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림이 사망’ 1년의 기록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2.06 11:49:17
  • 호수 141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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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 말리는 증거 싸움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330일. 정확하게 10개월하고도 24일이 지났다. 유림이가 제주대학교병원에서 의료사고로 심장이 멈춘 뒤 흐른 시간이다. 유림이의 부모인 강승철, 윤선영씨의 시간도 그때 멈췄다. 유림이 사망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밝혀진 피고인의 재판이 공정하게 마무리될 수 있게 고군분투하고 있다. 

부부는 제주도에서 평범하게 살았다. 엄마 윤선영씨는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안 돼 육아휴직을 했다. 아빠 강승철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아이를 돌봤다. 남들과 조금 다른 점이 있었다면, 윗집에 작은 고모와 사촌이 살았고도보 5분 거리에는 외할머니·외할아버지·외삼촌이 있었던 점이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할머니와 할아버지, 큰 고모네 가족이 모여서 살았다. 

일란성 쌍둥이
첫째로 태어나

모든 가족의 평범한 삶이 무너진 것은 순식간이었다. 이들은 지난해 3월12일 제주대학교병원 의료사고로 세상을 떠난 13개월 영아 유림이의 가족이다. 강씨는 가족의 행복과 안녕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윤씨는 유림이가 떠난 이후 수년간 다녀왔던 회사를 그만뒀다.

부부는 유림이가 있는 천왕사 납골당에 찾아가 생전 유림이가 좋아했던 인형을 끌어안거나, 밤늦게까지 생전 유림이의 사진과 영상을 보며 마음을 달래고 있다.

유림이는 2021년 2월17일 일란성쌍둥이 중 첫째로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에서 태어났다. 일란성 쌍둥이지만 몸무게는 3㎏으로 건강했다. 당시 주위에서 ‘안전하다’고 추천한 병원이 제주대학교병원 산부인과였다. 그리고 13개월 뒤 같은 장소서 비극이 일어났다.


지난해 3월11일 유림이는 코로나19에 걸려 음압병동에 입원해야 했다. 13개월밖에 되지 않은 아기라 면역력이 약했다. 

집과 가까웠던 제주한라병원에는 음압병동이 없었다. 유림이는 곧바로 제주대학교병원 응급실로 이송됐고, 치료를 받고 상태가 호전됐다. 

유림이는 ‘42병동(코로나 병동)’에 입원했다. 유림이 담당 의사는 유림이가 받아야 할 치료는 끝났고 입원해서 상태를 보면 된다고 했다. 하지만 희망적이었던 의사의 말과는 달랐다. 유림이는 오후 6시경 호흡 곤란을 일으켰고 중환자실로 이동했다. 

약물 오남용 의혹…13개월 영아 사망
재판 핵심은 ‘과연 살 수 있었겠느냐’

강씨는 “의사가 아이는 코로나에 걸려도 회복 속도가 빨라서 중환자실로 가도 잘 회복한다고 말했다. 그래도 제주도에서는 제주대학교병원 의료진이 최고다. 믿고 기다리라는 말을 해 밤새 기도하며 지새웠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병원이 강씨에게 유림이를 보러 중환자실로 급하게 오라고 한 것은 다음 날 오후 5시50분쯤이다. 부부가 병원에 도착했을 때 의료진은 유림이를 둘러싸고 심폐소생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부부는 CCTV로 유림이를 바라봤다. 할 수 있는 게 그것밖에 없었다. 그리고 유림이는 하늘나라로 떠났다. 부부가 유림이를 다시 안았을 때, 유림이의 몸은 차가웠다. 부부는 아이를 끌어안고 쓰다듬었지만, 마음은 죄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강씨는 “처음부터 유림이가 의료사고를 겪은 거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의료진이 유림이를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CCTV를 통해 봤으니까. 그런데 유림이를 화장했던 지난해 3월13일 유림이 엄마가 42병동에 문제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말을 했다”고 설명했다.

윤씨는 유림이가 42병동에 입원한 뒤, 간호사가 유림이를 보살피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우선 유림이는 코로나 증상으로 발열이 나는 상태였는데도 42병동은 더웠다. 유림이 발열이 잡히지 않아도 의사는 괜찮다고 했고, 유림이 상태를 확인하는 간호사가 없었다. 

호흡 곤란이 온 유림이를 치료하는 과정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갑작스러운 호흡 곤란이고 응급 상황이었다. 빠른 처치가 필요한 상황에서 간호사들은 유림이 콧구멍에 산소줄을 제대로 끼우지 못했다. 처치하는 중간에 산소 주입기 병은 터져서 물이 새어 나왔다.

호흡 곤란이 온 상황에, 유림이가 기도 삽관을 하는 데 소요된 시간은 1시간30분을 넘어섰다. 기도 삽관의 소요시간은 정확하지 않지만 보통 10초에서 10분이다. 1시간30분은 너무 긴 시간이다.

기도 삽관
1시간30분

부부는 먼저 유림이의 의무기록지와 42병동 병상의 CCTV를 확인했다. 둘째가 깨어있을 때는 둘째에게 집중했다. 둘째가 잠든 시간에는 유림이의 부모로 움직였다.

지난해 3월17일에는 병원에 방문했다. 유림이가 입원했을 당시 근무 중이었던 간호사가 동행했다. 간호사는 유림이 병상이 어디였는지 알려줬지만, 부부가 하는 질문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42병동서 만난 다른 간호사에게 유림이에 대해 물어도 대답해주는 이가 없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인 의무기록지에도 문제가 되는 내용은 없었다. 

다음 날 제주대학병원 측에서 전화가 왔다. “사실대로 모든 내용을 알려주겠으니 방문해달라. 먼저 투약의 오류가 있었으나 사망과 인과관계는 없다”는 내용의 통화였다. 유림이 사망에 관해 사과하진 않았다. 

면담은 지난해 4월1일에 진행됐다. 병원 관계자 8명이 모인 면담이었고, 이들 중 진료 처장, 사무국장, 간호 부장, 간호 과장, 담당 교수는 도의적 사과를 했다. 이 밖에 ▲네블라이저용 에피네프린 5㎎이 정맥주사로 잘못 투약됨 ▲투약이 잘못된 것을 간호사가 알고 있었지만, 의사는 몰랐다는 것을 알게 됐다.

병원 관계자는 “오늘 병원의 설명이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 추가적인 보고가 있으면 필요 시 그에 따른 자료나 설명을 드리겠다. 혹시 또 오늘과 같은 자리가 필요하면 성실하게 임하겠다”고 말했다. 

강씨는 “병원 면담에는 내용이 거의 없었다. 너무 부실해서 사고 경위서, 보고서, 투약 기록지를 포함한 일부 의무기록 사본을 요청하고 끝났다. 이후 먼저 연락이 없어 두 번이나 먼저 연락했고. 그때마다 ‘뭐라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만 있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4월24일에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자, 병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유족에게 너무 큰 상처와 심려를 끼쳐드린 데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전한다’고 했다. 이후 11월부터는 병원이 3차례 연락해 ‘직접 찾아뵙고 진정한 사과를 드리고 싶다. 시간을 내주길 바란다’ ‘신임 병원장 취임 전이라 위치, 규모 등은 결재가 이뤄지지 않았다. 유림이를 추모하기 위한 식수 진행 여부에 의견을 달라’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기준치
50배 약물

이 같은 병원 입장에 대해 유가족은 변호사를 통해 입장을 전했다.

법무법인 다산은 “기소된 간호사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인터뷰 이후 어떠한 질의응답 요청마저 지난 9개월 동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이런 와중에 병원은 지난해 10월 구속영장 발부를 통해 의료기록을 삭제하는 등 사건을 은폐한 정황이 드러났으며 ‘추모 식수’를 진행하자는 구실로 화해하려는 병원의 태도가 몹시 불쾌하다”고 밝혔다.

이들은 지난해 5월2일에는 병원 소속 임직원에게 ‘사망 원인에 대한 다툼의 여지는 극히 낮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내용과 함께 제주대학교병원의 운영에 있어 ▲42병동의 열악한 현실 ▲간호사들의 업무과중 ▲영유아 확진자 폭증에도 성인 환자 경험만 있는 간호사 투입 ▲피해자가 소아병동이나 소아 중환자실에 입원할 수 없었던 점을 지적했다.

이어 “그럼에도 현재까지 아무런 공식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향후에도 귀원의 공식적인 사과 표명 및 피해자 측에 대한 진심 어린 사죄와 반성의 의사가 전제되지 않은 무의미한 연락은 더 이상 삼가기 바란다”고 지적했다.


한편 지난해 4월14일 병원 측 관계자는 “민사든 형사든 진행하는 것은 모두 다 받아들이겠다”고 밝혔고 이에 부부는 민·형사에 소장을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 유림이 사망사고와 관련해 유기치사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제주대학교병원 간호사 3명이 전원 구속됐다. 제주지방법원 영장전담 재판부는 지난해 10월25일 열린 영장심사서 도주와 증거인멸이 우려된다며 간호사 3명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부모 “입원했던 병동부터 문제 있어”
병원 “사망 인과관계는 재판서 결정”

이들은 지난해 3월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병원에 입원한 유림이에게 기준치의 50배에 달하는 약물을 투여했고, 이를 병원에 알리지 않은 채 의무기록을 삭제한 혐의 등을 받고 있다. 경찰은 간호사 3명에게 업무상 과실치사에 더해 유기치사 혐의까지 적용했다. 

간호사들이 과다 투여 사실을 즉시 보고하지 않아 유림이가 치료를 받을 기회 자체를 박탈당했다고 본 것이다.

강귀봉 제주경찰청 강력범죄수사대장은 “의료인으로서 환자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했을 뿐만 아니라 환자가 신속하고 적절한 치료를 받을 기회를 박탈했다고 판단했다. 신속하게 수사를 마무리해 조만간 검찰에 송치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그렇다고 재판이 순조로운 것은 아니다. 우선 민사소송 첫 기일은 다음 달 15일에 잡혀있으나, 형사소송의 경과를 지켜보고 판단할 수 있다. 구속된 3명의 형사소송 절차가 끝나는 시점에서 원활하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부부는 탄원서 제출과 탄원서 연명부 작성을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은 에피네프린 과다투약 후 생존한 사례 등 유림이의 소생 가능성을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자료를 찾는 것이다. 유림이는 코로나 감염 후 사망했기 때문에 코로나 장례절차에 따라 중환자실 입관 뒤 바로 다음 날 화장됐다.

결국 부검조차 이뤄지지 못했고, 당시 제주도 방역당국도 유림이를 ‘입원치료 중 사망’으로 기록했다.

강씨는 “지난해 5월4일 국민청원에 글을 게시했고, 국민청원이 종료되는 시점에 2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현재 탄원서 연명부는 홍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1만3000명의 동의를 받고 있다”며 “개인적으로 제출된 탄원서는 270건”이라고 진행 상황을 알렸다.

모든 사람들이 부부를 응원하는 것은 아니다.

강씨는 “보호자의 능력 부족을 탓하거나 코로나 때문에 고생한 피고인이 안타깝다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은 격려하고 응원해줘서 힘을 받았다”며 “초면임에도 공판일에 맞춰서 제주법원으로 찾아온 사람도 있다. 앞으로 구속된 피고인 3명의 재판이 공정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참고자료를 모아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속된 3명을 제외한 보완 수사 요청으로 경찰로 되돌아간 8명에 대해서도 어떤 처벌이 이뤄지는지 끝까지 지켜보겠다”고 밝혔다.

정맥주사로 
잘못 투약?

아울러 “특히 구속된 피고인 중 1명은 유림이 사고 후 해외여행도 다녀오고 임신도 했다. 변호사 중 일부는 일부러 감형을 위한 계획 임신 아니냐고 의심도 했다. 난 그렇게까지 생각하고 싶지 않다. 피고인의 판결이 끝나면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데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제주대학병원 관계자는 “유림이 사망의 인과관계는 재판서 증명되는 것이다. 재판 결과를 따르겠다. 현재 병원은 보호자와 계속 접촉하고 있고, 공개 사과와 재발 방지를 진행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이 구속된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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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