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범죄가 발생하면 높은 확률로 소위 ‘전문가’ 집단의 사이코패스 진단 여부가 따라붙는다. 강력범죄자를 거의 예외 없이 사이코패스로 몰아가는 일부 자칭 전문가들과 이에 편승한 사회적 분위기는 기이하다고 할 정도다.
사이코패스를 언급하려면 사이코패스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인지해야 한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들이 누구인지, 그들이 자신의 본성을 언제 드러낼지 알 수 없다. 우리 주변에는 모습을 숨긴 채 살아가는 사이코패스가 존재하며, 그들은 우리 사회의 취약성을 착취하기 위해 ‘우리’라는 방호복·위장복 속에서 숨어 틈새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특징은 그들이 두려운 가장 큰 이유로 작용한다. 누구든 아무런 잘못도 없이 그냥 ‘그때 그 자리’에 있었단 이유 하나만으로 그들의 희생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이코패스라는 말 자체는 기본적으로 대중을 두렵게 만들지만, 때로는 대중을 현혹시키거나 한발 더 나아가 매료시키는 등 혼란스럽게 만들기도 한다. 범죄 관련 정보 대부분을 미디어에 의존하는 특성상, 일부 사람은 사이코패스라고 하면 범죄 가문을 이끌었던 연쇄살인마 Charlse Manson이나 영화 <양들의 침묵> 속 가공의 인물 Hannibal Lecter 등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된다.
몇몇 사람은 사이코패스를 피해자의 고통을 보면서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공감능력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위험하고 뒤틀린 마음을 가진 가학적 연쇄살인범 정도로만 인식하거나 마치 다른 세상을 사는 매우 희귀한 존재로 오해하게 된다.
이 같은 오해와 통념이야말로 사이코패스가 더 무섭고 위험한 존재로 각인되는 이유인 것이다.
사이코패스라는 용어는 다른 의미로 대중화·보편화된 용어가 됐지만, 그리 간단하게 정의할 수 있는 개념은 아니다. 사전적 의미는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라는 뜻이고, 지속적으로 반사회적 행동을 하지만 공감능력이 없어서 동정심이나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데 장애가 있고, 충동을 억누르지 못하는 제멋대로의 이기적 기질을 가진 인성, 인격장애다.
미국의 정신의학자이자 사이코패스 연구의 개척자인 허비 클레클리는 사이코패스를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 정신건강 상태에 의해 숨겨진 뿌리 깊은 감정적 병리’라고 진단했다. 다른 정신질환자와는 달리 그들은 겉으로 자신감이 넘치고, 확신으로 가득 차며, 사교적이고 환경에도 잘 적응하는 것처럼 비춰진다.
다만 그들 저변에 깔린 장애로 인해 시간을 두고 그들의 행동과 태도를 통해 반사회적 행동들을 스스로 표출하게 된다.
그렇다면 정신의학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왜 이기영의 사이코패스 검사 결과는 ‘진단 불가’로 나왔을까. 잔혹한 다중 살인범인 이기영을 사이코패스로 몰아갈 수도 있음에도 진단 불가라고 한 이유는 무엇일까.
일단 관련 학문 분야에서는 여전히 ‘사이코패시’, 즉 이 정신병을 가진 사람이라고 이름이 붙여진 진단을 재가하지 않아서 처음부터 논란의 소지가 남아 있다. 이 때문일까. 일각에서는 사이코패스를 지나치게 확대 해석하는 경향이 있다.
인간의 정신세계를 몇십개 문항으로 파악하고 진단할 수 있다는 오만함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30점을 기준으로 진단을 내린 때 30점은 사이코패스, 29점은 사이코패스가 아니라고 진단한다면 코미디가 아닐까? 마치 두부를 자르듯 둘로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만 그것은 희망고문일 따름이다.
사이코패스에 대해 확실한 것은 모든 연쇄살인범들이 다 사이코패스가 아니며, 반대로 모든 사이코패스가 다 연쇄살인범이거나 연쇄살인범이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분영 우리는 사이코패스의 규정과 진단은 물론이고 그들에 대한 처우도 신중하고 엄격해야 한다.
[이윤호는?]
▲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명예교수
▲ 고려사이버대 경찰학과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