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사는’ 유령 아이들의 정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6.07 14:58:29
  • 호수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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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세상 밖으로 나와 연기처럼 사라져도 아무도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도 다른 누군가에겐 아닐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도 마찬가지다. <일요시사>는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로부터 다양한 출생 미등록 아동의 사례를 들었다. 이 사례에 등장하는 아이 모두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시간을 보냈고, 여전히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경우도 있다. 출생 미등록은 아동학대다. 그리고 이를 겪는 아이는 학대 수준의 방치를 경험한다.  

출생 미등록 아동은 통계가 없다. 말 그대로 미등록이기에 아동은 부모가 허락한 세상 내에서만 존재한다. 경우에 따라 모 외 가족은 아동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기준 한 달에 10명 정도 아기가 서울시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것으로 파악됐고, 이를 유추해볼 때 1년에 100명이 넘는 출생 미등록 아동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은폐되고
거부되고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출생 미등록 아동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전했다. 또 이를 발견해 기관이 아동의 출생신고를 돕더라도, 친생모가 아동의 출생신고에 협조적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해결하는 데도 수일이 걸린다.

어떤 경우는 출생신고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있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 친생모를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출생 미등록 아동 사례 중에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 해결을 해도 어렵게 됐거나 부모의 손을 떠난 아동도 존재한다. 이 중 가장 슬픈 사례는 아동이 사망한 후 발견된 경우다.


이 아동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영유아 시기 아동학대로 2년 동안 사례 관리를 받은 경력이 있었다. 그런데 아동이 취학 연령이 돼도 학교에 가지 않았고, 경찰은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아동이 사망한 것을 발견했다. 

사망한 아동은 출생신고가 안 돼있었고, 이런 이유로 사망신고도 불가능했다. 이 아동은 사망신고를 하기 위해 출생신고를 먼저 해야 했다.

아동의 부는 범죄에 연류돼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고, 모는 사망한 아동 외 남아있는 자녀들을 외부와 철저히 차단한 채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다양한 출생 미등록 아동 사례 보니…
주민번호 없이…학대 수준 방치 경험

결국 아동학대의 정황이 드러났고, 사망 아동의 부는 징역 20년 이상을 구형받았다. 부가 모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는 부의 아동학대를 동조한 것으로 판결받고 구형을 받았다.

현재 모는 구치소에서 아동학대를 인정하고 반성해 출소한 상황이다. 남아있는 자녀는 부모와 완전히 분리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관리를 하고 있다.

모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끝까지 거부해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해당 사례의 부모는 10대로 동거 생활을 하다가 출산해, 정식 혼인관계를 맺지 않았다. 이런 경우 유전자 검사를 먼저 진행한 후, 친자 확인을 한 뒤 모나 부 밑으로 아동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그러나 10대 모는 출생신고에 비협조적이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관련 절차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다.

탁지혜 아동보호전문기관 과장은 “보통 이런 경우 세상에 태어난 아이한테 부모의 역할인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그러나 의무감이 없는 분은 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출생신고를 하는 시기 자체가 늦춰진다”고 말했다.

사망 뒤 
발견도

혼인관계 정리가 되지 않아 아동의 출생신고가 늦어지고 있는 사례도 있었다. 해당 사례의 모는 전 남편과 이혼 후 300일이 지났을 때 아기를 출산했다. 모는 이미 동거하는 남편이 있었고, 출산한 아기를 현재 동거하는 남편의 밑으로 출생신고를 하고 싶었다. 

아기는 전 남편의 자녀로 추정됐기 때문에 법적인 제약이 있었다. 이럴 때는 전 남편의 동의를 받고 법적인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즉 전 남편이 생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러나 전 남편은 모의 임신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른의 감정싸움에 아기는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모의 아기가 태어난 지 17개월이 지났다. 급한대로 사회복지 전산관리번호(구 의료급여관리번호)를 받아 의료 혜택을 받고 있지만, 이외 국가 지원은 받을 수 없다. 

탁 과장은 “아이들은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출생 신고가 안 되면 그림자처럼 사라져도 아무도 모른다. 보호자가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면 국가에서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모가 법적인 남편이 있고 집에서 아이를 낳아 출생신고를 못한 상황도 있다. 아이는 남편의 자식이 아니다. 또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병원의 출생확인서조차 없다. 예방접종을 하거나 학교를 가지도 못했다. 현재 아동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범죄에 연루된 부모와 사망한 자녀
사망 신고 위해 출생신고부터 해야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가 이 아동을 처음 발견했을 때, 아동은 ‘늑대소년’처럼 행동했다. 집에 물건은 다 부서져 있었고 싱크대와 문도 떨어져 있었다. 외부와 접촉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아동은 현재 사회복지 전산관리번호를 받고 지역아동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다. 학교도 다니고 있지만 치료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모는 아동의 출생신고에 의지가 전혀 없어서, 아동은 여전히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실정이다.


아동이 위탁 가정에 보내지면서 출생신고가 된 경우도 있다. 이 가정의 부모는 20대 초반으로, 아기가 만 2세 때 모가 지인에게 아기를 맡기면서 유기했다. 당시에는 출생 등록에 문제가 없었다.  

모의 지인은 “아기를 모가 데려가지 않는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모는 아기를 방임·유기했고 잠적해서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이 부를 찾아가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 아기는 부의 친자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 유전자 검사 결과도 아기가 부의 친자가 아니라는 것으로 나왔다.

모는 생모가 맞지만 부는 생부가 아니다. 모와 부의 결혼은 모가 임신을 해서 이뤄진 것이었고, 아기의 생부가 본인이 아니란 것을 알고 ‘결혼 사기’라고 주장했다. 우선 지인에게 맡겨졌던 아기는 부와 부의 아버지에게 맡겨졌다. 

복잡한
혼인관계

부는 곧 혼인 무효 소송을 신청했고 승소했다. 법원은 아이의 가족관계 등록을 폐쇄했고, 아기의 주민등록번호는 폐기됐다. 이제 모가 다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해야 했지만, 모는 여전히 잠적한 상황이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문자를 보낼 때만 드문드문 답장을 보냈다. 

경찰은 모에 대해 추가적 방임 학대로 고소·고발했다. 모의 부재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장 제46조에 따라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문제는 선례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해당 지역의 검사에게 출생신고를 요청했다. 해당 지역에는 선례가 없어서 다른 지역의 선례를 찾아보고 출생신고를 했다. 

출생신고가 끝나도 해결할 점이 있었다. 모의 아기는 너무 어린데 보육원에 가야 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보육원에 아기를 보내지 않기 위해 임시보호시설을 찾았고, 현재는 일반 가정위탁 부모를 찾아서 보호받고 있다. 

김지원 아동보호전문기관 대리는 “출생 미등록 아동문제를 해결하는 데 워낙 변수가 많다. 흔한 사례가 아니다 보니 검사도 법을 찾아서 준비해야 한다. 그나마 검사의 협조가 잘 이뤄져 무사히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모가 불법체류 외국인인 경우는 출생신고가 더 복잡해진다. 혼인하지 않고 한국에서 아기를 출산한 모는 아기가 한국에서 크더라도, 한국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가족관계등록법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유미숙 한국미혼모네트워크 국장은 출생 미등록 아동의 보호자를 돕고 있다. 그는 현장에서 다양한 사례를 보면서 한국의 출생신고에 허점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내 자식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강제성 부여한 출생통보제가 필요”

유미숙 국장은 “출생신고에는 여러 허점이 많다. 특히 미혼부의 경우는 엄마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특히 10대에 부모가 된 아이들은 너무 쉽게 아기를 유기하게 된다”며 “혼인관계가 정리되지 않고 낳은 아기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유 국장은 “이런 경우도 출생 사각지대에 놓이는데, 인천에서는 아동을 출생신고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까지 있다. 출생신고가 불가능해 방임하거나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것”이라며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아기를 통보해 공공이 파악할 수 있는 ‘출생통보제’가 시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출생통보제’에 대해 의료기관은 어떤 입장일까? 우선 모든 의료인이 출생통보제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코로나19 상황 등 의료진은 업무가 지나치게 많은 상황인데, 이 상황에서 행정처리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여기에 덧붙여 출생신고에 대한 책임까지 떠맡게 된다.

소아과 의사로 25년째 근무 중인 김정은 시흥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출생통보제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진료실에서 출생 미등록인 상태를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행정적 부담
영원한 오류

그는 “진료실에서 출생 미등록 아동의 진료비를 깎아준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의료인의 선의에 기대면 안 된다. 이런 것을 책임지라고 국가가 있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민간 의료기관은 출생통보제가 엄청난 부담으로 느껴진다. 한 번 실수하면 영원한 오류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관의 행정적 부담을 줄일 방법이 필요하다. 의료기관의 출생신고를 100% 믿는 것보다는 의료기관이 출생을 통보한 뒤 공무원이 추적해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강제성이 없으면 출생통보제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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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