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야구 대표팀 ‘안방마님’ 강민호에 대해 알아야 할 다섯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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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 2021.07.20 11:21:15
  • 호수 133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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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SA뉴스] 오는 28일 막을 올릴 도쿄올림픽 야구 경기에서 대한민국 남자 야구 대표팀은 2008년 베이징 금메달의 영광을 다시 한 번 노린다. 13년 전 그 영광의 순간에 있었으며, 이제는 베테랑 포수로서 올림픽에 나설 강민호 선수에 대해 알아야 할 다섯 가지를 소개한다.  

강민호는 1985년 8월18일 제주시에서 태어났다. 제주 신광초에 다니던 시절, 제주도에는 3개 초등학교에 야구부가 있었다. 야구부 경기가 있을 때마다 학생들은 시합을 찾아가 응원했다. 

포수에 반하다

야구부가 아닌 일반 학생으로 응원을 하던 강민호는 포수 장비를 착용하고 야수들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고 야구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처음 들었다.  이를 계기로 야구 선수의 길, 그중에서도 포수의 길을 걷게 됐다.

이후 야구부가 있는 포항제철중학교, 포항제철고등학교로 진학했다. 당시 포항제철고등학교의 경우 유혜정, 권혁과 함께 전성기를 누렸지만 이들이 졸업한 이후에는 최약체 팀으로 전락해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포항제철고등학교를 공수 양면으로 이끈 선수가 바로 강민호였다.

2학년 때 이미 고교 정상급 포수로 인정받았고, 3학년 땐 고교야구 포수 랭킹 1위로 평가받으며 청소년 야구 대표팀의 주전 포수로 낙점됐다. 2004년 발간된 아마야구사랑 스카우팅 리포트는 강민호를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

‘올해 랭킹 1위의 포수. 지난해에는 팀 전력이 약해 빛을 보지 못했으나 올해는 청룡기, 무등기, 황금사자기에 출전해 기량을 선보였다. 어깨가 강해 앉아서도 2루 송구가 가능하고 팀의 리더로서 공수를 잘 조율하는 모습을 보였다.’

기량을 인정받은 강민호는 2004년 신인 드래프트 2차 3라운드 지명(전체 17번)으로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했다. 2017년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하기 전까지 롯데 자이언츠에서만 뛰었으며, 롯데 자이언츠 최다 경기 출장 기록을 갖고 있다. 

프랜차이즈 스타

롯데 자이언츠에 있을 당시 최고의 프랜차이즈 선수로 활약했다. 국가대표 포수 최다 차출인 8회를 기록하며 국가대표 주전 포수로 이름을 떨쳤다. 이대호의 해외 진출 이후 강민호 하면 롯데, 롯데 하면 강민호라는 인식이 있을 만큼 부산 출신이 아니지만 부산의 아이돌이자 롯데 자이언츠 간판선수로 활약했다.

대구에서 이승엽이 대구 도시철도 2호선 대공원역 안내방송에 나오듯, 부산 도시철도 3호선 사직역 안내방송은 강민호의 몫이었다.

입단 초기에는 프로입단 첫해인 2004년엔 겨우 3경기만 출전하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주전 포수였던 최기문이 병역 문제로 2005년 스프링캠프를 참가하지 못하게 되면서 강민호에게 기회가 왔다.

응원만 하던 초등학생
프로야구 선수의 길로

2006년 포수로서 역대 3번째로 전 경기 출전의 위업을 일궈냈다. 포수로서 아직 설익은 기량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플레이하는 모습과 투고타저 시즌임에도 0.251의 타율과 9홈런, 53타점을 기록하며 타자로서도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2008년은 강민호에게 최고의 한 해였다. 베이징올림픽에 출전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 기여했고, 소속팀에서도 시즌 122경기에 출전해 타율 19위, 홈런 공동 5위, 타점 6위를 기록해 팀이 8년 만에 포스트 시즌에 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팀 내 포수 최초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기도 했다.

이후 꾸준히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강민호는 2011, 2012, 2013년 3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13년에는 FA 자격을 얻어 롯데 자이언츠와 총 4년간 보장액 총 75억원(계약금 35억, 연봉 10억)이라는 계약을 체결하며 당시 역대 포수 최고액을 기록했다.

FA 계약 이후에도 2015년 KBO 리그 역사상 포수 최초로 3할 30홈런을 달성했다. 역대 포수 OPS 1위를 기록하는 등 KBO 리그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2016년에는 팀의 주장을 맡았으며 다시 한 번 호성적을 거두었다.

롯데 자이언츠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17년 역시 좋은 성적을 거두며 개인 통산 5번째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이적의 뒷말

강민호는 2017년 시즌 후 FA 자격을 재취득했고, 11월21일 계약금 40억원, 연봉 총액 40억원 등 4년 총액 80억원의 조건으로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했다. 이는 2014년 당시 본인이 기록했던 역대 포수 최고액(4년 75억)을 다시 한 번 갱신한 금액이었다.

롯데 자이언츠의 프런트와 팬들 모두 2차 FA고, 선수 역시 팀에 대한 애정이 넘쳤기에 롯데에 남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터라 삼성 라이온즈로의 이적은 충격적이었다.

롯데와 삼성이 같은 금액인 80억원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삼성으로 이적하자 이와 관련해 수많은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면 계약설’ ‘계약 축소 발표설’ ‘추가 옵션설’ 등이 난무했다. 

강민호는 삼성 라이온즈와의 계약 이후 “15년 동안 뛰었던 팀에서 변화를 준다는 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지만, 삼성에서 나의 가치를 높게 평가해줬다. 다가오는 그 모습에 마음이 흔들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삼성에서 나를 필요로 한다는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협상을 대하는 진정성에서 차이가 좀 있었다. 자세한 이야기는 드릴 수 없지만, 돈 때문에 결정한 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추후 보장 금액인 80억원 이외의 추가 옵션이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옵션을 포함하면 총액이 최대 90억원에 달했다.

이후 KBO는 구단과 선수간의 FA 계약을 투명하게 하기 위해 계약과 연봉에 해당하지 않은 옵션 내용도 의무적으로 보고토록 하고, 계약과 관련된 증빙 서류 제출도 요구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개정했다.

부진과 부활

강민호는 삼성 라이온즈로 이적 후 2월21일 니혼햄과의 첫 번째 실전 연습경기에서 첫 타석부터 비거리 110m 홈런을 치며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첫 번째 시즌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2018년 시즌 강민호는 타율 0.269, 출루율 0.331, 장타율 0.457, OPS 0.788, WAR 1.97, WRC+ 90.2, 22홈런, 71타점이라는 기록을 남겼다. 홈런과 타점은 예년과 비슷한 기록이었고, 오히려 타점은 지난 2년보다 더 증가했다.

하지만 OPS와 WRC+, WAR이 지난 3년에 비해 크게 하락했다. 물론 포수라는 포지션을 감안했을 때는 준수한 성적이었지만, 4년 총액 80억원이라는 거액을 주고 데려온 선수로서는 아쉬운 기록이었다. 

2019년 시즌 강민호는 삼성 라이온즈 선수단 투표에서 최고 득표 수로 주장으로 선임됐다. 선수협 회장 투표에서는 이대호에 이어 득표수 2위를 차지하며 리더십을 인정받는 등 기대를 모았다.

이도 잠시. 2019년 시즌 역시 아쉬운 성적을 남겼다. 초반에는 타격 페이스가 나쁘지 않았으나 6월부터 잦은 부상과 타격 부진이 심해졌다. 9월3일 사직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는 상대팀 선수인 신본기와 잡담을 하다 견제사를 당했다.

이 사건 이후로 많은 팬들과 언론의 질책을 받았으며 구단 자체 벌금도 냈다.

2019년 부진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강민호가 다시 기량을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2020년 시즌을 앞두고 예년과 달리 시즌 전 근황 기사도 없는 등 팬들의 관심과 기대 역시 크게 떨어졌다. 하지만 이듬해 좋은 성적을 거두며 부활의 가능성을 보였다.

시즌 초반에는 1할대 타율을 오가며 부진했으며 부상까지 당했다. 부상 복귀 이후에는 리그에서 손꼽힐 정도로 엄청난 타격감을 보이며 기록을 끌어올렸다. 타율 0.287, 출루율 0.349, 장타율 0.487, OPS 0.836, WAR 3.15, WRC+ 112.6으로 양의지의 뒤를 이어 2020 시즌 KBO리그 포수 WAR 2위를 기록했다.

비록 규정타석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10개 구단 주전 포수 중에서 양의지의 뒤를 이어 OPS 2위, WRC+ 2위를 차지했다. 이는 롯데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17시즌을 넘어서는 성적이었다. 

수비에서도 안정적인 베테랑 포수의 모습을 선보이며 투수진을 이끌었다. 용병들의 KBO 정착에 힘을 보태며 삼성 라이온즈의 외국인 투수 잔혹사를 끝내는 데 크게 기여했다. 주전급 선수들의 부상이 겹치며 정상적인 팀 가동이 힘들었던 삼성 라이온즈였지만 강민호만큼은 부상에서 빠르게 복귀하며 묵묵히 주전의 중심을 지켰다.

제2의 전성기

1985년생 소띠 야구 선수인 강민호는 소의 해인 2021년 맞으면서 “소처럼 일하겠다”는 남다른 각오를 밝혔다. 그리고 현재 그 다짐을 행동으로 옮기고 있다.

6월23일 기준 총 56경기에서 타율 0.330, 7홈런, 36타점, OPS 0.887을 기록하고 있다. 타율 부문에서는 특히 리그 8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16년 롯데 자이언츠 시절 타율 0.323을 기록한 이후 5년 만에 다시 3할대 타율을 기록 중이다.

수비에서도 팀에 기여를 하고 있다. 특히 이번 시즌 에이스로 떠오른 원태인은 강민호의 조언 속에서 성장하는 중이다. 원태인은 8승으로 다승 2위, 평균자책점 2.59로 이 부문 리그 8위에 자리하고 있다. 투수 WAR은 2.56으로 리그 5위를 기록하고 있다.

외국인 투수 뷰캐넌 역시 강민호의 리드와 함께 9승으로 리그 다승 1위, 평균자책점 2.35로 리그 3위, 투수 WAR은 무려 3.69로 리그 1위를 기록 중이다. 

자타공인 한국 주전포수
도쿄서 베이징 영광 재현 

강민호는 마무리 투수 오승환과도 호흡을 맞춰 이번 시즌 21세이브를 합작했다. 오승환은 이 부문 압도적인 1위를 기록 중이다.

오승환은 “강민호 선수는 내가 해외에서 뛰다 와서 처음 접해보는 선수들이 많아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안타를 맞거나 홈런을 맞은 뒤에는 같은 실수를 하지 않으려고 상대 타자의 장단점을 공유를 많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시즌 공수에서 활약이 돋보이면서 강민호는 대한민국 도쿄올림픽 야구 대표팀 최종명단 24인에 선발됐다. 강민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전승 우승 신화를 창조한 멤버였으며, 이후에도 국가대표팀 단골 멤버로 이름을 올렸지만 최근 몇 번의 대회에서는 태극마크를 달지 못했다.

2017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는 무릎 부상으로 엔트리에서 제외됐고, 2018 자카르타·팔렘방아시안게임, 2019년 프리미어12에서도 최종 엔트리에 발탁되지 못했다. 대표팀 내 확실한 에이스가 없는 상황에서 김경문 감독은 베테랑 강민호의 리드 능력에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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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단독] 진주교대 교수 논문 표절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학의 교수 수준은 강의의 질과 비례한다. 학교는 학생에게 양질의 교육을 제공해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과거와 비교해 그 의미가 많이 퇴색했지만 ‘상아탑’으로 불리는 대학의 본질은 여전히 유효하다. 사회에 보탬이 되는 인재 양성, 특히 초등학생을 가르칠 선생님을 배출하는 ‘교대’라면 그 본질을 향해 한 발 더 나아가야 한다. 진주교육대학교(이하 진주교대)에서 2020년 시작된 교수 채용 논란이 6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1932년 공립사범학교로 시작해 100여년 동안 초등교육 발전에 힘을 보태 온 학교로서는 불명예스러운 논란일 수밖에 없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진주교대가 마치 ‘제3자’인 것처럼 멀찍이서 논란을 지켜만 보고 있다는 점이다. 첫 단추 잘못 끼웠나 2020년 10월 진주교대는 미술교육과, 수학교육과 등에 각 1명씩 총 4명의 교수를 채용하기 위한 계획을 수립했다. 2021년 1학기 임용을 목표로 같은 해 11월부터 채용 절차가 시작됐다. 교육공무원법에 명시된 결격사유가 없어야 한다는 일반 요건과 함께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소지자’라는 자격 요건이 붙었다. 전형은 ▲자격 심사 ▲전공 적부 및 전공 심사 ▲경력 심사 ▲면접 심사(심화 과정) ▲면접 심사(최종) 등으로 이뤄졌다. 논란은 미술교육과 교수 채용 과정에서 불거졌다. 진주교대는 채용 계획에서 미술교육과 전공 분야를 ‘도자공예 또는 미술교육(도자공예)’으로 정했다. 도자공예 교수가 정년 퇴임을 앞두고 있어 그 후임자를 뽑기 위한 채용이었다. 문제는 미술교육과에 최종 합격한 A 교수가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일요시사> 취재에 따르면 A 교수는 진주교대에서 초등교육을 전공(학사)했고, 석사 학위는 초등미술 교육(진주교대), 박사학위는 디자인학(광주대) 전공으로 받았다. 미술교육과 채용에 지원하려면 ‘전공 분야별 박사학위’ 즉, 도자 관련 전공 박사학위가 있어야 하는데 그가 자격 요건에 못 미친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A 교수의 전공 적부 논란은 면접 심사 과정에서 언급됐다. 면접에 들어간 한 심사위원이 A 교수의 전공이 채용 분야와 맞지 않는다고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면접 심사(5배수) 대상자 명단’ 자료에 따르면 A 교수를 제외한 4명의 지원자는 학사, 석사, 박사 과정 등에 도자 관련 전공을 이수한 사실이 확인된다. 당시 면접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던 미술교육과 B 교수는 “전공 적부와 관련해 다시 심사해야 한다고 이의를 제기했고 재심사가 이뤄지긴 했다”며 “그런데 첫 번째 전공 적부 전형에 참여했던 위원들이 재심사를 담당했다. 결과가 바뀔 리가 있겠나”라고 한탄했다. A 교수는 2021년 2월 최종 임용됐다. A 교수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그가 쓴 <프리미티비즘의 조형 표현 요소 및 특성을 통한 현대 도자 작품 연구> 논문이 표절 시비에 휘말린 것이다. 광주대학교 대학원 디자인학 전공으로 박사 과정을 밟은 A 교수의 학위 논문이다. 2020년 6월경 논문 심사를 통과한 것으로 파악된다. 진주교대 교수 채용공고가 뜨기 3~4개월 전이다. 채용 과정에서 전공 적부 논란 임용 이후 추가 문제 제기됐다 2021년 3월, B 교수는 A 교수의 연구 부정행위(표절)를 광주대에 제보했다. A 교수가 해당 논문으로 광주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기에 검증도 광주대에서 진행해야 했다. 교육부 훈령 제449호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18조(연구부정행위 검증 절차)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를 검증하려면 예비조사와 본조사, 판정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 절차를 총괄하는 게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위한 위원회 구성과 운영에 대한 심의, 의결 권한을 갖는다. 또 예비조사와 본조사에서 나온 결과를 승인한다. 제보를 받은 광주대는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를 소집했다. 황당한 지점은 광주대에서 A 교수의 논문을 두고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수차례 반복했다는 사실이다. B 교수가 마지막에 나온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결과를 두고 민사소송을 제기한 시점은 2024년 8월로, 처음 제보했던 2021년 3월 이후 무려 3년5개월이나 걸렸다. 그나마도 표절 여부는 여전히 판명 나지 않았다. 교육부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제25조(판정)에 따르면 예비조사 착수 이후 판정까지의 모든 조사는 6개월 이내에 종료해야 한다고 돼있다. 물론 이 기간 안에 조사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 연장도 가능하다. 하지만 광주대의 경우는 ‘절차상 하자’가 연이어 발생했다. 제보자나 피조사자 양측에서 이의를 제기하고 재조사하는 일이 반복됐다. 2021년 8월 광주대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에 대해 만장일치로 표절 판정을 내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A 교수에게 의견 진술권을 부여하지 않은 점이 문제로 떠올랐다. 다시 말해 A 교수가 자신의 논문이 표절이 아니라고 반론할 기회를 주지 않은 것이다. 결국 모든 조사는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2022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가 재구성됐는데 5월 예비조사와 8월 본조사에서 정반대의 결론이 나왔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 논문의 총 1234개 문장 중 425개(34.4%)가 표절로 의심되며 ▲특정인의 논문을 몇 페이지에 걸쳐 연속적으로 사용했고 ▲독창적인 부분을 적시해 달라는 요청에 피조사자가 답변을 회피하며 적극적 방어를 하지 않아 비교 대조표를 그대로 인정할 수밖에 없는 점 등을 근거로 표절로 판정했다. 거듭된 하자 조사만 4번 반면 본조사위원회는 “이 사건 논문은 ‘작품 논문’이라는 특성상 다른 분야와 같은 기준으로 표절 여부를 판단하기 쉽지 않다”며 “작품 논문의 특수성을 감안할 때 논문의 핵심 부분인 작품 그 자체에는 독창성이 인정되므로 논문 자체를 표절이라고 판정할 수 없다”고 했다. 두 번째 조사에서도 또다시 ‘하자’가 발견되면서 판정이 무효로 돌아갔다. B 교수는 피조사자인 A 교수가 심사위원 제척 여부를 이유로 외부위원 명단을 요청했고 실제 공개된 점, 제보자에게 의견 진술의 기회를 주지 않은 점 등의 절차상 하자가 있다고 주장했다. 또 본조사위원회 보고서에 각 당사자의 진술 요지와 조사 결과 등이 반드시 포함돼야 하는데도 이 부분을 빠뜨리면서 실체상 하자도 발생했다고 강조했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 이의를 제기하면서 동시에 법원에 본조사위원회 판정 효력 정지 가처분을 신청했다. 이 건은 피고(광주대 측)가 “원고 측 이의를 받아들이고 기존 본조사 판정을 무효화하고 다시 본조사위원회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하고 B 교수가 소를 취하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2023년 세 번째로 소집된 본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을 표절로 판정했다. 의견서에는 ▲전체 1200여개 문장 중 출처 표시 없이 인용된 문장이 360여개로 과도하게 많은 점 ▲저자의 독창성을 보여주는 부분이 많지 않은 점 ▲논문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4장과 결론에서도 타인의 학술 논문과 내용이 유사하거나 출처 표시가 없는 문장이 다수인 점 등이 근거로 기재됐다. 하지만 이 결과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구성 문제가 대두되면서 전면 무효화됐다. ‘광주대학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설치 운영에 관한 규정’에 따르면 ‘학장, 교무처장 및 산학협력단장은 당연직으로 하고 교무처장이 위원장이 된다’는 조항이 있는데 이를 일부 준수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다시 해를 넘겨 2024년 6월 예비조사위원회는 표절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놨다. 예비조사위원회는 A 교수의 논문이 박사학위 논문 심사를 통과했고, A교수가 KCI 논문 유사도 검사에서 1%의 유사도를 보인 결과서를 제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저작위원회 “유사성 인정” 또 A 교수가 인용 표시를 하지 않은 부분이 타인의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침해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다른 저자의 논문 역시 다른 논문이나 저서를 그대로 따른 것으로 ‘독창적인 아이디어나 창작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눈여겨볼 대목은 표절이 아니라고 판정한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에서 승인했다는 점이다.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본조사를 실시할 필요가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결론을 확정했다. 3년5개월여 동안 진행된 조사에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의 판정 승인이 떨어진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최종 결론이 난 셈이다. 첫 채용 공고 시기로 따지면 4년 가까이 이어진 논란은 B 교수의 반발로 법정에 가게 됐다. B 교수는 2024년 7월 광주대가 자신의 이의 신청을 기각하자 같은 해 8월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학교법인 호심학원을 상대로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 판정 무효확인 등’의 소송을 제기하기에 이른다. 예비조사위원회의 결론을 승인한 부분과 본조사위원회가 불필요하다고 한 부분을 무효로 판단해 달라는 취지였다. 이 과정에서도 절차상 하자가 언급됐다. B 교수는 “광주대 연구윤리위원회 규정에 따르면 연구 부정행위에 대한 충분한 혐의를 인지했을 경우에 예비조사를 생략할 수 있고, 피조사자가 연구 부정행위 사실을 모두 인정할 경우 본조사를 생략하고 바로 판정을 내릴 수 있다”며 “또 연구윤리진실성위원회는 예비조사 결과를 확정해 판정할 근거가 없다. 본조사 결과만 승인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A 교수 논문에 대한 표절 여부도 제대로 다시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비조사와 본조사를 거치는 과정에서 표절 판정이 엇갈린 만큼 저작권법,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 및 한국연구재단이 제시하는 인용 방법 및 논문 표절 기준 등에 따라 A 교수의 논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봐야 한다는 설명이다. 실제 B 교수는 A 교수의 논문을 한국저작권위원회에서 감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한국저작권위원회는 저작권법 제112조에 따라 설립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공공기관이다. 법원이 B 교수의 요청을 받아들이면서 한국저작권위원회는 A 교수가 박사학위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표절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12편의 논문을 비교, 감정했다. 반복된 조사 엇갈린 판정 결국 법정 공방으로 번져 <일요시사>가 입수한 감정 결과서에 따르면 A 교수의 논문은 총 12편의 비교 대상 논문 중 총 11편에 대해 저작권법상 보호를 받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을 상당 부분 복제하고 있다며 저작권법상 실질적인 유사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또 ‘단순히 학술적 아이디어나 이론적 사실을 공유하는 수준을 넘어 선행 저작자들이 자신의 학문적 관점과 예술적 주관에 따라 논리적으로 체계화한 문장 구조, 단어 선택, 서술 방식 등을 그대로 사용했다’ ‘외국 문헌을 연구자 본인의 시각으로 재해석해 요약하거나 번역한 문장의 경우에도 원저작자의 창작적 개성이 반영돼 저작권법의 보호 범위에 포함됨에도 불구하고 A 교수의 논문은 이를 무단으로 복제해 논문에 활용했다’ 등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B 교수는 “저작권법 위반 여부는 표절보다 그 인정 범위가 좁다. 논문의 독창성을 저작권으로 인정해 그 부분을 침해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한국저작권위원회의 결론은 A 교수가 다른 사람이 쓴 논문의 독창성을 인용 없이 가져다 썼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주대의 운영 주체인 호심학원 관계자는 “소송 중인 사안으로 드릴 말씀이 없다”는 답변을 해왔다. 문제는 상황이 여기까지 흘러오는 동안 손 놓고 있는 진주교대의 태도다. A 교수의 박사학위 논문 표절 여부는 진주교대의 교수 채용과 밀접하게 얽혀있다. 채용 공고에서 지원 자격으로 박사학위 소지자가 명시됐던 만큼 논문 표절 여부는 이번 논란의 중요한 요소다. 표절로 판명되면 학위 자체가 취소되는 사례도 있어 A 교수가 진주교대 교수 채용에 아예 지원조차 할 수 없었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진주교대는 ‘강 건너 불구경 하듯’ 광주대와 B 교수 간의 소송 결과가 나오고 그에 따라 광주대가 조치한 뒤에야 행동을 취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진주교대 교무처 관계자는 “(학교가) 손 놓고 있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며 “소송이 진행 중인 만큼 결과를 기다리는 과정에서 법률 검토 등 내부에서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B 교수는 “학교는 학생들의 수업권에는 조금도 관심이 없다. 그저 누가 학교에 책임을 물을까 봐 전전긍긍할 뿐이다. 학교 측에서 했다는 법률 검토도 현재 손 놓고 있는 학교의 행보가 나중에 직무유기로 문제가 될까 알아본 것이라고 한다. 교대는 학생들이 커리큘럼에 따라 수업을 신청해야 하는 구조라 교수에게 문제가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들을 수밖에 없다”며 안타까움을 드러냈다. 학생들만 뒷전 됐다 그러면서 “광주대와의 소송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면 그 결과가 나올 때까지만이라도 A 교수가 수업을 하지 못하도록 제한해야 한다. 공무원의 경우 문제가 발생하면 일단 ‘직위해제’ 조치를 하지 않나. 그런 조치가 필요하다. 초등학교 교사를 길러내는 대학이다. 학교가 그 이름에 걸맞은 행보를 보여야 한다”고 거듭 주장했다. 한편, A 교수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드릴 말씀이 없다”고 답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