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잡는 ‘기획고소’ 막전막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30 11:31:39
  • 호수 1412호
  • 댓글 4개

피 말리는 물귀신 소송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모욕죄 고소·고발이 넘쳐나는 세상이다. 피의자는 자신이 고소된 이유를 알지도 못한다. 증거불충분으로 사건이 일단락되도, 고소인은 피의자를 항고한다.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싸움에 피의자는 합의금을 제출한다. 이런 고소를 두고 ‘기획고소’라는 말이 생길 정도다. 

형법 제33장 명예에 관한 죄 제331조 모욕에는 ‘공연히 사람을 모욕한 자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나와 있다. 제312조 고소와 피해자의 의사에는 ‘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남용되는
모욕죄 실태

이는 모욕죄에 해당하는 법률이다. 모욕죄는 사람을 모욕한 경우 성립하는 범죄로, 형법 제311조에 규정돼있다. 큰 맥락으로 볼 때 모욕죄는 구체적인 사실이나 허위 사실을 적시해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범죄인 명예훼손죄와 비슷해 보이지만, 구체적 사실의 적시가 없다는 점에서 구별된다.

즉, 명예훼손죄와 모욕죄의 보호법인은 외부적 명예인 점에서 차이가 없으나, 명예훼손죄는 사람의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킬만한 구체적인 사실이나 허위를 적시해 명예를 침해하는 것이다. 모욕죄는 단순히 추상적인 판단이나 경멸감을 나타내는 말을 해 사회적 평가를 저하시키는 것이고, 구체적인 사실이나 허위를 적시해 그 사람의 대외적 평가를 저하시켰으면 명예훼손이 되는 것이다. 

쉬운 예로 대법원 판례 중에는 “늙은 화냥년의 간나, 네가 화냥질을 했잖아”라고 한 피고인의 발언을 두고, 피고인이 피해자의 도덕성에 관해 경멸적인 감정표현을 과장되게 강조한 욕설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했다. 즉, 명예훼손이 아니고 모욕죄라는 것이다. 


모욕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친고죄다. 대부분 서면으로 재판하는 약식명령으로 재판이 진행되며, 경찰이 벌금 2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즉결심판에 회부할 수 있다. 보통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데, 법적인 판단 기준이 주관적이라는 것과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지적이 계속되고 있다. 또 고소·고발이 남발되는 상황도 초래된다.

실제로 지난 10년간 명예훼손·모욕 고소·고발 건수도 급증했다. 지난해 7월14일 오픈넷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명예훼손·모욕으로 접수된 사건은 2010년 2만2777건에서 2020년 7만9910만건으로 10년 사이 약 4배가량 급증했다.

명예훼손 사건은 2010년 1만4912건에서 2020년 3만5518건으로, 모욕 사건 역시 2010년 7865건에서 2020년 4만4392건으로 크게 늘었다. 

그러나 같은 기간 동안 접수 사건 중 기소 처리된 건수는 연간 약 7000건에서 1만2000건 사이로, 평균 1만1000건 수준이다. 이 통계는 더불어민주당 박주민 의원실이 법무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를 오픈넷이 분석한 것이다. 

명예훼손·모욕 10년 사이 4배 증가
수사력 낭비와 사회적 부작용 발생

오픈넷은 “개인 간의 분쟁 상황이나 게임, 커뮤니티 등 온라인 공간에서 오간 언쟁이 명예훼손이나 모욕의 형사사건으로 자주 비화되고 있는 현상, 그리고 많은 정치인과 공인이 자신들에 대한 의혹 제기나 부정적인 표현들에 ‘가짜 뉴스나 악플에 대한 선처 없는 법적 대응’을 곧잘 선언해 비판적 여론을 진화시키려는 현상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지적하면서는 “매년 8만명에 가까운 시민이 표현 행위로 인해 형사 피의자 지위에 놓여 심리적 위축 및 생업에 지장을 겪는 문제, 중대 범죄에 집중돼야 할 수사력이 낭비되는 현실적 문제와 사회적 부작용도 동반한다”고 비판했다.


모욕죄가 남용되는 상황은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다. 지난해 1월, 김지아씨는 직장을 그만두고 잠시 쉬고 있을 때 모욕죄로 고소당했다. 김씨는 ‘귀하의 사건 처분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형사사법포털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모욕 : 타관 이송’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받았다.

김씨는 이 문자를 스팸으로 여겼다. 평범하게 직장생활하다가 퇴사 후 쉬고 있었던 김씨가 고소당할 일이 없었던 탓이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는 컴퓨터를 켜고 형사사법포털 사이트에 접속했다. 

형사사법포털 사이트는 공인인증서로 접속하면 사건번호를 조회할 수 있다. 확인해보니 6개월 전에 고소가 접수된 상황이었다. 김씨는 당황했다. 사건 진행 이력에는 본인이 모욕죄로 고소됐다는 사실만 나와 있을 뿐이다. 6개월이나 지난 시점에서 고소당한 내용이 문자로 왔다는 것도 납득할 수 없었다. 

경찰 사건 조회 결과는 더욱 어이가 없었다. A씨 외에도 피의자로 입건된 사람이 무려 64명이나 됐다. 그러나 여전히 누구에게, 어떤 이유로 고소당했는지는 알 수 없었다. 6개월 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고민했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문자를 받은 지 6일 후 김씨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경찰서의 담당 형사였다. 형사는 김씨에게 모욕죄 고소를 당한 이유를 설명했다. 대략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에 작성한 댓글이 문제가 됐다는 것이다. 형사는 “경찰서에 와서 이 문제에 대해 소명하면 된다”고 말했다. 담담한 목소리였다.

고소부터 
항고까지

김씨는 형사의 설명을 듣자, 자신이 남긴 댓글이 생각났다. 커뮤니티 글은 아버지 생신 기념으로 케이크 업체에 주문 제작을 했는데, 케이크가 주문했던 내용과 달랐다는 글이었다. 글쓴이는 케이크 업체 주인과 다퉜던 내용도 올렸다.

형사는 김씨가 케이크 업체 주인을 비방하는 댓글을 달았다고 설명했다. 케이크 업체 주인이 김씨를 모욕죄로 신고한 것이다. 김씨 외에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사람도 있었다. 

김씨는 공개정보 포털 사이트에 신청해 고소장 내용 일부를 볼 수 있도록 신청했으나 거절당했다. 정확하게 어떤 내용으로 고소당했는지 확인하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그 사이 다시 관할 경찰서에 고소장을 볼 수 있도록 요청했다. 몇 시간이 지난 뒤 담당 형사는 “정보공개 신청하셨냐. 왜 한 거냐”고 물었다. 김씨가 “고소당한 게시글의 내용을 알고 싶어서 했다”고 하자, 형사는 조사받으러 오면 확인시켜주겠다고 했다. 

답답했다. 형사가 알려줬으니 게시물에 케이크 가게 주인을 비방하는 댓글을 남겼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확히 어떤 댓글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조사받으러 가기 전에 어떤 댓글을 쓴 것인지 확인하고 싶었으나 해당 게시물은 이미 삭제된 지 오래였다.

결국 조사받으러 가는 날까지 고소장의 내용을 볼 수 없었다. 조사받으러 가는 길에 김씨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암담했다. 진술 내용을 머릿속으로 정리해도 어떤 댓글을 썼는지 알 수 없으니 정확하지 않았다. 


김씨는 사이버팀에서 진술을 받았다. 담당 형사는 휴가를 간 상황이어서, 다른 형사가 왔다. 피의자 신문 조서를 작성한 뒤 형사는 ▲사는 곳 ▲최종 학력 ▲한 달 수입 ▲재산 ▲건강 ▲국가로부터 받은 훈장 ▲술을 얼마나 마시는지 ▲다른 사건에 고소된 적 있는지 ▲교통사고·상해·손괴 등 처벌을 받아봤는지를 물었다.

“피의자 조사를 받으러 온 적은 처음”이라고 김씨는 답했다. 

이어 ▲해당 커뮤니티 아이디가 있는지 ▲언제쯤 만든 아이디인지 ▲해당 아이디로 댓글을 달았던 사실을 인정하는지 ▲댓글을 달 때 어디에서 달았는지 ▲거주 지역은 왜 바뀌었는지 ▲해당 댓글을 어떤 기계로 작성했는지도 물었다.

“롤러코스터
타는 기분”

김씨가 비방했던 케이크 업주는 사실 마카롱 업주였다. 주문 제작 케이크 관련 글도 아니었고, 마카롱 관련 글이었다. 다만 글쓴이의 주문이 일방적으로 취소당한 내용은 맞았다. 진술 시간은 1시간 걸렸으며 결과가 나온 것은 한 달이 넘은 후였다. 아무래도 64명을 고소한 사건이다 보니 결과가 나오기까지 오래 걸린 것이다.

결과는 문자로 왔다. “귀하의 사건 처분 결과를 알려드립니다. 자세한 사항은 형사사법포털 사이트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모욕 : 혐의 없음(증거불충분)”이었다.


고소를 당하고 두 달이나 기다려 혐의없음 처분을 받은 것이다. 김씨는 아직도 자신을 고소했던 가게의 이름을 모르고, 어떤 내용으로 고소당했는지도 모른다. 서울에서 직고소했으니 서울에 있는 가게가 아닐지 예상할 뿐이었다.

김씨는 이 일을 겪은 뒤, 앞으로 커뮤니티에 글을 쓸 때 더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고소를 당하는 것 자체만으로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고, 애초에 고소를 당하지 않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건이 끝나는 것 같았다면 좋았겠지만, 아니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김씨는 뜬금없이 해당 사건을 조회하고 싶어졌다. 다시 형사사법 사이트에 들어가 내 사건으로 등록해놨던 사건 목록을 확인했다. 고소인은 항고를 한 상태였다.

사건번호 이력에 새로운 목록이 추가됐다. 고소인이 모욕에 대한 혐의없음(증거불충분) 처분에 대해 항고했고, 이 사건은 상급청으로 송부됐다. 이미 항고는 진행된 상태였다. 처음 고소가 걸렸을 때처럼 한참 후에 알려줄지 알 수 없었다.

항고를 당한 지 이미 한 달이 넘은 시점이었다. 다시 마음이 답답했다. 피항고인이 모르는 항고라는 것도 기가 막혔다. 항고는 지방검찰청에서 고등검찰청으로 넘어갔고, 추후 항고 기각처분을 받았다. 김씨가 항고당한 것을 알게 된 날에는 입맛을 잃을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처음 고소를 당했던 심정과 같았다.

앞서 언급했듯 해당 사건의 댓글과 게시글은 진작에 삭제됐다. 경찰서 조사를 받을 때 봤던 해당 글 제목을 검색해도 검색되지 않는다. 

소장 이어 합의 종용
십중팔구 돈이 목적

물론 비방 목적의 댓글을 단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고소인이 ‘비꼬는 한 줄짜리 댓글’로 고소하고 항고까지 갔다는 것을 두고, 김씨는 고소인이 ‘합의금 장사’를 하는 것이 아닐까 추측했다.

김씨는 “내가 쓴 댓글 한 줄 말고는 추가 자료도 없을 텐데 항고까지 한 것을 보면 ‘정신적으로 힘들게 만들려고’ ‘겁먹고 덜컥 합의하길 바라는 마음’ ‘경찰·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한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며 “항고 인용률이 10% 내외라고 하는데, 항고가 기각되면 그 후에 ‘재정신청’을 넣어서 또 괴롭힐 수 있다. 이번에 나는 항고를 당하면서 처음 고소당한 걸 알았을 때와 똑같은 기분을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고소당했다는 걸 알았을 때보다는 덜하지만 심리적인 압박감이 오는 건 어쩔 수 없다. 이때의 기분을 비유하자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롤러코스터를 타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올라가는 기분이었다. 눈앞이 깜깜하고 막막했다”며 “결과가 나왔을 때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대체 고소인은 비꼬는 댓글 한 줄이 보기 싫었던 건지, 아니면 돈이 필요했던 건지 모르겠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일부러 손님과 업체 간의 갈등을 빚는 글을 커뮤니티에 조작해서 쓰고 댓글로 욕하는 사람을 모욕죄나 명예훼손으로 고소해서 합의금을 타 먹는 ‘기획고소’하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가 말하는 기획고소는 속칭 고소 남발자들이 불순한 의도나 고의로 행하는 고소를 부르는 말이다. 즉, 일부러 욕먹을 상황을 만든 후 모욕죄나 명예훼손죄 등으로 고소하는 것이다.

김씨와 같은 사연은 ‘특이하거나’ ‘운이 나빠서’ 걸린 게 아니다. 모욕죄가 남발되는 상황은 큰 사건에서 더 흔하다. 

예를 들어 ▲가평계곡 살인 사건에서 공범인 조현수가 도주 전 네티즌을 무더기로 고소 ▲최순실이 자신에게 악플을 단 2700여명을 고소 ▲스티브 유가 자신을 비판하는 악플러를 고소하려고 한 것 등이 있다.

모욕죄 논란은 꾸준히 되풀이되고 있고, 관련 사건이 급증하면서 법조계에서는 관련 법리를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인천 남동경찰서 이승민 경정은 2021년 <형법상 모욕죄에서 모욕의 개념에 대한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에는 모욕죄 형사 처벌의 효과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이 경정은 “일선 수사 현장에서 모욕 고소장을 보면 술자리‧주차 문제 등 주민들 간 분쟁과 온라인 게임 중 채팅 등 사소한 분쟁에서 시작된 욕설과 댓글 내용이 상당수”라며 “작은 무례와 멸시로 시작된 욕설에 대해 형사처벌 하는 것이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라고 자조했다. 

그는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통계를 통해 알 수 있다. 현재 모욕죄는 빈번한 형사처벌과 당사자가 납득하지 못하는 경론이라는 우려가 상존한다. 일반 국민들이 법을 무시하거나 경시할 수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들이 명확히 수긍하지 못하는 판단으로 잦은 처벌을 받는다면 더 이상 자신의 행위를 위법 행위로 인식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십·수백명 
무더기 경찰행

이어 “오히려 수사와 사법기관의 불신을 만들 수 있고, 결국 법은 강제력을 확보하지 못하는 한계를 드러낼 것”이라며 “모욕의 개념을 일관성 있게 해석해 수범자에게 예측 가능성을 줄 필요가 있다. 경범죄처벌법의 행위 유형을 보완 입법하거나, 모욕죄에도 별도의 면책 규정을 따로 규정하는 것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앞으로 수사 및 법원 실무에서 모욕죄에 대해 일반인들도 예측하게 할 수 있는 판단의 축적과 함께 입법적 보완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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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칼춤 추는 이정현 마이웨이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 거침없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주호영 국회부의장·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이 공관위원장의 칼에 희생됐다. 변방의 이방인이어서 휘둘러야 했던 칼의 운명은 반복되고 있다. 그는 왜 칼을 휘두르는 걸까? 국민의힘 이정현 공천관리위원장(이하 공관위원장)이 지난 13일 “여러 의견을 존중하는 과정에서 제가 생각했던 방향을 더는 추진하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면서 사퇴했다가 이틀 후 번복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사퇴했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이틀 후 또 번복 정치권 안팎에선 대체로 이 공관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사퇴의 주요 원인으로 오세훈 서울시장과의 갈등을 주된 원인으로 거론했다. 오 시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에 소극적인 지도부 혁신 ▲혁신적인 선거대책위원회 조기 출범 등을 요구하면서 지방선거 공천 기간 내 후보 등록을 하지 않았다.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 번복에는 장 대표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사퇴 번복 후 “장 대표가 지난 14일 공천 혁신을 완수해 달라면서 공천 관련 전권을 맡긴다는 뜻을 전해왔다”고 밝혔다. 따라서 이 공관위원장의 사퇴는 대체로 ‘무력 시위’로 해석되고 있다. 결국 오 시장은 지난 17일 국민의힘 서울시장 경선 후보로 등록했다. 복귀한 이 공관위원장은 ‘장 대표가 부여한 공천 관련 전권’을 거침없이 휘둘렀다. 지난 16일에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이하 공관위)는 박형준 부산시장 공천 컷오프를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박 시장을 컷오프하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을 단수공천하자”고 주장한 핵심은 이 공관위원장이었다. 그러자 부산에 지역구를 둔 국민의힘 의원들이 장 대표를 방문해 항의했고, 장 대표는 박 시장·주 의원 간 경선을 결정했다. 같은 날 공천이 날아간 현역 광역자치단체장은 김영환 충북도지사였다. 공관위는 김 지사를 컷오프한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저 “김 지사의 공적·업적을 부정·평가절하 하기 위한 게 결코 아니”라면서 시대 교체·세대 교체를 언급했다. 정치권에선 ▲만 70세 고령 ▲수뢰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는 등 사법 리스크 ▲재임 중 각종 발언 논란 등 대체로 김 지사의 약점이 컷오프의 실제 이유 아니겠느냐는 추측이 돌고 있다. 김 지사는 곧바로 “특정인을 두고 면접을 진행하다니 기가 막힌다”면서 일각에서 거론됐던 ‘국민의당 김수민 전 의원 충북도지사 후보 내정설’을 암시했다. 김 전 의원은 지난 2024년부터 1년 동안 충북 정무부지사를 지냈다. 김 지사는 지난 18일엔 서울남부지법에 공천 배제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어 다음 날 진행된 심문에서 “이 공관위원장이 김 전 의원에게 개인적으로 연락해서 출마 여부를 타진했다”며 “절차적 정당성이 파기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공관위는 이와 상관없이 지난 20일 김 지사를 제외한 경선 구도를 확정했다. 이 공관위원장은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공천과 관련해서도 존재감을 드러냈다. 공관위는 지난 22일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 경선과 관련해 주호영 국회부의장·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을 공천에서 배제했다. 광주시장 출마 아닌 공관위원장 지방선거와 묶인 운명의 끝은? 대구시장 후보 경선에 대해선 한동안 “국민의힘 최은석 의원 공천이 사실상 내정된 게 아니냐”는 설이 돌아다녔다. 그러자 최 의원은 지난 2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공관위원장은 공천 심사 면접에서 처음 만났다”면서 이를 강하게 부인했다. 주 부의장은 공천 배제에 크게 반발했다. 그는 공천 배제 가능성이 거론되던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구를 공천 실험장으로 삼으면 안 된다”며 “대구시장을 더불어민주당에 상납하려는 거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 공관위원장은 대구의 자존심을 더 이상 짓밟지 말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주 부의장 공천 배제는 지난 22일 확정됐다. 그는 지난 25일 가처분 신청과 무소속 출마 가능성을 언급했다. 일각에서 의아하게 해석하는 지점은 유튜버 고성국씨 등 강경 보수 진영에서 강하게 지지했던 이 전 위원장이 공천에서 배제됐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추 의원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로 확정돼 의원직에서 물러나면, 이 전 위원장이 추 의원의 지역구 대구 달성 재보궐선거에 출마하는 게 아니냐”는 설이 나왔다. 반대로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서 대구시장 선거에 출마하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주 부의장의 지역구인 대구 수성갑에 출마하는 것 아니냐”는 설도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친한(친 한동훈)계 일원으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박정하 의원은 지난 24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주 부의장의 공천 배제엔 감정이 어느 정도 반영돼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고선 해석이 잘 안 된다”며 “장 대표의 생각도 분명히 들어가 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이어 주 부의장과 한 전 대표의 연대설에 대해서도 “한 전 대표가 보수 재건 후 당에 돌아오는 길을 찾아가는 길에 있어선 주 부의장의 선택 여하에 따라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 검토할 것이라고 본다”면서 연대설을 부정하진 않았다. 장 대표는 지난 23일 국민의힘 대구시당을 방문해 “공천 관련 모든 것은 당 대표인 제 책임”이라면서 공천 내정설에 대한 간접적인 의견을 밝혔다. 이어 “시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경선을 치르겠다는 말씀을 드렸고, 당 대표로서 역할을 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광역지방자치단체장 경선 상황·흐름에 대해선 “영남권 기성 중진과 반 장동혁 성향 인사를 배제하는 방향으로 가는 게 아니냐”는 의문이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장 대표와 이 곤공관위원장이 각각 ‘굿 캅’과 ‘배드 캅’으로 역할을 분담한다고 의심하고 있다. 의외의 연대설 이 공관위원장의 활동 방향을 놓고, 일각에선 그가 “사실상 장 대표의 칼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그의 삶과 정치 활동은 국민의힘 주류 정치인과 많이 다르다. 국민의힘은 영남을 주된 지역 기반으로 두고 있지만,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곡성 출신이다. 그가 태어나 자란 곡성에서도 특히 위치가 외진 목사동면 동암리로 알려졌다. 그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정치에 관심을 둔 것으로 알려졌고, 정계 입문 계기는 그의 고향을 지역구로 두고 국회의원으로 활동했던 민주정의당 구용상 전 의원의 비서관으로 발탁된 것이었다. 구 전 의원이 지난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 낙선한 후 이 공관위원장은 민주정의당의 말단 간사로 특채됐다. 영남 기반 정당의 호남 출신 당직자였던 그는 훗날 “늘 근본 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6년 후 그는 고향 전남 순천·곡성에서 진행된 재보궐선거에서 새누리당 후보로 당선되는 이변을 일으켰고, 다시 2년이 지나선 새누리당 대표로 당선됐다. 당선 이후 그의 28년에 대해선 “한 편의 드라마” 혹은 “인간 승리”라는 평가도 나왔다. 이 공관위원장에겐 2명의 이 위원장이 있다. 그는 재보궐선거 당시 49.43%를 득표해 40.32%를 득표한 당시 새정치민주연합 서갑원 후보를 물리쳤다. 이 후보의 당선엔 서 후보와 노관규 전 순천시장의 갈등도 큰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 있다. 하지만 정치적 흐름만을 탄 결과라고 보기 어렵다는 판단도 있다. 고향 곡성에서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지지세가 높아 70% 이상 득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그는 새누리당이 아닌 ‘곡성 출신 이정현’을 내세워 자전거를 타고 지역구를 누볐다. 당시 그는 스스로 ‘머슴’ 혹은 ‘촌놈’을 자처했다. 그러면서 “고향을 위해 미치도록 일하고 싶다”며 “죽도록 부려먹다가 못하면 그때 쓰레기통에 다시 넣으시더라도 이번 한번만큼은 제 손을 한 번 잡아달라”고 호소하는 등 지역의 호감을 얻는 발언을 이어나간 영향도 컸던 것으로 분석됐다. 비판·조롱 낯설게하기 지난 2016년 총선에선 지역구 조정 영향으로, 이 공관위원장은 전남 순천에 출마했다. 고향이 아닌 지역구에 출마한 것은 일견 불리할 수도 있는 선택이었다. 하지만 그는 44.54%를 득표해 당선됐다. 그는 재보선 당선 이후 매주 지역구를 방문해 현장을 누빈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당시 야권이었던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에서 모두 후보를 출마시킨 구도의 영향도 호재로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공관위원장은 지난 2022년 지방선거에선 국민의힘 전남도지사 후보로 출마해 선거 비용 보전액 하한선 15%를 넘기는 18.81%를 득표해 “선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데 그는 중앙 정치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그가 중앙 정치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을 때 그 원인은 대체로 설화였다. 청와대 홍보수석비서관으로 재직했던 2014년엔 길환영 당시 KBS 사장에게 연락해 “세월호 참사 관련 해경에 대한 비판을 지금은 자제해 달라”고 요구한 게 2년여가 흐른 후 뒤늦게 알려져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방송 편성 관련 규제·간섭을 금지한 방송법 위반 행위가 될 위험이 있었는데 실제로 그는 벌금형을 확정받았다. 새누리당 최고위원이었던 지난 2015년엔 광주를 방문해 ‘광주 비하’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을 했다. 당시 그는 “광주 시민이 이정현이를 쓰레기통에 버렸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나 같은 쓰레기를 끄집어내서 탈탈 털어 청와대 정무수석·홍보수석을 시켜주는 배려를 했다”고 주장했다. 박 전 대통령에게 과잉 충성하는 이 공관위원장의 모습이나 발언은 지금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였던 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12년 9월 과거사 사과 기자회견에서 회견문을 읽은 후 고개 숙여 인사했다. 당시 상황을 촬영한 사진 중에 후보 공보단장이었던 이 공관위원장이 “질의 시간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의미로 손가락으로 X 표시를 만드는 사진도 있다. 새누리당 대표였던 지난 2016년 11월엔 야권이 박 전 대통령의 임기 단축 협상을 거절하고 탄핵소추를 추진하자 “그 사람들이 탄핵을 실천하면 뜨거운 장에 손을 집어넣겠다”고 반발해 한동안 이 공관위원장을 조롱하는 합성 사진이 범람했다. 정치인은 대체로 선거 현장·당내 투쟁에선 정반대의 모습을 보여준다. 일부 정치인은 그 간극이 커서 주목받는다. 이 공관위원장의 태도는 “상대방에게 진정성 있게 몰입한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그 진정성 있는 몰입은 정반대의 이미지를 연출한다. 지역구에선 유권자들이 전통적인 지역 구도에 따른 관성을 무시하고 그를 지지하는 이변으로 이어진다. 반대로 중앙 정치에선 지지자들의 환호와 반대파의 비판·조롱으로 나뉜다. 주호영·김영환 치니 한동훈 꿈틀…나비효과? 마구 휘두르고 장동혁이 수습…굿 캅 배드 캅?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론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호남 출신 보수정당 소속’으로 던져졌다. 이는 그 스스로 선택한 것이지만, 주어진 운명이 그를 던진 측면도 있다. 던져진 상황을 극복하는 것은 그의 선택이 부여한 운명이었다. 이 때문에 이 공관위원장은 고향에선 ‘친근한 고향 사람’이 돼 선거에 임하면서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하지만 보수정당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그를 발탁한 사람은 박 전 대통령이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충성은 그 스스로 선택해 자신의 삶을 던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영남 출신 엘리트’ 주축으로 구성된 국민의힘 기준에서 이 공관위원장은 변방의 이방인이다. <조선일보> 양상훈 주필은 지난 2016년 8월 이 공관위원장이 새누리당 대표에 당선된 후 그에 관한 칼럼을 썼다. 양 주필에 따르면, 이 공관위원장은 당직자 시절 자신보다 어린 당 출입기자로부터 반말을 들어가면서 그의 심부름을 했다. 변방의 이방인이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태도는 훨씬 ‘편하게’ 나왔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는 지금도 국민의힘에 있다. 러시아 문예비평가 빅토르 슈클로프스키는 시 창작과 관련해 ‘낯설게하기’란 이론을 창안했다. “익숙한 대상을 생경하게 바라보면서 그 본질을 시로 표현할 수 있다”는 취지의 이론이다. 그런데 이 공관위원장은 존재 자체가 ‘낯설게하기’였다. 고향에선 보수 정당 소속이기 때문에 낯설다. 보수 정당에선 호남 출신인 그의 존재는 낯설면서도 동시에 강렬하다. 공천관리위원장으로서 시행하는 주요 정치인 컷오프도 그가 낯선 존재이기 때문에 더욱 부각된다. 박 전 대통령에 대한 그의 충성도 반대파·비판자의 관점에선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로 보일 여지가 있다. 개종자의 열정은 원래 특정 집단 소속이 아니었던 사람이 집단에 들어간 이후 기존 구성원보다 더 근본주의적인 태도로 열정을 쏟아붓는 현상을 말한다. 이는 대체로 “난 원래 이 집단 사람이 아니었다”는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진행된다. 그에게는 늘 ‘근본’과 관련된 비판을 받으면 안 된다는 불안감이 있기 때문이다. 과잉 사회화도 뒤늦은 주류 문법 학습 때문에 유연성을 발휘하기보다 집단의 규범을 그대로 집행하려는 경향으로 이어지는 측면을 일컫는다. 개종자의 열정·과잉 사회화를 상징하는 역사 속 인물로는 긍정적인 측면에선 한때 유대교 바리새파에서 촉망받았다가 예수의 가르침을 전파한 사도 바울을 언급할 수 있다. 부정적인 측면에선 20세기 소련의 공안 탄압을 상징하는 라브렌티 베리야를 언급할 수 있다. 조지아 출신인 베리야는 이오시프 스탈린에게 발탁된 후 대숙청을 진두지휘했던 니콜라이 예조프를 몰아내고 방첩기관 NKVD의 수장이 됐다. 지금도 베리야는 공안 탄압을 상징한다. 특정 집단에 기반이 없는 이방인이 그 집단에서 생존하기 위해 누군가의 ‘칼’이 되는 것은 숙명에 가깝다. 숙명적으로 묶인 운명 이 공관위원장은 원래 광주·전남통합시장 출마를 준비했다가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으로 임명됐다. 그는 임명된 직후 군복을 연상시키는 야전상의를 입고 다시 등장했다. 사실상 장 대표의 칼로써 공천을 진두지휘하면서 그의 정치적 운명은 지방선거에 묶였다. 그의 운명은 여전히 칼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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