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머드급' 역대 최대 민주당 선대위 해부

사공 많아 산으로 갈라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더불어민주당 대선호의 출항식이 거하게 치러졌다. 최종 대선후보로 당선된 이재명 전 경기도지사는 출항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준 넥타이를 매고 등장해 ‘융합형 선대위’의 출발을 국민에게 알렸다. 그동안 대립을 이어오던 모든 경선 후보와는 물론, 청와대와도 ‘원팀’이 되겠다는 상징적인 표시였다.

정치권에서는 큰 규모의 선거캠프를 흔히 ‘매머드’에 비유한다. 매머드는 ‘맘모스’로 널리 알려진 고대 동물로, 코끼리보다 키가 1m 이상 크고, 몸무게는 1t 이상 더 나가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괴수다. 

‘융합형’
사세 과시

상상할 수 있는 크기보다 훨씬 큰 규모를 비유할 때, 오래 전 멸종되어 더 이상 상상할 수 없는 동물인 ‘매머드’를 비유에 사용한 것이다. 그러나 그간의 캠프를 ‘코끼리급’으로 만든 20대 대통령선거 선거대책위원회가 출범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선대위다.

지난 2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KSPO 돔에는 수백명의 인파가 몰렸다. 이 후보의 선대위 공식 출범식이 이곳에서 열린 것.

최근 경선 흥행몰이에 성공한 국민의힘을 의식한 듯, 이날 출범식에는 경선 경쟁자 5인을 비롯한 499명의 민주당원들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499명은 제1단계 ‘위드 코로나’ 인원 제한 규칙하에 모일 수 있는 최대 인원이다. 


참석자 중 현역 의원만 169명이었는데 이 정도 숫자의 현역 의원들이 한 사람의 당선을 돕기 위해 일하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다.

2017년 당시 최대 규모라 일컬어지던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선대위보다 약 50명이나 더 많다.

출범식 오프닝에는 유명 대중가수 HOT가 부른 노래 ‘빛’이 울려 퍼졌다. 이 노래 중간엔 “마주 잡은 두 손으로 우리 모두 함께 만들어가요”라는 가사가 등장했다.

지난 몇 달간 서로를 낙마시키기 위해 칼을 맞댔던 경선 후보들이 하나가 되어 ‘정권 재창출’로 나아가자는 의미였다.

‘원팀’ 참여에 대한 의심을 많이 받아온 이낙연 전 대표와 날선 비판을 지속했던 박용진 의원도 이날 이 후보와 ‘두 손’을 맞잡고 함께 이재명 선대위 출범식에 참석했다.

이 전 대표는 ‘이 후보를 지지 연설문’을 통해 “민주당에는 민주당만의 내부 문화가 있다. 경쟁할 때는 경쟁해도, 하나 될 때는 하나 됐다”며 “서로 다투더라도 울타리를 넘지 않고 서로를 배려하며 전진했고 우리는 그런 자랑스러운 문화를 지키고 가꿔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설훈·홍영표 등 이낙연 인사 공동위원장
현역 의원 169명 참여…문보다 50명 많아


박 의원 역시 “이재명은 변화를 상징하는 사람이다. 그의 삶과 정치 역정처럼 변화와 개혁의 정당이 돼야 한다”며 “내가 앞장서겠다. 원팀을 넘어 빅팀으로 빅팀을 넘어 윈(win)팀으로 나아가자”고 힘줘 외쳤다.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경쟁자였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최종 후보의 당선을 도와주는 그림에 민주당원들은 감동했다.

그러나, 비민주당원들의 눈에는 의아했고, 더 나아가 낯 부끄럽기까지 했다. <일요시사>가 취재 중 만난 한 정계 인물은 “참 뻔뻔한 사람들이라 생각했지만, 이런 경우를 여의도에서 한두 번 봐온 게 아니기에 그냥 할리우드 연예 뉴스 보듯이 지켜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경선 기간 각 캠프는 서로 간 주워 담을 수 없는 말들을 너무 많이 뱉어왔다. 게다가 그런 말을 아직 주워 담지 못한 채 ‘이재명 대선호’에 탑승한 인물들이 존재하는 탓이다.

대표적인 인물로 민주당 설훈 의원을 꼽을 수 있다. 설 의원은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이재명 후보 구속’을 언급하며 그를 궁지에 몰아넣으려 한 인물이다.

이낙연 캠프의 좌장 역할을 맡아온 설 의원은 경선이 끝난 후에도 무효표 처리에 대한 부당함을 지적하며 “이재명 후보를 민주당 최종 대선후보로 인정할 수 없다”고 줄곧 주장해왔다.

그랬던 그가 지난달 15일 이 후보를 만나 악수하고 포옹하며 인사를 나누더니, 얼마 뒤엔 급기야 이재명 대선호의 공동선대위원장직을 맡았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 설 의원과 함께 이재명 선대위 공동선대위원장에 임명된 그는 경선 기간뿐 아니라 그 이전부터 이 후보와 대립각을 세워온 인물이다.

홍 의원은 ‘친문(친 문재인)’ 계파의 핵심 의원으로, 이 후보의 ‘문준용 발언’ 등 갖가지 이슈에 대해 강도 높은 비판을 내놨던 바 있다. 이런 인물이 다 같이 모여 손을 잡자고 하니, 일반 국민들이 의아해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원팀? 
각 팀?

민주당은 이번 선대위를 ‘융합형 선대위’라 명명했다. 서로 다른 성격의 인사들이 ‘융합’해 ‘원팀’을 구성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는 4년 전 문재인 선대위 때 나온 ‘용광로 선대위’와도 뜻이 유사하다. 이름뿐 아니라, 모든 면이 그때의 선대위와 흡사하다.

민주당 전체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고, 대립했던 모든 경선 후보가 ‘원팀’이 되어 최종 후보를 지켜주고 있으며, 각 후보 캠프 인력 대부분이 선대위에 합류해 힘을 보태고 있다. 


한 가지 다른 점은 선대위 내에 이재명 계파가 소수라는 것.

2017년 대선에 처음 도전할 당시부터 이 후보를 도왔던 정성호 의원과 그를 필두로 구성된 이른바 ‘7인회(정성호·김병욱·김영진·임종성·김남국·문진석·이규민)’는 이 후보의 최측근으로 분류될 수 있으나, ‘이해찬계’ ‘박원순계’ ‘민평련계’ 등 민주당 주류인 그 외의 계파들은 엄밀히 말해 애시당초 이 후보와 결을 달리해왔던 이들이다.

반면, 2017년 ‘용광로 선대위’에는 친문 의원들이 절대 다수였다.

15인의 공동선대위원장 중 김진표·박병석·김부겸·이종걸 등 4명과 총광본부장을 맡은 송영길 의원, 공보팀에서 일한 민병두·박광온 의원 등 비문(비 문재인)계 인사도 선대위에 제법 참여했었다.

하지만, 공식 인사만 430여명이었던 ‘용광로 선대위’에는 문 대통령과 정치적 역경을 함께 겪어온 의원이 대다수였고, 그가 대통령이 되기를 진심으로 응원하는 사람으로 가득했다.

친문 인사들이 캠프의 중심에 자리 잡은 후, 비문 인사를 영입해 외연을 확장해나가는 양상을 띤 것이다. 이재명의 ‘융합형 선대위’에 걱정 어린 시선을 보내는 이들은 어딘가 찝찝한 이유를 여기서 찾곤 한다.


선대위 중심에 진짜 ‘이재명계’ 의원이 많지 않다는 점이다.

브레인
총집합

이 같은 ‘불편한 동거’를 할 때는 캠프 ‘브레인’의 역할이 중요하다. 가장이 역할을 잘해야 행복한 가정을 꾸릴 수 있듯, ‘브레인’ 역할을 하는 선대위 인물들이 제몫을 다해야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다.

선대위의 가장 중요한 요직에 포진된 인물들이 바로 이 ‘브레인’ 역할을 해야 한다. 중요하다고 평가되는 요직은 총괄·상황·공보·비서실, 총 네 개다.

‘융합형 선대위’의 총괄선대본부장에는 캠프의 총괄직을 맡았던 5선의 조정식 의원이 임명됐다. 총괄은 말 그대로 전체를 보고 선대위 살림을 책임져야 하는 자리므로, 무게감 있는 의원이 이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민주당 안에는 4~5선급의 무게감 있는 의원 자체가 희귀하고, 조 의원보다 선거 경험이 많은 의원은 없다. 비록 전통 ‘이재명계’가 아닌 이해찬 전 대표의 최측근 출신이나, 이 후보와 비교적 관계가 좋은 ‘이해찬계’이고, 이 후보 전국지지 모임인 ‘민주평화광장’의 공동 대표이니, 조 의원만큼 적임자가 없다는 게 민주당 측 분위기다.

상황실장직에는 김영진·조응천·진성준·고민정 의원이 포진됐다. 이 중 재선의 김영진 의원이 상황실의 리더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7인회’에 소속된 이 후보의 최측근 의원으로 알려져 있다.

김 의원은 경선 과정에서도 이재명 캠프의 상황실장을 맡으며 매끄럽게 캠프를 운영해왔고, 이 후보와 많은 소통을 하고 있으며, 민주당 경선 초반엔 이낙연 전 대표의 ‘탄핵 찬성 의혹’을 제기해 이재명 캠프의 간판 공격수로 등극한 바 있다.

그는 이 후보의 의중을 가장 빠르게 파악하는 인물로 당내에서 정평이 나있기도 하다.

또 다른 주요직인 공보단 수석대변인에는 고용진·박찬대·오영훈·조승래 총 4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들 중 주목해야할 인물은 재선의 고용진 의원.

‘한 지붕 대가족’ 복심 역할론 부각
총괄·상황·공보·비서실 요직은?

민주당 수석대변인이기도 한 고 의원은 이재명 캠프에서 일하며 ‘이 후보 지키기’에 온 힘을 다해온 인물이다. 그는 대장동 이슈 등 각종 공세에 대항해 설득력 있는 메시지를 내며 이 후보를 보호해왔다. 그는 이번 선대위에서도 같은 역할을 부여받았다. 

비서실에는 총 8명의 이름이 올라왔다. 비서실장에 박홍근·최인호, 부실장에 천준호·허종식·정진상·강희용, 정무조정실장엔 강훈식, 수행실장엔 한준호다.

선대위의 비서들은 후보의 일정 담당, 후보의 대외 메시지 파악 등 가장 가까이서 후보를 돕는 일을 수행한다. 정계에서는 비서가 ‘핵심 중의 핵심’이라는 평가가 파다하다.

매일 후보와 소통하는 일을 담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업무의 특성상, 비서들의 ‘상하 관계’는 사실상 무의미하다. 대신 ‘후보와의 친밀도’가 비서 간의 직급을 나누는 척도로 사용된다. 비서는 후보와 친밀할수록, 선대위 내에서 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비서실 8인 중 가장 힘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물은 아무래도 부실장직의 정진상 전 경기도 정책실장이다. 이 후보가 공식석상에서 “나의 최측근”이라고 언급하기도 한 그는 이 후보의 정치 인생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해오고 있다. 

정 전 실장은 1995년 성남시민모임 시절부터 약 25년간 이 후보의 곁에 있었다. 이 후보가 성남시장과 경기도지사로 일했을 때는 정책실장을, 이 후보가 경선 주자로 뛸 때는 캠프에서 비서실 부실장직을 수행했다.

그야말로 이재명의 복심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과거 문재인에게 양정철이 있었다면, 현재 이재명에겐 정진상이 있다”고 평가하기도 한다. 민주당 측 사람들은 이번 선대위 구성원 중 정 전 실장이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입을 모은다.

최측근
비서 8인

이외에도 이 후보의 측근으로는 경기·성남 라인의 김용 전 성남시의원, 김현지 전 경기도 비서관, 김남준 전 대변인 등이 있다. 김용 전 의원과 김현지 전 비서관, 김남준 대변인 모두 선대위 실무진에 포함돼 ‘이재명 대통령 만들기’에 뛰어들었고, 이들 또한 선대위의 ‘브레인’으로서 일할 예정이다. ‘한 지붕 아래 대가족’인 민주당의 선대위에서 ‘브레인’ 역할을 맡은 이재명의 복심들의 어깨는 매우 무거워졌다.
 

<ingyu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2017년 문의 복심들 각양각색 말로 

4년 전 출범했던 민주당 문재인 대선후보의 선거대책위원회에도 문 대통령의 복심으로 일컬어지는 인물이 다수 포진됐었다.

그중 언론에서 가장 많이 회자됐던 핵심 3인방은 김경수·양정철·임종석이다.

문재인 후보를 대한민국 제19대 대통령으로 만든 3인방의 현재는 어떨까?

화려한 앞날을 맞이할 줄 알았던 3인의 현재는 각양각색의 길을 걷고 있다.

우선 가장 비참한 상황을 맞이한 인물은 김경수 전 경남도지사다.

그는 지난 7월26일 교도소에 수감돼 아직까지도 형을 살고 있다. 그의 죄목은 불법 여론조작.

김 전 지사는 ‘댓글 조작’ 혐의를 받아 오랜 시간 재판을 받아왔다.

문제가 된 것은 ‘킹크랩’이라는 댓글 자동화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인데, 사법부는 자동화 프로그램을 이용한 댓글 업로드를 ‘여론조작’의 일환으로 인정했고, 김 전 지사가 이것을 주도한 사람이라 판단했다.

김 전 지사는 1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1심 선고 직후, 법정 구속된 그는 77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지난 7월 대법원이 원심을 확정해 청원교도소에 재수감된 상태다.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해외로 떠났다.

이때 문 대통령은 그를 끝까지 만류하며 청와대 입성을 제안했으나 “문정부의 요직을 맡지 않겠다”는 양 원장의 뜻은 매우 확고했던 바 있다.

양 전 원장은 2017년 대선 후에 뉴질랜드, 일본 등 여러 나라를 떠돌며 한동안 정계와 거리를 둔 뒤, 2019년 4·15 총선에 돌아와 민주당을 위해 잠시 일했다.

이후 또 다시 정계를 떠난 그는 아직까지도 잠행을 이어가고 있다.

3인방 중 임종석 비서실장만 유일하게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는 2017년 문 대통령의 비서실장직에 임명되며 약 2년간 대통령 최측근으로 일했고, 2018년에는 남북정상회담 준비위원장을 맡아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어낸 바 있다.

지난해 외교안보특별보좌관직으로 직함을 바꿔 아직까지 문 대통령의 곁에서 일하고 있다.


<기사 속 기사> 선대위 출범식 이재명 ‘박정희’ 언급, 왜?

민주당 대선 후보의 입에서 이례적으로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칭찬 아닌 칭찬이 나왔다. 언론은 순식간에 들끓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선대위 출범식에서 “박정희 대통령이 경부고속도로를 만들어 제조업 중심 산업화의 길을 열었다”며 “이재명정부는 탈탄소 시대를 질주하며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에너지 고속도로’를 깔겠다”고 밝혔다.

골자는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에 대한 의지였으나, 많은 언론이 그 앞에 부연설명에 더욱 집중했다.

언론은 “박 전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가 대한민국 산업화의 밑거름이 되어 국가적 부흥을 이끌었다”는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에 이 후보가 사실상 동의한 것이 아니냐고 해석했다.

박 대통령은 독재자였고, 동시에 국가 경제 부흥을 이끈 인물이다. 이 때문에 그에 대한 평가는 늘 양극단으로 나뉜다. 평가의 양 끝에는 물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있다.

이 후보는 비판하는 극단에서 박 대통령을 간접적으로 칭찬한 것이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는 CBS 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문재인 정권이 갖고 있는 기본 노선에서 이탈한 것”이라며 “보수의 프레임을 끌고 왔다는 것은 소득주도 성장론(문 정권의 핵심 경제정책)자체가 사실은 실패했다는 걸 자인한 것”이라며 이 후보의 발언을 평가했다. <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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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