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사는’ 유령 아이들의 정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6.07 14:58:29
  • 호수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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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세상 밖으로 나와 연기처럼 사라져도 아무도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도 다른 누군가에겐 아닐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도 마찬가지다. <일요시사>는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로부터 다양한 출생 미등록 아동의 사례를 들었다. 이 사례에 등장하는 아이 모두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시간을 보냈고, 여전히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경우도 있다. 출생 미등록은 아동학대다. 그리고 이를 겪는 아이는 학대 수준의 방치를 경험한다.  

출생 미등록 아동은 통계가 없다. 말 그대로 미등록이기에 아동은 부모가 허락한 세상 내에서만 존재한다. 경우에 따라 모 외 가족은 아동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기준 한 달에 10명 정도 아기가 서울시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것으로 파악됐고, 이를 유추해볼 때 1년에 100명이 넘는 출생 미등록 아동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은폐되고
거부되고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출생 미등록 아동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전했다. 또 이를 발견해 기관이 아동의 출생신고를 돕더라도, 친생모가 아동의 출생신고에 협조적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해결하는 데도 수일이 걸린다.

어떤 경우는 출생신고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있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 친생모를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출생 미등록 아동 사례 중에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 해결을 해도 어렵게 됐거나 부모의 손을 떠난 아동도 존재한다. 이 중 가장 슬픈 사례는 아동이 사망한 후 발견된 경우다.


이 아동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영유아 시기 아동학대로 2년 동안 사례 관리를 받은 경력이 있었다. 그런데 아동이 취학 연령이 돼도 학교에 가지 않았고, 경찰은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아동이 사망한 것을 발견했다. 

사망한 아동은 출생신고가 안 돼있었고, 이런 이유로 사망신고도 불가능했다. 이 아동은 사망신고를 하기 위해 출생신고를 먼저 해야 했다.

아동의 부는 범죄에 연류돼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고, 모는 사망한 아동 외 남아있는 자녀들을 외부와 철저히 차단한 채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다양한 출생 미등록 아동 사례 보니…
주민번호 없이…학대 수준 방치 경험

결국 아동학대의 정황이 드러났고, 사망 아동의 부는 징역 20년 이상을 구형받았다. 부가 모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는 부의 아동학대를 동조한 것으로 판결받고 구형을 받았다.

현재 모는 구치소에서 아동학대를 인정하고 반성해 출소한 상황이다. 남아있는 자녀는 부모와 완전히 분리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관리를 하고 있다.

모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끝까지 거부해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해당 사례의 부모는 10대로 동거 생활을 하다가 출산해, 정식 혼인관계를 맺지 않았다. 이런 경우 유전자 검사를 먼저 진행한 후, 친자 확인을 한 뒤 모나 부 밑으로 아동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그러나 10대 모는 출생신고에 비협조적이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관련 절차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다.

탁지혜 아동보호전문기관 과장은 “보통 이런 경우 세상에 태어난 아이한테 부모의 역할인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그러나 의무감이 없는 분은 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출생신고를 하는 시기 자체가 늦춰진다”고 말했다.

사망 뒤 
발견도

혼인관계 정리가 되지 않아 아동의 출생신고가 늦어지고 있는 사례도 있었다. 해당 사례의 모는 전 남편과 이혼 후 300일이 지났을 때 아기를 출산했다. 모는 이미 동거하는 남편이 있었고, 출산한 아기를 현재 동거하는 남편의 밑으로 출생신고를 하고 싶었다. 

아기는 전 남편의 자녀로 추정됐기 때문에 법적인 제약이 있었다. 이럴 때는 전 남편의 동의를 받고 법적인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즉 전 남편이 생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러나 전 남편은 모의 임신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른의 감정싸움에 아기는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모의 아기가 태어난 지 17개월이 지났다. 급한대로 사회복지 전산관리번호(구 의료급여관리번호)를 받아 의료 혜택을 받고 있지만, 이외 국가 지원은 받을 수 없다. 

탁 과장은 “아이들은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출생 신고가 안 되면 그림자처럼 사라져도 아무도 모른다. 보호자가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면 국가에서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모가 법적인 남편이 있고 집에서 아이를 낳아 출생신고를 못한 상황도 있다. 아이는 남편의 자식이 아니다. 또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병원의 출생확인서조차 없다. 예방접종을 하거나 학교를 가지도 못했다. 현재 아동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범죄에 연루된 부모와 사망한 자녀
사망 신고 위해 출생신고부터 해야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가 이 아동을 처음 발견했을 때, 아동은 ‘늑대소년’처럼 행동했다. 집에 물건은 다 부서져 있었고 싱크대와 문도 떨어져 있었다. 외부와 접촉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아동은 현재 사회복지 전산관리번호를 받고 지역아동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다. 학교도 다니고 있지만 치료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모는 아동의 출생신고에 의지가 전혀 없어서, 아동은 여전히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실정이다.


아동이 위탁 가정에 보내지면서 출생신고가 된 경우도 있다. 이 가정의 부모는 20대 초반으로, 아기가 만 2세 때 모가 지인에게 아기를 맡기면서 유기했다. 당시에는 출생 등록에 문제가 없었다.  

모의 지인은 “아기를 모가 데려가지 않는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모는 아기를 방임·유기했고 잠적해서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이 부를 찾아가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 아기는 부의 친자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 유전자 검사 결과도 아기가 부의 친자가 아니라는 것으로 나왔다.

모는 생모가 맞지만 부는 생부가 아니다. 모와 부의 결혼은 모가 임신을 해서 이뤄진 것이었고, 아기의 생부가 본인이 아니란 것을 알고 ‘결혼 사기’라고 주장했다. 우선 지인에게 맡겨졌던 아기는 부와 부의 아버지에게 맡겨졌다. 

복잡한
혼인관계

부는 곧 혼인 무효 소송을 신청했고 승소했다. 법원은 아이의 가족관계 등록을 폐쇄했고, 아기의 주민등록번호는 폐기됐다. 이제 모가 다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해야 했지만, 모는 여전히 잠적한 상황이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문자를 보낼 때만 드문드문 답장을 보냈다. 

경찰은 모에 대해 추가적 방임 학대로 고소·고발했다. 모의 부재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장 제46조에 따라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문제는 선례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해당 지역의 검사에게 출생신고를 요청했다. 해당 지역에는 선례가 없어서 다른 지역의 선례를 찾아보고 출생신고를 했다. 

출생신고가 끝나도 해결할 점이 있었다. 모의 아기는 너무 어린데 보육원에 가야 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보육원에 아기를 보내지 않기 위해 임시보호시설을 찾았고, 현재는 일반 가정위탁 부모를 찾아서 보호받고 있다. 

김지원 아동보호전문기관 대리는 “출생 미등록 아동문제를 해결하는 데 워낙 변수가 많다. 흔한 사례가 아니다 보니 검사도 법을 찾아서 준비해야 한다. 그나마 검사의 협조가 잘 이뤄져 무사히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모가 불법체류 외국인인 경우는 출생신고가 더 복잡해진다. 혼인하지 않고 한국에서 아기를 출산한 모는 아기가 한국에서 크더라도, 한국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가족관계등록법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유미숙 한국미혼모네트워크 국장은 출생 미등록 아동의 보호자를 돕고 있다. 그는 현장에서 다양한 사례를 보면서 한국의 출생신고에 허점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내 자식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강제성 부여한 출생통보제가 필요”

유미숙 국장은 “출생신고에는 여러 허점이 많다. 특히 미혼부의 경우는 엄마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특히 10대에 부모가 된 아이들은 너무 쉽게 아기를 유기하게 된다”며 “혼인관계가 정리되지 않고 낳은 아기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유 국장은 “이런 경우도 출생 사각지대에 놓이는데, 인천에서는 아동을 출생신고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까지 있다. 출생신고가 불가능해 방임하거나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것”이라며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아기를 통보해 공공이 파악할 수 있는 ‘출생통보제’가 시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출생통보제’에 대해 의료기관은 어떤 입장일까? 우선 모든 의료인이 출생통보제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코로나19 상황 등 의료진은 업무가 지나치게 많은 상황인데, 이 상황에서 행정처리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여기에 덧붙여 출생신고에 대한 책임까지 떠맡게 된다.

소아과 의사로 25년째 근무 중인 김정은 시흥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출생통보제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진료실에서 출생 미등록인 상태를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행정적 부담
영원한 오류

그는 “진료실에서 출생 미등록 아동의 진료비를 깎아준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의료인의 선의에 기대면 안 된다. 이런 것을 책임지라고 국가가 있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민간 의료기관은 출생통보제가 엄청난 부담으로 느껴진다. 한 번 실수하면 영원한 오류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관의 행정적 부담을 줄일 방법이 필요하다. 의료기관의 출생신고를 100% 믿는 것보다는 의료기관이 출생을 통보한 뒤 공무원이 추적해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강제성이 없으면 출생통보제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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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