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눈물의 땡처리' 태평백화점 찾아가 보니…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10.19 11:50:14
  • 호수 13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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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에 밀려 역사 뒤안길로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추석 대목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백화점 업계는 여전히 위축돼있다. 코로나19로 인해 백화점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면서 서울 동작구 사당동 소재의 단일 백화점인 태평백화점도 역풍을 피하지 못했다. 중장년층이 자주 찾았던 태평백화점은 최근 폐점이 결정돼 이달 말 문을 닫게 됐다.

서울 시내에 남아 있는 27년된 단일 백화점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동작구 사당동의 랜드마크였던 ‘태평백화점’이 이달 말 폐점을 앞두고 재고 처리에 들어갔다. 태평백화점에 입점한 매장들은 눈물을 머금고 남은 기간 동안 땡처리를 하고 있다. 

최대 90%

지난 12일 오후 찾아간 태평백화점은 초입부터 사람들이 붐볐다. 지하철 총신대입구(이수)역 13번 출구로 나오자마자 기자를 맞이한 것은 태평백화점 1층에 줄지어 있는 가판대였다. 여러 천막 아래 붙어 있는 현수막에는 “고객님의 관심과 응원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최대 90% 할인” 등 폐점을 알리는 문구들이 담겨있었다. 

백화점을 지나치던 행인들도 백화점으로 방향을 틀어 가판대에 진열된 옷을 구경하는 풍경도 들어왔다. 코로나19로 인해 QR코드를 찍고 백화점 내부로 들어가는 줄은 꽤 길었다. 평일인데도 불구하고 주말인 것처럼 내부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백화점 내부 중앙에 ‘이벤트 특설매장’이라는 광고 문구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이 매장에서는 여성용 구두를 주로 판매했다. 구두를 찾는 여성 고객이 몰리는 바람에 ‘여성 구두 1만원, 2만원’이라고 적힌 광고 표지판도 잘 보이지 않았다. 


여성 고객들의 왁자지껄 대화 속에서도 점원의 우렁찬 목소리는 매장 안을 향해 퍼졌다. 점원은 “백화점 폐점으로 구두 완전히 싸게 드립니다! 사이즈 없는 것만 물어보세요! 1개 2만원 2개 3만원입니다.”

여성 고객들은 폭탄세일 중인 만큼 사이즈에 맞는 예쁜 구두 찾기에 여념이 없었다. 맘에 드는 색깔의 구두를 고른 후 발 사이즈에 맞는지 신어보고 맘에 들면 즉시 구매가 가능했다. 형형색색의 구두들이 진열된 곳에 사람들이 모이다 보니 특설매장은 시장 같은 분위기를 연출했다. 

27년 유일한 단일 백화점 폐점
입점 매장들 이벤트 특설 판매

여성 구두 뿐 아니라 1층에 남성 구두 판매점도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가죽 구두 한켤레에 2~3만원, 3만9000원에 불과했다. 점원은 연신 “사이즈 있을 때 잡아가세요” “가죽으로 된 구두 신어보면 확실히 다릅니다” “내일 오면 없을 겁니다”라며 구매를 부추기기도 했다.

최대 80% 할인이라 고객들은 줄지어 구두를 구경했다. 이 중에는 태평백화점 쇼핑백을 이미 많이 들고 있는 상태에서 구두 매장을 찾은 고객도 눈에 띄었다. 구두 매장 외에 화장품 매장도 대폭 할인으로 여성 고객을 끌어들이고 있었다.

1층뿐만 아니라 지하 2층에서도 태평백화점 폐점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 출구와도 연결된 지하 2층 입구에서부터 셔츠, 힙색 가방, 조끼, 아우터 등 다양한 패션의류를 판매했다. 지하 2층부터 지상 5층까지 패션 전관에 태평백화점 고별전을 한다는 문구와 함께 아디다스, 카파, EXR, 라꼬스테, 프로스펙스 등의 패션 브랜드 로고들이 즐비했다. 

지하 2층에 들어서자 이불을 싸게 판다는 매장이 눈에 들어왔고 밥솥, 청소기, 면도기 등 생활용품을 대폭 할인한다는 매장도 보였다. 지하 2층에는 할인 매장마다 부스가 설치됐는데 ‘특설 행사장’이라는 한 부스는 비어 있었다.


남성용 전기면도기는 4만원~5만원선에 판매되고 있었고 뭉친 근육을 풀어줄 수 있는 마사지건도 5만원선이었다. 식품관이 있는 지하 1층에는 점심시간대가 아니라서 그런지 한산했다. 여성 의류가 있는 2층도 비슷했다.

스포츠와 아웃도어 의류를 팔고 있는 3층은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아디다스, 나이키 등 스포츠 브랜드 매장 안에는 고객들이 상당히 많았다. 스포츠 매장에는 신발뿐 아니라 겨울 의류를 찾는 고객도 적지 않았다.

5층은 3층만큼이나 고객들이 많이 모여 있었는데 유아용품과 생활용품 코너들이 입점해 있었다. 주방에서 쓰는 식기구에서부터 반찬통, 도시락통 등 주부들이 좋아할만한 물품을 최대 90% 할인판매 중이었다. 이외에도 침대, 소파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판매했다. 

구두 한 켤레 2만원
방문객으로 북새통

이날 매장을 찾은 한 50대 여성 A씨는 “태평백화점 폐점 소식을 듣고 나서 너무나 아쉬웠다. 다른 백화점과 달리 가격이 저렴해 자주 찾았는데 없어진다고 하니 놀이터가 하나 사라진 기분”이라며 “앞으로는 고속터미널역에 있는 신세계백화점에 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태평백화점 폐점이 정해지고 나서야 사람들이 백화점을 찾은 것이다. 백화점 인근에 거주해 시간 날 때마다 여기 포인트카드를 들고 왔었는데 이젠 그럴 날도 얼마 안 남았다”고 아쉬워했다. 

최근 몇 년간은 백화점에 사람이 많지 않았으며 폐점 확정 후 할인판매 소식에 사람들이 부쩍 백화점에 찾은 거라고 했다.

또 다른 50대 여성 B씨는 “친구 따라 백화점을 방문했다. 대폭 할인을 한다고 해서 기대를 많이 했지만 생각보다 저렴한 게 많이 없었다. 옷이나 구두는 저렴했고 다른 생활용품들은 가격이 크게 저렴하진 않았다”며 실망한 기색을 내비쳤다. 

태평백화점은 1992년 ‘태평데파트’로 출발해 2년 뒤인 1994년 지금의 이름인 ‘태평백화점’으로 바꾸고 영업을 해왔다. 서울지하철 4호선 이수역 바로 앞에 위치해 있어 ‘만남의 장소’로 애용되는 등 시민의 사랑을 받았다. 

시간이 흘러 대기업이 운영하는 대형마트와 백화점들이 대거 들어선 데다 코로나19 등으로 소비시장이 온라인으로 많이 옮겨가면서 큰 타격을 받았고 시설까지 낙후되면서 폐점 결정을 내리게 됐다.

새단장

백화점이 문을 닫으면 이 자리는 ‘이수3특별계획구역’으로 지정돼 개발된다. 서울시와 동작구에 따르면 백화점 부지에는 지하 6층, 지상 23층 규모의 트윈타워가 지어질 예정이다. 저층부에는 주민센터와 대형마트, 고층부에는 오피스텔이 들어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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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