을 했고, 민주당 지도부는 대통합 차원에서 그의 복당을 받아들였다.

민주당 박성준 전 대변인은 지난해 12월 최고위원회의가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난 자리서 “그동안 최고위서 찬반이 팽팽했지만 대통합 차원에서 복당을 수용하자는 이재명 대표의 의견에 그간 반대하던 최고위원들도 대승적 차원에서 받아들이게 됐다”고 복당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비대위원장? 차기 대표? 향후 행보 주목
“모든 계파에 영향력…박 고문 밖에 없다”

박 고문의 복당을 반대했던 최고위원 중 한 명은 당시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6년 전 민주당 분당의 책임이 그에게도 있기 때문”이라며 반대 이유를 밝혔다. 그는 “알다시피 당시 안철수 전 대표와 손 잡고 민주당을 둘로 갈라놓은 장본인 중 하나다. 그가 최근 이 대표에 관한 과도한 칭찬과 함께 복당하려 하는 것에도 숨은 뜻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고문은 2016년 “통합을 위한 탈당”이라는 명분으로 민주당을 박차고 나온 바 있다. 당시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의 전신)서 파생돼 호남에 싹을 틔우던 각종 야권 신당들을 “통합하겠다”며 당을 나왔고, 실제로 안 의원(현재 국민의힘)과 손을 잡은 뒤 국민의당을 이끌었다.

국민의당은 호남 의석을 싹쓸이하다시피 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이 2016년 20대 총선서 38석을 확보해낸 것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그의 명분이 처음부터 말이 안 되는 것이었다고 지적한다. 이들은 민주당을 떠나 호남서 신당을 창당하던 인물들이 당시 친노(친 노무현)계에 저항하던 세력들이었고, 당내 원로인 박 의원이 그 갈등을 부추겼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문재인 전 대통령이 대표로 선출된  친노계 민주당을 박 고문이 의도적으로 힘을 뺐다고 본다.

심지어 2015년 민주당 전당대회 당시에 그는 ‘친노’와 대립각을 세우는 전략으로 본인의 지지층을 결집시키기도 했다. 특히 이때 화두가 된 ‘호남홀대론’서 결정적 역할을 했고, 친노와 호남이 갈라지는 결과를 만들어냈다. 다수의 민주당 관계자들은 당시 전당대회서 문 전 대통령의 강세를 박 고문이 꺾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통합이냐
분당이냐

이후 문 전 대통령이 당 대표로 당선된 뒤, 민주당 내부에선 갈등이 더욱 고조되어갔다. 갈등 끝에 결국 거물급 인사들이 속속 탈당을 시작했고, 이들은 공교롭게도 대부분 호남에 찾아가 선거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국민회의 천정배 의원, 신민당의 박준영 의원, 통합신당추진위원회의 박주선 의원, 원외 민주당의 김민석 의원 등이 그들이다.

박 고문은 당시 호남의 신당들을 통합해야 야권의 힘이 최대한 유지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기 위해서는 본인이 탈당해 무소속 신분으로 촉매재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호남 신당들을 통합한 뒤에 국민의당과 합치겠다는 ‘대통합론’도 내세웠다.

결과적으로 박 고문은 탈당 후 뱉은 말들을 대부분 현실화시켰고, 탈당은 일단 성공을 거뒀다고 평가받았다. 

그러나 이때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민주당 당원들 및 의원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분당의 책임이 있는 중진급 의원들은 아직도 민주당에 돌아오지 못하는 상태며 안철수 의원은 정치적 노선을 아예 바꿔 국민의힘으로 넘어갔다.

박 고문의 복당이 받아들여지면서 많은 이들이 이 대표의 ‘정치적 결단’으로 분석했다. 당내 입지가 불안정한 이 대표가 박 고문을 당내로 받아들여 본인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려 했다는 것이다. 민주당 관게자들은 박 고문 역시 이를 알고 민주당에 들어왔다고 주장한다.


도넘은 행보
따가운 시선

한 비명계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서 “서로의 이해타산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 보고 있다. 사실 당시만 해도 민형배 의원의 복당 문제가 더 중요한 사안이라고 봤는데 이 대표가 직접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을 설득해 복당을 완료시켰다”며 “신년 검찰 출석을 앞두고 이런저런 계산을 끝마쳤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박 고문 또한 이를 모를 리 없다. 본인의 정치 커리어를 더 이어나가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에 들어와야 했고, 이 대표의 의도를 잘 파악한 뒤 현재 당에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박 고문의 복당을 먼저 처리한 것이 검찰 출석에 흔들릴 이 대표의 입지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말대로 박 고문은 당에 들어온 뒤 줄곧 이 대표의 입장을 전달하는 스피커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다수의 당 관계자들은 이번에 나온 문 전 대통령의 옹호 발언도 같은 맥락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본인의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는 분석도 상당하다. 이들은 현재 이 대표를 옹호하는 것도 본인의 차기 전당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포석이라고 지적한다. 차기 당권을 노리는 입장에서 ‘이 대표를 내치는’ 모양새보다는 ‘이 대표를 지키지 못한’ 모양새가 표 결집에 더 도움이 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박 고문은 그동안 이 대표 옹호 발언을 수차례 해왔다. 이 대표에 대한 체포동의안이 여의도의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을 당시 그는 “구체적으로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이런 문제에 대해 체포동의안을 통과시키면 안 된다”면서 “반대 의견이 41%나 된다는 여론조사를 참조해야 한다. 이것은 진보 지지층이 이 대표 아래로 뭉쳐졌기에 나올 수 있는 현상이라고 본다”고 조언했다.


차기 전당대회 노리나?
과거 분당 사태 책임론도

또 ‘이 대표를 정무위가 제명해야 한다’는 주장의 당헌 80조 논란에 대해서도 “대표직 정지 여부는 민주당서 당무위 의결로 결정하기로 돼있기 때문에 거기까지 나가서 걱정하는 것은 필요 없다”며 사실상 친명(친 이재명)계가 장악한 당무위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단은 친명계 라인에 선 박 고문은 후에 있을 총선과 차기 전당대회 모두를 노리고 있는 모양새다. 또, 몇몇 민주당 인사들은 급작스러운 사태로 당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돌입할 시, 박 고문이 비대위원장 자리도 노려볼 만하다고 보고 있다. 

한 비명께 의원실 관계자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서 “비명계가 다음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명계 의원을 떨어뜨리거나, (이 대표에 대한)두 번째 체포동의안을 가결처리한다면 이 대표의 낙마는 생각보다 빨리 올 것”이라며 “그때 공석이 된 당의 리더 자리를 여러 중진 의원, 그리고 권력 의지가 있는 당의 원로들이 노릴 것이다. 박 고문도 그런 인물 중 하나임엔 틀림 없다”고 주장했다.

친명계와 비명계, 그리고 친문(친 문재인) 세력까지 모두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인물이 현재로서는 박 고문 하나뿐이라는 게 민주당 내부의 중론이다.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 영입설과 이낙연 전 대표의 복귀설 등이 힘이 빠져가는 가운데, 박 고문의 비대위원장 설은 오히려 점점 힘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무엇보다 김 전 위원장이나 이 전 대표와는 달리 박 고문은 스스로 권력 의지가 투철한 편이다. 현재도 각종 사안에 대한 의견 제시를 꺼리지 않으며 당원들과의 만남을 주선하는 등 광폭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에는 재보궐선거가 예정된 전주을 지역에 찾아가 무소속 후보를 지원 유세했다가 당 차원의 경고 카드를 받기도 했다.

내부서 ‘박 고문이 다음 총선을 넘어 차기 전당대회까지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모두의 편
모두의 적

그러나 <일요시사>가 취재 도중 만난 민주당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그런 박 고문의 행보를 좋지 않게 보고 있었다. 그가 비록 모든 계파에 어울릴만한 정치적 입지를 확보하고 있다고는 하나, 이는 확실한 지지 계파가 없다는 것과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이로써 ‘9단’이라고 알려진 박 고문의 정치역량은 다시 한번 시험대 위에 놓이게 됐다. 내년 총선 전까지 박 고문이 ‘모두의 편’이 될 수 있을지, 혹은 ‘모두의 적’이 될지 민주당 당원들은 지켜보고 있다.


<ingyun@ilyosisa.co.kr>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매머드급 국방정보본부 ‘5공 보안사’ 오버랩, 왜?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군 정보기관 개혁안의 윤곽이 잡히고 있다. 기한은 2027년까지다. 방첩사 해체 및 정보사 인간정보부대를 국방정보본부 직속으로 둔다는 게 골자다. 군 안팎에서는 우려가 쏟아진다. 국방정보본부에 여러 권한이 쏠리면 과거 ‘전두환 보안사’처럼 통제가 힘들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조직에 여러 권한이 집중되면 장단점이 확실하다. 관리하기 쉽지만 수장의 역량이 부족하면 컨트롤하기 어렵다. 군 정보기관은 더욱 그렇다. 인간정보 부대(HUMINT·휴민트)의 경우 전문가가 극소수다. 특히 전문가 대다수가 12·3 내란에 연루돼 개혁에 동참할 수 없는 형국이다. 2027년까지 조직 개편 우리 군에는 각종 정보와 첩보 수집을 담당하는 군 정보기관이 존재한다. 대북 업무만을 담당하는 국군정보사령부, 777사령부와 국내 간첩 및 군사보안에 초점을 둔 국군방첩사령부로 나뉜다. 정보사와 777은 국방정보본부가 총괄 지휘한다. 정보기관 특성상 자세한 조직 현황은 공개되지 않는다. 그간 군 정보기관은 역할을 나눠 견제와 균형을 잡아왔다. 이들 기관은 12·3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 정치인 체포조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투입 등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과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각각 위험한 일을 계획하고 일부 실행했다. 이재명정부가 들어서면서 안규백 국방부 장관은 군 정보기관에 대한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약속했다. 방첩사 장성 7명은 모두 직무에서 배제됐고, 현재 참모장 대리 겸 사령관 직무대행은 육군사관학교가 아닌 학사장교 출신의 편무삼 육군 준장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지난달 29일에는 직무정지·분리 파견됐던 임삼묵 2처장(공군 준장) 등 장군 4명이 각 군으로 원대 복귀했다. 나머지 3명은 정성우 방첩사 1처장, 국방부 방첩부대장, 육군본부 방첩부대장 등이다. 방첩 업무는 방첩사에 두고 수사 기능은 국방부 조사본부로, 보안 기능은 국방정보본부 및 각 군으로 이관하는 방안 등이 확정됐다. 이는 정치 개입·민간 사찰로 누적된 군에 대한 불신을 불식하고 정보기관을 본연의 임무로 복귀시킨다는 취지지만, 대공·방첩 기능 약화로 안보 공백이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도 거세다. 방첩은 말 그대로 간첩 활동을 막는 걸 일컫는다. 방첩 자체가 정보·보안 수집과 수사를 통해 이뤄진다. 실제로 정보·보안 업무를 이관받는 국방정보본부의 경우 예하 정보사의 블랙 요원 명단 유출 등 기밀 유출 사고를 막지 못했다. 국회는 7년간 외부감사가 없었던 정보사에 대해 올해부터 방첩사가 들여다보도록 했다. 수사권도 문제다. 군사경찰 최상위 조직인 국방부 조사본부도 내란 당시 정치인 체포조 편성·운영 등의 혐의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한 조직에 보안·신원조사·첩보 수집 통째로 해체 수순 방첩사 군 인사 통제는 누가 하나 명확한 규정 없이 광범위한 범죄 정보 수집 활동을 벌여오면서 수사 전문성을 의심받아 온 조사본부에 국가보안법·군사기밀보호법 위반죄, 내란·외환·반란·이적죄 등 10대 안보 관련 수사권을 넘기면 컨트롤하기 어려운 권력기관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방첩사 기능 폐지로 군에 대한 통제가 어려워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방첩사는 국방부 장관 직할부대로서 각 부대의 부조리 조사 및 감찰, 지휘관의 특이 동향 점검, 대령급 이상 인사 검증 등을 통해 군을 견제해 왔다. 국방부는 올해 1단계로 내란 극복·미래 국방 설계를 위한 민·관·군 합동특별위원회 내 군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위원회(분과위원장 홍현익 전 국립외교원장)를 구성해 조직·기능 재설계 등 합리적 개편 방안을 도출할 예정이다. 내년엔 2단계로 방첩사 개편을 위한 법령·규칙 개정, 시설 재배치, 예산 조정 등 후속 조치 사항을 이행하고 개편을 완료할 방침이다. 또 국방정보본부장의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하고 정보사령부에서 휴민트 부대를 분리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국방정보본부령 일부 개정안을 지난달 27일 입법 예고했다. 국방부는 “정보사령부를 포함한 국방정보 조직 전반의 지휘·부대 구조를 최적화해 임무·기능 수행에 전문성과 효율성을 제고하기 위해서”라며 개정 이유를 밝혔다.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의 업무와 관련해 ‘합동참모본부 등의 예산 편성 및 조정(1조 2항 7호)’을 삭제함으로써 합참과의 직접적 업무 연결을 차단했다. 반면 군사보안 외에 암호정책(동항 8호)과 군사 관련 지리공간정보 외에 국방기상정보(동항 제11호), 군사정보 외에 군사보안(동항 12호)을 추가했다. 군사보안 업무가 신설된 것은 국군방첩사령부 개편에 대비한 사전 조치로 풀이된다. 어디까지? 초월적 권한 개정안은 국방정보본부장의 직무와 관련해 ‘군사정보·전략정보 업무에 관해 합동참모의장 보좌’(3조 2항)를 삭제해 합참정보본부장 겸직을 해제했다. 개정안은 정보본부 예하부대 중 정보사령부 업무와 관련해 기존의 ‘군사 관련 영상·지리 공간·인간·기술·계측·기호 등의 정보’ 등(4조 2항 1호) 규정 중 ‘영상’과 ‘인간’을 삭제했다. 대신 동항 4호에 ‘군사 관련 인간정보 수집·지원 및 훈련에 관한 사항을 관장하기 위한 인간정보 부대’ 규정을 신설했다. 이른바 블랙 요원이나 특임대(HID) 같은 인간정보 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정보본부 예하에 재배치했다. 이에 따라 정보본부 예하에는 기존 정보사와 777사령부(신호정보 담당) 외에 인간정보 부대가 추가된다. 방첩사는 지난 8월 조직 와해를 막기 위해 전담팀을 꾸렸다. 정치권에 따르면 방첩사는 같은 달부터 ‘부대개혁 TF’라는 전담팀을 꾸리고 간부들에게 비공개 지침을 하달했다. ‘글로벌 안보 위협’을 이유로 들어 “주변 고위급 지인 등 인맥을 통해 부대 존치 논리나 순기능 역할에 대해 전파해 협조나 지원을 이끌어내라”는 내용이다. 국정기획위원회의 방첩사 폐지 방침을 두고 “국방부·대통령실·국회 측도 방첩 역량 약화에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주장도 담겼다. 한 군 관계자는 “지금 방첩사가 내부 갈등이 심하다. 개혁해야 하는 것에 동의는 하는데 방첩사 폐지로 방첩 기능이 약화되는 걸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 반면 부대가 없어져도 기능 자체가 이관되기에 문제될 게 없다고 지적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대북 정보망 복구가 중요 정보사에서도 최근 개혁에 반대하는 움직임이 포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정보사 100여단 소속 일부 인원들이 지난달 21일 오전 안양에 위치한 정보사령부 건물로 출동했다. 사령부에서 인간정보 부대 관련 업무를 담당·지원하는 관련 부서들의 사무용품, 책상, 의자, 서류 등을 포장해 100여단으로 가져오기 위해서다. 사무용품 등의 이전은 당일 낮 12시께 중단됐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선원 의원이 문제를 제기하자 이전 중단 지시가 내려간 것이다. 이후 100여단 소속 인원들은 부대로 복귀했다. 다만, 중단 지시 전 옮겨진 인간정보 부대 관련 부서의 서류와 물품들은 100여단에 남아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앞서 국방부는 군 정보기관 개혁 조치의 일환으로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내년 1월1일부터 인간정보부대를 정보사에서 분리해 국방정보본부 예하 부대로 전속하겠다”고 보고했다. 이 과정에서 정보사가 100여단을 움직여 인간정보 부대가 국방정보본부 소속으로 개편되기 석 달 전, 국방부와 정보사 지휘부에 보고도 없이 사령부 건물을 방문한 것이다. 정보사령관 직무대리는 지난달 26일 “상급부대에서 (인간정보부대 개편 내용을 담은) 법적 근거를 마련할 때까지 불필요한 오해의 소지가 없도록 사령부가 추진한 사항을 잠정 중단하라”는 취지의 공문을 하달했다. 지난 9월18일 정보사 100여단 부대 강당에서는 국방정보본부 산하 인간정보 부대 개편을 위한 내부 설명회가 열리기도 했다. 당시 100여단장은 해당 간담회를 주재하며 부대원들에게 “간담회에서 나눈 이야기나 부대의 사정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하라”며 입단속을 강조했다. 앞으로 국방정보본부가 갖게 되는 권한은 막대하다. 현행 구조에서 국방정보본부장은 정보사·777, 합참 정보부를 총괄한다. 여기에 더해 정보사의 휴민트 기능을 직접 통제하고 보안·신원조사를 추가하면, 누구도 견제하기 힘든 조직이 탄생한다. “대북공작 휴민트가 장관 직속? 전례 없어” “조직 수장 역량에 따라 괴물 집단 될 수도” 민주당 내부에서도 반발이 만만치 않다. 민주당 한 중진 의원은 “휴민트 임무 특성상 비밀·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걸 국방정보본부장 예하로 두겠다는 건 관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지만 윤석열과 같은 인간에게 넘어간다면 굉장히 위험한 조직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기관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다른 군 전문가도 “전문성이 없는 민간 부처가 공작 임무를 직접 운영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보사 휴민트 조직은 국정원과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작을 기획한다. 국정원이 예산도 관리해 관리·감독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며 “이번 개혁안이 완전히 확정된 건 아니지만 휴민트를 국방정보본부 예하로 두는 건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박 의원도 지난달 13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휴민트 부대의 본질은 숨기고 또 숨겨야 하는 특수공작 조직”이라면서 “전 세계 어느 나라도 국방 장관 직속으로 인간정보 공작부대를 두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같은 당 부승찬 의원 역시 “전시 연합사령관 지시를 받는 부대도 아니고, 평시 합참 지휘체계에도 없는 부대”라면서 “작전 지휘체계나 통제체계에 들어가 있지 않은 부대인데, 이를 국방정보본부에 넣는 건 불가능하다”고 언급했다. 이 같은 지적에도 국방부는 국방정보본부령 일부개정령안을 입법 예고했다. 기존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선 정보부대 개편을 2026년 내 마무리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번 개정령안은 내년 1월1일 시행으로 못 박았다. 이에 민주당 황명선 의원은 종합감사에서 인간정보부대의 국방정보본부 편입에 우려를 표했다. 황 의원은 “장관도 동의하지 않는 이런 개정안을 누가 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안 장관은 “글자 그대로 입법 예고이니 의원들께서 의견을 주시면 최적화하겠다”고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국방정보본부와 국방부 기획조정실(조직관리담당관)은 다른 분위기다. 한 국방부 관계자는 “장관과 국방정보본부 간 소통이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같다. 정보 계통 군인들은 오히려 현 입법안을 두고 안도하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개혁 반대 움직임도 황 의원이 민·관·군 합동 특별자문위원회의 ‘방첩·보안 재설계 분과’가 합리적인 안을 만들어낼 때까지 입법 예고를 보류해달라고 하자 안 장관도 “알겠다”고 답했다. 안 장관은 “휴민트 조직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 부대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을 절약해주는 것이 휴민트 부대를 살리는 길이고 부대 가치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