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줄 타는’ 박범계 민주당 의원 속사정

끈 떨어지고 허둥지둥 헛발질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교체되며, 당내 의원들의 입지도 대부분 달라졌다. 과거 입지를 공고히 해놨던 ‘친문’ 의원들은 본인 자리를 새로운 주류인 ‘친명’계 의원들에게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다. 이 중에는 현실을 깨닫고 흔쾌히 양보하는 의원들이 있는 반면, 상황이 달라진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끝까지 욕심을 부리는 의원들도 있다.

아무리 정치가 생물이라지만, 요즘 한국 정치는 심할 정도로 급격히 바뀐다. 한 달 전에 죽일 듯이 싸우던 둘이 어느 날 만나 웃으며 악수하는 일은 예삿일이고, 불과 일주일 전에 당 대표였던 인물이 징계를 받아 하루아침에 당 밖으로 쫓겨나기도 한다. 또 당내 권력 이동에 따라 ‘실세’였던 의원이 비주류로 전락하는 일도 다반사다.

화려한 데뷔
시작된 시련

실세에서 비주류로 전락한 의원이 본인의 위치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린다. 실세였던 기간이 오래되면 오래될수록 더욱 그렇다. 비주류가 된 의원이 과거에 ‘쉽게’ 했던 일들이 어려워지는 경우를 여러 차례 겪게 되면, 그제서야 본인의 위치를 깨닫는다.

더불어민주당 관계자들은 박범계 의원이 요즘에서야 본인의 위치를 깨달아가는 중이라고 전한다. 과거 친문(친  문재인)계 핵심으로 활동했던 박 의원은 정계 데뷔 후 줄곧 굵직한 활약을 펼쳤다. 

199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후 그는 판사로 부임해 약 10년간 일했다. 사법연수생 시절 자치위원회에서 발행하는 <사법연수>라는 잡지의 편집장 자리를 맡기도 했다. 박 의원과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정계 데뷔가 이때 정해졌다고들 일컫는다. 편집장으로 일하면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인연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는 1992년 초 사법연수생원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법조인’으로 뽑힌 노 전 대통령을 찾아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때의 인터뷰가 박 의원의 인생을 바꿔놓았다.

넉넉하지 않은 집안형편, 평탄치 않았던 사회생활에 박 의원은 동질감을 느꼈고, 이후 노 전 대통령에게 매료돼 판사 생활을 하면서도 그에 대한 존경심을 잊지 않았다.

그 존경심은 2002년 정계 진출로 이어졌다. 2002년 당시 김민석 전 의원이 노 전 대통령을 배신하고 정몽준 후보 진영에 합류하자 박 의원은 매우 분개하며 법원에 사표를 제출한 후,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에게 노 전 대통령을 도울 뜻을 전했다.

‘노무현 후보 대선캠프’에 전격적으로 합류하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박범계 정치’의 시작이었다. 이후 2002년 대선에서 노 전 대통령이 기적적으로 승리하며 박 의원도 자연스럽게 승승장구하게 됐다.

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의 신임을 받아 참여정부 초기 민정 제2비서관, 법무비서관 등으로 등용되며 청와대의 알토란 같은 자리를 차지했다. 이때 그는 여·야당에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약 2년간 청와대에서 일한 박 의원은 여의도 정치에 눈독을 들이게 된다. 그러나 여의도 입성은 청와대 입성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2004년 제17대 총선에 나가기 위해 청와대에서 나와 열린우리당 공천 경선에 참여했으나 당시 지역에서 잔뼈가 굵던 고 구논회 전 의원에게 밀려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로부터 2년이 흐른 2006년, 구 전 의원이 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해당 지역구가 공석이 됐다. 이 자리에 박 의원은 다시 공천받고자 했으나 이마저도 금방 포기해야 했다.

여의도 입성 후 승승장구 장관까지 
친문 입지 줄자 덩달아 비주류로

당시 국민중심당의 심대평 후보를 위해 그가 양보해야 하는 상황이 닥쳤기 때문이다. 두 번이나 시련을 겪은 박 의원은 제18대 국회의원 선거에도 출마했지만 통합민주당 인기 부진 등의 이유로 낙선했다.

또 다시 4년이 흐른 2012년, 박 의원은 제19대 총선에서 자유선진당 이재선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며 드디어 여의도에 입성하게 된다. 

4수 끝에 여의도 데뷔에 성공한 박 의원은 이후 맹활약하며 ‘역대급 초선 의원’이라는 타이틀을 획득하게 된다. 국회에 입성하자마자 민주당 법률위원장, 국회 윤리특별위원회 간사 등 굵직한 자리들을 꿰차며 ‘실세’로 거듭나더니, 2014년 배우 송혜교의 탈세 사건을 밝혀내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스타덤에 오른 박 의원은 재선이라는 시험을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그는 이미 인지도와 인기 면에서 상대당 후보였던 이재선 후보를 크게 압도하고 있었고, 선거에서 15%p 이상의 격차를 보이며 여유 있게 국회에 재입성했다.

이때 그는 친노(친 노무현)에서 친문으로 계파 이동을 완료한 상태였다. 대부분의 친노 인사들이 친문으로 분류되던 흐름에 박 의원 또한 탑승한 것이다.

당시 친문 세력은 친노 세력보다 더 막강한 파워를 자랑했다. 당내에서조차 제대로 입지를 세우지 못했던 노 전 대통령과는 달리 친문은 하나로 똘똘 뭉쳤다.

국회 내 의석 수도 크게 증가했는데 민주당은 제20대 총선에서 123석을 차지하며 원내 1당으로 발돋움했다. 당의 영향력이 커지자 ‘실세’인 박 의원의 영향력도 덩달아 커졌다. 박 의원은 재선에 성공하자마자 모든 의원이 원하는 법사위원회에 들어가 간사 자리를 차지했다.

보통 법사위 간사는 중진 의원들 맡는 중책이었지만, 친문계에서 입지가 두터웠던 박 의원을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재선 때 박 의원의 활약은 더 빛이 났다. 태광그룹의 황제 보석 의혹을 최초로 제기한 것도, 국정 농단 사태 당시 최고위원으로서 민주당 의원들의 전략을 진두지휘했던 것도 그의 재선 시절이었다.


제7회 지방선거 당시, 당 안팎에서 대전시장 출마설이 돌았지만, 그는 당을 지키겠다며 스스로 출마를 포기했다. 당시 분위기상 충분히 대전시장에 당선될 수 있었음에도 여의도 정치를 계속 이어나간 것이다.

잊지 못하는
과거의 영광

민주당이 여당으로 바뀐 후인 제21대 총선에 앞서 그는 3선 도전을 선언했다. 이때 박 의원은 단수공천을 받으며 무경선으로 무난하게 3선에 성공했다.

제21대 국회에선 민주당이 원내 1당이자 여당으로 바뀐 만큼, 그가 맡을 수 있는 역할도 늘었다. 국회 전반기부터 박 의원은 조용히 활동하며 민주당 의원들의 활동을 측면해서 지원하다가 문 전 대통령이 검찰개혁에 시동을 걸자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의 측면 공격수로 등장했다.

그는 이른바 추-윤 갈등이 시작됐던 때 국정감사에서 연일 당시 검찰총장이었던 윤석열 대통령과 설전을 벌이며 그의 실수를 유도했고, 추 전 장관의 입장을 국회 차원에서 전달하며 검찰 조직을 견제했다.

검찰개혁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던 박 의원은 이후 추 전 장관의 후임으로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며 직접 칼자루를 쥐었다. 박 의원은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과 대립각을 세웠다.


갈등은 주로 검찰 인사에서 일어났다. 지난해 초, 박 의원은 검찰인사를 검찰총장 측이 모르게 기습적으로 처리했다. 인사에 앞서 검찰총장과 검사 인사 논의 차 만난 박 의원은 경청하는 자세를 국민들에게 보여줬으나 정작 정기 검찰인사는 검찰총장 측을 건너뛰었다.

사실상 검찰총장을 패싱하고 문정부에 유리한 검찰인사를 단행한 것이다. 이성윤·심재철 등 ‘추미애 라인’이라고 불리는 인사는 모두 살아남았고, 이들은 인사 후 자연스레 ‘박범계 라인’이 됐다.

그는 인사 단행 후 처음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하며 ‘한명숙 구하기’에 뛰어들었다. 그가 한명숙 전 총리 불법 정치자금 수수사건에 관련한 의혹에 대해 대검 부장회의서 심의할 것을 지시한 것이다.

하지만 기존 검찰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혀 ‘박범계표 한명숙 구하기’는 수포로 돌아갔다. 박 의원은 임기 내내 문정부의 검찰개혁 의지를 이어나가려 애쓰다가 올해 5월 퇴임해 다시 국회로 돌아왔다.

이처럼 박 의원은 여의도 데뷔 이래 꾸준히 정치력을 늘려나갔고 친노·친문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으면서 승승장구했다. 12년 동안 굵직한 일들을 밝혀내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은 후에는 권력의 요직에 서며 국정을 직접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나 화려한 시절은 모두 지나갔다. 지난 3월 20대 대선에서 정권이 국민의힘으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거대 여당 의원이었던 박 의원은 이제 야당 의원이 됐다. 바뀐 것은 정권만이 아니다. 그의 영향력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뛰었던 이재명 대표가 당 전면에 등장했기 때문이다.

친문서
친명으로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 대표는 친문계 후보로 나왔던 이낙연 전 총리를 큰 표차로 따돌리며 민주당의 대선후보로 발돋움했다. 이때부터 민주당 내부의 분위기는 과거와 매우 달라졌다. 친노·친문이 주류를 차지했던 과거와는 달리 이제 신흥 세력인 ‘친명계’와 젊은 의원들이 민주당의 주류로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대표가 대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패배했음에도 이 기류는 바뀌지 않았다. 오히려 친명계가 더 공고해졌다는 평가가 많다. 당 내부 투표 결과가 그 기류를 잘 보여준다.

첫 번째 투표는 대선 직후 치러진 민주당 원내대표 선거였다. 이 선거에서는 친명계 박홍근 의원이 당선됐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박 원내대표가 친문계 박광온 의원을 제치고 당선되자 내부 분위기가 친명쪽으로 확실히 넘어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대선 패배의 책임을 후보 본인에게 있다기보다 문재인정권에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는 이후 전당대회까지 영향을 미쳤다. 전당대회에서 이 대표는 70%가 넘는 득표를 하며 당선됐고 선출직 최고위원 대부분은 친명계가 밀었던 인물들로 당선됐다. 친명계가 민주당을 완전히 장악한 셈이다.

분위기가 이렇게 바뀌자 친노·친문계였던 인물들의 입지가 점차 좁아지기 시작했다. 당초 이낙연 후보를 밀었던 강성 친문계 의원들은 당내에서 입지를 전혀 세우지 못하는 처지가 됐다. 주류가 비주류가 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비주류가 된 의원들 사이에는 박 의원도 포함돼있었다. 친문 핵심으로 활동한 세월이 긴 박 의원이 최근 이 대표에 대한 검찰 수사에 지속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놓고 있지만, 당 내부에선 이미 그가 ‘끈 떨어진’ 상태로 평가하고 있다. 

민주당 지도부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박 의원과 친명계 사이는 좋지도 않고, 그렇다고 나쁘지도 않다”면서도 “그러나 전 정권에 몸담았던 인물인 만큼 이쪽(친명계) 사람들과는 거리가 조금 있다. 이걸 스스로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그가 만든 논란들이 그래서 아닐까 싶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국회로 돌아온 박 의원이 장관 임명 전의 국회와 분위기가 달라진 것을 금방 알아차렸다고 함께 전했다. 박 의원이 당내 권력, 더 나아가 다음 총선에서의 입지를 걱정하기 시작했다는 분석이다.

한동훈 스타 만들기 일등공신? 
감사원 앞 1인 시위 중 굴욕도

그런 걱정 때문일까. 박 의원은 요즘 과거에 하지 않았던 ‘헛발질’을 매일 하는 중이다. 이것이 관계자가 말한 ‘논란’이다. 가장 큰 주목을 받았던 헛발질은 지난 7월 있었던 한동훈 장관과의 설전이다. 박 의원은 법사위원으로서 국회 대정부질문에 법무부 장관에게 질의하는 기회를 가졌다.

당시 박 의원은 과한 흥분을 여과 없이 나타내며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대중과 언론은 그의 흥분된 어투를 차분히 받아치는 한 장관을 높이 평가하며 한 장관의 손을 들어줬다.

박 의원은 한 장관에게 “이완규 법제처장에게 검수를 받았느냐”며 “한 장관 마음에 들면 검증하지 않고 한 장관 마음에 안들면 검증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러자 한 장관은 “과거 박 의원께서 근무했던 민정수석실에선 어떤 근거로 검증했느냐”며 “이 업무는 새로 생긴 업무가 아니라 과거 민정수석실에서 해오던 것”이라고 맞받아쳤다.

본인의 인사검증 시스템이 문제가 있다면 문재인정부의 인사 모두가 잘못된 것이라며 역공을 펼친 것이다. 해당 발언이 나오자 여당 의원들 중심으로 박수갈채가 쏟아졌고, 박 의원은 흥분해 “틀린 말이고 거짓말”이라고 소리쳤다.

이날 대정부질문은 한 장관의 역량을 국민에게 보여주는 계기가 됐고, 박 의원은 여당의 차기 대권후보를 다시 한번 도와줬다는 당내 비판을 들어야 했다.

헛발질은 최근에도 계속됐다. 박 의원은 최근 감사원이 문 전 대통령에 대한 서면조사를 실시하자 이에 반발해 지속적으로 감사원을 비판했다.

그는 “서해 공무원 피살사건에 대해 진상규명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게 아니라 전직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이렇게 예의 없이 바로 시작한다는 게 맞지 않다는 것”이라며 “강제 조사할 근거가 없는데 그렇게 할 만큼 하신 분들이 왜 자꾸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고 직격했다.

문제는 그가 1인 시위를 단행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본인의 입장을 직접 전달하기 위해 감사원 앞으로 나가 직접 1인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현장에 해당 사건의 ‘서해 피살 공무원’ 가족인 이래진씨가 함께 등장해 소란이 일었다. 

이씨는 박 의원을 향해 “당신들. 국가가 공무원이 적대 국가에 무참히 총살당하고 살해당했을 때 뭐했어?”라며 시위 피켓을 빼앗아들었다. 당황한 박 의원은 몇 차례 언쟁을 주고받다 분위기가 급격히 격앙되자 서둘러 자리를 뜬 것으로 전해졌다. 

해당 사건을 두고 박 의원에 대한 질타가 쏟아졌다. 유족들이 계속해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었는데도, 현직 의원이 이 시점에 1인 시위에 나가는 것은 도의상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빗발친 것이다.

당내 입지도
휘청휘청∼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과거 어떤 영광을 누렸든 정치인은 미래를 그려나가야만 한다. 최근 이 대표에 대한 검찰수사를 강하게 비판하며 ‘반전’을 도모하는 노력을 하는 중이지만 쉽지 않아보인다. 그가 헛발질을 반복한다면 그에 대한 당 내부의 시각도 쉽게 바뀌진 않을 것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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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