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한동훈 체제 법무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돼간다. 한 장관은 문재인정부에서 승승장구하던 인사들을 ‘전대 복귀’ 형식으로 사실상 좌천시키고 특수통 전성시대를 열었다. 전 정권에서 성범죄 대응에 핵심적 역할을 했던 서지현 검사도 인사의 칼날을 피할 수 없었다. 결국 디지털성범죄 태스크포스(TF)팀 위원들도 대거 사의를 표명했다. 문제는 N번방 사건 핵심 인물인 조주빈 본인의 사견으로 추정되는 글이 텔레그램을 통해 퍼지고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와 그들의 증언이 허위라는 주장이 상당하지만, 규제책이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디지털성범죄 태스크포스(TF)팀 위원들의 사퇴가 법무부 간부들이 가한 압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사실상 법무부 간부들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취임 전부터 태세 전환을 준비했다는 지적이다. 실제 문정부에서 요직을 거친 검사들과 법무부에 파견근무 중이던 직원들은 이유도 모른 채 전대 복귀 명령과 좌천성 인사를 당했다. 이를 두고 ‘한동훈 지시’라는 말이 돌았다고 한다.
새 기구 설치 필요한데···
법무부 산하 디지털성범죄 TF팀 소속 위원들은 법조인과 언론인, 현직 교수로 구성됐다. 이들은 N번방 사건 이후 성범죄 해결과 대응 전략 등을 논의하고 관련 법안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구성원들은 유의미한 성과를 이어가던 도중 한 장관 취임 후 다음날인 지난달 18일 대거 사퇴했다.
이유는 TF팀장이던 서지현 검사의 전대 복귀 명령 인사 때문이다. 서 검사는 법무부에 사표를 제출했고 이는 지난 2일 수리됐다.
디지털성범죄 TF팀 위원들은 사퇴 당일인 지난달 18일 입장문을 통해 법무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들은 “위원회 노력과 활동의 가치를 가볍게 여기고 명확한 이유 설명도 없이 우리와 함께 일하던 서 검사를 쫓아내듯 한 법무부의 행태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고 회의감 역시 강하게 느낀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위원회 활동기한이 3개월 정도 남았고 위원회 스스로 활동 종료를 선언하거나 간사(서 검사)에 대한 복귀 필요성 등을 전혀 건의한 바 없는 상태에서 궁색한 변명으로만 들린다”며 “새로운 법무부 장관 임명이 임박한 이 시점에 서 검사에 대한 갑작스러운 인사조치는 새 법무부 장관 취임 직전 ‘쳐내기’라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주빈 사견 텔레그램 통해 ‘일파만파’
디지털성범죄 TF 공중분해?…대거 사퇴
디지털성범죄 TF가 공중분해 수준이 되면서 법무부의 성범죄 대응 능력이 저하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디지털성범죄 TF 출신 인사들은 법무부가 디지털 성범죄 사건 대응을 위한 새로운 기구 신설과 관련해 적극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에 대해 법무부는 “지난해부터 TF와 전문위원회에서 디지털 성범죄 등 성범죄에 실효적인 대응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권고안을 수차례 발표했다”며 “대검은 지난 7일 성착취물 수요 범죄인 소지·시청범에 대해서도 징역형을 구형하는 등 사건 처리기준을 엄정 대응하도록 일선청에 지시했다”고 밝혔다.
이어 “2차 가해 방지를 위해 방통위·여가부 등 관계부처와 협업을 통해 성착취물 삭제와 심리치료, 상담 등 종합적인 지원이 이뤄지도록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N번방 사건 가해자들의 2차 가해는 지속돼왔다. N번방 사건 핵심 인물인 조주빈이 텔레그램을 통해 ‘옥중 입장’을 밝히고 있을 정도다. 그가 밝힌 텔레그램 내용에는 피해자들의 허위진술 및 억울함 주장 등이 주를 이룬다. 현재 옥중인 조주빈의 사견을 누가 전달받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조주빈의 텔레그램과 같은 범죄자의 ‘옥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활동을 사전에 차단하기는 어렵다. 수형자가 외부인과 주고받는 편지를 검열하지 않는 게 교정당국의 원칙이기 때문이다. 다만 형집행법에 따라 수형자의 교화나 건전한 사회복귀를 해치거나, 범죄 증거를 인멸할 우려가 있을 때 교정당국은 편지 내용을 검열하거나 발신을 제한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를 보호·지원하는 원스톱 통합 전담기관 신설을 공약하고 강력범죄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치유지원금 제도를 만들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윤석열 캠프에 몸담았던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에 대해서는 잊혀질 권리를 보장하겠다”며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위장수사를 전면 확대 허용하겠다”고도 했다.
이유 모른 채 갑작스러운 좌천
성범죄는 관심 대상서 제외?
그러나 윤 대통령은 대선 과정에서 여가부 폐지와 성범죄 무고죄 조항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가 성범죄 처벌 강화라는 사회적 요구에 역행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무고죄 강화는 성범죄 피해 사실을 외부에 알리는 것을 더 어렵게 할 수 있다.
2012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성폭력 범죄는 실제 사건의 8.4%만 경찰 신고로 이어졌다. 폭행 사건 신고율(40.5%)과 비교해 크게 낮았다. 다른 범죄와 달리 피해사실을 드러내기 어려운 분위기와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정작 성폭력 사건에서 무고로 고소한 사건 10건 중 8건은 증거부족으로 불기소 처리됐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과 대검찰청이 성폭력 무고 사건 통계를 분석한 결과, 2017~2018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자가 피해자를 ‘무고’로 역고소한 건은 824건이다. 이 중 불기소 처리된 사건은 693건(84.1%)에 달한다. 기소된 사건 중에서도 15.5%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
대법원은 2019년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이 불기소 처분이나 무죄 판결을 받았더라도, 고소 내용을 적극적으로 허위로 판단해 고소인을 무고죄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고 판결했다. “‘진정한 피해자라면 마땅히 이렇게 했을 것’이라는 기준을 내세워 성폭행 등의 피해를 입었다는 점 및 신고에 이르게 된 경위 등에 관한 변소를 쉽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디지털성범죄 TF팀 출신 인사들은 윤정부의 행보가 과거 공언한 것과는 다르다고 입을 모은다. 법무부가 현재 TF팀의 기능을 더욱 확대·강화하고 성범죄 대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관심 일관
익명을 요구한 TF팀 출신 한 변호사는 “TF 활동기간이 두 달 정도 남았다. 법무부가 지금이라도 산하에 대응 기구 설치를 위한 구체적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TF팀 출신 변호사도 “윤정부에서 젠더 의식이 반영되지 않은 정책이 시행될까 우려된다”며 “여성가족부 폐지에 이어 TF까지 무력화하겠다는 의지가 읽히는데 대책은 어디에도 없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