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주 120시간 노동”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제가 필요하다.” “가난한 사람은 부정식품을 먹어도 된다.” 이는 모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대통령선거 유세 기간 중에 한 말이다. 당시 이 말로 윤 당선인은 ‘막말 논란’의 종결자가 됐고, 노동자들은 윤 당선인을 ‘노동 혐오’를 조장한다고 비난했다. 그리고 지금은 ‘노동환경 후퇴’를 염두하고 있다.
윤석렬 대통령 당선인의 노동에 대한 대선공약은 ‘노동개혁’이란 제목으로 전체 공약집 총 340페이지 중 4페이지에 해당한다. 윤 당선인의 노동에 관한 생각은 이처럼 미약한 상태였다. 이는 선거유세 기간 중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났다.
모두 소극적
윤 당선인은 지난해 11월30일 충북 청주의 한 중소기업을 방문해 기업의 문제점을 청취했다. 기업의 문제점을 들은 후 “정부의 최저시급제, 주 52시간제도 등은 단순 기능직이 아닌 경우 대단히 비현실적이라는 말씀을 들었다. 비현실적인 제도를 모두 다 철폐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에는 “주 120시간이라도 바짝 일하고 쉬는 게 좋다”, 지난해 9월에는 “손발 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선거가 코앞에 다가왔을 때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윤 당선인은 선거가 2주 남았을 당시 노동 공약에 대한 의견이 없었다. 공약이 없었던 것뿐 아니라 시민사회단체 질의에 대한 답변, 토론회 참여에도 소극적이었다.
시민사회는 윤 당선인의 공략을 반개혁적·반노동적이라고 지적했다.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심상정 정의당 후보에 대한 지적도 있었으나, 이들은 대체로 ‘개혁 의지는 확실하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선거 막바지에는 윤 당선인의 태도가 바뀌었다. 그는 ‘노동의 가치’를 강조하기 시작했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힘을 실었다. 그러나 이런 행보는 본인의 공약과 맞지 않는 것이었다.
선거가 이틀 남았던 지난 7일 윤 당선인은 경기도 안양·시흥·안산·화성에서 유세를 펼치며 중산층, 근로자, 노동자가 살기 좋은 나라가 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 자리에서 “정부가 몇 %만을 대변하는 강성 노조와 동업할 게 아니라 모든 노동자를 공정하게 대우해야 하며, 같은 일을 하는 데 임금 처우 차이가 너무 많이 나면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국가는 어떤 노동이든 공정하게, 고생하는 것에 비례해서 처우가 이뤄지게 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유세 기간 중 한 말 두고 우려
전체 공약집 340p 중 4p 해당
윤 당선인은 “사내 하청 파견을 하더라도 그 안에 주인과 머슴이 있다. 이런 상황이 만들어지는 이유는 강성 노조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당시 윤 당선인의 주장은 힘을 받지 못했다. 지난달 14일 발표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교수연구자협의회 등 8개 학술·시민사회 단체에 보낸 정책질의 답변서에서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명시하는 방안에 반대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다.
같은 항목에 이재명·심상정 후보는 찬성했고 윤 당선인의 입장만 반대였다. 이런 상황에 노동자 단체는 윤 당선인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 바로 다음 날인 지난 10일부터 노동자들의 기자회견이 시작됐다. 지난 10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는 서울 영등포구 국민의힘 중앙당사 앞에서 ‘2022년 공공운수노조 비정규직 투쟁 선포 기자회견, 이렇게 된 이상 청와대로 간다’를 개최했다.
이들은 윤 당선인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쏟아내며, 1년에 2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사고·과로로 목숨을 잃는 현실을 모른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지난 박근혜정부의 몰락을 ▲비정규직 강요 ▲정리해고 확대 ▲성과 연봉제 도입으로 정의내렸다. 그러면서 윤 당선자와 국민의힘이 노동자들을 고통에 내몰면 저항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들이 원하는 것은 ▲상시 지속업무 비정규직 고용 제한 법제화 ▲가짜 정규직인 용역형 자회사 운영 개선과 원청의 책임 강화 ▲일터에서의 차별을 금지하고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격차 해소 및 인건비 예산 편성 ▲공공부문 하청노동자 인건비 저가 낙찰제 폐지 ▲공무직 법제화 ▲노조법 2조 개정으로 간접고용과 특수고용 노동자의 노동기본권 보장 등 공공부문에서부터 비정규직을 없애고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발전 비정규 노동자들은 지난 14일 오후 청와대 분수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약속을 이행하라고 촉구하며, 윤 당선인에게도 “생명·안전업무에 대한 정규직화 공약 이행에 좌고우면하지 않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2020년 5월 연료·환경 설비 운전 분야 노·사·전문가 협의체는 한전산업개발 재 공영화를 통한 정규직화를 결정했다.
하지만 한전이 자유총연맹의 한전산업개발 지분을 매입하는 과정이 지연되면서 정규직 전환이 지체되고 있다. 이들은 “이제는 위험의 외주화를 두고 볼 수 없다. 공공부문 비정규직부터 없어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코로나19에 직격탄을 맞은 항공 노동자들도 윤 당선인에게 지원 대책을 요구했다. 지난 15일 광화문 정부중앙청사 앞에서 공항·항공 노동자 고용안정 쟁취 투쟁본부는 윤 당선인에게 항공산업 일터 회복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장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반대
일이 먼저냐 삶이 먼저냐
항공 노동자들은 2년이 넘도록 ‘무급휴직’과 ‘정리해고’로 일터에서 쫓겨난 상황이다.
그러나 정부도, 고용노동부도 아무런 대책을 제시하지 못한 실정이다. 이들은 코로나19 극복과 일상 회복을 선언하기 전까지 고용유지 정책을 유지하고 보완해야 하며, 위드 코로나에 발맞춰 공항 항공산업 방역 대책을 요구했다.
또 코로나19로 재벌에게 경영권 방어 특혜를 주고 노동자에게 고용유지 대책도 없이 일방적인 합병을 강행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항공 노동자들은 윤 당선인에게 “특별 고용 지원업종 지정을 연장하고, 지급기한 1년을 보장해야 한다. 운항 정상화에 따른 복직 대책을 마련하고, 재벌 특혜 고용불안인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 일방강행을 규탄한다. ‘항공산업 일터 회복을 위한 사회적 논의’ 협의체를 구성하라”고 전했다.
지난 9일부터 시작된 노동자 단체들의 기자회견 및 농성은 계속 진행 중이다. 이들은 모두 연간 계획을 짜서 올해 말까지 윤 당선인에게 노동자들의 요구사항을 촉구할 계획이다.
노동자들의 목소리가 윤 당선인의 귀에 들릴까.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윤 당선인을 향한 쓴 목소리를 마지않았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는 지난 15일 성명서를 통해 “윤 당선인이 후보 시절 말한 주 120시간 노동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면 노동자는 하루 24시간, 주 120시간의 노동에 내몰려 건강권의 심각한 침해와 과로사에 내몰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통합하려면…
연맹은 “윤 당선인이 당선 이후 외치는 ‘국민통합’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노동자들의 처지와 입장을 살펴야 한다.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추진되는 일방적 개악은 전 노동자, 민중의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한다. 박근혜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다 실패한 성과 퇴출제의 사례를 곱씹어 살펴보길 권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