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양정철 복귀 시나리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1.23 10:08:57
  • 호수 12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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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 몰린 정권 구원투수로 나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복심’이 잠행을 끝마친 걸까.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물론, 여권의 다른 잠재적 대선주자들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은 이를 양 전 원장의 복귀 신호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 전 원장의 복귀에는 두 가지의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선거 전략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오랜 잠행을 마치고 기지개를 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양 전 원장은 최근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각각 만났다.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두 사람과 전략가인 양 전 원장의 만남은 그 자체로 정치권의 큰 주목을 받았다.

군기반장
전략가로

양 전 원장은 두 사람 외에도 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 김경수 경남도지사, 이광재·김두관 의원 등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들과 만났다. 양 전 원장은 이들과 정국 현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 전 원장의 등장은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년 4월에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열린다. 민주당은 야권과 민심의 지탄을 무릅쓰고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 

보궐선거 결과는 민주당의 지지율뿐만 아니라 이낙연 대표의 대권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이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날 고개를 숙였다. 당시 그는 “당원의 뜻이 모였다고 해서 서울·부산 시정의 공백을 초래하고 보궐선거를 치르게 한 우리의 잘못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유권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후보를 내는 것이 민주당의 책임 있는 자세라는 논리다. 민주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의 성비위로 치러지는 이번 보궐선거에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만약 패배한다면, 이는 이 대표에 대한 책임론으로 번질 수 있다.

양 전 원장은 민주당에서 손꼽히는 선거 전략가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19대 대선 당시 그는 ‘광흥창팀’에서 문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13명으로 꾸려진 광흥창팀은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뛸 때부터 활동한 핵심 참모 그룹이다.

양 전 원장은 광흥창팀의 수장이었다. 그는 광흥창팀에서 선거 전략 수립과 인재 영입, 메시지 작성 등 핵심 실무를 담당했다.

대선을 승리로 이끈 광흥창팀 멤버 중 상당수가 청와대에 입성했다.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신동호 연설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조한기 의전비서관,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문재인정부 청와대 1기 참모진으로 활동했다.

‘잠행’ 끝내고 대선주자 회동
보궐선거 전 새판짜기 돌입?

양 전 원장은 청와대로 가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과 거리를 두겠다”며 미국·일본·뉴질랜드 등에서 집필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지난 2018년 초에 발간한 <세상을 바꾸는 언어>를 통해 해외로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괜히 한국에 있다가 ‘비선 실세’ 따위의 억측이나 오해를 받기 싫었다. 권력과 거리를 두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문) 대통령을 돕는 길이고, 청와대 참모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꺼이 머나먼 유랑의 길에 나선 이유다.”

양 전 원장은 문재인정권의 ‘개국공신’이다. 또 자타공인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정치 입문을 주저하던 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양 전 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는 재단 사무처장을 맡아 그를 보좌했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인 <운명> <사람이 먼저다> 등도 양 원장이 기획한 것으로 전해진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양 전 원장은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금의 ‘공룡여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5월 오랜 잠행을 거듭하던 양 전 원장을 신임 민주연구원장으로 임명했다. 문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해외로 떠난 지 2년 만이었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의 싱크탱크로 선거 전략의 본거지다.

양 전 원장은 지난해 11월 민주당의 총선 준비를 총괄하는 총선기획단 15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기획단은 민주당의 조직, 재정, 홍보, 정책, 전략 등 산하 단위를 구성해 총선의 밑그림을 그리는 조직이다. 

또 양 전 원장은 이해찬 당시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 등이 속한 비공식 ‘5인 협의체’에서 총선 전략을 이끌었다.

양 전 원장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민주당이 영입한 19명의 정치 신인 중 1호 영입인재인 발레리나 출신 척수장애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는 양 전 원장의 작품이라는 후문이다.

거리두기 
끝냈나?

양 원장은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직후 광폭 행보를 보여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서훈 당시 국가정보원장을 시작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회동했다. 양 전 원장과 서 원장의 회동은 야당으로부터 “선거공작이 아니냐”는 뒷말을 낳기도 했다.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 김 지사가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기 전까지 이들은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들이었다. 양 전 원장이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2월에는 그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만났던 사실이 인사청문회 도중 알려지기도 했다.

윤 총장은 이낙연 대표, 이 지사와 함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양 전 원장은 동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양 전 원장은 다수의 여권 대선주자들을 만났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이낙연 대표와 이 지사 등 현 시점에서 유력한 여권 대선주자들과 회동했다. 정치권이 보궐선거를 앞두고 양 전 원장의 등판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다.

양 전 원장이 복귀한다면, 보궐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지난 21대 총선 때처럼 선거를 총괄하는 전략가의 역할뿐 아니라 문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 전 원장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자 교통정리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만찬을 가진 양 전 원장은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임종석 ⓒ청와대

지난 2월에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에게 호남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친문 적통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김경수 지사의 항소심 실형 선고로 대선주자를 잃은 친문 세력이 제3의 대선주자를 추대할 가능성까지 대두됐다.

민주당 전해철·도종환 의원 등 60여명의 친문 현역 의원이 참여한 ‘민주주의 4.0 연구원’의 출범으로 이러한 우려는 당내에서 더욱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이다.

실세 재등장
정치권 긴장

양 전 원장은 최근 여권 대선주자들과의 회동에서 이 같은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련의 선거 국면에서 친문 적통 경쟁을 피하고 ‘원팀’으로 가야 한다는 것.


그는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이번 (21대)총선 성과는 당이 계파, 계보 없이 혼연일체가 됐기에 얻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그런 기조를 이어가려면 (문)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주변에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원팀 기조는 주요 선거에서 민주당의 연승을 이끈 원동력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기조를 앞세워 20대 총선을 시작으로 19대 대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1대 총선까지 내리 4연승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양 전 원장은 대선주자들에게 ‘민주주의 4.0 연구원’ 출범에 대한 우려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부에서 갈등이 불거져 자칫 보궐선거에서 패한다면, 그 타격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까지 이를 수 있다. 야권 광역자치단체장이 문 대통령의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그림이 그려진다. 양 전 원장의 원팀 강조는 문 대통령의 성공적인 임기 종료를 위한 의지로 읽힌다.

양 전 원장은 공식 직함이 없는 상태다. 21대 총선 압승 직후 양 전 원장은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정치권을 떠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선주자를 비롯해 민주당 핵심 인사들과의 회동을 지속할 경우 비선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양 전 원장의 행보가 문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맡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올 연말 내지는 내년 초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교체가 예상된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고성준 기자

노 실장은 앞서 사표를 제출했다가 반려된 바 있다. 당시 사표를 제출한 이유에 대해 청와대 측은 “최근 상황을 종합적으로 책임지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부동산 대책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물음에는 “노 실장이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답했다.

청와대는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의 전월세 등 부동산 대란을 공격 타깃으로 설정하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물론,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들까지 일제히 공세에 나선 상태다.

‘원팀’ 강조 이유는…
사전 정지작업 관측도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회의에서 “부동산 시장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며 “재산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가 침해되면서 부동산 사회주의를 꿈꾸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주택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 차기 대선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역시 ‘임대차 3법 전면 수정’ 등 부동산 정책 대안을 잇따라 제시하고 있다.

여론도 좋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 18일 발표한 11월 2주차(13~16일) 문재인정부 정책수행 평가 결과에 따르면,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긍정평가가 71%로 가장 높은 반면, 주거·부동산 정책이 15%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난 6개월 평균에서도 보건·의료 정책(71%)이 가장 높았고, 주거·부동산 정책(19%)이 가장 낮았다(자세한 조사개요는 한국리서치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양 전 원장은 혼란한 청와대를 수습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문 대통령의 ‘순장조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다. 청와대 참모들과 친문 인사들이 양 전 원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차기 비서실장직을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양 전 원장이 노 실장의 뒤를 이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양 전 원장은 이 같은 주변의 권유를 고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정치권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주변에 꾸준히 밝히고 있다고 한다. 
 

▲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여권에서는 양 전 원장과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비서실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양 전 원장은 이 중 최 수석을 노 실장 후임으로 추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상황이 마땅치 않다. 최 수석은 정무수석으로 취임한 지 3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아 내년 초 인사이동 대상으로 이름을 올리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유력하게 거론됐던 우 전 대사는 대형 로펌 고문인 데다 최근 대학 석좌교수로 취임해 그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재성 추천
그러나…

이 때문에 양 전 원장의 고사에도, 문 대통령이 권한다면 비서실장을 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여전하다. 과연 양 전 원장이 본인의 뜻을 접고, 문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로 향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양정철 개인정보법 위반 무혐의 처분

검찰이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개인정보법 위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양 전 원장은 지난 21대 총선 당시 이동통신사 가입자의 위치정보 자료를 활용한 혐의로 고발된 바 있다.

양 전 원장은 21대 총선 당시 이동통신사 가입자들의 위치정보를 가공한 통계자료 등을 총선 유세 전략에 활용했다는 혐의(개인정보보호법 및 위치정보보호법 위반 등)로 지난 4월 고발당했다.

앞서 민주연구원은 총선을 앞두고 이동통신사에서 받은 빅데이터를 토대로 시간대별 인구 이동,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 등을 파악해 선거에 활용했다.

수사를 진행한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 9월 양 전 원장에 대해 증거 불충분 등으로 검찰에 불기소 의견을 송치했다.

양 전 원장이 활용한 자료가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저촉되는 내용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사건을 송치받은 서울서부지검은 양 전 원장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고발인은 검찰에 항고장을 제출하고 재수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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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검머외 쿠팡’ 막가는 싸가지 행보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고객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쿠팡의 태도가 도마 위에 올랐다. 현재까지 대응만 봐서는 국민은 물론, 정부와도 전면전을 벌일 기세다. 새어나간 정보의 범위와 규모가 ‘역대급’이라는 말이 나올 만큼 최악의 사태임에도 불구하고 쿠팡의 고개는 꺾일 줄 모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뭘 믿고 저러나’ 소리가 나오는 중이다. 쿠팡의 고객 개인정보 유출 사건, 이른바 쿠팡 사태가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났지만 수습은커녕 국민의 화만 돋우고 있다. 쿠팡의 대응 태도가 미지근한 수준을 넘어 뻔뻔한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 김범석 의장은 모습을 비추지 않고 보상안은 꼼수로 가득하다. 국민을 조롱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한 달 만에 고개 숙여 지난해 11월 말 3370만명에 이르는 쿠팡 고객의 개인정보가 ‘탈탈’ 털렸다. 앞서 쿠팡은 4500여건의 고객 정보가 유출됐다고 정부 당국에 신고했지만 2주 만에 그 수치는 7500배까지 늘어났다. 전 국민의 65% 수준이며 지난해 4월 SKT 개인정보 유출 사태 범위(2300만명)를 훌쩍 넘는 사태였다. 쿠팡은 이커머스 시장에서 독점적 지위를 갖고 있다. 대형마트 등이 규제에 막혀 뒷걸음질 칠 때 쿠팡은 로켓배송으로 시장을 싹쓸이했다. 전날 저녁에 주문해도 새벽이면 물건이 문 앞에 와 있는 총알 배송에 소비자는 쿠팡으로 몰렸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던 물류센터는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쿠팡이 국민의 실생활에 얼마나 스며들어있는지를 바로 보여줬다. 쿠팡 사태가 터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글로벌 투자은행 JP모건은 “쿠팡이 경쟁자가 없는 시장 지위를 누리고 있고 한국 고객이 데이터 유출에 덜 민감해 보인다”며 “잠재적 고객의 이탈은 제한적일 것”이라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놨다. 그래서일까? 쿠팡은 역대 최악의 정보 유출 사태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도 제대로 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대통령이 언급하고 정부 차원의 TF가 꾸려졌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힘겨루기’를 하는 태도를 보이는 중이다. 최근에는 정부의 반박에도 자체 조사 결과를 고집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행보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쿠팡은 지난달 25일 ‘정보 유출자는 3300만개 계정에 접근했으나 실제 저장한 정보는 3000여개에 불과하며 제3자 유출 정황은 없는 등 피해가 미미하다’는 내용의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그러면서 “(유출자는) 개인정보 유출에 대한 언론 보도를 접한 이후 저장했던 정보를 모두 삭제하고 범죄에 사용한 노트북을 파손해 하천에 던졌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잠수부들이 벽돌에 담긴 쿠팡 가방에 든 노트북을 하천에서 회수했고 유출자가 클라우드 계정에 등록한 일련번호와 해당 노트북의 일련번호가 일치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이어 “범행에 사용된 PC 와 노트북 등 모든 장치를 회수해 안전하게 확보했고 글로벌 보안업체들의 조사 결과도 진술 내용과 같았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 매출 90% 나오는데 정보 유출 태도·대응 낙제점 쿠팡이 발표한 대로라면 고객 정보 유출 피해 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든다. 또 유출자와 접촉해 장치를 확보했으니 추가 피해는 없다. 전체적으로 사건이 축소되는 것이다. 쿠팡의 발표에 정부는 강하게 반발했다. 쿠팡의 조사 내용은 사전에 정부와 어떤 논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진행됐다는 설명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정보 유출 종류와 규모, 경위 등은 민관합동조사단이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쿠팡이 발표한 내용은 조사단에 의해 확인된 바 없다”고 밝혔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과도 “쿠팡 측이 제출한 진술서와 노트북 등 증거물을 분석 중”이라며 “사실관계를 면밀하게 확인하겠다”고 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쿠팡은 정부의 지시를 받아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경찰은 사전 협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사실관계가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쿠팡은 지난달 26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정부의 지시에 따라 수주간 진행한 조사였다”고 선을 그었다. 같은 달 9일 정부가 쿠팡 측에 유출자와 접촉할 것을 제안했고 14일 쿠팡은 유출자를 처음 만난 뒤 해당 사실을 정부에 보고했으며 16일에는 정부 지시에 따라 유출자의 데스크톱과 하드드라이브를 정부에 제공했다는 게 쿠팡 측 주장이다. 하지만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도 “쿠팡의 입장문 형식의 보도자료에서 정부와 협력했다는 내용 중 일부 국정원으로 추정되는 부분도 사실과 다르거나 왜곡된 부분이 있다”고 반박했다. 쿠팡이 자체 조사와 관련해 정부와 사실 공방을 벌이고 있는 와중에 김범석 쿠팡 의장이 사건 발생 한 달여 만에 사과했다. 그동안 박대준 전 대표가 청문회 등에서 뭇매를 맞고 있는 동안에도 김 의장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랬던 그가 정부의 압박이 거세지자 처음으로 입을 연 것이다. 5만원 상당 속사정은? 김 의장은 지난달 28일 “쿠팡의 창업자이자 이사회 의장으로서, 쿠팡 전체 임직원을 대표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저희의 책임으로 발생한 이번 데이터 유출로 인해 많은 분께서 자신의 개인정보가 안전하지 않다는 두려움과 불안을 느꼈고 사고 초기부터 명확하게 직접적으로 소통하지 못한 점으로 인해 큰 좌절감과 실망을 안겨 드렸다”며 “사고 직후 미흡했던 초기 대응과 소통 부족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김 의장은 한 달 만에야 입을 연 부분에 대해 “무엇보다 제 사과가 늦었다”면서 “모든 사실이 확인된 이후에 공개적으로 소통하고 사과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이는 잘못된 판단”이라고 고개를 숙였다. 비판과 질책을 겸허히 받아들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자체 조사 논란에 대해서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김 의장은 “쿠팡은 조사 초기부터 정부에 전면적으로 협력해 왔다”며 “일련의 과정에서 많은 오정보가 확산하는 상황에서도 정부의 ‘기밀 유지’ 요청을 엄격히 준수했다”고 주장했다. 김 의장의 사과는 국회 6개 상임위원회가 참여하는 대규모 연석 청문회를 이틀 앞두고 나왔다. 정부가 범부처 TF를 과기부 총리 산하로 확대하고 다각도로 압수수색과 조사를 진행하는 등 대응 수위를 높이는 상황에 압박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그러나 사과와는 별개로 김 의장은 청문회에 불출석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장뿐만 아니라 동생인 김유석 쿠팡 부사장, 강한승 전 쿠팡 대표 등이 불출석 사유서를 제출하면서 쿠팡에 대한 부정적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여기에 쿠팡이 내놓은 보상안도 도마 위에 올랐다. 쿠팡은 지난달 29일 고객 정보 유출 사태와 관련해 총 1조6850억원 규모의 보상안을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전체적으로 보면 1인당 5만원 상당이다. 하지만 세부적으로 뜯어보면 쿠팡의 ‘꼼수’가 보인다. 청문회는 나 몰라라 보상안은 ▲쿠팡 전 상품 구매 이용권 5000원 ▲쿠팡이츠 5000원 ▲쿠팡트래블 2만원 ▲명품 플랫폼 알럭스 2만원 등으로 구성됐다. 소비자들은 보상금의 상당 부분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 등 평소 이용 빈도가 낮은 서비스 이용권 위주로 구성된 점을 지적했다. 실제 이번 보상안을 통해 쿠팡트래블과 알럭스를 처음 알게 됐다는 소비자도 있다. 시민단체도 쿠팡의 보상안에 반발했다. 참여연대는 “1인당 5만원 보상이라고 했지만 현금이 아닌 구매 이용권으로 사실상 강제 소비를 유도하는 방식”이라며 “보상이 아니라 매출 확대를 위한 마케팅에 불과하다”는 내용의 논평을 발표했다. 쿠팡의 행보는 사사건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국민을 조롱하고 정부를 기만하는 게 아니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쿠팡이 미국 시장에 상장한 기업이지만 매출 대부분을 우리나라에서 벌어들이는 상황인데도 이 같은 태도를 보이는 것에 분노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회원 탈퇴, 보상안 거부, 집단소송 참여 움직임이 거세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심지어 이재명 대통령도 쿠팡 사태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쿠팡 사태가 일어나고 사흘 뒤인 지난달 2일 “쿠팡 때문에 국민의 걱정이 많다”면서 “사고 원인을 규명하고 엄중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러면서 “관계부처는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을 강화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도 현실화하는 등 실질적인 실효적 대책에 나서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뒤늦은 사과·꼼수 보상안 도마 위에 이래서 정치권 인사 영입했나? 의혹 12일에도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반복되는 것에 대해 “경제 제재가 너무 약해서 규정 위반을 밥 먹듯이 한다”며 “앞으로는 규정을 위반해 국민에게 피해를 주면 엄청난 경제 제재를 당해서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규정을 위반하면 난리가 나야 하는 것 아니냐”며 “그런데 위반해도 태도를 보면 ‘그래서 어쩔 건데’ 이런 느낌이 든다”고 지적했다. 정부도 쿠팡에 강력하게 경고하며 전방위 대응을 예고했다. 실제로 같은 달 29일, 배경훈 부총리 겸 과기부 장관 주재로 ‘쿠팡 사태 범정부TF’ 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과기부와 경찰청, 개인정보위원회, 금융위원회 등은 역할을 분담해 신속한 조사를 진행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배 부총리는 “쿠팡이 국내 고객 정보 3000만건 이상을 유출한 것은 명백한 국내법 위반 사항으로 정부는 쿠팡이 관련 법령을 위반한 사실이 확인될 경우, 다른 기업과 동일하게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조치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황에 따라서는 영업정지 여부도 판단할 것으로 보인다. 사방에서 몰아치는 압박에도 쿠팡이 연달아 이상한 행보를 보이자 ‘믿는 구석’이 있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됐다. 그 정도로 쿠팡의 현재 대응 방식을 이해할 수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일각에서는 쿠팡이 미국 기업인 것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증시가 쿠팡의 모든 결정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실제 쿠팡이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한 다음 날 미국 뉴욕 증시에서 쿠팡의 주가는 6% 급등했다. 국내에서는 쿠팡의 ‘셀프 조사’에 분통을 터트리고 있는데 미국 시장에는 호재로 작용한 것이다. 쿠팡이 정치·국회 인사를 대거 영입한 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정치권 인사를 영입해 쿠팡 관련 각종 논란을 틀어막고 있다는 의혹이다. 해당 의혹은 ‘강력 경고’ ‘전방위적 대응’ 등의 수사를 사용하고 있지만 실제 조사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나오는 배경으로도 꼽힌다. 변죽 울리다 무사통과? 실제 최근 원내대표직에서 사퇴한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이 국정감사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 박대준 전 쿠팡 대표 및 대관 총괄과 오찬을 한 사실이 드러났다. 당시 쿠팡이 일용직 퇴직금 미지급 사건에서 검찰 외압 의혹, 물류센터·배송 기사의 과로 및 산재 사망 문제가 제기된 상황이었던 만큼 적절성 논란이 불거졌다. 김 의원은 그달 16일 자신의 SNS에 “공개 일정이고 적어도 5명이 (함께) 식사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만남보다 대화의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니냐? 참고로 지난해 7월16일 쿠팡 물류센터도 방문했었다”고 적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