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충무로 여제’ 김혜수 “말 없는 손길이 주는 희망이란…”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1986년, 10대에 데뷔한 김혜수는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화려한 조명과 의상, 김혜수만의 멋있는 외형에 단단한 내공까지 겸비했다. 김혜수를 두고 ‘충무로 여제’라 부르는 이유는 그가 증명한 결과가 수없이 많아서다. 그런 김혜수가 연약함을 표현했다. 인간 김혜수가 여러 고통으로 인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있을 때 만난 영화 <내가 죽던 날>을 통해서다. 우울감을 기저에 깔고 마음의 병에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을 완벽에 가깝게 그려낸 김혜수를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 김혜수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고 늘 밝았다. 목소리도 크고, 당당했다. 연예인 사이에서도 연예인이었고,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주목받았다. 배우 김혜수에게는 그런 특별함이 있었다. 

화려한 조명
미친 존재감 

화려한 스튜어디스(<짝>)였으며, 화투판의 꽃(<타짜>)이기도 했다. 도둑들 사이에서도 두려움을 주는 ‘어마어마한 썅년’(<도둑들>)이었고, 기에서 밀리지 않는 당돌한 계약직(<직장의 신>)이었다. 또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생존한 변호사(<하이에나>)였다.

그가 맡은 인물뿐 아니라 실제 김혜수는 강했다. 논문 표절 시비가 붙었을 때 대중 앞에 서서 당당히 사과문을 읽는 정공법으로 대중의 마음을 풀어내기도 했다. 또 오랜 기간 맡은 청룡영화상 MC를 맡았을 때는 ‘한류스타’처럼 배우에게 걸맞지 않은 구태의연한 문구는 지우고 배우가 연기한 작품의 캐릭터에 맞게 소개하는 배려도 갖췄다. 

여타 연예인들의 롤 모델이자, 가요·영화·드라마계를 통틀어 감사드리고 싶은 선배로 자주 지목되는 배우였다.


인정을 받거나, 비판받을 때도 언제나 자신감과 당당함을 겸비했던 그가, 다소 숨을 죽인 채 등장했다. 지난 6일 영화 <내가 죽던 날>을 통해 만난 김혜수는 이전의 느낌과 사뭇 달랐다. 

활달하기보다 침착하고 차분했으며, <내가 죽던 날>에서 연기한 현수처럼 화장기도 옅었다. 회색빛 후드티를 입었고, 목소리는 평소보다 두 톤 정도 낮았다. 마치 김혜수가 아닌 현수를 만난 듯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어떤 상처나 고통을 겪잖아요. 절망적인 순간을 마주하는데, 그게 꼭 제 잘못이 아닐 때도 있어요. 마치 영화 속 현수나 세진(노정의 분)처럼요. 제목을 보는데 확 찌르더라고요. 대본에 담긴 공감 가는 대사와 스토리가 정말 매력적이었고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꼭 제 얘기 같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내가 죽던 날>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현수는 이전의 김혜수가 맡았던 인물들의 톤과 다르다. 연약하다. “나 정도면 괜찮게 사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과의 괴리감은 컸다. 

오랫동안 믿었던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피운 것도 모자라 없는 사실마저 조작해 현수를 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위자료를 최소화하려는 공작이다. 능력 있는 형사에서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들의 조롱을 받는, 비루한 처지가 된다. 

절망 휩싸여 있을 때 만난 <내가 죽던 날>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주인공 나와 닮았다”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과거 이야기를 꺼낼 힘조차 없다. 자신을 공격하는 남편과 싸워야 하는데 싸울 의지조차 없다. 


업무를 보던 중 사고를 일으킨 것도 모자라,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인 채 이상 행동을 보여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자지도 못한다. 겨우 잠을 청했는데, 꿈속에서는 자신의 시체가 보인다.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는데 마음을 알아봐 주기보다, 힘을 내야 한다고 닦달하는 친구가 고마우면서도 때론 야속하다. 

그러던 중 복직 전에 일 하나만 처리해달라는 선배의 제안을 받는다. 흔쾌히 승낙한다.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안받은 일은 한 여고생이 외딴 섬에서 자살한 사건의 보고서를 쓰는 것. 
 

▲ 배우 김혜수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고등학생 세진의 집이 파탄 났다. 아버지는 마약 밀매범이었고, 오빠는 마약중독자였다. 우애가 깊었던 새엄마는 경찰 조사 후 잠적했다. 세진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경찰은 세진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외딴 섬으로 이주시켰다. 

세진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유서도 있고 자살로 추정할만한 정황이 많다. 자살로 보고하면 되는데, 어딘가 찝찝하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세진은 자신과 달리 살려는 의지가 여기저기서 보였기 때문이다. 제발 세진이 살아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세진의 삶에 집착한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엿본다. 

이 영화에서 김혜수가 맡은 현수의 역할은 상당히 크다. 관객은 현수의 눈을 통해 이야기를 따라간다. 관객을 사건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다 후반부에는 현수의 감정에 이입시켜야 하는 중책이다. 사건 중심의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인물 감정 중심의 이야기로 바뀌는 변주를 매끄럽게 풀어내야 했다.

이게 실패하면 사실 영화의 존재가 사라진다. 아울러 우울감이 기저에 있을 뿐 아니라, 감정의 진폭도 꽤 큰 편이다. 

25년 차 베테랑 배우 김혜수에게도 현수라는 인물은 난제에 가까웠다. 

두려움
부담감

“어떤 촬영장이든 두려움과 부담감이 있어요. <내가 죽던 날>은 특별히 부담됐던 것 같아요. 제가 시나리오를 보면서 느낀 게 있거든요. 그걸 관객도 느끼도록 제대로 연기하고 싶었어요. 현수를 따라가다 보면 사건이 보이고, 그러다 현수의 감정에 이입해야 하는 점이 쉽지는 않았어요.”

영화를 보고 나면 김혜수의 연기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어떤 작품에서든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해내는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이번 영화에서는 특히 영화 속 인물 자체가 된 듯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무의식조차도 김혜수는 현수에 가까웠다. 연기한 모든 부분이 엄청난 흡입력을 갖는다. 중후반부에는 강한 여운까지 남긴다. 

“제가 시나리오를 보면서 커다란 감정을 정확하게 느끼는 것과 그걸 구현해내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촬영장에서의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일의 컨디션도 있고요. 최대한 부차적인 것들을 걷어내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죠.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건의 진실보다는 세진과 현수의 감정이에요.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세진과 현수의 마음이 나타나야 해요. 화장이 옅고 제 얼굴이 푸석한 것은 당연하고, 작은 것까지 모두 현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김혜수에게 있어 필모그래피에 해당하는 모든 작품이 특별하지 않겠냐마는, <내가 죽던 날>에는 그에게 유독 더 특별한 점이 있다. 인간 김혜수에게 있어 정말 힘든 시기에 만나 힐링이 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 배우 김혜수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김혜수는 지난해에 ‘빚투’ 논란에 휘말렸다. 모친이 지인들로부터 13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빌리고 갚지 않은 일로 인해서다. 차근차근 일을 정리해 갔기 때문에 큰 파장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 김혜수의 마음에는 상처가 깊게 패였다. 현수의 대사처럼 “나 괜찮지 않은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연예인으로 사는 삶을 포기할까도 고민했단다. 

굳이 털어놓고 싶지 않았을 이야기이기도 할 텐데, 김혜수는 담담하게 꺼내놨다. 

“작품이라는 게 운명적인 부분이 있어요. 기묘하게도 저 스스로 굉장히 절망감에 휩싸여있을 때 만난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제 것이었던 것 같아요. 현수와 세진이 처한 상황이 꼭 제가 처한 상황 같았어요. 현수나 세진이나 모르고 당하잖아요. 저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난 정말 몰랐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될 줄은’이라고요. 그렇게 저 역시 잘 몰랐고, 그래서 벌 받는다고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모르는 것으로 책임을 피할 수도 없어요. 책임도 져야 하고요.”

어머니 빚투
은퇴 고민도

영화 속에서 현수가 친구에게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억지로 잠이 들면 꼭 꿈에서 내 시체가 나와. 저걸 누가 좀 치워졌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치워주지 않아”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 대사는 김혜수가 직접 썼다. 애초 대본에 없었지만, 현수가 처한 상황이 김혜수와 너무 부합해 기꺼이 자신의 속 얘기를 꺼내놓은 것이다. 

“꿈에서 제 시체가 보이는데 아무도 안 치워주는 거예요. ‘치워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괴로웠던 순간에 반복적으로 꿨던 꿈이에요. 당시 제가 심리적으로 그런 상태라는 걸 알았죠. 처음부터 그 신에 그 대사를 쓸 생각이었던 건 아니었는데, 연기하다 보니까 그 대사가 현수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한다고 생각했어요. 저처럼 현수도 불안정한 상황이고, 대사에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이잖아요. 원래 있던 신에 그 부분을 추가한 거죠.”


짧은 대화 속에서 그가 겪은 고통이 전달됐다. 적지 않은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낸 듯했다. 

“저도 위기가 참 많았죠. 많았어요. 그렇다고 그런 위기를 늘 이겨내고 극복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극복하려고 뭘 했다기보다는, 해야 할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거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되는 건데, 그 순간은 힘들죠. 대내외적으로 위기가 있었어요. 그래도 늘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긍정적이라서가 아니라 그 정도는 괜찮았어요. 그런데 작년에 처음으로 ‘괜찮지 않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현수 역시도 그 지점에서 출발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럼에도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힘든 시간을 이겨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사람이 참 이기적인 것 같아요.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누가 용기를 주고 힘내라고 해도 사실 소용이 없어요. 들리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지속해서 저에게 힘을 주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제 곁에 있어 주면서, 제가 스스로 저를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준 친구들이었어요. 저는 운이 좋은 거죠.”

덕은 쌓은 만큼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힘든 시기에 친구들의 기운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는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보인 위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주변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김혜수의 위로를 받았다고 소개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25년 베테랑 “촬영장은 여전히 두렵다” 
“작은 손길이 가진 힘, 누구나 행복하길”

“누군가 저로 인해 도움을 받았다고 하면 감사한 거죠. 어떤 의도를 갖고 그 사람을 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진심으로 대했어요.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상대를 대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저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제가 감사하죠.”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누군가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고, 그 힘으로 용기를 얻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내가 죽던 날>은 누군가가 내민 작은 위로의 손길이 얼마나 강력한 생명력을 갖는지를 설명한다. 영화가 가진 묵직한 여운은 김혜수에게도 위로를 줬다. 
 

▲ 배우 김혜수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상처를 받았을 때 모두가 극복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영화가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잖아요. 말 없는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강력한 희망을 주게 되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힘든 순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그것을 극복했다기보다는 그 시간을 잘 버텨낸 것일 수도 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순천댁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극복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자신과 닮은 상처를 보듬어주면서 누군가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잖아요. 그러면서 본인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요. 저 역시도 그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면서 잘 버텨낸 것 같기도 해요.”

힘들었던 순간 만난 <내가 죽던 날>로 인해 김혜수는 동년배 이정은을 만났다. 자신을 포용해주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의미라고 표현했다. 

“이정은 배우에게 인간적인 면을 많이 봤어요. 어떤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무언가 아픔을 품어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언의 손길을 내밀어줬어요. 매우 특별할 뿐만 아니라 처음 겪는 일이었어요.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는다는 거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에요. 실제 우리 영화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 작품을 한 것이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와요.”

김혜수는 코로나19 시국에도 SBS 드라마 <하이에나>와 영화 <내가 죽던 날>을 찍으며 바쁜 나날을 보내왔다. 그러나 그의 일상에도 코로나19에 의한 힘겨운 시간들이 존재했다.

작은 손길
큰 생명력

“코로나19 때문에 저도 집에만 있었어요. 파자마만 입고, 게으르게 있는 편이에요. 추해요. 최근에 대중음악 강의를 들었어요. 각 시대 유명 예술가들의 음악을 온전히 듣고 감상하면서 토론하는 자리였어요. 일상적으로는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었어요. 그나마 다행이었죠. 다들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내실 거예요. 잘 버티면 지나갈 거예요. 우리는 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순천댁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손길을 내밀다 보면 이 어려운 시국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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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