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인’ 문재인 두 가지 역할론

떠난지 얼마나 됐다고…대북 특사? 선거 등판?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문재인 전 대통령은 지난 2020년 신년 기자회견에서 “어떤 대통령으로 남고 싶냐”는 기자의 질문에 “잊혀진 사람으로 남고 싶다”고 대답했다. 당시 언론과 평론가 등은 소박한 문 전 대통령의 성품이 드러난 발언이라며 임기 후에 꼭 그렇게 될 것이라 입을 모았다. 그러나 그의 ‘소박한’ 바람은 이뤄지지 않는 모양이다. 정치계 인사들은 아직 문 전 대통령을 잊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야권, 여권을 막론하고 그의 행보에 대해 정계는 이런저런 예측을 하고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의 역할론이 급부상한 시기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이 다가올 쯤이었다. 문 전 대통령 측의 고위 관계자는 바이든 미 대통령의 방문 몇 주 전, 바이든 측이 문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백악관 측이 현직 대통령과 만남을 한 뒤, 전직인 문 전 대통령도 만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주장이었다.

전례 없는
전직 만남

일방적인 주장으로 치부됐던 ‘바이든·문재인 회동설’은 진보 스피커들에 의해 확대, 재생산됐다.

지난달 29일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의 진행자 김어준씨는 “현직 미국 대통령이 우리나라 전직 대통령을 따로 만난다는 것은 한 번도 없던 일”이라며 “우리나라에서만 없던 일이 아니라 미국 대통령이 다른 나라 방문하는데 전직 대통령을 따로 만나겠다고 요청하는 일은 이례적인 일”이라 발언했다. 

이런저런 소문에 반신반의하고 있었던 대중은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의 발언으로 더욱 확신을 가지게 됐다.


문재인정부에서 국정상황실장을 역임했던 윤 의원은 지난 19일 MBC라디오에 출연해 “바이든 대통령이 보자고 연락 온 것은 확실한 사실”이라며 “분명한 것은 문 전 대통령은 가만히 계셨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둘의 만남이 가시화되자 정치계는 분주해졌다. 실제로 둘이 만나게 되는 건지, 만나게 된다면 어떤 목적으로 만나는 건지 여러 가지 해석들이 난무했다.

문 전 대통령 측은 단지 “친분 때문”이라는 이유를 덧붙였지만, 진보진영에서는 ‘윤 대통령에게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하는 것’이라는 해석을, 보수진영에서는 ‘말도 안 되는 낭설’이라는 논평을 잇따라 내보냈다.

결국 ‘바이든-문재인 회동’은 ‘10분간의 전화 통화’로 대체됐고, 그동안 떠돌던 해석들과 서로를 향한 날선 논평들은 잠시 일단락됐다.

그러나 이번엔 10분간 전화 통화에서의 주고받은 내용에 관심이 집중됐다. 회동설이 전화 대담으로 축소됐지만 ‘전화로라도’ 바이든 미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지 않겠냐는 해석이 돌았기 때문이다.

전화 통화에 발맞춰 당초 제기됐던 ‘문재인 대북 특사설’이 힘을 받았다. 사실, 둘의 회동설이 떠돌 때 이미 바이든 대통령의 ‘대북 특사 권유’는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였다. 무산되기 전까지 정계 관계자들은 ‘바이든이 직접 만나려는 목적은 북한과의 연결 라인이 견고한 문 전 대통령의 힘을 빌리려는 것’이라는 예측을 내놨다.

발단은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의 제안이었다.


태 의원은 지난 12일 권영세 통일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대북 특사에 문재인 대통령도 고려해야 한다”며 “김정은과 제일 많이 만난 대통령”이란 표현을 썼다. 이에 권 장관은 “충분히 검토해볼만하다”고 화답하며 “(미국과)사전에 이미 교감이 있었다”고 발언해 주목을 받았다.

극에 달한 북 도발…주 1회꼴 발사
바이든-문재인 전화통화 내용 주목

이들의 청문회를 통해 ‘문재인 대북 특사설’은 처음 알려졌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문 전 대통령 측이 바이든 대통령과의 만남을 주장하니 ‘대북 특사설’은 힘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사실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전직 대통령의 대북 특사’는 매우 어색한 그림이었다.

그간 전임 대통령이 대북 특사를 간적이 없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최초로 남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킨 뒤, 북한과 본격적인 대화 물꼬를 튼 한국정부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하며 남북 간의 관계는 이어졌다. 특히, 문 전 대통령은 유일하게 북한 지도자와 세 번 만나고 북미 정상 화담을 이끌어내는 등 한때 북한과의 관계를 가장 많이 발전시킨 공로를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는 모두 현직에 있을 때 이야기다. 김 전 대통령과 노 전 대통령은 퇴임 후 북한과의 관계에서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았고, 문 전 대통령도 아직은 이렇다 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 않다.

여기서 주목되는 게 미국 전직 대통령들의 과거 행보다. 미국은 여러 차례 전직 대통령을 북한에 보낸 전례가 있다. 미국은 북한과의 갈등이 심각해질 때마다 북한과 사이가 ‘나쁘지 않은’ 인사들을 북한으로 보내 대화로 갈등을 봉합하려 애썼다.

다만 미국의 전임 대통령이 대북 특사로 갈 때는 항상 북한의 ‘호감’과 ‘전례 없는 갈등 상황’이란 조건을 충족해야 했다. 그 첫 번째 주자는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다. 카터 전 미 대통령은 북한이 좋아하는 미국 대통령 중 한 사람이었다.

그가 1976년 대선 선거 유세 때 주한 미군 철수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당시 박정희정부에 유화적이지 않았던 카터 대통령은 군비 증강이 지지부진한 이유를 들며 한국의 자주국방을 주장했다. 

그는 박정희 전 대통령과 만난 1979년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내 개인적인 바람은 긴급조치 9호를 철회하고 재소자들을 가능한 많이 석방하는 것”이라며 “한국이 국민총생산(GNP)의 6%를 국방비에 쓰고 있는 반면, 북한은 GNP의 20%를 국방비에 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때 북한이 가졌던 카터 전 대통령에 대한 호감은 퇴임 후에도 이어졌다. 클린턴 행정부가 카터 전 대통령을 대북 특사로 파견한 이유다. 

미국처럼
한국도?


1994년, 북한은 꽁꽁 숨기고 있던 핵개발 의지를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세계의 지탄을 받았다. 세계가 북한 핵개발에 대한 의심을 품을 때마다 북한은 ‘절대’ 그럴 일 없을 거라며 수차례 거짓말을 해왔다. 북한은 강요받지도 않은 핵개발 과정을 스스로 공개했고 원자력발전소를 지을 목적이라 둘러대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랬던 북한이 결국 핵금지확산조약기구를 탈퇴하며 핵개발을 선언하자, 클린턴정부는 뒤통수를 맞았다고 판단했다. 미국은 ‘군사 움직임을 할 수 있다’고 북한 측에 계속해서 경고했다. 북한의 반응이 없자 말뿐이었던 경고는 행동으로 옮겨졌다.

미국은 동해에 항공모함 5척을 보내고, 한국에 군비를 증강하는 등 실제 군사 움직임을 보였다. 이에 북한은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 특사 교환 실무회담에서 “전쟁나면 서울은 불바다가 될 것”이라 맞불을 놨다. 양국이 물러서지 않는 태도를 취하며 ‘한반도 전쟁 위기설’은 걷잡을 수 없는 형태가 됐다. 

카터 전 대통령은 본인의 자서전에서 “미국정부의 허가와 상관없이 북한에 갈 것을 결심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날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 밝혔다. 실제로 클린턴 대통령도 본인의 자서전에서 “이때 카터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전쟁 준비를 멈추지 않았을 것”이라고 회상했다. 

우여곡절 끝에 북한에 간 카터 전 대통령은 유엔에서 추진하고 있던 대북 제재를 폐지하는 조건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동결시켰다. 최초로 북한에 간 전임 미국 대통령이 이뤄낸 유일무이한 성과였다. 그러나 후에 북한이 끝까지 핵개발을 포기하지 않으며 카터 전 대통령은 두 차례 더 북한을 방문해야 했다. 

이후 두 번째로 북한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은 다름 아닌 빌 클린턴이었다. 클린턴 전 대통령은 카터 전 대통령을 북한에 보낸 장본인이다.


이때도 북한의 ‘호감’과 ‘전례 없는 갈등’이란 조건이 충족됐다. 북한은 2009년 3월 북·중 접경지대서 탈북자 문제를 취재 중이던 미국 방송국 소속 로라 링과 유나 리 기자를 체포해 억류시켰다. 두 기자는 각각 중국계, 한국계 미국인이었다.

자국민의 보호를 최우선 가치로 두고 있는 미국정부는 해당 사실이 알려지자마자 북한 주재 스웨덴 대사를 통해 둘을 석방할 것을 요구했다. 둘의 자존심 싸움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자국의 ‘폐쇄성’을 중요시하는 북한과 자국민의 ‘생명권’을 중요시하는 미국 사이에 양보할 수 없는 싸움이 시작됐다.

국경없는 기자회(RSF)는 즉각 석방을 요구하는 성명을 내며 이 문제를 전 세계에 알렸고, 미국정부는 지속해서 북한 정부와 협상에 임했다.

억류 3개월이 지난 6월경, 북한정부는 두 기자에게 노동 교화형 12년을 선고하며 미국의 입장을 더욱 난처하게 만들었다. 협상에 진정이 없던 중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백신 들고
핵 교감?

7월 중순 무렵 억류된 기자들이 가족들과의 통화에서 “북한 당국 측이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을 특사로 원한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카터 전 대통령 특사 때 만들어놨던 인연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결국 클린턴 전 대통령은 양국의 풀 수 없던 난제를 직접 해결하러 북한에 갔다.

평양에 약 21시간 동안 체류한 것으로 알려진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정상 방문에 버금갈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소화해야 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1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면담했고, 각처 관료와 다섯 차례 면담 및 만찬을 이어갔다.

그의 노력 덕분에 두 기자는 억류된 지 약 140일 만에 고국의 품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렇다면 문 전 대통령은 대북 특사의 조건을 충족할까. 우선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은 충족된다. 북한은 최근 뒤늦은 코로나 사태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코로나에 면역이 없는 상태에서 바이러스의 침투를 받았기 때문이다. ‘고립된’ 북한에 코로나 백신이 있을 리도 만무하다.

폐쇄로만 일관하던 북한은 무방비 상태에서 방에 구멍이 뚫렸고, 코로나는 빠르게 북한 내부에 퍼지고 있다.

북한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에선 매일 10만명 이상의 코로나 환자가 나오고 있다. 이 발표를 그대로 믿는다면 누적 환자는 수백만명에 그친다. 그러나 북한 전문가들은 이 수치를 그대로 믿어선 안 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북한 전문가는 <일요시사>와 만난 자리에서 “누적 환자가 1000만명은 될 것이라 가정해도 무방하다”며 “그동안 북한의 통계는 정확했던 적이 없다”고 전했다. 그가 주장한 최대 1000만명은 북한 전체 인구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수치다.

이 전문가는 “김정은이 실권을 쥐고 난 후 ‘전례 없던 혼돈’이 온 것”이라며 “코로나 사태로 인구가 줄고, 사회 전반에 혼돈이 오면 김정은 체제의 위기까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 같은 움직임을 감안한 윤석열 대통령은 최근 “인도적 지원에 대해서는 남북 관계의 정치, 군사적 고려 없이 언제든 열어 놓겠다”며 “북한이 호응한다면 코로나 백신을 포함해 의약품, 의료기구, 보건 인력 등 필요한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이라고 제안한 바 있다.

선거 전후 당에 간접적인 영향?
정치권 인사들 발길 끊이지 않아

북한과의 외교에서 유화적이지 않을 것을 선언한 윤 대통령이지만, 북한의 코로나 문제에 대해선 최대한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북한 측의 반응은 싸늘했다. 오히려 윤석열정부를 비난하기에 급급했다.

북한은 “희대의 부정부패 왕초이자 동족 대결광인 이명박의 사환꾼들, 이런 자들이 국민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5년 동안 주인 행세를 하겠다니 참으로 ‘망한민국’이 아닐 수 없다”고 조롱했다. 

전문가들은 문 전 대통령이 만일 특사로 간다면 코로나 ‘백신 전달이 우선 목적일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북한의 체제 위기까지 불러올 수 있는 코로나 사태를 봉합하려면 특사가 필요하고 그 적임자가 문 전 대통령이라는 주장이다. 

이 같은 문 전 대통령의 역할론이 여권에서 맴돌자 이번에는 야권에서 선거 틍판론이 제기됐다. 지난 대선 때 이낙연캠프를 도왔던 민주당 의원 측의 한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문 전 대통령이 간접적으로라도 당에 도움 될만한 행보를 보였으면 한다”며 “현재 민주당을 하나로 모을 수 있는 사람은 문 전 대통령뿐”이라 말했다.

그는 최근 민주당 이재명 인천 계양을 후보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민주당에 내분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하며 이같이 말했다.

당초 민주당의 텃밭이라 불리던 인천 지역 보궐선거에 출마한 이 후보는 비교적 약세라 평가받는 국민의힘 윤형선 후보와 지지율 격차를 벌리지 못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민주당에 위기가 찾아오며 계파 갈등이 다시금 불거졌다.

이 후보가 직접 전화해 데려왔다고 알려진 박지현 공동선대위원장도 지난 24일 독단적인 기자회견으로 민주당의 분열을 또 한 번 일으킨 바 있다. 그의 이날 호소에는 지난 민주당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앞으로의 성찰을 담았다. 이 호소를 계기로 계파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드러났다. 계파 간의 평가가 엇갈린 탓이다.

“외부 비대위원장이 마땅히 할 만한 발언”이라는 이재명계 측의 평가와 “해당 행위에 버금가는 기행”이라는 이낙연계의 평가가 나왔다. 

계파 갈등
해결사로?

현재 문 전 대통령의 등판론은 일부 극성 ‘이낙연계’의 주장에 불과하지만, 한 정치 평론가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친문(친 문재인)과 친노(친 노무현)와 더불어 친명(친 이재명)계 까지 한 번에 품을 수 있는 인사는 현재 문 전 대통령밖에 없는 것은 사실”이라 말했다. 이어 “당의 분열이 계속된다면 낭설로 치부되는 주장이 현실이 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 전했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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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대통령처럼’ 한덕수 막가는 진짜 노림수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윤석열 전 대통령이 파면된 후 국정을 운영하고 있는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의 행보에 잡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근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며 ‘월권 논란’ 등이 불거졌다. 이에 한 권한대행이 남은 임기 동안 취할 행보에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문형배·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을 지명해 논란이 일고 잇다. 또 한 권한대행이 특임공관장도 임명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오며 논란에 더 불을 지피고 있다. 일각에서는 이에 대해 한 권한대행이 새로운 정부가 가질 임명권에 초를 치고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스스로 지피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 4월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례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 윤석열 파면에 따른 차기 대통령 선거일을 6월3일로 확정하고, 이날을 임시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 국무회의서 한 권한대행은 “정부는 선거관리위원회 등 관계 기관과 협의해 선거관리에 필요한 법정 사무의 원활한 수행과 각 정당의 준비 기간 등을 고려해 오는 6월3일을 대한민국 제21대 대통령 선거일로 지정하고자 하고 선거 당일을 임시공휴일로 지정한다”고 말했다. 한 권한대행은 대통령 탄핵 사태를 언급하며 “지난 4개월간 국민 여러분께 혼란과 걱정을 끼쳐 드리고, 대통령이 궐위되는 안타까운 상황에 직면하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행정안전부를 비롯한 관계 부처는 선거관리위원회와 긴밀히 협력해 그 어느 때보다 공정하고 투명한 선거,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선거가 될 수 있도록, 관련 준비에 만전을 기해 주시기 당부드린다”고 언급했다. 이날 한 권한대행은 국무회의에 앞서 ‘국민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담화문을 통해 이제껏 임명을 미뤄온 마은혁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고, 마용주 대법관도 임명한다고 밝혔다. 이어 오는 4월18일에 임기가 종료되는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직무대행과 이미선 헌법재판관의 후임자로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지명했다. 그는 담화문을 통해 “임기 종료 재판관에 대한 후임자 지명 결정은, 경제부총리에 대한 탄핵안이 언제든 국회 본회의서 의결될 수 있는 상태로 국회 법사위에 계류 중이라는 점, 또 경찰청장 탄핵 심판 역시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완규 법제처장과 함상훈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는 각각 검찰과 법원서 요직을 거치며 긴 경력을 쌓으셨고, 공평하고 공정한 판단으로 법조계 안팎에 신망이 높다”며 “두 분이야말로 우리 국민 개개인의 권리를 세심하게 살피면서, 동시에 나라 전체를 위한 판결을 해주실 적임자들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 권한대행은 지난해 12월 국회 몫 헌법재판관 후보자 3명의 임명을 보류했었다. 당시 한 권한대행은 “헌법기관 임명을 포함한 대통령의 중대한 고유권한 행사는 자제하라는 것이 우리 헌법과 법률에 담긴 일관된 정신”이라며 “국민의 대표인 여야의 합의야말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고 국민의 통합을 이끌어낼 수 있는 마지막 둑이기 때문”이라고 재판관 임명을 거부한 바 있다. 갑작스레 헌법재판관 지명 황교안도 하지 않은 일을? 그랬던 그가 100일 만에 입장을 바꾼 것이다. 권한대행이 대통령 몫의 헌법재판관을 지명하는 사례는 헌정사상 전무한 일이다. 앞서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황교안 권한대행은 대법원장 몫인 이선애 재판관을 임명한 반면, 대통령 몫이던 박한철 전 헌재소장 후임자는 지명하지 않았다. 때문에 정치권에서는 큰 파장이 일고 있다. 특히 더불어민주당 등 야권은 ‘월권’이라며 거세게 반발 중이다. 권한대행은 대통령 궐위 시 권한을 대행하는 직일 뿐이지, 국민이 선출한 대통령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민주당 김용민 원내정책수석부대표는 “헌법재판관 임명은 대통령의 고유권한이라 대행할 수 없는 권한인데, 한 권한대행은 처음부터 끝까지 위헌만 행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이완규 법제처장에 대해 “내란 직후 대통령 안가 회동에 참석한 사람이다. 내란의 아주 직접적인 공범일 가능성이 높다”며 “(이 법체처장을)지명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직 내란의 불씨가 안 꺼졌다는 것을 증명한다. 민주당은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국혁신당 황운하 원내대표는 “이완규 법제처장은 가장 대표적인 친윤석열 검사다. 법제처장을 하며 완전히 윤 전 대통령 개인의 로펌 역할을 해왔다”며 “이것은 파면된 윤석열의 의중이 작용된 지명이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 권한대행이 갑작스레 재판관을 임명한 이유로는 차기 정부가 출범하기 전에 헌재 구성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해 보수 성향으로 분류되는 재판관을 미리 앉혀두려 했을 가능성이 우선 거론된다. 6·3 대선 전 이·함 후보자가 임기 6년의 헌법재판관에 임명되면 차기 대통령은 임기 내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을 지명할 수 없다. 민주당 정부가 들어설 경우 입법부와 행정부를 차지하고, 헌법재판관 2명까지 임명하면 헌재까지 진보 성향 재판관이 다수가 된다는 점을 염두에 둔 정치적 판단을 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알면서 선택 왜? 한 헌법학자는 이번 임명은 민주당 이재명 전 대표의 계획을 무너뜨리기 위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는 “이 전 대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난 이후 헌법재판관을 임명하면서 민주당과 이 전 대표의 위험을 처리할 계획이 있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한 권한대행이 그 전에 선수 친 것으로 보인다”며 “어차피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권한대행으로서 할 수 있는 마지막 도박수”라고 설명했다. 이런 점 때문에 일각에서는 한 권한대행이 혼자서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지명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 정치권 인사는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헌법재판관 후보자를 임명해서 얻을 실익이 하나도 없다”며 “지금 관저서 아직도 나가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입김과 그 다음에 어떤 부탁이 있지 않고서는 굳이 이렇게 무모한 일을 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한남동 관저서 서울 서초동으로 이주를 완료했다). 이어 “아마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되기 전 미리 후임자들을 미리 검증했지만 파면이 돼 한 권한대행에게 지명을 요구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문제는 파면 전에 준비했다고 하더라도 파면 이후 해당 결정 사안은 중지돼야 하는데 한 권한대행이 이어서 권한 행사를 한 것”이라며 “이는 진짜 사장이 있는데 사장이 잠깐 유고나 궐위 상태라서 권한대행 사장이 왔고, 그는 단순한 결제를 통해서 회사가 돌아가게 해야 되는데 갑자기 사장이 해결해야 할 보유 주식을 본인이 알아서 처분을 하고 심지어는 오버를 해서 사장 딸이나 아들의 어떤 사위나 뭐 이런 며느리 될 사람까지 본인이 다 결정을 해 주는 그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남은 두 가지 다음 수는? 한 권한대행이 헌법재판관 임명 외에 시도할 법한 일은 ▲특임공관장 임명 ▲미국 관세 허용 등 두 가지로 분석된다. 우선 한 권한대행이 재외공관의 특임공관장도 임명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지난 2017년 황 권한대행이 당시 특임공관장으로 분류됐던 국가정보원 출신의 변영태 전 주미국공사참사관을 주상하이총영사로 임명한 전례가 있다는 점도 이 같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임 공관장은 정부의 판단에 따라 직업 외교관이 아닌 인물에게 공관장 임무를 맡길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보통 대통령의 국정기조 이행을 명분으로 주로 정무직 인사가 임명된다. 지난 8일 기자들과 만난 외교부 당국자는 주중국,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 임명이 진행될 수 있냐는 질문에 “공관장 인사가 필요에 따라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해당 국가의 공관장 인사에 대해서는 “현재 공유드릴 사항은 없다”고 답했다. 앞서 지난해 10월 방문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주인도네시아 대한민국 대사로, 윤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을 지냈던 김대기 전 실장은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로 내정된 바 있다. 특임공관장이 정무적 판단이 반영되는 인사라는 점에서 대통령이 탄핵된 상황과 무관하게 임명을 진행할 수 없다는 점과 함께, 탄핵 결과에 따라서는 임명 강행이 상대국에 외교적 결례가 될 수 있다는 점 등이 작용해 이들은 임명되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윤 전 대통령의 계엄 이후 지난 4일 탄핵에 이르는 과정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은 지난 1월31일 재외공관장 임명을 실시한 바 있으나, 이 때도 두 명의 특임공관장을 제외한 11개국 대사가 대상이었다. 다만 한 대행의 헌법재판관 임명이 권한을 넘어서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특임공관장을 비롯해 다른 인사 임명을 강행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특임공관장·관세 등 무기 남아 트럼프와 통화 때 대선 이야기도 한 권한대행은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통화하며 무역 문제와 조선 산업 협력, 북핵 공조, 방위비 분담금 문제 등을 논의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수입 확대 등 무역수지 개선 의지를 강조하며 상호관세 문제 해결을 당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의 대미 무역 흑자뿐만 아니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 의지를 드러냈다. 총리실에 따르면 한 대행은 이날 오후 9시(미국 오전 8시)가 넘어 약 28분간 트럼프 대통령과 통화하며 이 같은 입장을 공유했다. 한 권한대행은 전화 통화에서 “미국 신정부 하에서도 우리 외교안보 근간인 한미 동맹관계가 더욱 확대·강화해 나가기를 희망한다”면서 특히 조선, LNG 및 무역 균형 등 3대 분야서 미국 측과 한 차원 높은 협력 의지를 강조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한국의 대미 무역흑자를 문제삼아 상호관세를 부과한 만큼, 미국산 LNG 수입 확대 등을 통해 무역수지를 개선해나가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한 권한대행의 발언에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드러냈는지는 명확하게 드러난 것은 없다. 대신 트럼프 대통령은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에 한국과 좋은 거래를 할 수 있다면서도,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거론하며 포괄적 협상을 추진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문제는 이 같은 한 권한대행의 행보로 새로운 정부는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미국과 상호 관세는 앞으로 90일 동안 미뤄졌기 때문에 조기 대선이 끝난 후 차기 정부가 다시 미국과 협상할 시기가 아직 남은 셈이다. 한 권한대행의 이런 행보에 ‘한 권한대행이 차기 대선주자로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경제·외교 분야서 50년이 넘는 공직생활을 거친 정통 관료라는 점, 개헌 변수를 고려한 ‘관리형 대통령’으로 적격이라는 얘기가 보수 진영 일각서 계속 나오는 상황이다. 대선주자 직접 뛰나 한 권한대행의 배경에 더해 보수 진영 잠재 대선후보군의 지지율이 이 전 대표에게 크게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맞물려 출마론이 사그라지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한 권한대행이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지난 8일 통화하면서 한 권한대행에게 대선에 나갈 것인지 묻자 “여러 요구와 상황이 있어 고민 중이다. 결정한 것은 없다”는 취지로 말하며 즉답을 피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한 권한대행의 대선출마설에 더욱 불을 지피는 형국이다.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