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 양정철 복귀 시나리오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1.23 10:08:57
  • 호수 129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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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너 몰린 정권 구원투수로 나서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복심’이 잠행을 끝마친 걸까.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최근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물론, 여권의 다른 잠재적 대선주자들과 만난 것으로 전해졌다. 정치권은 이를 양 전 원장의 복귀 신호로 보고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양 전 원장의 복귀에는 두 가지의 시나리오가 존재한다.
 

▲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

‘선거 전략가’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이 오랜 잠행을 마치고 기지개를 켰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관계자들의 말을 종합하면, 양 전 원장은 최근 민주당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각각 만났다. 여권의 가장 유력한 대선주자인 두 사람과 전략가인 양 전 원장의 만남은 그 자체로 정치권의 큰 주목을 받았다.

군기반장
전략가로

양 전 원장은 두 사람 외에도 정세균 국무총리,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 김경수 경남도지사, 이광재·김두관 의원 등 여권의 잠재적 대선주자들과 만났다. 양 전 원장은 이들과 정국 현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 전 원장의 등장은 정치적으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년 4월에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가 열린다. 민주당은 야권과 민심의 지탄을 무릅쓰고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 

보궐선거 결과는 민주당의 지지율뿐만 아니라 이낙연 대표의 대권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이 대표는 민주당이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날 고개를 숙였다. 당시 그는 “당원의 뜻이 모였다고 해서 서울·부산 시정의 공백을 초래하고 보궐선거를 치르게 한 우리의 잘못이 면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잘못은 인정하지만, 유권자의 선택권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후보를 내는 것이 민주당의 책임 있는 자세라는 논리다. 민주당 소속 광역자치단체장의 성비위로 치러지는 이번 보궐선거에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내기로 결정한 상황에서 만약 패배한다면, 이는 이 대표에 대한 책임론으로 번질 수 있다.

양 전 원장은 민주당에서 손꼽히는 선거 전략가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19대 대선 당시 그는 ‘광흥창팀’에서 문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13명으로 꾸려진 광흥창팀은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뛸 때부터 활동한 핵심 참모 그룹이다.

양 전 원장은 광흥창팀의 수장이었다. 그는 광흥창팀에서 선거 전략 수립과 인재 영입, 메시지 작성 등 핵심 실무를 담당했다.

대선을 승리로 이끈 광흥창팀 멤버 중 상당수가 청와대에 입성했다.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신동호 연설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조한기 의전비서관,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이들은 문재인정부 청와대 1기 참모진으로 활동했다.

‘잠행’ 끝내고 대선주자 회동
보궐선거 전 새판짜기 돌입?

양 전 원장은 청와대로 가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과 거리를 두겠다”며 미국·일본·뉴질랜드 등에서 집필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지난 2018년 초에 발간한 <세상을 바꾸는 언어>를 통해 해외로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괜히 한국에 있다가 ‘비선 실세’ 따위의 억측이나 오해를 받기 싫었다. 권력과 거리를 두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문) 대통령을 돕는 길이고, 청와대 참모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꺼이 머나먼 유랑의 길에 나선 이유다.”

양 전 원장은 문재인정권의 ‘개국공신’이다. 또 자타공인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정치 입문을 주저하던 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양 전 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는 재단 사무처장을 맡아 그를 보좌했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인 <운명> <사람이 먼저다> 등도 양 원장이 기획한 것으로 전해진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양 전 원장은 21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지금의 ‘공룡여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5월 오랜 잠행을 거듭하던 양 전 원장을 신임 민주연구원장으로 임명했다. 문 대통령을 당선시키고 해외로 떠난 지 2년 만이었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의 싱크탱크로 선거 전략의 본거지다.

양 전 원장은 지난해 11월 민주당의 총선 준비를 총괄하는 총선기획단 15인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기획단은 민주당의 조직, 재정, 홍보, 정책, 전략 등 산하 단위를 구성해 총선의 밑그림을 그리는 조직이다. 

또 양 전 원장은 이해찬 당시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 등이 속한 비공식 ‘5인 협의체’에서 총선 전략을 이끌었다.

양 전 원장의 역할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에서 활동했다. 민주당이 영입한 19명의 정치 신인 중 1호 영입인재인 발레리나 출신 척수장애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는 양 전 원장의 작품이라는 후문이다.

거리두기 
끝냈나?

양 원장은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직후 광폭 행보를 보여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바 있다. 서훈 당시 국가정보원장을 시작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회동했다. 양 전 원장과 서 원장의 회동은 야당으로부터 “선거공작이 아니냐”는 뒷말을 낳기도 했다.

박 시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기 전까지, 김 지사가 항소심에서 실형을 선고받기 전까지 이들은 여권의 유력한 대선주자들이었다. 양 전 원장이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2월에는 그가 윤석열 검찰총장을 만났던 사실이 인사청문회 도중 알려지기도 했다.

윤 총장은 이낙연 대표, 이 지사와 함께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거론되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양 전 원장은 동일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양 전 원장은 다수의 여권 대선주자들을 만났다. 내년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는 이낙연 대표와 이 지사 등 현 시점에서 유력한 여권 대선주자들과 회동했다. 정치권이 보궐선거를 앞두고 양 전 원장의 등판 가능성을 높게 보는 이유다.

양 전 원장이 복귀한다면, 보궐선거에서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 지난 21대 총선 때처럼 선거를 총괄하는 전략가의 역할뿐 아니라 문 대통령의 의중을 전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예상된다.

양 전 원장은 21대 총선을 앞두고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자 교통정리에 나섰다. 지난해 11월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만찬을 가진 양 전 원장은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의 요소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 임종석 ⓒ청와대

지난 2월에는 임종석 대통령비서실 외교안보특별보좌관에게 호남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보궐선거를 앞두고 민주당 내부에서는 친문 적통 경쟁이 치열하게 전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설상가상으로 김경수 지사의 항소심 실형 선고로 대선주자를 잃은 친문 세력이 제3의 대선주자를 추대할 가능성까지 대두됐다.

민주당 전해철·도종환 의원 등 60여명의 친문 현역 의원이 참여한 ‘민주주의 4.0 연구원’의 출범으로 이러한 우려는 당내에서 더욱 거세게 일고 있는 상황이다.

실세 재등장
정치권 긴장

양 전 원장은 최근 여권 대선주자들과의 회동에서 이 같은 우려를 전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일련의 선거 국면에서 친문 적통 경쟁을 피하고 ‘원팀’으로 가야 한다는 것.

그는 민주당 원내대표 경선을 앞두고 “이번 (21대)총선 성과는 당이 계파, 계보 없이 혼연일체가 됐기에 얻을 수 있었다”며 “앞으로도 그런 기조를 이어가려면 (문)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들이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주변에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원팀 기조는 주요 선거에서 민주당의 연승을 이끈 원동력이다. 민주당은 이 같은 기조를 앞세워 20대 총선을 시작으로 19대 대선, 제7회 전국동시지방선거, 21대 총선까지 내리 4연승을 달성하는 데 성공했다. 양 전 원장은 대선주자들에게 ‘민주주의 4.0 연구원’ 출범에 대한 우려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 내부에서 갈등이 불거져 자칫 보궐선거에서 패한다면, 그 타격은 문 대통령의 국정운영에까지 이를 수 있다. 야권 광역자치단체장이 문 대통령의 정책에 사사건건 제동을 거는 그림이 그려진다. 양 전 원장의 원팀 강조는 문 대통령의 성공적인 임기 종료를 위한 의지로 읽힌다.

양 전 원장은 공식 직함이 없는 상태다. 21대 총선 압승 직후 양 전 원장은 ‘백의종군’을 선언하며 정치권을 떠났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선주자를 비롯해 민주당 핵심 인사들과의 회동을 지속할 경우 비선 논란에 휩싸일 수 있다. 

이 때문에 정치권 일각에서는 양 전 원장의 행보가 문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실장을 맡기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올 연말 내지는 내년 초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교체가 예상된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고성준 기자

노 실장은 앞서 사표를 제출했다가 반려된 바 있다. 당시 사표를 제출한 이유에 대해 청와대 측은 “최근 상황을 종합적으로 책임지겠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부동산 대책 등에 대한 비판 여론을 의식한 것인가”라는 기자들의 물음에는 “노 실장이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이라고 답했다.

청와대는 분위기 쇄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국민의힘은 문재인정부의 전월세 등 부동산 대란을 공격 타깃으로 설정하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물론, 야권의 유력 대선주자들까지 일제히 공세에 나선 상태다.

‘원팀’ 강조 이유는…
사전 정지작업 관측도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지난 16일 회의에서 “부동산 시장의 근간이 무너지고 있다”며 “재산권과 거주 이전의 자유가 침해되면서 부동산 사회주의를 꿈꾸는 게 아닌가 하는 비판도 나온다”고 지적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주택 문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 차기 대선행보에 시동을 걸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 역시 ‘임대차 3법 전면 수정’ 등 부동산 정책 대안을 잇따라 제시하고 있다.

여론도 좋지 않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리서치’가 지난 18일 발표한 11월 2주차(13~16일) 문재인정부 정책수행 평가 결과에 따르면, 보건·의료 정책에 대한 긍정평가가 71%로 가장 높은 반면, 주거·부동산 정책이 15%로 최하위를 기록했다.

지난 6개월 평균에서도 보건·의료 정책(71%)이 가장 높았고, 주거·부동산 정책(19%)이 가장 낮았다(자세한 조사개요는 한국리서치 및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양 전 원장은 혼란한 청와대를 수습할 수 있는 힘을 지녔다. 문 대통령의 ‘순장조 비서실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유다. 청와대 참모들과 친문 인사들이 양 전 원장에게 직간접적으로 차기 비서실장직을 권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양 전 원장이 노 실장의 뒤를 이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양 전 원장은 이 같은 주변의 권유를 고사하고 있다. 문 대통령 임기가 끝날 때까지는 정치권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의사를 주변에 꾸준히 밝히고 있다고 한다. 
 

▲ 노영민 전 대통령비서실장

여권에서는 양 전 원장과 우윤근 전 주러시아 대사, 최재성 청와대 정무수석 등이 비서실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양 전 원장은 이 중 최 수석을 노 실장 후임으로 추천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상황이 마땅치 않다. 최 수석은 정무수석으로 취임한 지 3개월여밖에 지나지 않아 내년 초 인사이동 대상으로 이름을 올리기에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유력하게 거론됐던 우 전 대사는 대형 로펌 고문인 데다 최근 대학 석좌교수로 취임해 그 가능성이 낮다는 것이 중론이다.

최재성 추천
그러나…

이 때문에 양 전 원장의 고사에도, 문 대통령이 권한다면 비서실장을 맡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여전하다. 과연 양 전 원장이 본인의 뜻을 접고, 문 대통령이 있는 청와대로 향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양정철 개인정보법 위반 무혐의 처분

검찰이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의 개인정보법 위반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양 전 원장은 지난 21대 총선 당시 이동통신사 가입자의 위치정보 자료를 활용한 혐의로 고발된 바 있다.

양 전 원장은 21대 총선 당시 이동통신사 가입자들의 위치정보를 가공한 통계자료 등을 총선 유세 전략에 활용했다는 혐의(개인정보보호법 및 위치정보보호법 위반 등)로 지난 4월 고발당했다.

앞서 민주연구원은 총선을 앞두고 이동통신사에서 받은 빅데이터를 토대로 시간대별 인구 이동, 유동 인구가 많은 지역 등을 파악해 선거에 활용했다.

수사를 진행한 서울 마포경찰서는 지난 9월 양 전 원장에 대해 증거 불충분 등으로 검찰에 불기소 의견을 송치했다.

양 전 원장이 활용한 자료가 개인정보보호법 등에 저촉되는 내용이 아니라는 판단에서다.

사건을 송치받은 서울서부지검은 양 전 원장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고발인은 검찰에 항고장을 제출하고 재수사를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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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단독] 경찰 압수 비트코인 ‘1400억’ 털린 내막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경찰이 압수한 비트코인 1700여개 중 1400개 이상이 사라졌다. 전체 피해액은 최소 1300억원에서 최대 1500억원 수준으로 추산된다. 충격적인 것은 탈취 시점과 방식, 그리고 접속 기기까지 모두 경찰 수사 과정과 맞물려 있다는 점이다. 단순 해킹으로 보기 어려운 정황이 잇따라 확인되면서 사건의 성격이 ‘내부 연루 의혹’으로 급격히 기울고 있다. 사건의 출발은 2021년 11월 광주경찰청 반부패경제범죄수사대의 불법 도박사이트 수사였다. 광주청 수사과 소속 경사 김모씨 등은 범죄수익은닉 혐의 압수수색영장을 집행하며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을 받은 비트세븐 거래소 대표 이모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에 접속했다. 6분 간격 연결고리 당시 경찰은 피의자 이씨의 블록체인닷컴 지갑 계정에 접속해 비트코인 1798개를 확인했다. 경찰은 같은 날 오전 11시58분부터 약 40분간 27차례에 걸쳐 135개를 이체하며 1차 압수를 진행했다. 이후 접속이 차단됐다고 주장했지만, 불과 몇 시간 뒤인 11월10일 새벽과 오후, 경찰청 사무실에서 추가로 185개를 더 이체했다. 총 320개가 ‘정식 압수’됐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2021년 11월10일 오후 8시28분. 김 경사는 압수된 계정의 연동 이메일을 자신의 구글 계정으로 변경한다. 그리고 불과 12분 뒤인 8시40분부터, 지갑에 남아 있던 비트코인 1477개가 195차례에 걸쳐 외부 주소로 빠져나갔다. 압수 직후, 그것도 계정 권한이 경찰에게 완전히 넘어간 직후 벌어진 대규모 탈취였다. 블록체인닷컴이 제출한 IP 로그는 더욱 노골적이다. 11월9일부터 10일 오후 8시32분까지 모두 한국 IP를 사용한 수사관 접속 기록이다. 이후 마지막 김 경사의 접속 6분 뒤, 미국·우크라이나·캐나다 IP를 통한 접속이 연속으로 발생한다. VPN을 이용한 김 경사로 의심되는 ‘탈취자’의 접속이다. 수사관 로그인 → 6분 후 탈취 로그인 → 즉시 대량 이체로 이어진 것이다. 외부 해커의 우연한 침입이라 보기에는 타이밍이 지나치게 촘촘하고 정교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디바이스 로그다. 블록체인닷컴 측이 제공한 자료에 따르면, 해당 계정에는 단 두 종류의 기기만 기록돼있다. 하나는 윈도우 기반 데스크톱, 다른 하나는 안드로이드 모바일이다. 이 중 안드로이드 접속은 단 한 번, 우크라이나 IP를 통해 이뤄졌다. 나머지 탈취 접속은 모두 윈도우 데스크톱이다. 문제는 그 윈도우 기기다. 로그에는 수사관이 사용한 윈도우 기기 외에 다른 데스크톱 기록이 존재하지 않는다. 즉, 탈취자가 사용한 윈도우 PC가 별도 기기였다면 반드시 추가 로그가 남아야 하지만 그마저도 없다. 탈취 접속에 사용된 윈도우 기기가 수사관이 사용한 기기와 동일하다는 것이다. 수사관 접속 후 VPN 유출 시작 경찰이 사용한 기기가 쓰였다? 탈취 당시 상황도 석연치 않다. 계정 연동 이메일이 김 경사의 개인 계정으로 바뀐 직후 탈취가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최소 198건의 출금이 발생했다. 정상이라면 동일 수량의 알림 이메일이 수신돼야 한다. 그러나 김 경사의 이메일에는 단 7건만 남아 있다. 나머지 191건은 흔적조차 없다. 더욱이 김 경사는 당시 사무실에 남아 있었고, 탈취 시간 동안 계정 재접속을 시도했다고 진술했다. 그럼에도 본인 이메일로 전송된 출금 알림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단순 실수로 보기엔 삭제 규모가 과도하다. 선택적 삭제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수사 협조 전문가 박모씨의 분석 자료에서도 이해하기 어려운 정황이 발견됐다. 박씨는 11월11일 저녁, 탈취 자금 흐름을 분석한 노드 자료를 김 경사에게 전달했다. 그런데 해당 자료에는 그 시점 기준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 트랜잭션이 포함돼있었다. 실제 해당 거래는 다음 날 새벽에야 블록체인에 기록된 것으로 확인된다. 블록체인 구조상 발생하지 않은 거래를 사전에 확인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해당 자료가 사후 수정됐거나, 탈취 경로를 사전에 알고 있었던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이씨는 사건 발생 한 달 뒤 탈취 사실을 인지하고 검찰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후 추가 진정까지 제출했지만, 수사는 2024년까지 사실상 진행되지 않았다. 그러다 뒤늦게 수사가 이뤄졌고, 결과는 반전이었다. 탈취 의혹은 규명되지 않은 채, 오히려 피해자가 허위 고발을 했다며 무고 혐의로 기소된 것이다. 국가 수사기관이 압수한 비트코인이 경찰 손을 거친 직후 대량으로 사라졌으나, 코인의 주인은 구속되고 경찰은 의심에서 벗어났다. 단순 해킹이라 보기에는 시점과 방식, 그리고 이후 수사 흐름까지 모든 것이 비정상적이다. 법원도 이미 “누군가 계정에 접근해 비트코인을 이체했다”고 판단했고, 검찰은 수사 정보 유출 의혹까지 제기하고 경찰을 상대로 압수수색을 벌였다. 정작 탈취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무고 혐의로 법정에 서 있는 상황이다. ‘누가 훔쳤는가’라는 본질적 질문은 여전히 답을 얻지 못한 채 사건은 미궁으로 빠졌다. 알림 191건 흔적 없이… 경찰은 1일 전송 한도 때문에 압수가 며칠에 걸쳐 이뤄지는 사이, 이씨 측이 이를 빼돌렸다고 판단했다. 반면 이씨 측은 정반대 주장을 펼쳤다. 계정 접근권한을 사실상 장악한 수사기관 내부에서 탈취가 이뤄졌을 가능성을 제기한 것이다. 사건은 단순 범죄수익 환수 문제를 넘어 ‘압수된 국가 관리 자산이 어떻게 사라졌는가’라는 근본적 의문으로 확장됐다. 광주지법 항소심은 도박공간 개설과 범죄수익은닉 혐의 자체는 유죄로 인정하면서도, 사라진 1476개 비트코인에 대해서는 이씨의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누군가 이씨의 블록체인 계정에 접근해 당시까지 남아있던 비트코인 대부분을 다른 지갑으로 이체해 갔다”고 판시했다. 이는 곧 해당 비트코인의 이동 주체가 이씨로 특정되지 않았음을 의미한다. 그 결과 1심에서 600억원대에 달했던 불법 도박장 개설 혐의 등에 대한 추징금은 항소심에서 15억원 수준으로 대폭 줄어들었다. 이 판결은 중요한 함의를 갖는다. 법원이 최소한 “외부 혹은 제3자의 개입 가능성”을 인정했다는 점에서다. 즉, 단순히 피고인이 숨기거나 빼돌린 사건이 아니라, 압수된 계정에 대한 추가 접근이 있었고 실제 자산 이동이 발생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았다. 검찰 역시 이 사건을 단순히 피고인 책임으로만 보지 않았다. 2023년 11월 검찰은 광주경찰청과 서부경찰서를 상대로 압수수색을 실시했다. 수사 정보가 외부로 유출됐을 가능성과 압수 과정의 적법성을 확인하기 위한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사건 브로커와 거액 자금 흐름까지 거론되며 사건은 더욱 복잡한 양상으로 번졌다. 단순한 도박사이트 수사가 아니라 수사 기밀, 로비, 가상자산 이동이 뒤엉킨 구조적 사건으로 확장된 것이다. 최근 공판에서는 또 다른 쟁점이 드러났다. 증인으로 출석한 전문가 박씨 측 인물은 사라진 비트코인의 이동 경로를 분석한 결과 특정 거래소 계열 지갑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확인된다며, 도박사이트 운영 세력이 직접 자금을 이동시켰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의심받는 수사관 반면 이씨 측은 사건 직후 오히려 검찰에 진정을 제기하며 탈취 의혹을 먼저 제기한 점을 강조하며, 스스로 범행을 저질렀다면 그런 행동을 할 이유가 없다고 반박했다. 또 블록체인닷컴 측 자료에 따르면 ‘탈취자’는 VPN을 이용해 해외 IP로 접속했으며, 일부 접속은 데스크톱 환경에서 이뤄진 것으로 분석됐다. 만약 이 분석이 사실이라면, 압수 과정에서 사용된 기기와 탈취에 사용된 기기가 동일하거나 밀접하게 연관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다만 이 같은 기술적 분석은 현재까지 법원에서 확정된 사실이 아니라는 점에서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메일 기록 역시 의문을 키운다. 탈취 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출금이 발생했다면 이에 상응하는 알림 메일이 존재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일부 기록만 남아 있고 상당수는 확인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온다. 만약 실제로 알림이 발송됐음에도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면, 이는 단순 오류가 아니라 의도적 삭제 가능성까지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이 사건은 세 가지 축으로 압축된다. 첫째, 경찰이 압수한 가상자산이 왜 완전히 확보되지 못했는가. 둘째, 압수 이후 누가 해당 계정에 접근해 자산을 이동시켰는가. 셋째, 그 과정에서 수사기관 내부 혹은 외부 세력의 개입이 있었는가다. 상식적으로 국가가 압수한 자산은 그 어떤 개인소유보다도 안전하게 보호돼야 한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는 정반대 결과가 나타났다. 압수 직후 대규모 자산이 사라졌고, 책임 소재는 규명되지 않았으며,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오히려 피고인 신분이 됐다. 계정 변경 직후 사라져 이메일 변경 직후 작업 이 사건이 단순한 형사사건을 넘어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만약 압수된 자산조차 안전하게 관리되지 못한다면, 국가 형사사법 시스템에 대한 신뢰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특히 가상자산과 같이 추적과 관리가 기술적으로 가능한 자산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는 점은 더욱 심각하다. 현재까지 드러난 정황만 놓고 보면, 이 사건은 ‘탈취’가 아니라 ‘내부 유출’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케 한다. 한편, 지난달 15일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인물은 범행 주체가 경찰이 아니라 탈취범으로 지목된 이씨와 그의 아버지일 가능성이 크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광주지방법원 형사10단독 유형웅 판사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 등을 받고 있는 이씨 부녀에 대한 속행 공판기일 재판을 열었다. 이씨 부녀는 2021년 11월 경찰 압수수색이 진행되던 중 자신의 블록체인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76개를 빼돌린 혐의로 기소됐다. 검사는 이날 A씨를 증인으로 신청해 신문했다. A씨는 과거 이씨 측 부탁을 받고 비트코인 환전에 도움 준 인물이다. 현재는 코인 관련 별도 사기 혐의로 보석 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A씨는 이날 검사의 질문을 받고 “이씨 지갑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00여개의 행방을 쫓기 위해 거래 내역을 분석한 결과, 비트세븐 거래소와 연결된 지갑이 다수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어 “당시 경찰은 일일 전송 제한량이 걸려 있어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을 여러 날에 걸쳐 경찰 지갑으로 옮겨 압수했는데, 같은 시기 탈취범은 순식간에 이씨 지갑에 있던 비트코인 1400여개를 빼간 것으로 나타났다”고 증언했다. 그러면서 “경찰과 달리 이씨 지갑에서 순식간에 다량의 비트코인을 탈취해 간 점, 탈취된 비트코인 이동 경로에 비트세븐 거래소 지갑이 활용된 점을 고려할 때 탈취범은 비트세븐 거래소를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며 사실상 이씨 부녀를 겨냥했다. 구속된 코인 주인 A씨가 언급한 비트세븐 거래소는 정상적인 가상자산 거래소가 아니라, 이씨 부녀가 해외에 서버를 두고 운영했던 도박사이트라는 주장이다. 비트세븐 거래소와 관련해 이씨는 도박공간 개설 혐의 등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확정받았다. 다만 해당 재판에서 사라진 비트코인 1476개에 관한 추징(현 시세 기준 약 1620억원) 책임은 인정되지 않아, 검찰은 범죄수익은닉 혐의를 적용해 이씨를 부친과 함께 추가 기소했다. A씨의 증언에 대해 이씨 부녀 측은 즉각 반박하는 대신 별도 의견서를 재판부에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