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A씨와의 인터뷰는 밤 10시가 지나서야 시작됐다. 미혼부인 그는 두 살배기 아들 희망이가 잠들어야 인터뷰가 가능했다. 목소리는 지쳐있었지만, 늦은 밤이나 고된 육아 때문이 아니었다. 그를 힘들게 하는 것은 아들의 출생신고조차 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희망이와 죽어야 하나 생각도 했다. 그러면 사회는 나를 나쁜 아빠라고 할 것이다. 나의 사정은 전혀 들어보지도 않고”라며 입을 뗐다.
아기가 태어나면 병원은 아기의 출생신고를 위해 출생증명서를 부모에게 제공한다. 부모가 동사무소에 출생증명서와 신분증, 그리고 출생신고서를 제출하면 아기의 출생신고가 마무리된다. 소요 시간은 10~15분. 이런 과정을 통해 아기는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사랑이법
해인이법
가족관계의 등록 등에 관한 법률 제46조에 따르면 ‘혼인 중 출생자의 출생의 신고는 부 또는 모가 해야 한다’고 나와있다.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가 해야 한다’는 예외사항도 기재됐다. 아기의 출생신고는 ▲동거하는 친족 ▲분만에 관여한 의료진 ▲검사 ▲지방자치단체의 장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출생신고를 못하는 경우도 있다. 바로 아기의 보호자가 ‘미혼부’인 경우다. 이런 사각지대를 해소하기 위한 것이 ‘사랑이와 해인이법’이다.
이 법은 ▲모의 소재 불명 ▲성명·등록기준지 및 주민등록번호를 알 수 없는 경우 ▲모가 공적 서류·증명서·장부 등에 의해 특정될 수 없는 경우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가능하게 했다. 그런데 왜 여전히 출생신고의 사각지대는 존재하는 것일까.
“내 인생에서 지금이 가장 행복하면서 힘든 시기예요. 희망이가 태어나서 행복하지만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서 너무 힘듭니다. 한국의 법이 참 웃겨요. 나와 희망이는 철저하게 소외됐습니다.” 올해로 2살이 된 아들 희망이(가명)를 키우고 있는 A씨(45세)의 말이다.
그는 미혼부지만 처음부터 미혼부였던 건 아니다. 2020년 희망이는 A씨와 사실혼 관계였던 여자친구 B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B씨는 병원에서 퇴원 후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한 후 희망이와 집에 돌아왔다.
A씨는 B씨가 외출할 수 있을 정도로 몸을 추스렸을 무렵 “내일 희망이 출생신고를 하러 가자”고 말한 뒤 회사에출근했다. 이날 퇴근 후 집 앞에 도착했을 때엔 문 너머로 아기 울음소리와 당시 키우던 강아지 소리가 들렸다.
놀라서 들어간 집에 B씨는 없었다. 잠시 외출을 한 것도 아니었다. 동사무소에 출생신고하자고 약속한 하루 전날 , B씨는 사라졌다. 보육원 출신이었던 B씨를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희망이의 출생신고를 해야 했다. 다음 날 동사무소에 방문했던 A씨는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됐다. B씨는 결혼을 했었던 사람으로, 이미 남편과 자녀가 있었다. B씨의 혼인 기록 때문에 희망이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었다.
99.8% DNA 검사 결과지 제출해도
도망친 부인의 남편 자녀로 추정?
동사무소에선 “출생신고를 하려면 무조건 아기 엄마를 데려와라”고 말할 뿐이었다. 다른 방법에 대한 고지는 전혀 없었고 그날부터 A씨는 미혼부가 됐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사무소에 들르면 직원과 언쟁을 할 뿐이었다. 매일이 싸움의 연속이었다. 분명히 자신의 아이인데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상상이 들었다.
병원에서 기본 예방접종을 한 번 하려면 30만원이 필요했다. 게다가 출생신고가 안 된 아기는 받아주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는 “희망이 주민번호가 왜 없느냐”는 질문을 반복적으로 받았고, A씨는 죄지은 사람인양 그간의 일을 설명해야 했다.
돈을 벌 시간도 없었다. 갓 태어난 아기를 혼자 두고 밤에 나갈 수도 없었고, 미혼부를 받아주는 사장도 없었다. 결국 A씨는 신용불량자가 됐다. 그간 모아뒀던 돈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아기를 키우기 위한 기본적인 비용도 부족했다.
출생신고를 했다면 ▲보육료 지원 ▲아이돌봄 서비스 ▲저소득 한부모가족을 위한 요금감면 혜택 ▲맞춤형 기초생활 보장제도 등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모두 불가능했다. 희망이는 유령이자 그림자였고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았다.
A씨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본인이 희망이에게 평범한 부모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는 보육원에 전화를 건 적도 있고 자살예방 상담전화에 전화를 걸어서 상담 받은 적도 있다. 오히려 아빠인 자신은 할 수 없지만 보육원에 희망이를 맡기면 출생신고를 할 수 있었다.
“내 아이인데
지킬 수 없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A씨의 지인은 그에게 ‘DNA 검사센터’를 소개했다. DNA 검사 비용은 400만원 정도였다. 사연을 들은 센터는 A씨를 위해 검사를 무료로 진행했다. 결과는 ‘99.8% 의뢰인1(A씨)과 의뢰인2(희망이)는 생물학적으로 친자 관계’로 나왔다.
A씨는 출생신고를 하기 위해 DNA 검사 결과지를 가정법원에 제출했다. 한 달 뒤 가정법원은 “희망이 엄마가 왜 집을 나갔느냐”고 물었고, A씨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두 달 뒤 우체국 등기로 판결문이 도착했다.
판결문에는 ‘이 사건 사실조회 회신 내용에 따르면, 사건 본인(희망이)의 모(B씨)는 사건 본인(희망이)을 출산한 2020년 당시 타남과 혼인 중이었다. 사건 본인(희망이)은 법률상 배우자인 타남의 친생 추정을 받는 자녀가 된다. 생부라고 주장하는 신청인(A씨)은 친자 관계에 관한 재판을 거치지 않고 사건 본인을 자신의 자녀로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고 게재됐다. 이때가 지난해 9월이었다.
출생신고에 실패하니 결국 다시 돈이 문제였다. A씨는 보건소에 가서 사정을 말했고 우연히 ‘사회복지 전산 관리 번호(이하 복지번호)’를 받았다.
복지번호는 의료급여 전산관리번호기 때문에 다른 복지 혜택을 받을 순 없다. 동사무소에서 그토록 ‘방법이 없냐’고 물어봐도 들을 수 없었던 정보를 알게 된 것이다. A씨가 발로 뛰어다닌 결과였다.
그렇다고 병원에서 겪는 어려움이 다 해결된 것도 아니다.
그는 “희망이가 최근 폐렴에 걸려서 숨이 넘어갈 정도로 힘들었다. 이런 상황에도 병원에 가면 무조건 듣는 말이 ‘주민등록번호 없으면 안 된다’였다. 어느 병원을 가도 그렇다. 복지번호가 있다고 말해도 무조건 거절부터 한다”며 “제발 복지번호를 한 번만 입력해보라고 여러 번 부탁해야 간호사가 시도한다. 그럴 때면 주위의 시선도 너무 힘들고 희망이가 너무 불쌍하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낙인 찍힌
나쁜 아빠
‘아동학대’ 의심 신고도 그를 힘들게 한다. 어느 날 희망이가 장난감을 A씨 얼굴에 던졌다. 당연히 A씨는 희망이에게 “그러면 혼난다”고 야단을 쳤다. 평소에 혼난 적이 없었던 희망이는 크게 놀라며 울기 시작했다. 이 소리를 들은 이웃이 아동학대 의심 신고를 했다.
경찰은 즉시 출동했고 오자마자 희망이의 옷을 벗겼다. 아이의 몸에 멍이 없는 것을 확인했지만, 돌발적인 행동에 희망이는 울며 A씨 뒤에 숨었다.
A씨는 “최소한 내가 아이에게 어떤 상황인지 설명하게 한 뒤 옷을 벗겨도 늦지 않은 것 아니냐”며 화를 냈다. 이날을 기점으로 경찰, 형사, 시청 공무원, 아동복지센터에서 매주 찾아왔다. 그들은 A씨에게 “출생신고가 안 된 것 자체가 아동학대”라고 말했다.
이럴 때마다 A씨는 “나도 희망이 출생신고를 하고 싶다. 그런데 나라에서 못하게 하고, 공무원들은 내가 아동학대를 했다고 한다. 나랑 희망이가 죽어야 하는 것이냐, 내가 아동학대를 하지 않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냐?”는 질문에 그들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
지금도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공무원들은 ‘희망이가 건강하냐’고 A씨에게 전화를 한다. A씨는 여전히 아동학대 의심을 받고 있다.
A씨는 기자에게 “(혼인관계의 여성을 만난)어른의 죄는 어른이 벌을 받으면 된다. 왜 죄가 없는 아이를 이렇게 힘들게 하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먼저 출생신고는 해줘야 한다”며 “지금은 희망이가 대화를 정확하게 알아듣진 못한다. 그런데 더 크면 어디를 가든 ‘왜 주민등록번호가 없냐’는 말을 알아들을 텐데. 그때가 너무 걱정된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정말 내 팔을 잘라서 출생신고가 된다면 그렇게라도 하고 싶다. 미혼부 자체가 많지는 않지만 나 같은 상황인 사람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동학대 하지 않는 방법 알려 달라”
의료기관서 출생 등록 제안했지만…
현재 A씨는 출생신고를 위해 변호사를 선임해 소송을 준비 중인데, 모두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소송에 소요되는 기간은 2~3년 걸릴 것으로 예상돼, 이미 희망이가 5살이 됐을 시점이다. 그때까지 A씨와 희망이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된다.
통계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19년까지 미혼부가 법원에 신청한 ‘친생자 출생을 위한 확인’ 청구 690건 중 129건은 기각됐다. 5년간의 긴 소송의 결과로 출생신고가 받아들여진 경우도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미혼부들은 아이의 양육을 포기하기도 한다. A씨의 경우처럼 끝까지 아이를 책임지려는 노력 자체가 힘들다.
국가마다 규율 방식과 체계가 다르긴 하지만, 대다수의 OECD 국가는 기본적으로 출생신고에 대한 책임을 의료기관에 1차적으로 부과하거나 신고 의무를 부모와 의료기관 모두에 지게 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렇게 의료기관이 1차적으로 관여해 출생 사실이 국가에 통보되는 것이 보편적이다.
한국은 출생의 98%가 의료기관에서 이뤄지고 있지만, 의료기관은 출생증명서를 부모에게 발급할 뿐 출생등록에 관여하지 않는다. 만약 부모가 고의적으로 자녀의 출생을 신고하지 않았을 때, 사건과 사고 등으로 우연히 발견되지 않으면 아동의 존재를 파악할 수 없다.
이 같은 출생신고의 허점을 보완하기 위해 국제아동인권센터와 우리동네연구소는 경기도 시흥시 2만78명의 주민이 청구해 의회에 올린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를 시흥시 의회에 제출했다.
시흥시가 유니세프 아동친화도시 인증 지자체며 출생인구와 아동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고, 이주아동 비율이 높아 출생등록 제도와 관련된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많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지난달 20일, 제8대 시흥시의회 자치행정위원회는 “법령을 위반한다”는 사유로 ‘출생확인증 작성 및 발급에 관한 조례’를 각하로 결정했다.
‘출생확인증’
2만명 서명
출생확인증 조례운동 운영단체 우리동네연구소는 “2만78명의 서명권자가 위임한 정치적 무게는 가볍게 져버리고 의회 사무국의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했다”고 비판했다. 한편 아동보호전문기관 관계자들 대부분은 ‘출생확인증’에 대해 찬성 입장임을 나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