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은 한동훈?' 윤석열 후계자 낙점설 막전막후

칼 쥐어주고 여의도 보낸다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를 차기 대권후보로 낙점했다. 물론 벌써부터 다음 대통령을 점치는 것은 무리가 있다. 아직 정식 취임도 전인 대통령을 두고 5년 뒤의 대통령을 예단하는 것도 예의가 아니다. 그러나 요즘 정계에는 ‘한동훈 대망설’이 계속해서 돌고 있다. 소문의 출처가 어디인지 추적해보니 다름 아닌 윤 당선인 본인의 ‘입’이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관한 언론의 관심이 뜨겁다.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 요즘 주요 화두여서이기도 하고, 그의 거침없는 발언이 화제가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가 언론에 자주 등장하자 요즘 정계에선 ‘보수진영의 차기 대권후보로 한 후보자가 나서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나돈다.

칼잡이
아바타

실제로 그간 헌정 역사에서 대통령 당선인이 일찌감치 자신의 후계자를 키우는 일은 종종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한 후보자를 자신의 다음 주자로 키우려는 것일까.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2016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하자마자 재선위원회를 설치해 본인의 재선운동을 지시한 바 있다.

다시 돌아올 대통령선거에서 대통령을 한 번 더 하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긴 행보였다. 물론 4년 중임제의 미국 대통령이 그 다음 대선의 승리까지 염두에 두고 국정을 운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당선되자마자 재선을 준비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행보는 매우 이례적인 것이었다. 차기 정부를 수립하기도 전에 그 다음 임기를 노리는 행위는 역대 미국 대통령 누구도 하지 않았던 일이다.


반면 한국의 대통령들은 이 같은 행보를 종종 보여왔다. 5년 단임제를 택하고 있는 한국의 대통령제에서는 재임이 불가능하지만, 역대 한국의 대통령들은 자신의 ‘후계자’를 낙점하고 키워주는 방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영향력을 이어나가려 했다.

대통령들은 인수위원회 시절부터 자신의 후계자에게 많은 힘을 실어주는 형태로 인사를 진행했다. 그중 몇몇 케이스는 실제로 대통령까지 당선되기도 했다.

그 케이스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노 전 대통령을 해양수산부 장관에 임명하며 그가 차기 대통령으로 일어설 발판을 만들어줬다.

정치적으로 비주류의 길을 걷고 있던 노 전 대통령에게 주류의 길을 소개해준 것이다. 이후 두 전직 대통령은 ‘전생의 형제’라고 불릴 만큼 사이가 각별해진다. 둘의 인연은 1997년 대선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3당 합당에 거부하며 ‘꼬마 민주당’으로 남은 새정치국민회의에 노 전 대통령이 합류했다.

1997년 15대 대선을 앞두고, 꼬마 민주당이 민자당의 후신인 한나라당에 맞서 싸울 조짐을 보이자 소신을 지키며 제3지대에 있던 노 전 대통령은 민주당에 합류해 김 전 대통령을 도왔다. 

김영삼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정치인으로 데뷔한 이력 때문에, 그리고 3당 합당을 거부한 이력 때문에 노 전 대통령은 DJ계에서도, YS계에서도 환영받지 못한 채 항상 노 전 대통령은 항상 민주당의 비주류로 남아있었다.

김 전 대통령은 그런 그의 손을 붙잡아주며 당을 떠나지 않게끔 배려했다.


장관 후 22대 총선 통해 국회 입성
차기 대권에 도전 시나리오 급부상

이후 민주 진영의 대권후보로 발돋움한 노 전 대통령의 대선 운동에서 김 전 대통령은 큰 힘이 되어줬다. 현직 대통령이 특정 대선후보를 지원하는 것은 법적으로 금지됐기 때문에 김 전 대통령은 직접적인 도움 대신 ‘보이지 않는 선’에서 노무현 캠프를 최대한 지원했다.

노 전 대통령 또한 대선 운동 기간 ‘국민의 정부’와 차별화할 것을 참모진으로부터 수차례 제안받았지만, 끝까지 김 전 대통령과 ‘선을 긋는’ 발언은 일절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당시 세 아들의 비리가 터지며 입지가 줄어든 김 전 대통령을 차기 대권후보가 끝까지 지켜준 것이다.

이후 대북송금 사태와 노 전 대통령의 ‘차별화 선언’으로 둘의 사이는 잠시 소원해졌으나, 적어도 김 전 대통령이 당선된 후부터 노 전 대통령의 당선 전까지 둘 사이에 갈등은 일어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 후에도 대통령들의 ‘후계자 키우기’는 계속됐다. 가장 가까운 예가 문재인 대통령과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지금은 부인 정경심씨가 구속 수감되며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가 사실상 끝난 조 전 장관이지만 문 대통령은 당선이 되고 청와대에 입성하자마자 ‘티 나게’ 조 전 장관을 민주당 진영의 다음 대권후보로 키워주려 했다.

둘의 인연은 10년도 더 된 것으로 전해진다. 참여정부의 핵심 참모 역할이 끝난 문 대통령은 경남 양산으로 돌아가 인권 변호사로서 다시 일을 시작했다. 이때 조 전 장관은 수차례 문 대통령 거처를 찾아가 시간을 함께 보냈다고 전해진다.

당시 문 대통령의 소탈하고 깊이 있는 매력에 빠지게 된 조 전 장관은 이후 문 대통령과 정치적 여정을 함께하기로 마음먹었다. 실질적인 정치적 행보를 보인 것은 2012년 문 대통령이 처음 대선에 출마했을 때다.

조 전 장관은 당시 TV에 출연해 찬조연설을 하고 대규모 선거 유세에서도 지원사격하는 등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자신의 정치적인 색깔을 SNS 등에 표출하며 두각을 나타낸 그였지만 교수의 옷을 뒤로한 채 특정 정치인을 돕는 행보는 이때가 처음이었다. 2012년 선거 패배 후 이후 둘의 관계는 더욱 돈독해졌다.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의 대표로 당선되며 문 대통령이 다시 대권 가도에 시동을 걸자 조 전 장관은 다시금 발 벗고 그를 도왔다. 정치적인 판단 미스로 여러 차례 위기에 닥친 문 대통령을 그는 끝까지 떠나지 않았으며 때때로 그의 ‘칼잡이’가 돼 정적들을 대신 공격하기도 했다. 

2017년 대연정론 공방에서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에 맞서 싸운 것이 가장 유명한 일화다. 안 전 지사가 당시 자유한국당에 제안한 연정을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조 전 장관은 “대연정이라면 공동정부를 만들어야 하는 한국당과 함께 이뤄야 할 목표가 뭔지 모르겠다”며 “그들은 경제민주화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도 동의한 적 없다”고 조목조목 따졌다.

가신의 칼춤 
‘재롱 보듯?’

노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안 전 지사와 공개적으로 대립할 수 없었던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도움을 받은 셈이다. 이 같은 인연을 기억하고 있던 문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조 전 장관을 차기 대권후보로 키웠다.

문재인정부의 초대 민정수석으로 조 전 장관을 발탁하며 문 대통령은 그의 정치 커리어를 청와대에서 시작하게 했다. 이렇게 조 전 장관은 문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곳에서 소통하며 청와대 생활을 했다고 전해진다.

둘은 표면상 상하관계였지만 서로에 대한 예의는 잊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자신의 방식대로 조 전 장관의 대권 가도에 힘을 실어줬다. 주요 요직에 앉히며 중책을 맡기기도 했고, 중요한 결정사항이 있을 때마다 그와 논의해 함께 국정운영을 풀어나가기도 했다.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조국 차출론’이 불거지자 문 대통령은 “나는 조국 수석에게 정치를 권유하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다”며 “그 여부는 전적으로 본인이 판단할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당시 조 전 장관도 “나는 정치적 근육이 없다. 민정수석이 끝나면 바로 학교로 돌아갈 것”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했다.


이는 노 전 대통령이 문 대통령에게 정치를 권유했을 때의 상황과 많이 닮아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문 대통령에게 정치를 수차례 권유했지만 그때마다 문 대통령은 “민정수석으로 끝내겠다”며 한사코 거부했었다.

그러나 그랬던 그도 결국 대통령이 됐던 것처럼, 그는 조 전 장관을 민정수석으로 끝내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검찰개혁을 맡길 법무부 장관으로 그를 전격 발탁한 것이다.

이처럼 대통령과 그 후계자 선정은 대한민국 헌정 역사에서 수차례 반복돼왔다. 그리고 최근에도 이 같은 역사는 되풀이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선거기간 내내 인사에 ‘최소한’으로 개입하고 모든 인사를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할 것이라고 단언해왔다.

그는 당선 후 나흘 만인 3월13일 기자회견에서 “국민 통합은 실력 있는 사람을 뽑아 국민을 제대로 모시고, 각 지역이 균형 발전할 수 있도록 지역발전의 기회를 공정하게 부여하는 게 우선”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인수위 측 인사에 따르면 윤 당선인은 ‘능력’을 최우선으로 둔 인사를 고집했다. 그는 “당선인이 자신과 친분이 얼마나 두터운지, 혹은 대선 승리에 얼마나 일조했는지보다는 자리에서 자신의 능력을 얼마나 발휘할 수 있는지를 우선 고려사항으로 두고 있다”고 <일요시사>에 전했다.

능력 최우선
끝까지 고집

그런 그가 끝까지 고집했던 인사가 한 후보자다. 인수위 관계자는 윤 당선인이 다른 인사에는 깊숙이 관여하지 않지만, 유독 법무부 장관 자리는 독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했다.

자신이 공개적으로 내세웠던 원칙을 깨면서까지 한 후보자의 법무부 장관 자리를 보장한 것이다. 이 때문에 여의도에서는 ‘윤 당선인이 벌써부터 다음 후계자를 한동훈으로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다.

둘의 관계는 그동안 있어왔던 대통령-후계자 관계와 흡사하다. 매우 닮은 이력을 지니고 있고, 인연도 오래됐다. 검찰 내에서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를 때도, 정치적인 수세에 몰려 힘든 시절을 겪을 때도 둘은 늘 함께였다.

윤 당선인은 대통령선거운동을 한참 진행하던 지난 2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동훈 검사장은 중요한 자리에 갈 것”이라며 “(외압에도 조국에 대한 수사를)독립운동처럼 해온 사람”이라고 그를 치켜세웠다. 

한 후보자는 2016년 최순실 국정 농단 사건 수사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구속을 이끌어내며 스타 검사로 자리매김했다. 이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그는 윤 당선인과 함께 본격적인 상승가도를 달렸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중간 수사 결과 브리핑을 발표한 것도 그였고, 조국 수사 지휘를 자청한 사람도 그였다. 그러나 조 전 장관이 법무부 장관에 임명되며 그의 검사생활에 위기가 시작됐다. 한 후보자는 당시 윤 당선인과 함께 여권과 가장 강하게 대립한 인물로 손꼽힌다.

본인의 상사를 수사하며 지도부와 많은 마찰이 있었고, 그럴 때마다 한 후보자는 정면으로 되받아치며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항했다. 집요한 수사 끝에 그는 결국 조 전 장관을 낙마시켰지만 그 대가를 감내해야 했다.

이후 이뤄진 인사발령에서 부산고등검찰청 차장검사로 좌천성 인사를 당한 것이다. 그후 채널A 이동재 기자와 공모해 취재원을 협박했다는 이른바 ‘검언유착’ 의혹이 불거지며 불명예스러운 법정 다툼에 휘말리기도 했다.

이런 그를 윤 당선인이 챙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자신의 뜻에 따르느라 이런저런 곤욕을 치른 사람에게 보은하는 인사는 정치권의 관행이다. 자신의 뒤를 이어줄 것이라 생각하는 인사를 요직에 앉혔던 과거 대통령들처럼, 윤 당선인은 한 후보자를 법무부 장관 자리에 앉혔다. 

김-노·문-조 계승의 역사 보니…
오래된 인연에 정치적 뜻 맞아야

그러나 일각에서는 ‘왜 검찰 요직이 아니라 법무부 장관이냐’며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재 민주당의 아킬레스건인 대장동, 백현동 문제에 대한 수사가 아직 진행 중인 탓이다. 대장동과 백현동 수사는 현재 국민의힘의 큰 무기로 작용한다.

해당 사건을 입증해 민주당 측에 타격을 입히면 ‘최순실 국정 농단’ 때만큼의 후폭풍을 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이를 두고 국민의힘 측 관계자는 전혀 다른 시각을 내놨다. 이 관계자는 “한 후보자를 윤 당선인이 장관에 임명한 데에는 대장동 수사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함께 담겨있다”고 말했다.

현재 민주당이 추진하고 있는 ‘검수완박’이 최종 진행된다면 검찰이 대장동을 수사할 수단은 급격히 줄어들게 된다. 의석 수가 민주당보다 60석가량 적은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사용하고 있는 ‘살라미 전술’을 막을 방법이 전무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이에 대해 “한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이 된다면 검수완박과는 관계없이 대장동 수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법무부 장관이 되면 장관 주재하에 상설특검이 얼마든지 열릴 수 있고, 중대범죄수사처도 장관 산하에 들어오기 때문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민정수석실을 폐지하겠다는 윤 당선인의 공약이 현실화되면 해당 권한과 일을 법무부 장관에게 맡길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보통 정부에서는 여러 장관 중 하나의 자리겠지만 윤정부의 법무부 장관 자리는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라는 설명이다.

윤 당선인이 조 전 장관을 수사하며 보수진영의 대권후보가 됐던 것처럼, 만일 한 후보자가 대장동 수사를 무사히 끝낸다면, 일약 보수진영의 스타로 떠오르게 된다.

정치경험이 전무한 윤 당선인이 대통령까지 갈 수 있었던 주요 요인은 ‘검사로서의 활약’뿐이었고, 이 역할을 그대로 한 후보자에게 물려주려는 것이다.

호위무사
역할 수행

대통령의 후계자 양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도 많다.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다음 사람에게 물려주는 것은 왕국에서나 있었던 일이고, 민주공화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제왕적’ 대통령이더라도 자신의 후임 대통령은 정할 수 없다. 현재 문 대통령이 윤 당선인에게 자신의 후임 자리를 내준 것처럼 말이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의 기사> 한동훈 정치적 역량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의 차기 대통령 설을 뒷받침하는 또 다른 근거는 그의 정치적 역량이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보다 정치적 언변과 역량이 뛰어나다고 알려져 있다.

윤 당선인 스스로도 공개적인 석상에서 “정치적 역량은 한 검사가 나보다 뛰어나다”며 인정한 바 있다.

정계에서도 한 후보자의 역량을 높이 평가한다. 특히 그의 간결하고 강한 언변에 높은 점수를 준다.

그는 검수완박을 강행하는 민주당에 “이렇게 명분 없는 야반 도주극까지 벌여야 하나”라며 직격탄을 날렸고 유시민 전 노무현재단 이사장에게는 “어용 노릇하기 위해서 권력의 청부업자 역할을 하는 것”이라 비판했다.

그의 시원한 언변에 지지자들은 열광했으며 한 정치 평론가는 “이 같은 단어 선택은 정치인으로서 매우 좋은 능력”이라고 평가했다. <정>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SM 인수전’ 카카오 후유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입에 삼키기엔 너무 컸던 걸까? SM엔터테인먼트 인수전에 뛰어들었던 카카오가 사법 리스크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하이브와의 전쟁서 이겼지만 ‘상처뿐인 승리’가 된 모양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공룡 기업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불과 몇 년 만에 국민 기업서 밉상 기업으로 전락했다. ‘카카오톡’이 전 국민의 메신저가 될 때까지만 해도 카카오의 미래는 밝았다. 카카오톡의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배경으로 사업을 확장했던 초기에도 부정적인 여론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골목상권 침해, 쪼개기 상장 등의 문제가 터지면서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국민 기업 밉상 기업 카카오가 창립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지난해 2~3월 하이브와의 SM엔터테인먼트(이하 SM) 인수전 과정서 일어난 일이 사법 리스크로 되돌아오는 모양새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라는 말이 어울리는 결말이다. 승자의 저주는 경쟁에서는 이겼지만 그 과정서 과도한 비용을 사용해 후유증을 겪는 상황을 뜻한다.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2부는 지난 17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CA협의체 경영쇄신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2월 SM 인수 과정서 경쟁사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하기 위해 SM의 주가를 하이브의 공개매수가인 12만원보다 높게 올릴 목적으로 시세를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김 위원장이 카카오가 지난해 2월 2400억원을 동원해 553차례에 걸쳐 SM 주식을 고가에 매수하는 데 관여했다고 보고 있다. 카카오는 사모펀드 운용사인 ‘원아시아파트너스’와 공모해 주가가 떨어지지 않도록 지난해 2월16~17일, 27일 원아시아파트너스가 1100억원을 먼저 투입하고 같은 달 28일 카카오가 뒤이어 1300억원을 투입한 것으로 조사됐다. 앞서 검찰은 원아시아파트너스 대표 지모씨를 시세조종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변호인단은 김 위원장이 SM 지분 매수 과정서 어떤 불법적 행위도 지시, 용인한 바 없으며 지분 매수는 정상적 장내 매수였다는 입장을 강조했다. 카카오 내부는 당혹스러운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이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영장을 청구한 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의 첫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영장전담판사가 배정된 점 등에 긴장하는 분위기다. 하이브와 크게 벌인 ‘쩐의 전쟁’ 경영권 차지했지만 사법리스크↑ 김 위원장은 지난 9일, 20시간의 밤샘 조사에서 “SM 주식을 장내 매수하겠다는 안건을 보고받고 승인한 것은 맞지만 구체적인 매수 방식과 과정에 대해서는 보고받지 않아 몰랐다”는 취지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이날 조사 이후 8일 만에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위원장의 혐의를 입증할 인적·물적 증거가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특히 ‘김 위원장이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해서 우호 지분을 확보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내용이 담긴 카카오 임직원 간 메시지를 비롯해 김 위원장의 혐의를 뒷받침하는 관계자의 통화 녹취, 진술 등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카카오와 하이브의 SM 인수전은 혈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치열했다. SM은 K팝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연예기획사로 H.O.T,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샤이니, EXO, NCT, 에스파, 라이즈 등의 유명 보이·걸그룹을 배출한 ‘아이돌 명가’로 알려져 있다. 대형 연예기획사를 둘러싼 카카오와 하이브의 인수전은 K팝 업계의 비상한 관심을 받았다. SM 인수전의 시작은 이수만 SM 전 총괄 프로듀서의 지분 매각설서 시작됐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설립자로 SM 소속 가수를 좋아하는 팬덤 사이에서는 ‘수만 아버지’로 불리는 등 일종의 개척자로 여겨지고 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지분을 매각한다는 소문이 돌았을 당시 카카오, 네이버 등이 매수자로 언급되곤 했다. 행동주의펀드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하 얼라인파트너스)이 SM 지배구조를 문제 삼으면서 인수전의 막이 올랐다. 특히 얼라인파트너스는 이 전 프로듀서 소유의 라이크기획이 SM과의 내부거래로 주주가치를 훼손한다고 지적했다. SM이 얼라인파트너스의 요구를 받아들이면서 내부 갈등이 촉발됐다. 급히 먹다 탈 났나? 이 과정서 이성수·탁영준 공동대표 등 현 SM 경영진이 얼라인파트너스, 카카오와 손을 잡았다. 이 전 프로듀서 측과 완벽한 대립각을 세운 현 SM 경영진은 ‘SM 3.0’을 발표하고 멀티 제작센터·레이블 체제로 전환을 발표했다. 이 전 대표 지우기에 나선 것이다. 여기에 SM 경영진이 지난해 2월7일 카카오가 신주와 전환사채(CB) 인수를 통해 지분 9.05%를 확보할 것이라고 공시했다. 이 전 프로듀서가 찾은 동앗줄은 하이브였다. 이 전 프로듀서는 SM의 공시 다음 날 법원에 신주 및 전환사채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서를 제기했다. 그리고 2월9일 자신이 보유한 SM 지분 18% 중 14.8%를 하이브에 매각하는 계약을 맺었다. 하이브는 SM 주식을 주당 12만원에 공개매수해 지분을 추가로 25% 확보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면서 SM 인수전이 카카오와 하이브의 대결로 압축됐다. SM 인수전은 한치 앞도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엎치락 뒤치락을 반복했다. 법원이 이 전 프로듀서가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하이브가 유리한 고지를 선점했다가 공개매수가 실패한 사실이 드러나자 카카오가 반격하는 식이다. 카카오와 카카오엔터는 지난해 3월7일부터 SM의 지분 35%를 주당 15만원에 공개매수하기 시작했다. 약 833만주에 달하는 주식으로 총 1조2500억원이 투입되는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SM 인수전은 하이브가 카카오가 시작한 ‘쩐의 전쟁’서 한발 물러나면서 변곡점을 맞게 됐다. 쇄신 노력 ‘물거품’ 이후 카카오가 경영권을 갖고 하이브는 플랫폼 협력을 하는 방향으로 SM 인수전이 마무리됐다. 지난해 3월12일 하이브는 SM 인수 절차를 중단한다고 발표했다. 당시 하이브는 “카카오·카카오엔터테인먼트와의 경쟁 구도로 인해 시장이 과열 양상을 나타내고 있다고 판단했다”며 “이는 하이브의 주주가치에도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사결정을 내렸다”고 전했다. 카카오는 “SM의 가장 강력한 자산이자 원동력인 임직원, 아티스트, 팬덤을 존중하고자 자율적‧독립적 운영을 보장하고 현 경영진이 제시한 SM 3.0을 비롯한 미래 비전과 전략 방향을 중심으로 글로벌 성장에 속도를 내겠다”고 강조했다. 엔터계 ‘공룡’을 삼킨 또 다른 공룡 기업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카카오가 SM을 인수하기 위해 벌인 ‘쩐의 전쟁’이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하이브는 당시 SM 인수전서 발을 뺀 뒤 “비정상적 매입 행위가 발생했다”며 금융감독원(이하 금감원)에 조사를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SM 주가가 공개매수가인 12만원을 넘어 한때 13만원까지 급등한 점을 문제 삼았다.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할 목적으로 비정상적으로 주식을 매입해 시세를 조종한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금감원 자본시장특별사법경찰(이하 특사경)은 지난해 10월 배재현 카카오 투자총괄 대표와 카카오법인을 검찰에 넘겼다. 지난 11월에는 김범수 당시 전 카카오 이사회 의장과 홍은택 대표, 김성수·이진수 카카카오엔터테인먼트 각자 대표이사 등을 기소 의견으로 송치하는 등 카카오 수사에 열을 올렸다. 시세조종 의혹 창업자에 칼끝 댔다 카카오뱅크 대주주 자격 잃을 수도 카카오는 말 그대로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다. 금감원이 카카오 경영진과 함께 카카오법인까지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하면서 카카오뱅크를 잃을 가능성까지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 법인이 벌금 이상의 형을 받으면 카카오뱅크의 지분 27.17%를 보유한 카카오가 대주주 자격을 잃을 수도 있다. 금융당국은 6개월마다 대주주 적격성을 심사하는데 이때 대주주는 최근 5년간 금융간 금융관련법, 공정거래법, 조세범처벌법,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 등 위반으로 벌금형 이상의 형사 처벌을 받은 사실이 없어야 한다. SM 인수전 과정서 제기된 시세조종 의혹으로 카카오는 창업자 구속 가능성과 알짜배기 기업을 놓칠 가능성을 함께 안고 있는 셈이다. 카카오의 쇄신 노력에도 찬물이 끼얹어졌다. 카카오는 지난 3월 새 대표이사에 정신아 카카오벤처스 전 대표를 선임했고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게임즈 등 계열사 대표도 바꿨다. 계열사 준법‧윤리경영을 지원하는 독립기구인 카카오 준법과신뢰위원회(준신위)도 쇄신에 속도를 내고 있었다. 하지만 김 의장을 비롯한 카카오의 사법 리스크가 확대되면서 쇄신작업은 물론 기업 전체 동력에 타격을 입게 됐다. 일각에서는 카카오가 그룹 덩치를 줄이기 위해 알짜배기만 남겨두고 일부 자회사를 매각할 것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쪼개기 상장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은 만큼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겠다는 것이다. 이 과정서 어렵게 인수한 SM 역시 매각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카카오뱅크 등은 핵심 자산으로 분류된다. 몸집 줄여 해결될까? 문제는 이것으로 끝이 아니라는 점이다. 카카오는 SM 시세조종 의혹 외에도 문어발식 기업 인수, 계열사 확장 과정서의 잡음으로 수사당국의 수사를 받고 있다. 서울남부지검은 카카오엔터테인먼트가 2020년 드라마 제작사 ‘바람픽쳐스’를 인수하는 과정서 김성수 당시 카카오엔터테인먼트 대표와 이준호 당시 투자전략부문장이 바람픽쳐스에 시세차익을 몰아줄 목적으로 비싸게 매입·증자했다는 의혹을 조사 중이다. 카카오의 운명이 연이은 사법 리스크에 잠식되는 모양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