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서 사는’ 유령 아이들의 정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6.07 14:58:29
  • 호수 137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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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세상 밖으로 나와 연기처럼 사라져도 아무도 모른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누군가에겐 당연한 것도 다른 누군가에겐 아닐 수 있다. ‘주민등록번호’도 마찬가지다. <일요시사>는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로부터 다양한 출생 미등록 아동의 사례를 들었다. 이 사례에 등장하는 아이 모두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시간을 보냈고, 여전히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경우도 있다. 출생 미등록은 아동학대다. 그리고 이를 겪는 아이는 학대 수준의 방치를 경험한다.  

출생 미등록 아동은 통계가 없다. 말 그대로 미등록이기에 아동은 부모가 허락한 세상 내에서만 존재한다. 경우에 따라 모 외 가족은 아동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경우도 있다. 지난해 기준 한 달에 10명 정도 아기가 서울시 관악구 주사랑공동체교회의 ‘베이비박스’에 유기된 것으로 파악됐고, 이를 유추해볼 때 1년에 100명이 넘는 출생 미등록 아동이 생긴다고 볼 수 있다. 

은폐되고
거부되고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출생 미등록 아동을 발견하는 것 자체가 어렵다고 전했다. 또 이를 발견해 기관이 아동의 출생신고를 돕더라도, 친생모가 아동의 출생신고에 협조적이지 않는 경우가 많아 해결하는 데도 수일이 걸린다.

어떤 경우는 출생신고 자체가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있고,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오랜 시간 친생모를 설득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출생 미등록 아동 사례 중에는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사례가 있다. 해결을 해도 어렵게 됐거나 부모의 손을 떠난 아동도 존재한다. 이 중 가장 슬픈 사례는 아동이 사망한 후 발견된 경우다.


이 아동은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영유아 시기 아동학대로 2년 동안 사례 관리를 받은 경력이 있었다. 그런데 아동이 취학 연령이 돼도 학교에 가지 않았고, 경찰은 전수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아동이 사망한 것을 발견했다. 

사망한 아동은 출생신고가 안 돼있었고, 이런 이유로 사망신고도 불가능했다. 이 아동은 사망신고를 하기 위해 출생신고를 먼저 해야 했다.

아동의 부는 범죄에 연류돼 도피생활을 하고 있었고, 모는 사망한 아동 외 남아있는 자녀들을 외부와 철저히 차단한 채 생활을 지속하고 있었다. 

다양한 출생 미등록 아동 사례 보니…
주민번호 없이…학대 수준 방치 경험

결국 아동학대의 정황이 드러났고, 사망 아동의 부는 징역 20년 이상을 구형받았다. 부가 모에게까지 폭력을 행사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모는 부의 아동학대를 동조한 것으로 판결받고 구형을 받았다.

현재 모는 구치소에서 아동학대를 인정하고 반성해 출소한 상황이다. 남아있는 자녀는 부모와 완전히 분리돼 아동보호전문기관이 관리를 하고 있다.

모가 아동의 출생신고를 끝까지 거부해 하지 못한 경우도 있다. 해당 사례의 부모는 10대로 동거 생활을 하다가 출산해, 정식 혼인관계를 맺지 않았다. 이런 경우 유전자 검사를 먼저 진행한 후, 친자 확인을 한 뒤 모나 부 밑으로 아동의 출생신고가 가능하다.


그러나 10대 모는 출생신고에 비협조적이었다.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었고 관련 절차에 대한 어려움도 있었다.

탁지혜 아동보호전문기관 과장은 “보통 이런 경우 세상에 태어난 아이한테 부모의 역할인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설득한다. 그러나 의무감이 없는 분은 법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출생신고를 하는 시기 자체가 늦춰진다”고 말했다.

사망 뒤 
발견도

혼인관계 정리가 되지 않아 아동의 출생신고가 늦어지고 있는 사례도 있었다. 해당 사례의 모는 전 남편과 이혼 후 300일이 지났을 때 아기를 출산했다. 모는 이미 동거하는 남편이 있었고, 출산한 아기를 현재 동거하는 남편의 밑으로 출생신고를 하고 싶었다. 

아기는 전 남편의 자녀로 추정됐기 때문에 법적인 제약이 있었다. 이럴 때는 전 남편의 동의를 받고 법적인 소송을 진행해야 한다. 즉 전 남편이 생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다.

그러나 전 남편은 모의 임신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어른의 감정싸움에 아기는 여전히 주민등록번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모의 아기가 태어난 지 17개월이 지났다. 급한대로 사회복지 전산관리번호(구 의료급여관리번호)를 받아 의료 혜택을 받고 있지만, 이외 국가 지원은 받을 수 없다. 

탁 과장은 “아이들은 본인의 의도와 다르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이렇게 출생 신고가 안 되면 그림자처럼 사라져도 아무도 모른다. 보호자가 아동을 보호하지 못하면 국가에서 아동을 보호할 수 있는 법률을 만들어야 한다”고 전했다.

모가 법적인 남편이 있고 집에서 아이를 낳아 출생신고를 못한 상황도 있다. 아이는 남편의 자식이 아니다. 또한 집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병원의 출생확인서조차 없다. 예방접종을 하거나 학교를 가지도 못했다. 현재 아동은 초등학교 3학년이다. 

범죄에 연루된 부모와 사망한 자녀
사망 신고 위해 출생신고부터 해야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가 이 아동을 처음 발견했을 때, 아동은 ‘늑대소년’처럼 행동했다. 집에 물건은 다 부서져 있었고 싱크대와 문도 떨어져 있었다. 외부와 접촉을 전혀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아동은 현재 사회복지 전산관리번호를 받고 지역아동센터에서 관리하고 있다. 학교도 다니고 있지만 치료가 많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러나 모는 아동의 출생신고에 의지가 전혀 없어서, 아동은 여전히 주민등록번호가 없는 실정이다.


아동이 위탁 가정에 보내지면서 출생신고가 된 경우도 있다. 이 가정의 부모는 20대 초반으로, 아기가 만 2세 때 모가 지인에게 아기를 맡기면서 유기했다. 당시에는 출생 등록에 문제가 없었다.  

모의 지인은 “아기를 모가 데려가지 않는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모는 아기를 방임·유기했고 잠적해서 찾을 수 없었다. 경찰이 부를 찾아가니 상황을 알 수 있었다. 이 아기는 부의 친자가 아니라고 주장한 것. 유전자 검사 결과도 아기가 부의 친자가 아니라는 것으로 나왔다.

모는 생모가 맞지만 부는 생부가 아니다. 모와 부의 결혼은 모가 임신을 해서 이뤄진 것이었고, 아기의 생부가 본인이 아니란 것을 알고 ‘결혼 사기’라고 주장했다. 우선 지인에게 맡겨졌던 아기는 부와 부의 아버지에게 맡겨졌다. 

복잡한
혼인관계

부는 곧 혼인 무효 소송을 신청했고 승소했다. 법원은 아이의 가족관계 등록을 폐쇄했고, 아기의 주민등록번호는 폐기됐다. 이제 모가 다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해야 했지만, 모는 여전히 잠적한 상황이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문자를 보낼 때만 드문드문 답장을 보냈다. 

경찰은 모에 대해 추가적 방임 학대로 고소·고발했다. 모의 부재로 아기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면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1장 제46조에 따라 검사 또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이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


문제는 선례가 하나밖에 없다는 것이었다.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는 해당 지역의 검사에게 출생신고를 요청했다. 해당 지역에는 선례가 없어서 다른 지역의 선례를 찾아보고 출생신고를 했다. 

출생신고가 끝나도 해결할 점이 있었다. 모의 아기는 너무 어린데 보육원에 가야 했다. 아동보호전문기관은 보육원에 아기를 보내지 않기 위해 임시보호시설을 찾았고, 현재는 일반 가정위탁 부모를 찾아서 보호받고 있다. 

김지원 아동보호전문기관 대리는 “출생 미등록 아동문제를 해결하는 데 워낙 변수가 많다. 흔한 사례가 아니다 보니 검사도 법을 찾아서 준비해야 한다. 그나마 검사의 협조가 잘 이뤄져 무사히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부모가 불법체류 외국인인 경우는 출생신고가 더 복잡해진다. 혼인하지 않고 한국에서 아기를 출산한 모는 아기가 한국에서 크더라도, 한국에서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가족관계등록법은 국민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이다.

유미숙 한국미혼모네트워크 국장은 출생 미등록 아동의 보호자를 돕고 있다. 그는 현장에서 다양한 사례를 보면서 한국의 출생신고에 허점이 너무 많다고 지적했다.

“내 자식인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강제성 부여한 출생통보제가 필요”

유미숙 국장은 “출생신고에는 여러 허점이 많다. 특히 미혼부의 경우는 엄마의 정보를 조금이라도 알고 있으면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 특히 10대에 부모가 된 아이들은 너무 쉽게 아기를 유기하게 된다”며 “혼인관계가 정리되지 않고 낳은 아기들도 많다”고 설명했다.

유 국장은 “이런 경우도 출생 사각지대에 놓이는데, 인천에서는 아동을 출생신고하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경우까지 있다. 출생신고가 불가능해 방임하거나 최악의 상황까지 가는 것”이라며 “의료기관에서 태어난 아기를 통보해 공공이 파악할 수 있는 ‘출생통보제’가 시행돼야 한다”고 밝혔다.

‘출생통보제’에 대해 의료기관은 어떤 입장일까? 우선 모든 의료인이 출생통보제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다. 이미 코로나19 상황 등 의료진은 업무가 지나치게 많은 상황인데, 이 상황에서 행정처리까지 해야 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여기에 덧붙여 출생신고에 대한 책임까지 떠맡게 된다.

소아과 의사로 25년째 근무 중인 김정은 시흥 신천연합병원 소아청소년과 의사는 출생통보제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진료실에서 출생 미등록인 상태를 목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행정적 부담
영원한 오류

그는 “진료실에서 출생 미등록 아동의 진료비를 깎아준 적이 있다. 그런데 이 문제는 의료인의 선의에 기대면 안 된다. 이런 것을 책임지라고 국가가 있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민간 의료기관은 출생통보제가 엄청난 부담으로 느껴진다. 한 번 실수하면 영원한 오류로 남는다”고 지적했다.

이어 “의료기관의 행정적 부담을 줄일 방법이 필요하다. 의료기관의 출생신고를 100% 믿는 것보다는 의료기관이 출생을 통보한 뒤 공무원이 추적해서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강제성이 없으면 출생통보제에 참여하는 의료기관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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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