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이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차례다. 대한민국 정계의 ‘클리셰’와도 같은 전직 대통령들에 대한 검찰 수사가 이제 본격적으로 문 전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법조계 관계자는 ”집권 초기 분위기와는 달리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의 수사 의지가 점점 짙어지고 있다“며 ”내년 초쯤 소환조사가 목표라고 전해 들었다“고 밝혔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에 대한 검찰의 기소 의지는 이미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에 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전직 대통령들은 임기 후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른 바 있다. 그들은 집요한 검찰 수사로 인해 대부분 유죄판결을 받았고, 본인이 직접 감옥에 가거나 본인가 가까웠던 측근과 가족이 감옥에 갔다.
클리셰
김영삼 전 대통령(이하 YS)은 집권하자마자 12·12사태를 “하극상에 의한 쿠데타라고 선언하며 전두환 전 대통령, 노태우 전 대통령 등을 ’반란범‘으로 규정했다. 해당 발언이 있고 얼마 후 12·12 사태 당시 지휘권을 강탈당했던 정승화 전 육군참모총장과 장태완 수경사령관 등이 두 전직 대통령을 검찰에 고소했고, 재판부는 우여곡절 끝에 유죄 선고를 내렸다.
이는 헌정 역사상 최초의 대통령 처벌 사례였으며 두 사람은 약 2년간 수감생활을 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에 의해 특별사면됐다. 이들의 처벌을 사실상 ’장려‘했던 YS도 검찰 수사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아들 현철씨가 알선수재 혐의와 조세포탈죄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고, 측근이자 인척인 홍인길 전 의원은 뇌물죄로 중형을 선고받았다.
국민의 정부에서도 ’아들 리스크‘가 터져나왔다.
DJ의 차남 김홍업 전 의원이 각종 청탁을 들어주고 25여억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삼남 김홍걸 의원은 체육복 사업자 선정 과정에서 36여억원을 받은 혐의로 각각 구속 수감됐다.
DJ 본인에 대한 수사도 있었는데 그는 대통령 후보 시절 비자금을 조성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DJ에 대한 수사를 개시한다고 밝혔으나 약 한 달이 지난 후 수사를 유보하고 뭉개는 등 정권 눈치를 보다가 1998년 ’혐의 없음‘으로 최종 결론짓고 사건을 일단락했다.
검찰의 ’칼춤‘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검찰은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까지 모두 수사선상에 올려놓고 가차 없이 칼날을 휘둘러댔다.
수사 도중 노 전 대통령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고,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은 모두 유죄판결을 받아 형을 살아야만 했다.
서초동 소환조사 임박설 돌아
빠르게 조여가는 세 갈래 칼날
문 전 대통령도 이들의 길을 똑같이 걷고 있다. 임기가 끝난 지 약 반 년이 지난 지금, 그를 향한 검찰의 수사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있는 모양새다.
법조계 관계자가 말한 ’내년 초 소환조사‘가 마냥 근거 없는 소리가 아닌 상황이다. 검찰은 근 한 달 새, 문 전 대통령을 겨냥하고 있는 사건들의 관련자를 차례로 소환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는 중이다.
검찰이 힘을 주고 있는 문 전 대통령 관련 사건은 총 세 개로 ’서해공무원 피살 은폐 의혹‘ ’사위 타이이스타 취업 특혜 의혹‘ ’원자력발전소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이다. 세 사건 모두 검찰의 수사가 순항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지난달 초, 북에 피살당한 서해공무원 고 이대진씨 사건과 관련된 해경 수사 책임자를 소환조사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 지방검찰청 공공수사1부는 지난달 8일 오전 김태균 해양경찰청 총경을 피고발인 신분으로 소환조사했다.
김 총경은 이씨가 북측 해상에서 북한군 총에 피살된 당시 해경 본청 형사과장으로서 관련 수사를 책임지고 있던 핵심 관련자다.
문 전 대통령은 이씨의 피살 사건에서 ’조작·은폐 지시‘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국민의힘은 남북정상회담을 앞둔 문 전 대통령이 해당 사건으로 여론과 북한 정부와의 관계가 악화될까봐 사건 자체를 은폐했을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타이이스타 취업 특혜 의혹‘은 문 전 대통령의 가족이 연루된 혐의로 이스타항공의 소유주인 이상직 전 의원과 문 전 대통령 간의 관계에 대한 의심에서 출발한다. 이스타항공은 대표적인 친민주당 성향의 기업으로 알려졌다.
남북 평화협력기원 남측 예술단이 북한에 갈 때 항공기를 제공한 것도, 2015년 이희호 여사의 평양 방문 시 전세기를 제공한 것도 모두 이스타항공이었다. 이 전 의원은 항상 본인을 ’친문(친 문재인) 정치인‘으로 소개했다.
민주당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정치경력이 짧았던 그는 자금력을 바탕으로 전주 지역 정치권에서 힘을 발휘하고 싶어 했고, 문재인정권의 실세라고 알려진 인물들이 그를 도왔다“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국면 전환용 전 정권 수사?
예상치 못한 역풍 우려도
그와 문 전 대통령 간의 특수관계에 대한 의심이 더 짙어진 시점은 문 전 대통령의 사위가 이 전 의원의 자회사로 의심받는 타이이스타젯에 취업하면서부터였다.
문 전 대통령의 사위 서모씨는 2018년부터 2020년 초까지 타이이스타젯의 전무이사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서씨가 항공사에 대한 기술이나 경력이 없었던 점을 감안하면 매우 이상한 취업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의심은 이 전 의원이 중소기업진흥공단 이사장에 임명되면서 더 커졌다. 당시 이사장에 임명된 시기와 서씨의 취업 시기가 거의 일치했기 때문이다.
핵심 쟁점 중 하나는 ’타이이스타젯이 이 전 의원과 어떤 관련이 있느냐‘다. 검찰은 최근 태국 금융기관으로부터 관련 핵심 자료를 입수해 이 사건을 재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전 월성원전 경제성 조작 의혹도 비슷한 수사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은 문 전 대통령이 탈원전 정책을 시행하기 위해 원전의 경제성을 의도적으로 축소하고 원전의 실용성을 평가절하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감사원은 해당 사건에 대해 검찰에 직접 수사 의뢰는 하지 않았지만, 국민의힘이 대신 고발해 최근 증거인멸에 연루된 공무원 2명이 구속·수감됐다.
수사를 맡은 대전지방검찰청 형사4부는 지난달 19일 세종시 대통령기록관에 수사관들을 보내 대대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수사팀은 문재인정부가 월성 원전 1호기를 폐쇄하는 과정에서 사건에 어떻게 개입했는지, 해당 자치부에 부당한 지시를 내렸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다.
이슈 덮기
해외순방에서의 치명적인 말실수로 곤혹을 치루고 있는 윤석열정부의 지지율이 연일 하락하고 있는 가운데, 문 전 대통령을 향한 검찰의 수사 속도가 여론과 야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정계가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