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삼기의 시사펀치> 레고랜드 사태, 인과동체로 봐야

  •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
  • 등록 2022.11.08 08:30:57
  • 호수 1400호
  • 댓글 1개

강원도가 지난 9월28일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을 위해 발행한 2050억원에 대한 지급보증 철회 의사를 밝힌 후, 우리나라 채권시장이 빠르게 얼어붙었다. 이에 정부는 50조원 이상의 유동성을 공급하는 긴급 프로그램을 작동한다고 발표했다.

강원도도 급기야 12월15일까지 보증채무 2050억원을 전부 갚겠다고 번복했다. 그러나 이미 전국으로 퍼진 채권불이행 파장은 제2의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는 염려와 함께 좀처럼 누그러들지 않고 있다. 이는 정치 쟁점으로도 이어졌다. 

더불어민주당은 강원도의 레고랜드 채무불이행 사태를 ‘김진태발 금융위기’로 규정했고, 국민의힘은 “레고랜드를 추진했던 민주당 출신 최문순 전 지사 때의 문제를 덮으려 한다”고 맞대응했다.

민주당은 김 지사의 채무불이행 선포가 원인이 되어 금융위기라는 결과를 만들었다고 보고, 국민의힘은 최 지사가 무리하게 레고랜드를 추진한 게 원인이 되어 어쩔 수 없이 김 지사의 채무불이행 선포라는 결과를 초래했다고 보는 것이다.

즉 김 지사의 채무불이행 선포에 대한 시각이 민주당은 원인에 방점을, 국민의힘은 결과에 방점을 두고 있다. 이는 김 지사의 채무불이행 선포가 원인도 결과도 된다는 의미다.

여기서 우리는 결과가 원인에 의해서 만들어지고, 그 결과 역시 새로운 원인이 되어 또 다른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걸쳐 있는 모든 사건은 원인인 동시에 결과가 되는 인과동체(因果同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어떤 상황에 처했을 때, 그 상황을 원인이나 결과 한쪽으로만 보지 말고, 결과이자 동시에 원인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결과에 대한 원인 제공의 책임은 물론이고 결과도 새로운 원인으로 여겨 역시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 금융위기에 대해 민주당은 최 전 지사 때 레고랜드 테마파크 조성 추진 및 2050억원 지급보증을 원인으로 보고 김 지사의 채무불이행 선포에 대해 책임져야 하고, 국민의힘도 김 지사의 채무불이행 선포를 원인으로 보고 우리나라 채권시장 위기에 대해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다만 민주당이건 국민의힘이건 더 큰 원인을 제공한 정당이 작은 원인을 제공한 정당을 공격하면서 책임을 피해가려는 술수를 써서는 안 된다. 큰 원인을 제공한 정당이라면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빨리 수습해야 우리 국민으로부터 신뢰받는 정당이 될 것이다.

현 정부도 새로운 정책을 펼치면서 실정하더라도 전 정부의 원인을 들먹이며 현 정부의 잘못을 은폐하려는 모습을 보여서도 안 된다. 이제는 전 정부의 원인에 의한 현 정부의 결과도 현 정부의 원인이 된다는 점을 명심하고 책임 있는 정부가 돼야 우리 국민으로부터 신뢰를 받을 것이다. 

현 정부가 전 정부의 잘못이 더 큰 원인이라면 과감히 바로잡아야 하지만, 만약 전 정부가 잘못을 저지른 원인보다 현 정부가 전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는 결과, 즉 새로운 원인이 김 지사의 채무불이행 사태처럼 더 큰 잘못을 초래한다면 더 이상 전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는 행위를 멈춰야 한다. 

성향이 다른 전 정부와 현 정부지만, 전 정부의 모든 상황이 원인이 되어 현 정부라는 결과를 만들어내고, 현 정부의 모든 상황 역시 원인이 되어 다음 정부라는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이 불변의 원칙을 현 정부가 깊이 새겨야 한다. 

전 정권이 전전 정권의 재개발 비리를 잡기 위해 재개발사업을 전면 취소하면서 서울 아파트값을 두 배 이상 올렸고, 결국 아파트값을 잡지 못한 전 정권이 정권 연장에 실패한 사실을 현 정권이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현 정권이 대장동 사태, 서해 공무원 피격사건, 탈원전 사태 등도 전 정권 때의 잘못된 원인에 의한 결과로만 봐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전 정권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김 지사의 채무불이행 사태처럼 다시 새로운 원인을 만들어 우리나라와 국민을 혼란에 빠뜨리는 더 큰 결과를 초래하면 다시 정권을 내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전 주인이 부실하게 지은 건물을 산 새 주인이 건물을 수리하던 중 기둥이 무너져 사고가 났을 때, 우리 사회는 애초에 건물을 부실하게 지은 전 주인에게 책임이 있지 않고 건물을 수리하다 사고를 낸 새 주인에게 책임이 있다고 한다.

새 주인은 전 주인이 제공한 원인 때문에 건물을 수리해야 하는 결과를 맞았지만, 그 결과가 다시 원인이 되어 수리하던 중 사고가 나는 결과를 초래했기 때문에 그 사고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새 주인에게 있음을 현 정권이 명심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우리 정치나 사회에서 일어나는 모든 원인은 결과의 다른 모습이고, 모든 결과 역시 원인의 다른 모습이라 할 수 있다.

이제 우리 정치가 하나의 사건에서 원인에 의해 결과가 정해지는 단편적인 의미의 인과응보보다 연속적인 사건에서 한 사건의 결과는 다른 한 사건의 원인이 되는 연쇄적인 의미의 인과동체에서 정당끼리 대립되는 사안들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협치도 가능하다. 지난달 29일 밤 이태원 핼러윈 압사사고로 수많은 젊은이가 목숨을 잃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이번 이태원 핼러윈 압사사고가 8년 전 세월호 침몰사고처럼 결과가 원인이 되어 우리 사회를 다시 어수선하게 만드는 또 다른 좋지 않은 결과를 초래해서는 절대 안 된다.

※본 칼럼은 <일요시사>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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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