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기획> 대선주자 6인 현미경 검증 ⑭친구

  • 김명일 mi737@ilyosisa.co.kr
  • 등록 2012.09.07 15: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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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

[일요시사=김명일 기자] 오는 12월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야의 대선주자들이 치열한 대권레이스를 벌이고 있다. 상대를 이겨야 웃을 수 있는 치열한 레이스에서 최후에 웃게 될 자는 누가 될 것인지에 벌써부터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일요시사>는 새누리당의 대선후보로 확정된 박근혜 후보와 야권 4인(문재인·김두관·손학규·정세균), 비정치권 주자로 안철수 원장을 유력 대선주자로 선정해 세세히 검증하고 있다. 앞서 출생과 정치입문·병역·정치권 지지기반·배우자·재산·화법·학력·롤모델·취미·별명·저서까지 살펴본데 이어 열네 번째로 그들의 '친구'를 살펴봤다.

가족은 하늘이 맺어준 인연이라면 친구는 자신이 직접 선택한 가족이다. 사회 속에서 스스로 선택한 사람이기에 피로 맺어진 자신의 가족보다 어쩌면 자신을 더 많이 닮아 있을지도 모른다. 때문에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친구는 제2의 자신"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선을 3개월 여 앞둔 지금, 후보들의 '친구'를 살펴본다면 그들의 숨겨진 진면목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박근혜 <고 최태민 목사>

"힘들 때 바로 설 수 있도록 도와준 분"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는 주변에 '2인자' 라고 불릴 만한 사람들이 없다. 당 대표 시절부터 지금까지 핵심 측근들은 여러 차례 바뀌었지만 흔히 말하는 2인자를 두진 않았다.

이는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최측근이었던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으로부터 저격당한 사건과 박 전 대통령의 서거 후 그의 측근들이 돌변한 모습에 대한 박 후보의 트라우마에서 기인한다는 게 일반적인 해석이다. 때문에 박 후보는 그 후로 '친구'라고 할 만한 인물을 만들지 못했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과 같은 초등학교를 다녔다는 인연은 있지만 친구라고 하기엔 부족하다. 다만 박 후보와 가장 친분이 두터웠던 인물을 꼽으라면 고 최태민 목사를 꼽을 수 있다. 최 목사는 박 후보의 사생활과 관련해 가장 자주 거론되는 인물이다.

박 후보와 최 목사의 관계에 대해 정치권에선 여러 가지 의혹들이 제기되고 있지만 박 후보는 최 목사에 대해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힘들었을 때 흔들리지 않고 바로설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분"이라고 말했다. 두 사람은 최 목사가 1974년 육영수 사망 직후 박 후보에게 편지를 보낸 것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박 후보는 다음해 최 목사를 청와대로 불러 대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서 최 목사는 박 후보의 외부 활동을 적극 권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 목사는 1975년 '대한구국선교단'을 발족시키고 총재에 취임한다. 박 후보는 명예총재로 추대 됐다. 박 후보가 모친의 사망이라는 큰 슬픔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을 때 최 목사는 박 후보 곁에서 큰 힘이 되어줬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최 목사는 1994년 사망 전까지 사기·횡령·권력형 이권개입 등 끊임없는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이에 대해 박 후보는 "(최 목사와 관련한) 의혹이 많이 제기됐지만 제가 아는 한 실체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며 “앞으로 실체가 나온다면 잘못되고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지금은 실체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한 가지라도 사실이었다면 내가 국회의원이 될 수 있었겠나? 최 목사가 이런 비리가 있다고 공격하고 저와 연결해 '주변사람이 나쁘니까 (제가) 뭘 잘못했다'는 식으로 공격하는데 이는 음해성 네거티브"라고 일축했다.


문재인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소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와의 우정에 대해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라고 말했다. 또 "나는 대통령 자격이 있다. 문재인을 친구로 두었기 때문이다"라는 말로 문 후보를 극찬하기도 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문 후보는 1982년 사법연수원을 차석으로 수료했으나 시위 전력 때문에 판사 임용이 좌절됐다. 그 후 고향으로 돌아온 문 후보는 법무법인 부산에 합류하게 되면서 노 전 대통령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다.

두 사람은 이 인연을 계기로 30년 가까이 가장 친한 친구가 됐다. 문 후보는 참여정부 초대 민정수석을 지냈으나, 녹내장과 고혈압 등 건강악화로 1년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러나 문 후보는 민정수석을 그만두고 네팔 산행 도중 노 전 대통령의 탄핵 소식을 듣고 즉시 귀국해 변호인단을 꾸렸으며, 2005년 다시 청와대에 들어가 시민사회수석, 민정수석을 거쳐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을 지냈다.

한편 노 전 대통령과 문 후보의 지나친 친분은 오해를 낳기도 했다. 문 후보는 야당인 한나라당으로부터 '왕수석'으로 불리며 "왕수석인 문재인 수석의 월권과 청와대의 시스템 경시로 인해 국정 원칙이 파괴됐다"는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그럼에도 문 후보는 청와대에서 근무하던 시절 모든 직원에게 존댓말을 쓰는 것으로 유명했고, 자신의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다양한 의견을 듣고 상황을 명확하게 정리해내는 업무 스타일을 보여 좋은 평가를 받았다.

또한 참여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한 17명 중 문 후보의 경남고등학교 동문은 한 명도 없었는데 문 후보는 아예 동창회에 얼굴을 비추지도 않았고, 고등학교 동창인 고위 공직자가 문 후보의 방에 들렀다가 얼굴도 못 본 채 쫓겨난 적도 있으며,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단 한차례의 식사나 환담 자리도 갖지 않았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문 후보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최고의 원칙주의자"라고 말하기도 했다.

 

손학규 <고 김근태 전 민주통합당 고문>

"민주화 운동의 평생동지" 

손학규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는 지난 7월31일 열린 민주평화국민연대(민평련)의 대선 후보 지지 결정을 위한 투표에서 예상 밖의 1등을 차지했다. 특히 손 후보에게는 한나라당 출신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져 있기도 했다. 민평련은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고문을 따르는 민주통합당 의원과 자치단체장·원외위원장의 모임이다. 민주당내에서 '친노' 다음으로 많은 의원들이 속해 있다. 손 후보의 예상 밖 1위에는 김 고문과의 친분이 주효했다는 평가다.

손 후보와 김 고문은 고교·대학 동창이자 민주화운동의 동지이다. 두 사람은 경기도가 고향인 47년생 동갑내기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손 후보가 시흥에서 김 고문이 소사(지금의 부천)에서 태어났다. 또 다른 공통점은 두 사람의 부친 모두 교장선생이었던 점.

손 후보의 부친은 불의의 차량전복사고로 유명을 달리했고, 김 고문의 부친은 5·16 군사쿠데타로 인해 강제 해직된 뒤 심장판막증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두 사람의 모친이 각기 어려운 집안 살림을 책임진 바 있다는 공통점도 있다.

이러한 공통점 때문인지 두 사람은 가장 절친한 사이가 됐다. 손 후보는 대학에 들어간 후로는 김 고문과 전태일 평전을 쓴 조영래 변호사와 함께 서울대 삼총사로 불리며 학생운동을 주도했다. 그러나 손 후보가 김영삼 전 대통령의 권유로 민자당에 입당해 1993년 초선의원이 된 뒤 2007년 한나라당을 탈당할 때까지 두 사람은 다른 길을 걸었다. 이 때문에 손 후보는 김 고문에게 늘 마음의 빚이 있었다.

민평련 주최 대선후보 초청 간담회에서도 손 후보는 이 같은 심경을 가감 없이 드러냈다. 손 후보는 "이 손학규가 한나라당에 간 것에 대해서는 (김근태 고문이) 못내, 아마 용서 안 했을지도 모른다"며 "김 고문이 마지막으로 '손학규 좋은 사람인데...' 하고 뒷말을 잇지 못하고 돌아가신데 대한 죗값을 갚고자 나왔다"고 출마의 변을 대신했다.


그래서 손 후보 캠프 측은 민평련의 결정을 "쇼킹한 사건"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손 후보의 진심을 민평련이 받아들인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김 고문은 군부 정권에 항거한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인물로서 제15~17대 국회의원, 노무현 정부의 보건복지부 장관, 열린우리당 의장 등을 지냈다.

 

김두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

"40년 지기 절친" 

김두관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와 신학림 전 언론노조위원장은 무려 40년 지기 절친이다.

신 전 위원장은 김 후보와 남해중학교와 남해종고를 함께 다녔다. 그후 한국외국어대를 졸업한 신 전 위원장은 병장으로 군복무를 마친 뒤, 1984년 한국일보사 견습기자 시험을 거쳐 영어신문 <코리아타임스>에서 기자로 만 23년 근무하다 2007년 3월 퇴사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일보사 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으며, 2003년 1월부터 2007년 2월까지 4년1개월 동안 전국언론노동조합 위원장을 지냈다. 김 후보가 남해군수 등을 지내는 동안에는 고향발전과 정치 현안 등에 대해 비교적 대화를 많이 나눈 친구 중의 한 사람이다. 최근에는 김 후보의 출판기념회 행사에 참여하는 등 사실상 김 후보의 대권행보를 측면 지원하고 있다는 평가다.


신 전 위원장은 김 후보와 자신의 어린 시절에 대해 "김두관은 학교 수업이 끝나면 학교에 남아 자율학습을 할 형편도 되지 못했다. 바로 집에 돌아가 낮에 미뤄 둔 농사일을 하고, 소를 비롯한 가축을 먹이는 일을 졸업할 때까지 계속했다. 그래서 김두관과 나는 우리 스스로를 그야말로 '신토불이 촌놈'이라 부른다"며 "지금 돌이켜보면 무엇 하나 제대로 충족되는 것이 없는 초중고등학교 시절이었지만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절이었고 어려움 속에도 꿈을 키운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그는 "김두관은 어린시절 축구와 씨름을 특히 잘했다. 그래서인지 그는 몸과 마음이 모두 건강하다. 용기와 배짱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길러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어린 시절 대자연을 뛰놀며 기른 김 후보의 호연지기는 대통령으로서 꼭 갖춰야할 덕목"이라고 말했다.

 

정세균 <조기준 수원대 교수>

"친구라서 지지하는 거 아닙니다" 

정세균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의 친구 조기준 수원대 교수는 현재 정 후보의 선거대책본부의 정책자문으로 참여하고 있다. 정 후보와 조 교수는 대학동창 사이다. 조 교수는 고려대학교 경제학과를 1975년에 졸업하고 그 해 한국은행에 입행, 33년 동안 근무했다.

한국은행 재직 시 2003년에는 참여정부 인수위원회 전문위원으로 참여해 금융정책 골격을 수립하는데 기여하기도 했다. 정 후보를 지지하는 이유에 대해 조 교수는 "친구니 당연히 지지하겠지라고 생각하는 분은 자신에게 물어보기 바란다"며 "대학동창이라고 아무나, 무조건 지지하게 되느냐고. 오히려 잘 알기에 반대하는 경우가 더 많을 수도 있음을 잘 아시지 않는가"라고 되묻는다.

그는 특히 정 후보가 지난 1997년 한보 비리 당시 재경위 소속 의원 중 유일하게 돈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며, "당시 정 후보는 인터뷰를 통해 '내가 받지 않았다 해서 돈을 받은 다른 의원보다 더 청렴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돈을 받은 의원들은 어떤 면에서는 돈이 많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 현재 우리나라 정치풍토의 희생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돈을 받은 국회의원들을 매도하기 보다는 많은 돈이 필요한 정치풍토를 바로 잡는 일'이라고 말했는데 진정 큰 인물이라고 느꼈다"며 "그 날 이후 나는 친구 정세균을 인생의 큰 스승으로 존경하고 '추종'하게 되었다"고 회고 했다.


안철수<시골의사 박경철>  

"두 사람의 아름다운 동행"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과 박경철 안동 신세계연합클리닉 원장의 인연은 지난 2009년 청춘 콘서트를 함께 진행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처음엔 전혀 일면식도 없던 두 사람이지만 취업난에 허덕이는 지방대생들의 기를 살려줘야겠다는 뜻에서 의기투합했다.

멘토 삼고 싶은 인물 1위. 2030세대 창의성 롤모델 1위를 차지한 안 원장과 개인 투자자들이 만나고 싶은 금융인, 우리나라 트위터 영향력 1위인 박 원장의 만남은 처음부터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해에는 4개월간 5만여 명의 관객을 불러 모을 정도였다.

이 두 사람에게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두 사람 다 의사 출신이면서 의사와 결혼했으며 '시골의사'란 닉네임을 갖고 있는 주식 투자의 귀재와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을 만든 의사 출신 CEO로 변신에 성공했다는 것이다. 박 원장(48)은 안 원장(50)보다 두 살이 어리지만 이러한 공통점을 바탕으로 두 사람은 동갑내기들보다 더 죽이 잘 맞는 '절친'으로 거듭났다.

둘은 특히 콘서트를 진행하면서 서로를 완벽하게 신뢰하게 됐다고 말한다. 박 원장은 당시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어떤가요?'라고 묻기보다 '이렇죠?'라고 대화할 정도로 마음이나 가치관이 비슷하다"고 말했다.

안 원장은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후 유력 대선주자로 급부상했다. 박 원장은 이때부터 안 원장과 다소 거리를 뒀다. 올해 들어선 아예 외국에 나갔다 들어오길 반복하고 있다. 박 원장은 '이민 가버렸다'는 얘기가 돌 정도로 외국에 있고 싶었지만 그러지도 못했다고 한다. "'안철수가 사람 관리 못해서 박경철이도 떠나버렸다'고 소문날까 봐 그랬다"는 거다. 하지만 박 원장이 안 원장의 든든한 지원군임에는 변함이 없다.

한편 박 원장은 의사이자 칼럼니스트, 주식투자전문가, 방송인이다. 1990년대부터 '시골의사'라는 필명으로 주식 사이트에 글을 올려 폭발적인 조회수를 기록했으며,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이란 책으로 인기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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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