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승부수 던진 나경원

윤, 또 골치 아프게 생겼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결국 ‘윤심(윤석열 대통령 의중)’을 따라갈까? 당권주자들은 총선 전략보다도 자신이 가진 윤심의 크기를 앞세운다. 여당은 윤심 반영을 위해 룰 변경마저 불사했다. 그런데 산 넘어 산이다. ‘민심’을 넘으니 ‘당심’이 윤심을 막아섰다. 일찍이 정리한 줄 알았던 나경원 전 의원이 줄곧 당심 1위 자리를 수성하고 있다. 나 전 의원은 숱한 견제에도 출마를 강행할 분위기다. 친윤(친 윤석열)계가 ‘닭 쫓던 개’ 신세가 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의힘 나경원 전 의원의 당 대표 출마설은 오래전부터 제기돼왔다. 나 전 의원은 국민의힘에 비대위 체제가 들어선 직후 스스로 당권 도전을 시사한 바 있다. 아울러 지난해부터 실시된 당권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서 줄곧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판사 출신
보수 중진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는 ‘반윤(반 윤석열)계 핵심’ 유승민 전 의원에게 밀리는 모습을 보였지만, 당 지지층 대상 조사에서는 대부분 1위 자리를 지켜왔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룰은 변경 전에도 당원 선호도 70%·국민 여론조사 30%였다. 나 전 의원이 다른 당권주자들보다 한발 앞서 있다는 평가를 받았던 이유다.

나 전 의원이 당심에서 높은 지지를 받는 배경에 대해선 여러 분석이 나온다. 우선 나 전 의원은 20년이 넘도록 탈당 없이 국민의힘에서만 4선을 쌓은 중진 정치인이다. 이 때문에 전통적 지지층 사이에서 탈당 전력이 있는 유 전 의원이나 진영을 건너온 안철수 의원보다 선호도가 높다.

당원들 사이에서 나 전 의원이 ‘진짜 보수’로 인식되는 점도 중요한 지점이다. 나 전 의원이 강도 높은 발언을 거리낌 없이 이어오면서 강성 보수 이미지를 구축해왔다. 이 때문에 중도 확장성은 상대적으로 떨어지지만, 열성 당원 사이에서는 ‘사이다’ 발언으로 높은 지지를 얻어왔다.


오랜 정치경력으로 만들어진 높은 인지도나 여당에서는 드문 수도권 출신 중진이라는 점 역시 강점이다. 정치색과는 달리 계파색이 옅어 독자 세력 조직에 난항을 겪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지만, 반대로 당내에서 포괄적인 지지세를 얻을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이 같은 나 전 의원의 특성은 그가 밟아온 이력에서 잘 드러난다.

나 전 의원은 1963년 서울 영등포구(현 동작구) 노량진동에서 태어났다. 서울에서 학창 시절을 보낸 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에 진학했다. 82학번으로, 조국 전 법무부장관, 원희룡 국토부 장관 등과 동기다. 이후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나 전 의원은 1992년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서울 마포구 서교동의 한 고시원에서 서울대 법대 선배·동기들과 함께 하숙하며 시험을 준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고시반 대장 역할을 자처했던 이가 윤석열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79학번, 나 전 의원은 82학번으로 두 사람은 3살 터울의 선후배 사이다. 이들은 모두 수험생활이 상대적으로 긴 편으로, 오랜 시간 함께 공부하며 친분을 쌓았다고 한다.

이후 윤 대통령은 검찰 재직 시절 나 전 의원이 17대 총선에 출마하자 “(나 전 의원이)나중에 대선에 출마하면 검사를 그만두고 지지 유세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나 전 의원은 사법연수원을 수료한 뒤 1995년 부산지방법원에 초임판사로 부임했다. 이어 인천지방법원, 서울행정법원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러다가 2002년 제16대 대선 때 판사직을 내려놓으며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당시 나 전 의원은 이 후보의 여성특보를 맡아 정계에 입문했다.

2년 뒤인 2004년 제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2007년 제17대 대선정국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의 대변인을 맡아 대선 승리에 기여했다. 나 전 의원은 이를 계기로 당내 입지를 다지고, 대외적으로는 인지도를 높일 수 있었다. 

‘당심’ 1위지만… ‘윤심’ 없어 고민
“곧 결단” 사실상 출마 결심 굳힌 듯

이듬해엔 18대 총선서 서울 중구에 출마해 재선 고지를 밟으며 당내 유력 여성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을 차차기 대권후보로 꼽을 정도였다. 하지만 계속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았던 그의 정치 행보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시작은 2011년 치러진 서울시장 보궐선거였다. 당시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직을 걸었던 오세훈 서울시장이 물러나면서, 선거 판세가 이미 기울어진 상태였다. 불리한 상황에서 의원직을 던지고 출마한 나 전 의원은 이변 없이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게 득표율 약 7%p 차이로 석패했다.

낙선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지만, 더 큰 문제는 선거 과정에서 다른 논란들이 함께 불거진 것이었다. 선거캠프 대변인의 음주 방송 논란이 사실로 드러났고, 반대 진영서 주장했던 ‘호화 피부과 의혹’ ‘일본 자위대 창설 기념행사 참여 의혹’ 등에도 내상을 크게 입었다.

결국 이듬해 치러진 제19대 총선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출마하지 못했다. 한동안 정계와 거리를 두고 변호사 생활에 전념했다.

나 전 의원은 2014년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통해 정계에 복귀한다. 당시 동작구을 지역구의 현직 의원이었던 정몽준 전 의원이 서울시장에 출마했고, 나 전 의원이 공석을 메우기 위해 낙점됐다. 당시 그는 야권 단일후보로 나선 정의당의 고 노회찬 의원을 상대로 단 1.3%p(929표 차) 앞서는 진땀승을 거뒀다. 

결국 19대 국회에 입성하면서 연속 3선에 성공한 정치인이 됐다. 중진 반열에 올라선 그는 후반기 외교통일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2016년 치러진 제20대 총선서 연속 4선 기록에 도전했다. 앞서 당선됐던 동작구을 지역구에 다시 출사표를 던졌다. 새누리당은 원내 1당 자리를 빼앗기는 등 고전한 선거였지만, 나 전 의원은 무난하게 4선에 성공했다. 어려운 선거에서 수도권 4선 고지를 밟은 나 전 의원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커졌다.

이를 바탕으로 원내대표 경선에 두 번 도전하지만, 모두 친박(친 박근혜)계에 밀려 고배를 마셨다. 두 번째 경선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정국에서 치러졌다. 이때 나 전 의원이 낙선하면서 친박계가 주도권을 지켜내는 모양새가 연출됐다. 이는 비박(비 박근혜)계 의원들의 집단 탈당 사태를 초래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나갈 수도
안 나갈 수도


하지만 정작 나 전 의원은 탈당 대열에 합류하지 않아 비판 여론이 일었다. 보수 지지층 일각에선 “나 전 의원이 개인적인 정치적 이득을 취하는 과정에서 대의를 저버렸다”는 비판이 나왔다. 

결국 당적을 지킨 나 전 의원은 2018년 원내대표 경선에 재출마했다. 앞선 선거에서는 친박계에 맞서 낙선했지만, 이때는 오히려 친박계의 지지에 힘입어 무난하게 당선됐다. 나 전 의원은 야당 원내대표로서 여권을 상대로 한 강성 투쟁에 앞장섰다.

하지만 강성 투쟁 일변도 실리를 챙기지 못했고, 중도층 등 지지층 확장에도 실패했다는 비판이 뒤따른다. ‘문빠’ ‘달창’ 등 여권 지지자들을 비하하는 표현을 사용했다가 뒤늦게 사과하는 등 개인적 구설도 잇따랐다.

임기 만료를 앞두고 본인의 재신임 투표를 제안했지만, 황교안 전 대표가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이를 막았다. 나 전 의원은 자신에게 언질도 주지 않고 재신임 논의를 끝낸 것에 격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기점으로 나 전 의원의 정치 행보는 다시 수난기에 접어들었다. 2020년 제21대 총선에서 5선 도전장을 내밀었지만, 정치 신인급이었던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에게 밀려 낙선했다. 전반적으로 미래통합당이 참패한 선거이긴 했어도 나 전 의원은 이미 자신이 2번이나 당선된 지역구에서 정치 신인에게 7%p 득표율 차이로 패배했다는 점이 강조되면서 더 큰 굴욕을 맛봤다.

그는 낙선 후 정치권과 잠시 거리를 두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정치권에서 다시 나 전 의원의 이름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2020년 7월 박원순 서울시장이 임기 중 성추문 의혹을 받고 사망하면서다. 나 전 의원은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자로 거론됐다.


약 10년 전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는 불리한 구도가 형성돼있었지만, 이때는 반대로 낙승이 예견됐으므로 구미가 당길만한 기회였다. 

‘윤심’ 보다 
‘민심’ 이다?

실제로 나 전 의원은 2021년 1월13일 보궐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하지만 결국 오 시장에게 당내 경선에서 패배했다. 경선 결과 발표 직후 나 전 의원은 “결과에 승복한다. 국민의힘 승리를 위해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나 전 의원은 당시 오 시장의 선거유세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아울러 동시에 진행되던 부산시장 선거 지원유세에도 적극적으로 나섰다. 나 전 의원은 2주 동안 총 65회의 후보 지원유세 일정을 소화했다.

나 전 의원은 숨 고를 새도 없이 당권 도전을 선언해 이준석 전 대표와 양강 구도를 형성했다. 민심에서는 이 전 대표가, 당심에서는 나 전 의원이 앞서는 양상이었다. 두 사람은 후보 토론회 등에서 날선 공방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민심은 계속 벌어졌고, 당심은 계속 좁혀졌다.

결국 2021년 6월 전당대회서 이 전 대표에게 6%p 득표율 차이로 밀리며 고배를 마셨다. 전체 70%를 차지하는 당원 득표에서는 아슬아슬하게 1위를 차지했지만, 여론조사의 격차를 끝내 극복하지 못했다.

이로써 나 전 의원은 불과 1년 사이에 치른 세 번의 선거에서 모두 낙선하고 말았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이 정치생명에 치명타를 입었다는 진단이 나왔다. 외연 확장과 중도층 포섭에 난항을 겪는 모습을 잇달아 보이면서 정치인으로서의 한계점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나 전 의원은 전당대회 이후 미국으로 출국하며 대권 레이스와 거리를 뒀다. 이후 당내 경선에서 승리한 윤 대통령이 나 전 의원을 캠프에 참여시킬 것이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은 “선대위에 내 자리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겠지만 내 작은 자리라도 내어놓고 싶다”며 “그 자리가 한 표라도 가져올 수 있는 외연 확대를 위한 인사 영입에 사용되길 소망한다”며 거부 의사를 에둘러 밝혔다.

윤정부 출범 전후로는 입각설이 꾸준히 제기됐다. 인수위 출범 초기 외교부 장관 내정설에 이어 문화체육관광부, 중소벤처기업부, 환경부 장관 등의 하마평에 지속적으로 언급됐다. 이어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로도 거론됐다. 하지만 약 반 년간 ‘내정설’이 수차례 돌았음에도 실제로 성사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10월13일, 나 전 의원은 부총리급인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에 내정됐다. 다음 날 바로 임명장이 수여되면서 정식으로 임기를 시작했다. 같은 달 18일에는 기후환경대사에 임명됐다, 불과 나흘 사이에 정부 고위직 두 자리를 얻은 셈이다.

일각에서는 나 전 의원의 갑작스러운 중용 배경을 두고 대통령실의 ‘당권 교통정리’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른바 윤심을 받는 친윤 주자를 당선시킬 목적으로 다른 유력 주자들을 정리하는 중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나 전 의원은 “(받은 자리가)비상근이기 때문에 어떤 제한이 있지는 않다. 당적을 내려놔야 되는 것도 아니다”라며 “당권과 관련해 배제되거나 배척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자리를 받았음에도 당권 도전 의사를 당장 접을 생각은 없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게다가 마치 유 전 의원을 겨냥해 변경한 듯한 ‘당원투표 100%’ 선거방식은 당 지지층 선호도 1위를 달리는 나 전 의원에게 큰 호재로 다가왔다.

친윤 파상공세 버티고 당선될까? 
되든 안 되든 막대한 파장 예고

‘동상이몽’ 아래 미묘하게 이어지던 갈등은 이달 초 폭발했다. 지난 5일 나 전 의원이 출산 시 부모의 대출 원금을 탕감하는 ‘헝가리식 저출산 대책’을 제시하자, 대통령실이 “실망스럽다” “납득하기 어려운 부적절한 처사” 등의 표현으로 나 전 의원을 직격했다.

이후 대통령실에서는 나 전 의원을 향해 해촉까지 시사하는 강경 발언을 이어갔다. 아직 시행되지도 않은 정책을 명분 삼아 과도한 비판이 가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표면적인 이유는 나 전 의원이 정부와 상의 없이 저출산 대책을 발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속에는 나 전 의원이 교통정리를 거부하고 당권 행보를 계속 이어간 것에 대한 대통령실의 불만이 깔려 있다는 의혹이 꾸준히 제기됐다.

당 안팎에서는 나 전 의원을 향한 비난이 쏟아졌다. 특히 ‘윤심 후보’로 꼽히는 김기현 의원과  친윤계에서는 “전당대회에 나온다면 ‘제2의 유승민, 이준석’ 프레임으로 정리하는 수밖에 없다”며 나 전 의원을 압박했다. 앞서 이 전 대표는 윤 대통령 및 친윤계 의원들과 극한 갈등을 빚은 끝에 대표직에서 축출된 바 있다.

나 전 의원 입장에선 대통령실의 비토가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한다. 만일 나 전 의원이 윤심을 등지고 출마해 당선되더라도 그 이후가 문제일 수도 있다. 계파색이 옅어 세력이 약한 나 전 의원이 사실상 ‘식물 대표’가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전 의원은 쉽게 물러날 수 없는 입장이다. 앞선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하면서 정치력을 지나치게 소모했기 때문이다. 당심의 큰 지지를 받으면서도 이에 응하지 않는다면 이 또한 정치적 타격으로 돌아올 수 있다. 이번 대표 출마가 나 전 의원이 부활할 마지막 기회라는 시각도 존재한다.

일단 나 전 의원은 저자세 전략을 택했다. 그는 지난 10일 “대통령께 저출산위 문제로 심려를 끼쳐드렸다”며 저출산위 부위원장직 자리를 내려놓겠다는 뜻을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이미 높은 지지율을 확보한 나 전 의원이 대통령과 악화된 관계를 먼저 풀려는 시도를 보여주기만 해도 동정표를 꽤 얻을 수 있다는 계산이다.

이와 관련해 대통령실은 사의는 서면으로 표명해야 한다는 입장 외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러자 나 전 의원은 지난 13일 오전 서면 사직서를 제출했다. 이는 대통령실에 사실상 자신의 거취를 조속히 정리해달라고 요구한 것이다. 결국 대통령실은 같은 날 오후 나 전 의원을 저출산위 부위원장과 기후대사 직에서 해임했다.

당초 대통령실은 나 전 의원의 사의를 오는 21일 전에는 받지 않을 방침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미 깔끔한 정리에 실패한 상황에서, 나 전 의원에게 일방적인 핍박을 가하는 구도가 오래 지속되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것으로 풀이된다.

낙장불입  
절치부심

대통령실 입장에서는 한결 자유로워진 나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이 올라간 점 또한 문제다. 결국 나 전 의원의 출마를 막지 못해 윤심 후보가 낙선한다면, 정권 초기부터 윤 대통령의 당 장악력에 큰 타격이 가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나 전 의원 측은 출마 여부 발표 시점을 윤 대통령의 해외 순방 복귀 시점으로 잡을 것으로 보인다. 이 사이 출마를 결심한다고 하더라도 사직서 제출 직후나 윤 대통령의 해외순방 중 입장을 밝히면 자칫 ‘항명’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지난 14일 출국한 윤 대통령은 오는 21일 귀국할 예정이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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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