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수완박 2라운드 관전 포인트

‘신드롬’ 시작되는 한동훈 타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수완박’을 두고 여야 간 2라운드가 시작됐다. 국회에서 진행된 1라운드는 당시 여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의 완승으로 끝났다. 이후 새 정부 출범으로 공수가 바뀌었다. 대선 승리로 여당이 된 국민의힘은 2라운드가 열리는 헌법재판소에서 ‘되치기’를 노리고 있다.

지난해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과 관련한 논란이 불거졌다. 문재인정부는 검찰개혁의 마지막 단추로 검수완박을 추진하려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높은 국정 지지율, 180석의 국회 의석, 국민의 지지가 든든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윤에 막힌
첫 시도

검찰은 물론 법조계, 학계가 검수완박 반대를 외치며 들끓었다. 논란을 가라앉힌 건 윤석열 대통령 당시 검찰총장의 사퇴였다. 윤 대통령은 사퇴 전날인 지난해 3월3일 대구고검을 방문한 자리에서 “지금 진행 중인 검수완박은 부패완판(부패가 완전히 판치게 된다)”이라며 “헌법 정신에 위배된다”고 비판했다. 

소강 상태에 접어들었던 논란은 지난 4월부터 다시 급부상했다. 대선에서 패배한 민주당이 문 전 대통령의 임기를 40여일 앞두고 검수완박 법안 강행 처리에 나선 것. 민주당의 행보는 첫 번째 시도 때보다 훨씬 더 빠르고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의 퇴임 전까지 법안을 공포하겠다는 일념으로 강한 드라이브를 걸었다. 

윤 대통령이 취임하면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을 계산한 움직임이었다. 시작은 법제사법위원회와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상임위원을 맞바꾸는 사보임이었다. 법사위 소속 민주당 박성준 의원과 기재위 소속 양향자 의원을 교체한 것이다. 당시 민주당이 안건조정위원회를 무력화하려 한다는 분석이 나왔다. 


안건조정위는 상임위에서 법안·결의안 등에 대한 이견을 조정할 필요가 있을 때 구성된다. 최대 90일간 안건을 심의하는데, 이때 중요한 것은 여야 동수로 구성된다는 점이다. 국회에서 몸싸움을 방지하기 위해 2012년 도입된 국회선진화법의 일환이다. 상임위원장이 안건조정위를 구성한다.

법안 처리를 지연한다는 19~20대 국회에서의 비판은 민주당이 21대 총선에서 180석을 확보하면서 안건조정위 무력화로 이어졌다. 야당 몫의 안건조정위원에 민주당 출신 무소속 의원, 정의당 의원 등을 배치해 당시 야당(국민의힘)의 반대를 무력화시킨 것이다.

국민의힘과 법무부·검찰 제기
헌재 권한쟁의심판 각각 심리

3대3 구도가 4대2 구도가 되면 심사 지연 시도는 수적 우위에 밀리게 된다.

일사천리로 의결될 것이라 여겨졌던 검수완박 법안은 무소속 양 의원의 ‘반란’으로 브레이크가 걸렸다. 양 의원이 검수완박 법안 처리에 반대 입장을 내고 이탈했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이른바 뒤통수를 맞은 셈이 됐다. 이때 법사위 소속 당시 민주당 민형배 의원이 나섰다.

민주당을 탈당하고 무소속 신분으로 야당 몫의 안건조정위원이 된 것이다.

안건조정위의 균형이 깨지면서 법안은 일사천리로 의결됐다. 이후 민주당과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합의안을 도출했다가 파기하는 일이 일어났다. 합의안에 공직자·선거 범죄에 대한 검찰의 직접 수사권이 빠지면서 국민은 물론 국민의힘 당원 사이에서도 큰 반발이 일었다.


결국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합의안 파기를 선언하고 재논의를 주장해 정국이 급속도로 얼어붙었다. 

국회 다수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민주당은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등 국민의힘의 저항을 회기 쪼개기 등의 방법으로 무력화시키고 검수완박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했다. 이후 검찰청법 개정안,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차례로 통과시켰다.

문 전 대통령은 임기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검수완박 법안 공포를 진행했다. 

검수완박 법안으로 불리는 검찰청법 개정안과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70년 넘게 이어져 온 형사사법체계를 크게 변화시켰다. 검찰청법 개정안은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 중 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 등 4대 범죄 수사권을 제외하고 부패‧경제범죄 수사권만 남기는 것을 골자로 한다.

퇴임 전 40일
일사천리로

단, 지방선거를 고려해 선거 범죄는 올해 말까지로 유예 기간을 뒀다. 

형사소송법 개정안에는 ‘별건수사’를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내용이 담겼다. 경찰 수사 중 시정조치 요구가 이행되지 않았거나 위법한 체포·구속이 이뤄진 경우, 고소인 등의 이의신청으로 검찰에 송치된 사건의 경우 검찰은 ‘해당 사건과 동일한 범죄 사실의 범위’ 안에서만 보완수사를 할 수 있게 됐다.

이의신청권을 가진 ‘고소인 등’의 범위에서도 고발인은 제외됐다. 

검수완박 법안은 공포 4개월 후부터 시행된다. 현 시점으로 따지면 2개월 후인 9월부터다. 검찰은 말 그대로 발칵 뒤집혔다. 김오수 전 검찰총장이 검복을 벗었고 전국 고검장이 일제히 사의를 표명하는 검찰 역사상 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학계와 법조계의 반발도 이어졌다. 국민여론도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렀다. 

검수완박 법안의 후폭풍은 지난달 1일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불과 4년 전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 기초단체장 할 것 없이 ‘싹쓸이’로 위세를 떨쳤던 민주당은 광역단체장 5석을 건지는 데 그쳤다. 개표 다음 날까지 이어진 접전 끝에 경기도에서 신승을 거둔 게 그나마 위안이었다. 

전국의 파란 깃발이 붉은 색으로 바뀌는 데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게 ‘검수완박 법안 강행 처리’라는 분석도 나왔다.

지난 4일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연구원에서 지방선거 패배를 분석하는 내용의 평가 보고서를 내놨다. 민주연구원은 지방선거 완패를 두고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대신 ‘완진싸(완전히 진 싸움)’라고 표현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도로 호남당’으로 축소‧고립됐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민주연구원 보고서에는 “이탈한 민주당 지지층의 지지를 회복하려는 노력 없이 검수완박 법안 강행 처리, 민형배 의원의 위장 탈당 등 집토끼 중심의 전략만 고수했다”며 “광주의 낮은 투표율, 국민의힘 호남의 높은 득표율은 민주당에 대한 호남 유권자의 환멸을 대변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무효다”
“적법했다”

검수완박 법안 처리 과정에서 사용한 ‘전술’은 부메랑으로 돌아오는 모양새다. 헌법재판소가 진행 중인 검수완박 권한쟁의심판에서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기 때문. 헌재는 검수완박 법안과 관련해 국민의힘과 법무부·검찰이 낸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각각 심리 중이다.

권한쟁의심판은 국가기관 상호 간,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간, 지방자치단체 상호 간의 권한 범위를 헌재가 판단하는 절차다. 

지난 12일 열린 공개변론은 국민의힘 유상범·전주혜 의원이 4월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을 상대로 제기한 사건이다. 입법 과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국회의장 등의 가결 선포 행위를 무효로 하고, 법 자체의 효력을 취소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날 공개변론에서 가장 쟁점이 된 부분은 무소속 민형배 의원이 민주당 탈당 후 법사위 안건조정위에 배치된 과정이다. 국민의힘 전주혜 의원은 “민 의원이 탈당한 것은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오로지 안건조정위에 야당 몫으로 참여해 민주당의 손을 들어주기 위한 것으로 생각된다”며 “안건조정위가 형해화되고 국회법이 사문화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피청구인인 국회의장 측 대리인 노희범 변호사는 입법 절차를 준수했다는 입장이다. 안건조정위 의도가 국회 다수파의 입법 독주를 막기 위한 제도인 것은 맞지만 국회법에 탈당하거나 당적을 바꾼 의원을 선임하지 못한다는 명문 규정은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법사위원장의 회의체 구성은 헌법상 자유 위임 원칙에 부합한다고 덧붙였다. 

민형배 탈당 핵심 쟁점으로
민주당 ‘꼼수’ 부메랑 될까

이날 공개변론에서 여야는 민 의원의 탈당 외에도 ▲안건조정위에서 충분한 심의가 이뤄졌는지 여부 ▲전체회의 의결 법안과 본회의 상정 법안의 차이 등을 쟁점으로 팽팽히 맞섰다. 2시간40여분의 공개변론 동안 헌재 재판관들도 양측에 질문을 쏟아냈다.

헌재의 결정이 정치권에 미칠 파장이 엄청난 상황에서 여야는 물론 헌재 재판관들도 신중을 기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일각에서는 법무부와 검찰이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을 ‘본 게임’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법무부는 지난달 27일 검수완박 법안과 관련해 국회를 상대로 권한쟁의심판을 헌재에 청구했다. 인사청문회 때부터 검수완박 법안에 줄곧 반대 입장을 피력해온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취임 직후부터 헌재 권한쟁의심판 준비를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한 바 있다. 

법무부와 검찰은 헌법이 검사를 수사 주체로 인정해 부여한 기능과 역할을 국회가 과도하게 제한했는지 여부를 중점적으로 살핀다는 계획이다. 한 장관은 헌재가 공개변론을 연다면 직접 출석할 수 있다는 의사를 이미 내비쳤다. 한 장관은 검사 6명과 함께 권한쟁의심판 청구 당사자로 이름을 올린 상황이다.

정치권의 관심은 법무부와 검찰이 제기한 권한쟁의심판의 공개변론에 쏠려있다. 한 장관이 직접 출석해 공개변론을 진행한다면 국민적 관심이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한동훈 신드롬’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한 장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반응이 상당하기 때문. 최근 일부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선후보를 묻는 질문에 한 장관이 높은 지지율을 기록하기도 했다.

헌재 선고
9월 전에?

여기에 헌재의 선고 시기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검수완박 법안은 오는 9월10일 시행된다. 법안 시행일 이후 헌재의 인용 여부가 나오면 사회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헌재의 판단이 9월10일 이전에 나올 수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는 이유다. 통상적으로 위헌이나 탄핵, 정당 해산 결정을 내릴 때는 헌법에 의해 재판관 9명 중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권한쟁의심판은 관여 재판관 과반수의 찬성이 있으면 인용·기각·각하 결정이 나온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세 번째 사형제 논란

사형제가 다시 헌법재판소 공개 법정에 올랐다.

헌재는 지난 14일 형법 41조 1호와 250조 2항 중 ‘사형’ 부분에 대한 헌법소원 사건의 공개변론을 열었다.

1953년 제정 헌법 때부터 존재한 사형제는 이미 헌재에서 1996년과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위헌성을 따진 바 있다.

이후 12년 만에 다시 사형제를 둘러싼 논란이 헌재에 오른 것이다.

헌법소원 청구인은 2018년 부모를 살해한 A씨다.

A씨는 1심에서 검찰이 사형을 구형하자 위헌법률심판 제청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가 A씨와 함께 2019년 2월 사형제 헌법소원을 냈다.

현재 A씨는 무기징역이 확정돼 수감 중이다. 

청구인 측은 “생명은 절대적 가치이므로 법적 평가를 통해 박탈할 수 없다”며 “사형제보다 기본권을 덜 제한하는 절대적 종신형 등으로도 범죄인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해 사회 보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법무부는 “사형은 국민 일반에 대한 심리적 위하(위협)를 통해 범죄의 발생을 예방하고 특수한 사회악의 근원을 영구히 제거해 사회를 방어한다는 공익적 목적이 있다”며 “생명을 잔혹한 방법으로 해하는 등 인륜에 반하고 공공에 심각한 위협을 끼치는 범죄자에게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정의의 발로”라고 맞서고 있다. 

사형제 위헌 결정이 나오려면 헌재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앞서 헌재는 1996년 7대2 의견으로, 2010년 5대4 의견으로 사형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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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