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승부수 던진 나경원

윤, 또 골치 아프게 생겼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결국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따라갈까? 당권주자들은 총선 전략보다도 자신이 가진 윤심의 크기를 앞세운다. 여당은 윤심 반영을 위해 룰 변경마저 불사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다. ‘민심’을 넘으니 ‘당심’이 윤심을 막아섰다. 일찍이 정리한 줄 알았던 나경원 전 의원이 줄곧 당심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나 전 의원은 숱한 견제에도 출마를 강행할 분위기다. 친윤(친 윤석열)계가 ‘닭 쫓던 개’ 신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의 당 대표 출마설은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나 전 의원은 국민의힘에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직후 스스로 당권 도전을 시사한 바 있다. 아울러 지난해부터 실시된 당권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줄곧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판사 출신
보수 중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반윤(반 윤석열)계 핵심’ 유승민 전 의원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당 지지층 대상 조사에서는 대부분 1위 자리를 지켜왔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룰은 변경 전에도 당원 선호도 70%·국민 여론조사 30%였다. 나 전 의원이 다른 당권주자들보다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다.

나 전 의원이 당심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배경에 대해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우선 나 전 의원은 20년이 넘도록 탈당 없이 국민의힘에서만 4선을 쌓은 중진 정치인이다. 이 때문에 전통적 지지층 사이에서 탈당 전력이 있는 유 전 의원이나 진영을 건너온 안철수 의원보다 선호도가 높다.

당원들 사이에서 나 전 의원이 ‘진짜 보수’로 인식되는 점도 중요한 지점이다. 나 전 의원이 강도 높은 발언을 거리낌 없이 이어오면서 강성 보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이 때문에 중도 확장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열성 당원 사이에서는 ‘사이다’ 발언으로 높은 지지를 얻어왔다.


오랜 정치경력으로 만들어진 높은 인지도나 여당에서는 드문 수도권 출신 중진이라는 점 역시 강점이다. 정치색과는 달리 계파색이 옅어 독자 세력 조직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반대로 당내에서 포괄적인 지지세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나 전 의원의 특성은 그가 밟아온 이력에서 잘 드러난다.

나 전 의원은 1963년 서울 영등포구(현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82학번으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원희룡 국토부 장관 등과 동기다. 이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나 전 의원은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고시원에서 서울대 법대 선배·동기들과 함께 하숙하며 시험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시반 대장 역할을 자처했던 이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79학번, 나 전 의원은 82학번으로 두 사람은 3살 터울의 선후배 사이다. 이들은 모두 수험생활이 상대적으로 긴 편으로, 오랜 시간 함께 공부하며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이후 윤 대통령은 검찰 재직 시절 나 전 의원이 17대 총선에 출마하자 “(나 전 의원이)나중에 대선에 출마하면 검사를 그만두고 지지 유세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나 전 의원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1995년 부산지방법원에 초임판사로 부임했다. 이어 인천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가 2002년 제16대 대선 때 판사직을 내려놓으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당시 나 전 의원은 이 후보의 여성특보를 맡아 정계에 입문했다.

2년 뒤인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7년 제17대 대선정국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변인을 맡아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나 전 의원은 이를 계기로 당내 입지를 다지고, 대외적으로는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당심’ 1위지만… ‘윤심’ 없어 고민
“곧 결단” 사실상 출마 결심 굳힌 듯

이듬해엔 18대 총선서 서울 중구에 출마해 재선 고지를 밟으며 당내 유력 여성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을 차차기 대권후보로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계속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던 그의 정치 행보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시작은 2011년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당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직을 걸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물러나면서, 선거 판세가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다. 불리한 상황에서 의원직을 던지고 출마한 나 전 의원은 이변 없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득표율 약 7%p 차이로 석패했다.

낙선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선거 과정에서 다른 논란들이 함께 불거진 것이었다. 선거캠프 대변인의 음주 방송 논란이 사실로 드러났고, 반대 진영서 주장했던 ‘호화 피부과 의혹’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 참여 의혹’ 등에도 내상을 크게 입었다.

결국 이듬해 치러진 제19대 총선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출마하지 못했다. 한동안 정계와 거리를 두고 변호사 생활에 전념했다.

나 전 의원은 2014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복귀한다. 당시 동작구을 지역구의 현직 의원이었던 정몽준 전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했고, 나 전 의원이 공석을 메우기 위해 낙점됐다. 당시 그는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정의당의 고 노회찬 의원을 상대로 단 1.3%p(929표 차) 앞서는 진땀승을 거뒀다. 

결국 19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연속 3선에 성공한 정치인이 됐다. 중진 반열에 올라선 그는 후반기 외교통일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2016년 치러진 제20대 총선서 연속 4선 기록에 도전했다. 앞서 당선됐던 동작구을 지역구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새누리당은 원내 1당 자리를 빼앗기는 등 고전한 선거였지만, 나 전 의원은 무난하게 4선에 성공했다. 어려운 선거에서 수도권 4선 고지를 밟은 나 전 의원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커졌다.

이를 바탕으로 원내대표 경선에 두 번 도전하지만, 모두 친박(친 박근혜)계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두 번째 경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 치러졌다. 이때 나 전 의원이 낙선하면서 친박계가 주도권을 지켜내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이는 비박(비 박근혜)계 의원들의 집단 탈당 사태를 초래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하지만 정작 나 전 의원은 탈당 대열에 합류하지 않아 비판 여론이 일었다. 보수 지지층 일각에선 “나 전 의원이 개인적인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과정에서 대의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당적을 지킨 나 전 의원은 2018년 원내대표 경선에 재출마했다. 앞선 선거에서는 친박계에 맞서 낙선했지만, 이때는 오히려 친박계의 지지에 힘입어 무난하게 당선됐다. 나 전 의원은 야당 원내대표로서 여권을 상대로 한 강성 투쟁에 앞장섰다.

하지만 강성 투쟁 일변도 실리를 챙기지 못했고, 중도층 등 지지층 확장에도 실패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문빠’ ‘달창’ 등 여권 지지자들을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뒤늦게 사과하는 등 개인적 구설도 잇따랐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본인의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지만, 황교안 전 대표가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이를 막았다. 나 전 의원은 자신에게 언질도 주지 않고 재신임 논의를 끝낸 것에 격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기점으로 나 전 의원의 정치 행보는 다시 수난기에 접어들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5선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정치 신인급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전반적으로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선거이긴 했어도 나 전 의원은 이미 자신이 2번이나 당선된 지역구에서 정치 신인에게 7%p 득표율 차이로 패배했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더 큰 굴욕을 맛봤다.

그는 낙선 후 정치권과 잠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권에서 다시 나 전 의원의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2020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임기 중 성추문 의혹을 받고 사망하면서다. 나 전 의원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자로 거론됐다.


약 10년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불리한 구도가 형성돼있었지만, 이때는 반대로 낙승이 예견됐으므로 구미가 당길만한 기회였다. 

‘윤심’ 보다 
‘민심’ 이다?

실제로 나 전 의원은 2021년 1월13일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결국 오 시장에게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다. 경선 결과 발표 직후 나 전 의원은 “결과에 승복한다. 국민의힘 승리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은 당시 오 시장의 선거유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아울러 동시에 진행되던 부산시장 선거 지원유세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나 전 의원은 2주 동안 총 65회의 후보 지원유세 일정을 소화했다.

나 전 의원은 숨 고를 새도 없이 당권 도전을 선언해 이준석 전 대표와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민심에서는 이 전 대표가, 당심에서는 나 전 의원이 앞서는 양상이었다. 두 사람은 후보 토론회 등에서 날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민심은 계속 벌어졌고, 당심은 계속 좁혀졌다.

결국 2021년 6월 전당대회서 이 전 대표에게 6%p 득표율 차이로 밀리며 고배를 마셨다. 전체 70%를 차지하는 당원 득표에서는 아슬아슬하게 1위를 차지했지만, 여론조사의 격차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이로써 나 전 의원은 불과 1년 사이에 치른 세 번의 선거에서 모두 낙선하고 말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이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외연 확장과 중도층 포섭에 난항을 겪는 모습을 잇달아 보이면서 정치인으로서의 한계점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나 전 의원은 전당대회 이후 미국으로 출국하며 대권 레이스와 거리를 뒀다. 이후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윤 대통령이 나 전 의원을 캠프에 참여시킬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은 “선대위에 내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내 작은 자리라도 내어놓고 싶다”며 “그 자리가 한 표라도 가져올 수 있는 외연 확대를 위한 인사 영입에 사용되길 소망한다”며 거부 의사를 에둘러 밝혔다.

윤정부 출범 전후로는 입각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인수위 출범 초기 외교부 장관 내정설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 환경부 장관 등의 하마평에 지속적으로 언급됐다.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도 거론됐다. 하지만 약 반 년간 ‘내정설’이 수차례 돌았음에도 실제로 성사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13일, 나 전 의원은 부총리급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내정됐다. 다음 날 바로 임명장이 수여되면서 정식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같은 달 18일에는 기후환경대사에 임명됐다, 불과 나흘 사이에 정부 고위직 두 자리를 얻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의 갑작스러운 중용 배경을 두고 대통령실의 ‘당권 교통정리’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른바 윤심을 받는 친윤 주자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다른 유력 주자들을 정리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나 전 의원은 “(받은 자리가)비상근이기 때문에 어떤 제한이 있지는 않다. 당적을 내려놔야 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당권과 관련해 배제되거나 배척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자리를 받았음에도 당권 도전 의사를 당장 접을 생각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게다가 마치 유 전 의원을 겨냥해 변경한 듯한 ‘당원투표 100%’ 선거방식은 당 지지층 선호도 1위를 달리는 나 전 의원에게 큰 호재로 다가왔다.

친윤 파상공세 버티고 당선될까? 
되든 안 되든 막대한 파장 예고

‘동상이몽’ 아래 미묘하게 이어지던 갈등은 이달 초 폭발했다. 지난 5일 나 전 의원이 출산 시 부모의 대출 원금을 탕감하는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하자, 대통령실이 “실망스럽다” “납득하기 어려운 부적절한 처사” 등의 표현으로 나 전 의원을 직격했다.

이후 대통령실에서는 나 전 의원을 향해 해촉까지 시사하는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정책을 명분 삼아 과도한 비판이 가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표면적인 이유는 나 전 의원이 정부와 상의 없이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나 전 의원이 교통정리를 거부하고 당권 행보를 계속 이어간 것에 대한 대통령실의 불만이 깔려 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당 안팎에서는 나 전 의원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윤심 후보’로 꼽히는 김기현 의원과  친윤계에서는 “전당대회에 나온다면 ‘제2의 유승민, 이준석’ 프레임으로 정리하는 수밖에 없다”며 나 전 의원을 압박했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 및 친윤계 의원들과 극한 갈등을 빚은 끝에 대표직에서 축출된 바 있다.

나 전 의원 입장에선 대통령실의 비토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만일 나 전 의원이 윤심을 등지고 출마해 당선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일 수도 있다. 계파색이 옅어 세력이 약한 나 전 의원이 사실상 ‘식물 대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은 쉽게 물러날 수 없는 입장이다. 앞선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하면서 정치력을 지나치게 소모했기 때문이다. 당심의 큰 지지를 받으면서도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정치적 타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번 대표 출마가 나 전 의원이 부활할 마지막 기회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단 나 전 의원은 저자세 전략을 택했다. 그는 지난 10일 “대통령께 저출산위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저출산위 부위원장직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뜻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이미 높은 지지율을 확보한 나 전 의원이 대통령과 악화된 관계를 먼저 풀려는 시도를 보여주기만 해도 동정표를 꽤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사의는 서면으로 표명해야 한다는 입장 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나 전 의원은 지난 13일 오전 서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는 대통령실에 사실상 자신의 거취를 조속히 정리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결국 대통령실은 같은 날 오후 나 전 의원을 저출산위 부위원장과 기후대사 직에서 해임했다.

당초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의 사의를 오는 21일 전에는 받지 않을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깔끔한 정리에 실패한 상황에서, 나 전 의원에게 일방적인 핍박을 가하는 구도가 오래 지속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낙장불입  
절치부심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한결 자유로워진 나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이 올라간 점 또한 문제다. 결국 나 전 의원의 출마를 막지 못해 윤심 후보가 낙선한다면, 정권 초기부터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에 큰 타격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 전 의원 측은 출마 여부 발표 시점을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복귀 시점으로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이 출마를 결심한다고 하더라도 사직서 제출 직후나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 입장을 밝히면 자칫 ‘항명’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14일 출국한 윤 대통령은 오는 21일 귀국할 예정이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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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