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팬 무시' 막가는 KBO 막전막후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1.07.26 13:39:40
  • 호수 133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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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타석 뒷짐 지고 있다 헛스윙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최근 한국프로야구위원회는 헛스윙만 하고 있다. 야구계에서 사건·사고가 터지는 데 뒷짐만 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야구팬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이대로 가면 한국프로야구가 망하는 건 시간문제라는 우려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프로야구가 위기를 맞았다. 지난 9일 NC 다이노스 1군 선수단 내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고 이후 두산 베어스 1군 선수단 내에서도 코로나19 확진자가 발생했다. 3일 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한국프로야구리그(이하 프로야구) 중단을 선언했다. 

사상 초유
리그 중단

3시간이 넘는 마라톤 회의 끝에 KBO는 코로나19 확산, 선수단 내 확진자 발생, 다수의 밀접 접촉자 지정 등으로  정상적인 경기 진행이 어렵다고 판단했다. 문제는 KBO가 ‘호텔 술판’의 전모를 다 인지하고 있었으면서도 구단과 공모해 사건을 축소, 은폐하려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리그 중단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KBO는 지난 3월24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2021 KBO 리그 코로나19 매뉴얼’을 발표한 바 있다. 

해당 매뉴얼에 따르면 ‘엔트리 등록 미달 등 리그 정상 진행에 중대한 영향이 있다고 판단되는 경우 긴급 실행위원회 및 이사회 요청을 통해 프로야구 중단 여부를 결정한다’고 규정돼있다.


하지만 KBO는 지난 12일, 리그 중단 발표를 앞두고 해당 매뉴얼에 ‘코치진을 제외한 1군 엔트리의 50% 이상이 이탈하는 경우 리그를 중단할 수 있다’는 새로운 규정을 추가했다. 이를 근거로 프로야구를 전격 중단을 발표했다.

KBO가 발표했던 기존 매뉴얼에 따르면 현재 상황에서 전체 리그를 중단할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KBO는 2021시즌이 시작하기 전 이미 확정된 입장을 시즌 도중에 변경했다. 너무나 쉽고 빠르게 변경된 매뉴얼에 KBO가 리그 중단을 발표한 것이 과연 정당한 결정이었는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야구팬이 많은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를 위해 리그 중단을 선언한 것이라는 의혹이 난무했다. 주력 선수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으면서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전력 누수를 우려했다는 것이다. KBO의 이번 결정은 기존의 규정을 휴짓조각으로 전락시킨 것이라는 비난도 이어졌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어긴 두산 베어스 선수 2명에 엄중경고를 내리면서 솜방망이 처벌 논란이 일었다. 두산 베어스는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선수 2명이 발생해 선수 17명, 코치진 14명이 자가격리에 들어가는 등 리그 중단에 일조한 구단이다. 

정지택 KBO 총재가 두산 출신이어서 KBO가 사실상 두산 봐주기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정 총재는 두산건설 사장, 두산중공업 대표이사 부회장 등 두산 계열사 요직을 거친 경영 전문가로, 2007년부터 2018년까지 11년간 두산 구단주 대행을 지냈다.

NC·두산…선수 확진자 발생해 중단
‘호텔 술판’ 알면서 축소·은폐 의혹

KBO는 한국프로야구를 총괄 관리하는 단체다. 여러 가지 역할을 맡지만 가장 중요한 임무는 안정적으로 프로야구리그를 관리하는 것이다. 야구계에서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KBO 결정에 잡음이 불거져 나왔다. 


야구 인기가 식은 건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지난 3월 말 여론조사기관 한국갤럽의 조사 발표때 2021 프로야구 개막 직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상대로 전화 조사한 결과 34.1%만 프로야구에 관심 있다고 응답했다. 2014년만 해도 성인 둘 중 1명(48%)은 야구를 좋아한다고 답했다. 올해 조사 대상자 78%는 선호하는 팀도 없다고 대답했다. 

청년층이라 불리는 18세부터 29세까지의 답변은 야구 관계자들에게 숙제를 안겼다. 4명 중 1명(26%)만이 야구에 관심이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2013년 조사에서는 전체 평균(44%)과 비슷한 수준이었지만 2017~2019년 30% 내외, 작년과 올해는 20% 중반에 머물렀다.

2013년 때 20대였던 그들이 현재 30대가 되었으니 10대 유입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0대 대상으로 좋아하는 야구선수에 대해 물어도 68%가 좋아하는 선수가 없거나 선수 이름 자체를 몰랐다. 

올해 초 한 구단 관계자는 “야구장에 팬들이 오지 않는 건 입장 비율 제한과 코로나19 상황을 탓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그렇게 야구장에 오지 않는 팬들이 야구 경기를 시청하지 않는다는 건 심각한 문제”라며 “최근 국민들 사이에서 프로야구가 ‘핫이슈’로 작용하지 않는단 건 오랜 기간 쌓았던 프로야구 인기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단 경고등”이라며 큰 우려를 내비쳤다. 

프로야구 인기가 떨어진 데는 최근에 불거진 사건사고에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최근 10년간 선수들의 불법 원정도박, 심판 금전 요구와 구단의 접대, 승부조작, 이면계약, 성추문, 폭행, 구단 직원 횡령과 사설토토 베팅, 금지 약물 복용 등이 매년 반복됐다.

“야구선수? 
몰라요!”

연이은 사건 사고가 잇달아 터지는 데 KBO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KBO는 사건이 터지면 원인이 무엇이고, 향후 어떤 대책을 펼지 깊이 고민하기보다 사태를 일단락하는 데 급급했다. 

KBO는 인기 스타 선수에 솜방망이 징계를 내리면서 팬들의 원성을 샀다. 지난해 5월 KBO는 강정호의 음주운전에 대해 1년 유기실격(자격정지)이라는 ‘솜방망이’ 징계를 내렸다. KBO 규약 151조에 따르면 음주운전으로 3회 이상 적발되면 3년 이상 유기 실격 처분이 내려지게 돼있다.

강정호가 세 번째 음주운전으로 사고를 일으킨 때는 2016년 12월2일이고 개정으로 해당 조항이 생긴 시점은 2018년 9월11일이기 때문에 관련 내용이 소급 적용되지 않았다. KBO는 음주운전 조항을 적용할 수 없어 품위손상행위 조항을 근거로 징계 수위를 정했다.

KBO가 음주운전으로 ‘삼진아웃’을 당한 선수에 스스로 만든 규정을 어겨가면서 내린 솜방망이 처벌로 사실상 한국 복귀 길을 열어준 것이나 다름없었다.  

강정호는 프로야구 최초로 40홈런을 친 유격수였다. 김재박-이종범-박진만 등 유격수 계보를 잇는 선수로 주목받았고 최초로 프로야구에서 메이저리그로 진출한 선수기도 했다. 리그 흥행에 꼭 필요한 선수였다. 그러나 팬들은 차가웠다.

강정호의 거듭된 사과와 “국내 복귀 시 연봉을 사회환원하는 데 쓰겠다”는 의지도 보였지만, 결국 여론의 반대에 막혀 복귀가 무산됐다. 


야구팬들은 아무리 스타라도 원칙을 어기면서까지 그가 뛰는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KBO의 솜방망이 처벌에 질타할 뿐이었다. 팬들은 정정당당한 스포츠정신에 위배되는 행위를 싫어한다. 선수가 능력을 보여주는 데 있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게 금지 약물이다.

2011년 김재환, 2015년 최진행과 최경철 등이 ‘경기력 향상 약물 복용’으로 적발됐다. 김재환의 경우 2011 야구월드컵 출전 과정에서 적발됐지만, 이미 KBO도 자체 금지 약물 검사를 시행하고 있는 상황이라 고작 10경기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

김재환의 사례를 기점으로 퓨처스(2군)에서도 금지 약물 검사가 시작됐다. 4년 뒤 최진행은 30경기 출전 정지를 받은 반면 최경철은 72경기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이들의 차이는 한국도핑방지위원회(이하 KADA) 개입 여부다. KBO 도핑 검사 및 징계는 2016년 KADA 이전과 이후로 나뉘기 때문이다. 2016년 이전 KBO 규정상 가장 무거운 징계는 30경기 출전 정지였다. 이마저도 김재환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명확한 기준이 없었다.

하지만 KADA는 KBO와의 협의하에 적발 횟수에 따라 1차(72경기)-2차(144경기)-3차(퇴출)의 징계 수위 및 관련 규정을 확정지었다. 이후 적발과 징계는 KADA의 몫이고, KBO는 관련 정보를 전달받을 뿐 징계 과정에는 참여하지 않는다.

약물 전력
MVP의 과거


2012시즌을 앞두고 김재환은 공식 석상에서 “실력으로 속죄하겠다”고 말해 야구팬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4년 뒤 김재환은 엄청난 활약을 했다. 2015시즌 0.235였던 타율이 1년 만에 0.325로 급상승했다. 홈런도 37개로 리그 3위, 타점도 124개로 리그 3위를 기록했다. 2018년에도 44개 홈런을 치며 홈런왕까지 등극했다. 

결국 2018시즌 MVP에 선정되기까지 했다. 기자들이 좋아하는 홈런, 타점 1위에 등극했고 다른 타격 지표도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기자단 투표로 뽑게 되는 MVP는 기자 양심에 따라 충분히 주지 않을 여지도 많았다. 그런데도 기자들은 김재환을 선택했다.

야구팬들은 실망을 감추지 못했고 미국, 일본야구 리그와 비교하며 약물 전력이 있는 최초 MVP라며 비아냥대기도 했다. 

예전부터 KBO는 프로야구 간판스타들에 대한 징계가 약했다. 지난 2019년 LG 트윈스 선수 3명(차우찬, 임찬규, 오지환)이 호주 전지훈련 중 카지노에 들렀다. KBO 상벌위워회(이하 상벌위)는 세 선수에게 엄중경고 처분을 내렸다.

심수창은 이들과 함께 카지노에 갔지만, 실제 베팅은 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져 징계를 내리지 않았다. 이어 LG 구단엔 제재금 500만원을 부과했다.

야구팬 사이에서 “KBO가 또 ‘갓중 경고’라는 카드를 꺼내 들었다”는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물론 이때 등장한 접두사 ‘갓(god)’은 ‘최고’라는 뜻이 아닌 ‘불 보듯 뻔한 결론’이라는, 비꼬는 의미로 붙인 것이었다. 야구 팬 사이에서 KBO의 엄중 경고는 이미 놀림감이 된 지 오래다. 

오죽하면 인터넷 커뮤니티에 ‘갓중 경고의 역사’라는 글과 함께 역대 엄중 경고를 받은 사례를 나열한 자료가 공유되기도 했다. 엄중 경고를 받은 사유로 판정항의, 몸싸움, 선수단 관리 책임 등이 있으며 2013년에는 심판위원의 규정 미숙지 등이 있었다.

프로야구리그 규정에 프로야구 구단, 감독, 코치, 심판 위원, 기타 관련 해당자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다고 판단되면 정 총재가 ‘벌칙 내규’에 따라 징계를 가할 수 있다. 실제 제재를 내릴 때는 정 총재가 혼자 결정하기보다 총재 자문기관인 상벌위를 열어 수위를 결정하는 게 일반적이다.

벌칙 내규 23개 중 엄중 경고라는 수위는 없다. 

매뉴얼 안 지키고 그저 솜방망이 징계?
반복되는 사건사고…급한 불끄기 급급

경우에 따라 제재금과 출장정지 처분을 받으면서 엄중 경고도 받는 일이 아예 없지는 않지만 일반적으로 엄중 경고를 받은 선수는 따로 제재금을 내거나 출장정지를 당하지 않는다. 엄중 경고는 그냥 경고로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각에선 KBO가 외부 시선을 의식해 엄중 경고를 내렸다고 시선도 존재한다. 제재를 통해 내부 변화를 이끌어내기보다 ‘우리가 이렇게 신경쓰고 있다’고 대외적으로 보여주려는 목적이라는 의미다. 엄중 경고는 벌칙 내규보다 더 센 표현이다.

이처럼 KBO는 야구팬들은 물론 다른 종목 스포츠팬들에게까지 조롱거리가 되고 있다. 2004년 병역비리 사건, 2012년과 2016년 승부조작 사건 등 팬들의 실망을 저버리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때도 KBO는 미흡한 대처로 질타를 받았다. 

이순철 야구 해설위원은 “(이번 사태 관련해)KBO가 강력하게 제재를 가해야 한다”며 “야구선수는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직업이다. 돈도 많이 벌고, 인기도 있고 언론에 노출도 많이 되는데 윤리의식은 따라가지 못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런 식으로 하면 팬이 야구장을 떠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 팬을 다시 모으는 건 정말 어렵다. 한국프로야구에 속해 있는, 야구계에 종사하는 모든 사람들이 대오 각성하고 대비해야 한다. 그거 안 하면 프로야구 망하는 건 순간”이라고 조언했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KBO 관계자는 “(리그 중단과 관련해)새로운 규정을 추가한 건 맞지만 프로야구를 중단한 이유는 아니다. 기존 매뉴얼에 따라 중단시킨 것이고 새로운 규정은 향후 비슷한 사례를 대비해 신설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구단과 공모했다는 의혹도 억울하다. 방역당국에서 해당 선수에게 통보했고 경찰서에서 확진자 발표가 난 뒤 대응했다. (KBO가 호텔 술판 의혹과 관련해)축소나 은폐를 하려고 한 것이 아니다”라고 해명했다.

보여주기식
엄중 경고

아울러 “음주운전과 관련해 규정을 어긴 것은 아니다. 강정호 선수의 세 번째 음주운전은 2016년이었고 삼진아웃 규정이 생긴 시점은 2018년이었다. 2016년 당시(강정호는) KBO리그 소속이 아닌 메이저리그 소속이었기 때문에 삼진아웃 제도를 적용하면 법적으로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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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