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으로 가는’ 민주당 몽니 막전막후

다짜고짜 정부 괴롭히기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지난 대통령선거 전까지만 해도 더불어민주당의 권력은 막강했다. 행정부와 입법부, 지방권력까지 모두 손아귀에 넣었던 이들은 지난 5년간 국정운영을 마음대로 휘둘러왔다. 그랬던 민주당이 세 번의 선거 패배 후 조급해졌다. 그동안 보지 못했던 민주당표 ‘꼬장쇼’가 시작된 것이다. 그러나 명분 없는 꼬장에 민주당은 스스로를 더욱 위태롭게 만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난 두 번의 선거에서 국민들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가혹하게 심판했다. 여당이었던 민주당을 야당으로 돌려놨고, 지방자치단체장을 꿰차고 있던 민주당 정치인들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지난 5년간 입법부, 행정부, 지방권력까지 차지하며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민주당은 선거 패배 후 “국민의 뜻을 겸허히 수용하겠다”며 “민주당을 쇄신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반성했다. 

당내 전쟁
당외 꼬장

그러나 패배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민주당의 반성은 아직 이뤄지지 않는 모양새다. 당내에서는 계파 간 이권 다툼이 한창이고, 당외에서는 관례를 어기면서까지 국민의힘(국힘)과 윤석열 대통령 발목잡기에 여념이 없다. 그 시작은 ‘검수완박’이라 불리는 검찰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의 강행 처리였다.

민주당은 본회의가 열리기 직전인 지난 4월 말, 검찰의 대대적인 개혁을 골자로 하는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 처리할 뜻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 취임 전에 법안을 빠르게 통과시켜 대통령의 법률안 거부권 행사를 무마시키겠다는 의도가 엿보인 조치였다.

민주당은 법제사법위원이었던 민형배 의원을 ‘꼼수 탈당’시키는 등 편법을 동원하면서까지 빠르게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꼼수 탈당’이 아니라며 해명했던 민 의원은 최근 민주당에 복당계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들은 이 모든 과정을 지켜봤고, 지방선거에서 표로 다시 한 번 민주당을 심판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은 충청도와 강원도 같은 정치색이 짙지 않은 지역의 ‘도지사’ 자리는 물론, 시장·군수·구청장 등 기초단체장 자리도 대부분을 국힘에 내줬다.

지난 2018년 동 선거에서 광역단체장 14석, 기초단체장 151석을 획득한 민주당은 2022년 선거에서는 광역단체장 5석, 기초단체장 63석만 획득하는 데 그쳤다. 4년 후, 약 100석 가까운 자리를 잃은 것이다.

선거 결과를 두고 정계 전문가들은 국민이 민주당을 ‘심판’했다고 의견을 모았다. 탄핵 정국 이후로 권력을 몰아줬지만, 부동산 정책 실패와 내로남불 정치를 이어가는 것을 보고 유권자들의 마음이 돌아섰다는 총평을 내놓은 것이다.

이 같은 심판을 민주당은 다르게 해석한 것일까. 요즘 민주당은 반성은커녕 검수완박 때와 비슷한 몽니를 계속 부리고 있다. 아직 빼앗기지 않은 입법 권력을 최대한 활용해 국힘과 행정부를 지속 견제하겠다는 속내다. 요즘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것은 ‘대통령 시행령 통제법’이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지난 14일 윤석열정부의 시행령 제정 등을 견제하는 ‘시행령 통제법’을 대표 발의했다. 법률안에는 강준현·김영진·김종민·박상혁·박용진·송갑석·신현영·위성곤·이소영·이용우·이원욱·장철민·전용기 등 총 13명의 의원이 공동 발의자로 이름을 올렸다.

조 의원은 발의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현행법에 따라 정부부처에 시정을 요구하곤 했지만, 한 번도 바로잡는 것을 못 봤다”며 “틈틈이 확인해봤지만 항상 그대로 돼있었다”고 입법 취지를 밝혔다.


그가 말하는 국회와 정부 간 시행령 갈등은 국내 법체계에서 비롯된다. 현재 한국의 법체계는 헌법·법률·시행령·시행규칙·조례 등 총 5개의 조항으로 구성된다. 법안의 통제력은 나열한 순서대로 강하다. 헌법이 가장 강한 강제성을 갖고, 그 다음 법률, 시행령, 시행규칙, 조례 순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하위법이 상위법 안에 속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법률은 헌법이 정해놓은 테두리 안에서만 제정돼야 하고, 시행령은 법률의 테두리 안에 속해야 한다. 시행규칙과 조례도 시행령 안에 속해야만 한다. 

‘검수완박’에 이은 ‘정부완박’ 강행
견제는 해야 하는데…의도가 수상

헌법은 국민투표로만 수정·심의할 수 있고, 법률은 국회에서 소관한다. 시행령·규칙, 조례 등은 대통령과 각 부처가 소관하는데 갈등은 법 조항마다 주체가 다른 점에서 불거진다.

법률은 국회가 제정하고, 시행령은 행정부가 제정하다 보니 각기 다른 의도로 법률을 해석하고 집행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생기는 것이다. 

그간 몇몇 대통령은 본인의 정치적 뜻을 이루기 위해 법안을 유리하게 해석했고, 때로는 ‘의도적으로 오역’해 법률 자체를 비틀어버리기도 했다. 이는 보수정권, 진보정권을 막론하고 거의 모든 정권에서 있었던 관행이었다.

대표적으로 알려진 것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4대강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 시도였다. 2009년 이명박정부는 ‘국가재정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을 예고한 바 있다. 당시 개정안을 통해 이 전 대통령의 대표 공약인 4대강 사업의 장애물을 제거하려고 했다.

4대강 사업은 본래 대운하 사업이었다. 대운하 사업은 대한민국의 네 개의 강, 한강·낙동강·금강·영산강 유역을 재정비해 대운하를 건설하겠다는 사업으로 이 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추진했던 공약이다.

이 전 대통령은 서울부터 부산까지 내륙 수운을 잇는 한반도 대운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결국 대통령에 당선되면서 대운하 사업 현실화에 돌입했다.

그러나 해당 사업에 대해 반대의 목소리가 매우 거셌다.

대운하가 시대에 뒤떨어진다는 평가와 함께 사업 타당성에 대한 논의도 함께 이뤄졌다. 시민단체와 진보진영인 당시 야당에서는 대규모 촛불집회를 통해 4대강 사업을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알리며 맞섰고, 각종 견제를 통해 이 전 대통령의 대운하 사업을 가로막았다.


당시 광우병 파동과 촛불시위 정국을 경험하며 힘이 빠져있었던 이 전 대통령은 결국 대운하 건설을 포기하고 ‘4대강 되살리기’ 사업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당시 여야는 해당 공약에 합의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그러나 사업 예산이 나오자 다시 갈등이 불거졌다.

주체 다른
법안 보니…

진보진영에서는 예산 낭비와 실효성 없는 공사를 이유로 사업에 다시 반대했고, 몇몇 정치인들은 4대강 사업이 결국 대운하로 연결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난관에 부딪힌 이명박정부는 국회에서 ‘예타’를 받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대형 국책사업을 사전에 검증한다는 취지로 도입된 ‘예타’ 조사는 1999년 김대중정부 때 처음 도입됐다. IMF 외환위기로 국고가 바닥을 치자, 예산 사용에 더욱 신중을 가해야 한다는 판단 아래서다.

도입 취지에 맞게 예타 통과는 매우 까다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예타가 진행되면 정부는 국회에 재정 투자의 효율성과 투자 시기, 재원 조달 방법 등을 상세히 소명해야 한다. 국가재정법 제38조와 동법 시행령 13조를 근거를 두고 있다. 여기서 이명박정부가 생각해낸 것이 13조의 수정이다. 시행령 수정을 통해 ‘예타 면제 대상’에 4대강 사업을 추가한 것이다. 


당시 법률 제38조에 따르면 면제 대상은 ‘공공시설·문화재·국가안보·남북경제협력·재난예방·지역균형 발전 사업’으로 국한돼있었다. 이명박정부는 제13조 2항에 5개 사유를 수정·추가했다.

그중 이명박정부의 의도가 엿보인 것은 2항 6호다. 이명박정부는 ‘재해복구 지원’이란 항목을 ‘재해 예방·복구 지원’으로 수정했다. 당시 4대강 사업은 ‘4대강 되살리기 사업’이라 포장되어있었기 때문에 수정된 항목에 포함됐다.

9호에는 ‘지역균형 발전, 긴급한 경제·사회적 상황 대응 등을 위해 국가 정책적으로 추진이 필요한 사업’ 항목을 추가했다. 개정된 시행령을 통해 4대강 전체 사업 총예산 22조원중 10%가량은 예타 없이 진행될 수 있었다. 

문재인정부에서도 대통령의 ‘시행령 정치’는 반복됐다. 대표적인 사례는 역시 부동산 정책에서 찾아볼 수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대통령임기 내내 부동산 투기꾼들과 싸움을 진행해왔다. 임기 내에 부동산 관련 정책만 수십개를 쏟아냈을 정도로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이때 문 전 대통령이 주로 사용했던 수단이 시행령 개정이었다. 

문정부에서 추진했던 몇몇 정책은 법률과 대치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때마다 법률을 수정·추가하는 일이 불가능하니 시행령을 고친 것이다. 예를 들어 양도세를 올리기 위해 이를 규정하는 ‘소득세법’ 자체를 건드리지 않고, 시행령에서 비과세·감면 등을 세부조항을 건드려 정책을 완성시켰다.

문정부는 주택 보유·거주기간, 조정 대상 지역 여부 등을 비틀어 집값 규제에 나섰다. 해당 법률에 영향을 받는 이들은 그때마다 혼란에 빠졌다. 

조용하다 
이제 와서…

2018년 말 개정한 최저임금법 시행령도 대표적인 ‘시행령 정치’다. 문정부는 2018년 말 최저임금을 대폭 상승하는 정책을 시행했다. 이때 정부는 최저임금 산정 기준에 실제 근로하지 않는 시간(주휴 시간)을 시행령을 통해 포함시켰다.

법률에 부가적인 시행령을 하나 추가한 것일 뿐이지만, 주휴 시간 추가는 자영업자들에게 직격탄이 되어 돌아왔다. 시행령의 근간이 되는 법률을 비틀어버린 셈이다.

최저시급뿐 아니라 코로나에 따른 소상공인 손실보상 또한 시행령으로 그때그때 시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례 없던 코로나 피해이기에 이미 만들어져있던 법률안에는 다양한 사례가 담기지 못했다. 문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손실 대상과 액수 등을 책정해 공포했다.

사실 시행령 정치를 예방하자는 시도는 여러 모로 명분을 갖는다. 그동안 법률을 비틀 정도로 수정된 시행령으로 국민들이 숱하게 혼란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민주당이 최근 주장하는 ‘시행령 통제법’은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검수완박’ 때와 마찬가지로 입법 의도가 다분히 불순해 보이기 때문이다. 

2020년에 4월 임기가 시작된 제21대 국회에서 민주당은 180석을 차지한 채 출발했다. 60%가 넘는 점유율을 보이며 입법부를 좌지우지할 수 있는 입장에 섰던 것이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시행령 통제법에 대한 논의는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2015년 민주당이 요구하고 유승민 전 국힘 의원이 주도한 시행령 통제법과 2019년 자유한국당이 추진한 ‘국회패싱금지법’이 마지막 논의였다.

뒤늦은 시행령 통제법 발의가 정권을 빼앗긴 거대 ‘야당’이 행정부의 권한을 빼앗으려는 움직임으로 보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입법 권력만 남은 민주당의 ‘몽니’가 계속되고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런 저런 명분을 갖다 붙이며 윤정부와 국힘의 힘을 빼겠다는 속내가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에서다. 이 주장에 힘을 더해주는 것이 ‘법사위원장 파동’이다.

법률 위 시행령? 대통령 입맛대로
진보·보수 같은 ‘시행령 정치’

국회의 임기는 2년을 주기로 전반기와 후반기로 나뉜다. 제21대 국회의 후반기는 지난 6월 초부터였다. 그동안 국회는 주기가 바뀔 때마다 국회는 원구성을 달리해왔다. 각 상임위의 위원장과 국회의장 등을 새로 뽑아왔던 것이다.

그러나 이달 초에 진행됐어야 할 후반기 원구성이 한 달이 다 지난 지금까지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민주당이 ‘법사위원장’ 자리를 내놓지 않으면서부터다.

보통 국회는 후반기 원구성을 출범시키기 전에 위원장자리를 어떻게 할지 미리 합의한다. 여야는 그동안 미리 합의한 바대로 원구성을 완성해왔으며, 후반기 들어서자마자 이를 곧바로 이행해 ‘권력 공백’을 최소화시켰다.

이번 제21대 국회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7월 민주당과 국힘은 당시 민주당이 독식하고 있던 18개의 상임위원장을 11대7로 재분배하기로 합의했다.

핵심 쟁점이었던 법제사법위원장 또한 법사위 기능을 체계·자구 심사에 국한하는 조건으로 후반기에는 국힘 측에서 맡기로 합의한 바 있다. 

그러나 지난 대선에서 여야가 바뀌며 해당 합의안에 대한 정당별 해석이 180도 달라졌다. 국힘은 당시 합의한 대로 법사위원장을 가져오겠다고 해석하고 있고, 민주당은 이제 야당이 되었으니 법사위원장 자리를 야당이 된 민주당이 그대로 가져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법사위원회는 상임위를 통과한 모든 법안을 마지막으로 심사해 본회의로 넘기는 권한을 갖고 있다. 이 과정에서 법사위원장의 권한은 빛을 발한다. 위원장 입맛에 따라 법안 처리 속도를 가속하거나 지연시킬 수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폐기할 권한도 갖는 것이다.

법사위원장이 입법부의 ‘게이트 키퍼’라고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법률 제정을 주 업무로 삼는 국회 입장에서 법사위원장의 자리는 매우 중요하다. 

막강한 파워를 자랑하는 만큼 지난 20년간 법사위원장 자리는 여당과 야당이 고루 차지해왔다. 18·19·20대 국회까지 1·2당이 법사위원장을 전반기 후반기에 나눠맡는 모양새가 유지돼왔다. 이 관례를 민주당이 깨려하고 있는 것이다. 

내 것도 내 것
네 것도 내 것 

권력을 견제하는 것은 응당 야당이 해야 하는 임무다. 독재 권력은 늘상 부패하기 마련이기에, 헌정 역사에서 야당은 끊임없이 여당을 견제했고 국민들을 부패 정치로부터 보호해왔다. 그러나 이런 견제 또한 마땅한 명분과 여론의 동의가 필요하다. 현재 민주당이 부리고 있는 ‘몽니’는 여러모로 국민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을 뿐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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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