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사각지대 놓인 미혼부와 자녀의 눈물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5.31 09:07:04
  • 호수 1377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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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유령을 키우고 있습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A씨와의 인터뷰는 밤 10시가 지나서야 시작됐다. 미혼부인 그는 두 살배기 아들 희망이가 잠들어야 인터뷰가 가능했다. 목소리는 지쳐있었지만, 늦은 밤이나 고된 육아 때문이 아니었다.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들의 출생신고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희망이와 죽어야 하나 생각도 했다. 그러면 사회는 나를 나쁜 아빠라고 할 것이다. 나의 사정은 전혀 들어보지도 않고”라며 입을 뗐다.

아기가 태어나면 병원은 아기의 출생신고를 위해 출생증명서를 부모에게 제공한다. 부모가 동사무소에 출생증명서와 신분증, 그리고 출생신고서를 제출하면 아기의 출생신고가 마무리된다. 소요 시간은 10~15분. 이런 과정을 통해 아기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사랑이법 
해인이법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에 따르면 ‘혼인 중 출생자의 출생의 신고는 부 또는 모가 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해야 한다’는 예외사항도 기재됐다. 아기의 출생신고는 ▲동거하는 친족 ▲분만에 관여한 의료진 ▲검사 ▲지방자치단체의 장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출생신고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아기의 보호자가 ‘미혼부’인 경우다. 이런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 ‘사랑이와 해인이법’이다. 

이 법은 ▲모의 소재 불명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 ▲모가 공적 서류·증명서·장부 등에 의해 특정될 수 없는 경우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출생신고의 사각지대는 존재하는 것일까.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면서 힘든 시기예요. 희망이가 태어나서 행복하지만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서 너무 힘듭니다. 한국의 법이 참 웃겨요. 나와 희망이는 철저하게 소외됐습니다.” 올해로 2살이 된 아들 희망이(가명)를 키우고 있는 A씨(45세)의 말이다.  

그는 미혼부지만 처음부터 미혼부였던 건 아니다. 2020년 희망이는 A씨와 사실혼 관계였던 여자친구 B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B씨는 병원에서 퇴원 후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한 후 희망이와 집에 돌아왔다.

A씨는 B씨가 외출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을 추스렸을 무렵 “내일 희망이 출생신고를 하러 가자”고 말한 뒤 회사에출근했다. 이날 퇴근 후 집 앞에 도착했을 때엔 문 너머로 아기 울음소리와 당시 키우던 강아지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들어간 집에 B씨는 없었다. 잠시 외출을 한 것도 아니었다. 동사무소에 출생신고하자고 약속한 하루 전날 , B씨는 사라졌다. 보육원 출신이었던 B씨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희망이의 출생신고를 해야 했다. 다음 날 동사무소에 방문했던 A씨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됐다. B씨는 결혼을 했었던 사람으로, 이미 남편과 자녀가 있었다. B씨의 혼인 기록 때문에 희망이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99.8% DNA 검사 결과지 제출해도
도망친 부인의 남편 자녀로 추정?

동사무소에선 “출생신고를 하려면 무조건 아기 엄마를 데려와라”고 말할 뿐이었다. 다른 방법에 대한 고지는 전혀 없었고 그날부터 A씨는 미혼부가 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사무소에 들르면 직원과 언쟁을 할 뿐이었다. 매일이 싸움의 연속이었다. 분명히 자신의 아이인데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상상이 들었다.

병원에서 기본 예방접종을 한 번 하려면 30만원이 필요했다. 게다가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는 받아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희망이 주민번호가 왜 없느냐”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았고, A씨는 죄지은 사람인양 그간의 일을 설명해야 했다.

돈을 벌 시간도 없었다. 갓 태어난 아기를 혼자 두고 밤에 나갈 수도 없었고, 미혼부를 받아주는 사장도 없었다. 결국 A씨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간 모아뒀던 돈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기를 키우기 위한 기본적인 비용도 부족했다. 

출생신고를 했다면 ▲보육료 지원 ▲아이돌봄 서비스 ▲저소득 한부모가족을 위한 요금감면 혜택 ▲맞춤형 기초생활 보장제도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모두 불가능했다. 희망이는 유령이자 그림자였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A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본인이 희망이에게 평범한 부모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보육원에 전화를 건 적도 있고 자살예방 상담전화에 전화를 걸어서 상담 받은 적도 있다. 오히려 아빠인 자신은 할 수 없지만 보육원에 희망이를 맡기면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다. 

“내 아이인데
지킬 수 없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A씨의 지인은 그에게 ‘DNA 검사센터’를 소개했다. DNA 검사 비용은 400만원 정도였다. 사연을 들은 센터는 A씨를 위해 검사를 무료로 진행했다. 결과는 ‘99.8% 의뢰인1(A씨)과 의뢰인2(희망이)는 생물학적으로 친자 관계’로 나왔다. 

A씨는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DNA 검사 결과지를 가정법원에 제출했다. 한 달 뒤 가정법원은 “희망이 엄마가 왜 집을 나갔느냐”고 물었고, A씨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두 달 뒤 우체국 등기로 판결문이 도착했다.

판결문에는 ‘이 사건 사실조회 회신 내용에 따르면, 사건 본인(희망이)의 모(B씨)는 사건 본인(희망이)을 출산한 2020년 당시 타남과 혼인 중이었다. 사건 본인(희망이)은 법률상 배우자인 타남의 친생 추정을 받는 자녀가 된다. 생부라고 주장하는 신청인(A씨)은 친자 관계에 관한 재판을 거치지 않고 사건 본인을 자신의 자녀로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고 게재됐다. 이때가 지난해 9월이었다.

출생신고에 실패하니 결국 다시 돈이 문제였다. A씨는 보건소에 가서 사정을 말했고 우연히 ‘사회복지 전산 관리 번호(이하 복지번호)’를 받았다.

복지번호는 의료급여 전산관리번호기 때문에 다른 복지 혜택을 받을 순 없다. 동사무소에서 그토록 ‘방법이 없냐’고 물어봐도 들을 수 없었던 정보를 알게 된 것이다. A씨가 발로 뛰어다닌 결과였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겪는 어려움이 다 해결된 것도 아니다.


그는 “희망이가 최근 폐렴에 걸려서 숨이 넘어갈 정도로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도 병원에 가면 무조건 듣는 말이 ‘주민등록번호 없으면 안 된다’였다. 어느 병원을 가도 그렇다. 복지번호가 있다고 말해도 무조건 거절부터 한다”며 “제발 복지번호를 한 번만 입력해보라고 여러 번 부탁해야 간호사가 시도한다. 그럴 때면 주위의 시선도 너무 힘들고 희망이가 너무 불쌍하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낙인 찍힌
나쁜 아빠

‘아동학대’ 의심 신고도 그를 힘들게 한다. 어느 날 희망이가 장난감을 A씨 얼굴에 던졌다. 당연히 A씨는 희망이에게 “그러면 혼난다”고 야단을 쳤다. 평소에 혼난 적이 없었던 희망이는 크게 놀라며 울기 시작했다. 이 소리를 들은 이웃이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경찰은 즉시 출동했고 오자마자 희망이의 옷을 벗겼다. 아이의 몸에 멍이 없는 것을 확인했지만, 돌발적인 행동에 희망이는 울며 A씨 뒤에 숨었다.

A씨는 “최소한 내가 아이에게 어떤 상황인지 설명하게 한 뒤 옷을 벗겨도 늦지 않은 것 아니냐”며 화를 냈다. 이날을 기점으로 경찰, 형사, 시청 공무원, 아동복지센터에서 매주 찾아왔다. 그들은 A씨에게 “출생신고가 안 된 것 자체가 아동학대”라고 말했다. 

이럴 때마다 A씨는 “나도 희망이 출생신고를 하고 싶다. 그런데 나라에서 못하게 하고, 공무원들은 내가 아동학대를 했다고 한다. 나랑 희망이가 죽어야 하는 것이냐, 내가 아동학대를 하지 않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그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공무원들은 ‘희망이가 건강하냐’고 A씨에게 전화를 한다. A씨는 여전히 아동학대 의심을 받고 있다.

A씨는 기자에게 “(혼인관계의 여성을 만난)어른의 죄는 어른이 벌을 받으면 된다. 왜 죄가 없는 아이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먼저 출생신고는 해줘야 한다”며 “지금은 희망이가 대화를 정확하게 알아듣진 못한다. 그런데 더 크면 어디를 가든 ‘왜 주민등록번호가 없냐’는 말을 알아들을 텐데. 그때가 너무 걱정된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정말 내 팔을 잘라서 출생신고가 된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미혼부 자체가 많지는 않지만 나 같은 상황인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 하지 않는 방법 알려 달라”
의료기관서 출생 등록 제안했지만…

현재 A씨는 출생신고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준비 중인데, 모두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소송에 소요되는 기간은 2~3년 걸릴 것으로 예상돼, 이미 희망이가 5살이 됐을 시점이다. 그때까지 A씨와 희망이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미혼부가 법원에 신청한 ‘친생자 출생을 위한 확인’ 청구 690건 중 129건은 기각됐다. 5년간의 긴 소송의 결과로 출생신고가 받아들여진 경우도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미혼부들은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기도 한다. A씨의 경우처럼 끝까지 아이를 책임지려는 노력 자체가 힘들다.

국가마다 규율 방식과 체계가 다르긴 하지만, 대다수의 OECD 국가는 기본적으로 출생신고에 대한 책임을 의료기관에 1차적으로 부과하거나 신고 의무를 부모와 의료기관 모두에 지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렇게 의료기관이 1차적으로 관여해 출생 사실이 국가에 통보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한국은 출생의 98%가 의료기관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의료기관은 출생증명서를 부모에게 발급할 뿐 출생등록에 관여하지 않는다. 만약 부모가 고의적으로 자녀의 출생을 신고하지 않았을 때, 사건과 사고 등으로 우연히 발견되지 않으면 아동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다. 

이 같은 출생신고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우리동네연구소는 경기도 시흥시 2만78명의 주민이 청구해 의회에 올린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를 시흥시 의회에 제출했다.

시흥시가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 지자체며 출생인구와 아동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이주아동 비율이 높아 출생등록 제도와 관련된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많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제8대 시흥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는 “법령을 위반한다”는 사유로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를 각하로 결정했다.  

‘출생확인증’
2만명 서명

출생확인증 조례운동 운영단체 우리동네연구소는 “2만78명의 서명권자가 위임한 정치적 무게는 가볍게 져버리고 의회 사무국의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들 대부분은 ‘출생확인증’에 대해 찬성 입장임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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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범여권 3각 권력 재편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정청래·조국·김민석 세 사람이 삼각관계로 얽혔다.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연임을,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는 자당의 생존을, 김민석 국무총리는 청와대의 명을 받아 권력 싸움에 참전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린다. 세 사람이 만든 새로운 소용돌이가 여의도를 향하고 있다. 이들이 범여권 지형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이목이 쏠린다. 여당 대표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그립감이 강해졌다. 지난 3일 대의원·권리당원 1인1표제 도입을 담은 당헌 개정안이 재적 위원 과반의 찬성으로 문턱을 넘은 것이다. 이로써 오는 8월 민주당 전당대회에서부터 대의원과 권리당원이 동일한 한 표를 행사하게 된다. 존재감 굳히기 민주당에 따르면 중앙위원 총 590명 중 87.29%인 515명이 투표에 참석했다. 이 중 찬성 312명(60.58%), 반대 203명(39.42%)으로 의결 요건을 충족했다. 이후 정 대표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핵심 공약이자 1호 공약이라고 할 수 있는 1인1표제를, 임기 안에 약속을 지킬 수 있게 돼 보람 있게 생각한다”며 “대한민국은 법치국가이고 모든 법의 으뜸은 헌법이다. 헌법에서 명령하고 있는 보통·평등·비밀투표, 1인 1표제는 진작에 민주당에서 시행돼야 마땅했다”고 강조했다. 이어 “1인1표 시행으로 가장 직접적인 효과는 당내 계파가 해체되는 것이라고 예상한다”며 “10년이 넘게 1인1표제, 당원이 주인이 되는 정당, 당원 주권 시대를 부르짖었는데, 드디어 마침표를 찍게 돼 개인적으로도 무한한 기쁨”이라고 소회를 밝혔다. 1인1표제가 통과되자 권리당원 사이 지지도가 높은 정 대표의 연임 가능성이 탄력을 받았다는 해석이 제기된다. 지난해 8월 치러진 전당대회서 정 대표는 전국 대의원 투표에선 46.91%로 박찬대 의원(53.09%)에게 열세를 보였으나 권리당원 투표서 66.48%의 득표율을 기록해 박 의원(33.52%)을 앞질렀다. 다만 6대 4라는 투표 결과를 놓고 정치권의 분석이 엇갈렸다. 정족수보다 16명 많은 ‘턱걸이 통과’로 리더십을 굳히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점에서다. 1인1표제 재추진에 제동을 걸던 집단의 반대표가 늘어난 것 역시 주목할 만하다. 지난해 치러진 첫 투표 당시 투표율이 62.58%로 두 달 만에 20%p 올랐지만, 반대표 역시 102표에서 203표로 두 배 가까이 늘어났다. 이에 민주당 권칠승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1인1표가 갖는 대의엔 다 동의하지만 현재 민주당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정당이 갖고 있는 당원 구조의 취약성 때문에 1인1표제하는 게 맞느냐는 것에 대한 회의는 좀 있는 것 같다”며 “후속 정비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는 대의엔 찬성하지만 지금 상태에서 그냥 (1인 1표제를) 적용하면 부작용이 있다”고 설명했다. 정 대표의 두 번째 승부수였던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의 합당도 여전히 불투명하다. 합당에 반대하는 최고위원들이 정 대표를 정면으로 들이 받으며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독주하는 정청래, 승부수는 던졌는데… “합당 못해” 마주하기도 전 무산 위기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이 벌써부터 차기 대권을 의식한 논의로 번져 걱정”이라며 “‘큰 배를 띄우려면 본류를 타야 한다’면서 마치 민주당을 조국 대표의 대통령 만들기 수단으로 여기는 발언까지 나오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지금은 이재명 대통령의 시간이지 차기 대권주자를 밀어줄 시간이 아니”라며 “야당도 아니고 여소야대도 아니고 과반 의석을 차지한 강력한 집권여당에서 대통령 지지율이 60%에 육박하는데 왜 벌써부터 이런 얘기가 나오는지 괴이하기까지 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민주당 강득구 최고위원 역시 “어제(3일)부터 지방선거 예비후보 등록이 시작됐고 중앙당과 시도당은 후보자 공모를 진행하고 있는데 이런 시점에서 합당을 밀어붙이면 혼란만 커진다. 공천 기준, 경선 룰이 흔들린다”며 “합당 논의를 당장 멈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 대표는 전체 당원 여론조사와 토론 등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겠다며 의견을 굽히지 않고 있다. 일련의 과정에 대해 한 정치권 관계자는 “공천권만 손에 넣으면 세력은 알아서 따라붙게 돼있다. 정 대표는 ‘축구 경기에서 1대 3이나 3대 0이나 같다’고 말하면서까지 1인1표제를 밀어붙였다. 당 대표 연임에 선을 긋고 있지만 연임을 통한 공천권 확보를 포석에 뒀다고 해석하지 않을 수가 없다”며 “조 대표를 끌어들여 본격적으로 자기 세를 넓히려는 것 아니겠느냐”라고 해석했다. 정 대표가 띄운 합당론에 혁신당이 휘말리는 듯한 그림이 됐다. 그동안 혁신당 조국 대표는 민주당과의 합당에 선을 그어왔지만 현실이라는 벽에 부딪혔고, 이번 합당 논의 역시 자당을 살리기 위해 민주당의 손을 잡은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세를 불려야 하는 정 대표와 대권주자로서 도움닫기 공간이 필요한 조 대표의 니즈가 맞아 떨어졌다는 해석이 나온다. 합당 테이블이 마련되기도 전 민주당 내 집안싸움이 불거지면서 혁신당과의 논의조차 시작하지 못했다. 합당 논의에 촉각을 세우는 사이 이번에는 혁신당이 추진하는 토지공개념을 놓고 이견이 갈렸다. 이언주 최고위원이 토지공개념에 반대 의사를 표하자 조 대표가 “헌법재판소가 합헌이라고 판시한 것. 어이없다”고 맞받아치면서 새로운 갈등의 씨앗이 뿌리를 내린 것이다. 꼿꼿한 자존심 토지공개념이 난타전으로 번진 이유는 최근 집값 등 부동산을 저격하는 이재명 대통령과의 행보와도 맞물려 있다는 분석이다. 이 최고위원은 “토지공개념은 과거 공산주의 몰락 이전 토론의 대상이 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AI 대전환과 글로벌 자본 유치, 기술 경쟁이 국가의 생존 과제가 된 지금의 시대 현실과는 분명한 괴리가 있고, 시대착오적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대통령이 강력한 부동산 공급 대책을 내놓고 있는데 토지공개념 입법화를 주장하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주장이 대두되면 대통령의 건강한 개혁 의지마저 희석되고 곡해돼 공격받을 여지가 크다”고 강조했다. 혁신당이 주장하는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그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을 골자로 한다. 지난 2일 열린 ‘신토지공개념 입법추진단 출범식 및 토론회’서 혁신당 차규근 의원은 입법을 비판한 여당을 향해서는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틀린 주장”이라고 지적했다. 차 의원은 “토지공개념은 토지의 사유재산권을 전면 인정하되, 공공의 이익을 위해 필요한 경우, 이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원칙”이라며 “헌법재판소도 1989년 토지거래허가제 사건 판결에서 모든 사람의 생존권을 보장하기 위해 토지 소유권은 절대적인 권리가 될 수 없으며, 공공복리 증진을 위해 의무와 제약을 수반하는 방향으로 변화해 왔다고 판시했다”고 설명했다. 이 최고위원의 주장을 반박하기도 했다. 차 의원은 민주당 강령을 언급하며 “토지 재산권 행사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제도적 장치를 구축해 지대 수익으로 인한 경제 왜곡과 불평등을 방지한다고 명시돼있다”며 “현재 시행 중인 토지거래허가제와 개발이익환수제 역시 모두 토지공개념에 기반한 제도”라고 꼬집었다. 혁신당과의 합당 논의가 진행 중인 민주당 일각에서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토지공개념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합당 논의는 불가능하다”는 주장까지 제기됐다. 그럼에도 혁신당이 이를 추진하는 이유는 혁신당이 민주당에 흡수 합당되는 것만은 피해야 한다는 분위기 때문인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에 혁신당 DNA가 섞이는 게 아닌, 혁신당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민주당과 함께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는 점에서다. 논의를 띄운 이상 합당을 하든 약속을 파기하든 결과가 나와야 한다. 그러나 “주판알을 굴렸을 때 합당 가능성이 낮다”는 게 한 여의도 관계자의 전언이다. 로망을 현실로? 이 관계자는 “어떤 방법으로든 조 대표가 민주당과 함께한다면, 차기 당권을 놓고 정 대표와 경쟁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봤다. 이어 “두 사람(정 대표, 조 대표) 모두 대권주자로서 욕심이 있다. 시기가 언제가 됐든 다음 대선을 위해 경쟁하는 사이가 될 것”이라며 “종래에 서로를 집어삼키려는 계파 싸움으로까지 번질 우려가 있다”고 전했다. 조 대표를 등에 업고 빠른 보폭으로 걷는 정 대표의 시선 끝에는 김민석 국무총리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김 총리가 “당 대표에 로망이 있다”고 말하면서 8월 전당대회 출마설에 스스로 불을 지핀 것이 화근이다. 여기에 청와대에서까지 김 총리를 차기 당 대표로 세우려 한다는 분석이 나오면서 정 대표의 셈법이 더욱 빨라졌다는 해석이다. 그동안 김 총리의 대표 도전설은 꾸준히 회자했다. 지난달 23일 국무총리실은 공지를 통해 서울시장 선거 여론조사에서 김 총리 이름을 빼달라고 요청했고, 이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김 총리가 서울시장이 아닌 민주당 당 대표를 노리는 게 아니냐고 봤다. 여기에 김 총리가 한 유튜브를 통해 정 대표와 차기 대표 자리를 놓고 경쟁할 수 있다는 관측에 대해선 “민주당의 당 대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로망은 있다”고 말하면서 본격적으로 불씨를 댕겼다. 다만 김 총리는 “세상(일)이 욕심을 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안다. 욕망의 정치로 뭔가를 풀려고 하지 않는 편”이라며 조심스럽게 입장을 전했다. 그러던 중 민주당-혁신당 합당 논쟁에 김 총리가 뛰어들면서 당권을 둘러싼 경쟁이 시작됐다는 관측이 다시 나왔다. 김 총리는 지난 2일 서울 종로구 총리공관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런 시점, 이런 방식으로 진행될 줄은 몰랐다”며 정 대표의 합당 방식을 꼬집었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뿌리 깊은 정당이기에 당원들의 뜻을 묻는 민주적 절차를 반드시 거쳐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통합 자체가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김 총리는 당 대표 선출 전당대회 출마설과 관련해 “(앞서 대표직에 대해 언급한) 로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 많은 말들을 불러올지는 몰랐다”며 “(당시 대표 출마 여부는 직접적으로 묻지 않기에) 국정에 전념한다고 했고, 오늘 기자간담회 내용을 주의 깊게 보면 굉장히 강력한 국정 전념 의지가 담겨있다는 것을 알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는 서울시장 선거로 본인(김민석)이 할 생각 없는데 서울시장 선거와 관련돼 거론되는 것이 국정 운영에 도움도 안 돼 거론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며 “당과 관련한 부분에 대해서도 제가 대표라는 평소 로망을 이야기한 것이고 또 합당 등 모든 문제들은 당의 질서 속에서 충분히 논의될 것으로 보고 제가 더 이상 현재 당내 문제와 연관돼서 소환되거나 호출되거나 이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민석 카드’ 청와대가 띄웠다? “당 대표 로망” 한마디에 ‘술렁’ 이후 김 총리는 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전날 신년 기자간담회를 언급하며 “기자간담회의 핵심은 한층 높은 ‘책임감’으로 국정에 ‘전념’한다는 것이다. 정책 관련한 질문에는 훨씬 적극적으로 답하겠다”며 출마 의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김 총리가 거듭해서 출마설에 선을 긋지만 계속해서 이름이 오르내리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를 정 대표의 대항마로 김 총리를 띄우기 위한 청와대의 물밑작업으로 봤다. 김 총리는 지난 총선 상황실장을 맡아 합을 맞춰오는 등 이 대통령과 연이 깊은 인물로 이 대통령의 의중인 ‘명심’을 등에 업어 민주당 수석최고위원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다. 지난 2024년 민주당 전당대회서 김민석 의원의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했지만, 사전 득표율이 저조했다. 이에 이재명 대표 후보는 첫 지역 순회 이후 김 후보와 함께 차 안에서 유튜브 라이브를 진행하면서 “(김 후보) 왜 이렇게 표가 안 나오느냐”며 “제 선거를 도와주느라 본인 선거(운동)를 못 해 결과가 잘못되면 어쩌나 부담된다”고 언급했다. 이후 민주당 커뮤니티 등에서는 “이재명이 김민석을 낙점했다”는 글이 퍼졌고, 빠르게 순위가 뒤집혀 단숨에 수석최고위원으로 올라섰다. 이처럼 청와대에서 정청래 체제의 힘을 빼기 위해 다시 한번 ‘김민석 카드’를 띄우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청와대가 정 대표를 견제하는 것은 정 대표가 ‘당원 주권 정당’ 등을 명분으로 당을 강하게 쥘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점에서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정 대표의 행보가 모두 이해는 간다. 명분도 좋다. 문제는 시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라며 “이재명정부 출범 극초기부터 갈등이 불거졌다. 청와대 입장에서는 대놓고 발톱을 드러내는 정 대표가 장기간 민주당을 주무르는 게 달갑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지방선거를 앞두고 집안싸움이 격화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혁신당 역시 합당 논의가 잘 풀리지 않을 경우 조 대표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우려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방선거가 끝나는 대로 정치권의 시선은 8월 민주당 전당대회로 쏠리는 만큼 6월 전 합당 논의가 매듭을 지을지가 최대 관건이다. 숨길 수 없는 불편한 심기 혁신당 황현선 인재영입위원회 부위원장(전 사무총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이 대통령과 김 총리, 정 대표를 모조리 언급하며 현 상황을 직격했다. 황 위원장은 “이 싸움(합당)의 최대 피해자는 이 대통령이다. 언젠가 후계 전쟁이 벌어질 것을 예상했겠지만 집권 1년도 안 돼 심각한 내분에 직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친K(김민석 국무총리) 세력이 선공을 하고, 선방 맞은 친J(정청래 대표)의 반격도 시작될 것”이라며 “지금은 대통령 눈치보며 권력투쟁을 벌이겠지만 총선에 다다를수록 눈치 보지 않는 싸움이 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