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초대석> ‘충무로 여제’ 김혜수 “말 없는 손길이 주는 희망이란…”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1986년, 10대에 데뷔한 김혜수는 날아다니는 나비였다. 화려한 조명과 의상, 김혜수만의 멋있는 외형에 단단한 내공까지 겸비했다. 김혜수를 두고 ‘충무로 여제’라 부르는 이유는 그가 증명한 결과가 수없이 많아서다. 그런 김혜수가 연약함을 표현했다. 인간 김혜수가 여러 고통으로 인해 감정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있을 때 만난 영화 <내가 죽던 날>을 통해서다. 우울감을 기저에 깔고 마음의 병에 고통스러워하는 인물을 완벽에 가깝게 그려낸 김혜수를 만나 소회를 들어봤다.
 

▲ 김혜수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언제나 웃는 얼굴이었고 늘 밝았다. 목소리도 크고, 당당했다. 연예인 사이에서도 연예인이었고, 어디를 가도 누구를 만나도 주목받았다. 배우 김혜수에게는 그런 특별함이 있었다. 

화려한 조명
미친 존재감 

화려한 스튜어디스(<짝>)였으며, 화투판의 꽃(<타짜>)이기도 했다. 도둑들 사이에서도 두려움을 주는 ‘어마어마한 썅년’(<도둑들>)이었고, 기에서 밀리지 않는 당돌한 계약직(<직장의 신>)이었다. 또 남자들의 세계에서 당당히 생존한 변호사(<하이에나>)였다.

그가 맡은 인물뿐 아니라 실제 김혜수는 강했다. 논문 표절 시비가 붙었을 때 대중 앞에 서서 당당히 사과문을 읽는 정공법으로 대중의 마음을 풀어내기도 했다. 또 오랜 기간 맡은 청룡영화상 MC를 맡았을 때는 ‘한류스타’처럼 배우에게 걸맞지 않은 구태의연한 문구는 지우고 배우가 연기한 작품의 캐릭터에 맞게 소개하는 배려도 갖췄다. 

여타 연예인들의 롤 모델이자, 가요·영화·드라마계를 통틀어 감사드리고 싶은 선배로 자주 지목되는 배우였다.


인정을 받거나, 비판받을 때도 언제나 자신감과 당당함을 겸비했던 그가, 다소 숨을 죽인 채 등장했다. 지난 6일 영화 <내가 죽던 날>을 통해 만난 김혜수는 이전의 느낌과 사뭇 달랐다. 

활달하기보다 침착하고 차분했으며, <내가 죽던 날>에서 연기한 현수처럼 화장기도 옅었다. 회색빛 후드티를 입었고, 목소리는 평소보다 두 톤 정도 낮았다. 마치 김혜수가 아닌 현수를 만난 듯했다.

“우리가 살다 보면 어떤 상처나 고통을 겪잖아요. 절망적인 순간을 마주하는데, 그게 꼭 제 잘못이 아닐 때도 있어요. 마치 영화 속 현수나 세진(노정의 분)처럼요. 제목을 보는데 확 찌르더라고요. 대본에 담긴 공감 가는 대사와 스토리가 정말 매력적이었고요. 개인적으로 힘든 시기가 있었는데, 꼭 제 얘기 같더라고요. 그래서 시작하게 됐어요.”

<내가 죽던 날>에서 김혜수가 연기한 현수는 이전의 김혜수가 맡았던 인물들의 톤과 다르다. 연약하다. “나 정도면 괜찮게 사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과의 괴리감은 컸다. 

오랫동안 믿었던 남편은 다른 여자와 바람피운 것도 모자라 없는 사실마저 조작해 현수를 더 구렁텅이로 몰아넣는다. 위자료를 최소화하려는 공작이다. 능력 있는 형사에서 하루아침에 다른 사람들의 조롱을 받는, 비루한 처지가 된다. 

절망 휩싸여 있을 때 만난 <내가 죽던 날>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주인공 나와 닮았다”

변호사를 선임했지만, 과거 이야기를 꺼낼 힘조차 없다. 자신을 공격하는 남편과 싸워야 하는데 싸울 의지조차 없다. 


업무를 보던 중 사고를 일으킨 것도 모자라, 극도의 불안감에 휩싸인 채 이상 행동을 보여 징계위원회에 회부됐다. 수면제가 없으면 잠을 자지도 못한다. 겨우 잠을 청했는데, 꿈속에서는 자신의 시체가 보인다. 가까스로 살아가고 있는데 마음을 알아봐 주기보다, 힘을 내야 한다고 닦달하는 친구가 고마우면서도 때론 야속하다. 

그러던 중 복직 전에 일 하나만 처리해달라는 선배의 제안을 받는다. 흔쾌히 승낙한다. 일이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죽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제안받은 일은 한 여고생이 외딴 섬에서 자살한 사건의 보고서를 쓰는 것. 
 

▲ 배우 김혜수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고등학생 세진의 집이 파탄 났다. 아버지는 마약 밀매범이었고, 오빠는 마약중독자였다. 우애가 깊었던 새엄마는 경찰 조사 후 잠적했다. 세진의 곁에는 아무도 없다. 경찰은 세진의 신변을 보호하기 위해 외딴 섬으로 이주시켰다. 

세진의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지만, 유서도 있고 자살로 추정할만한 정황이 많다. 자살로 보고하면 되는데, 어딘가 찝찝하다. 자신과 같은 상황에 처한 세진은 자신과 달리 살려는 의지가 여기저기서 보였기 때문이다. 제발 세진이 살아있었으면 하는 마음에 세진의 삶에 집착한다. 그리고 새로운 희망을 엿본다. 

이 영화에서 김혜수가 맡은 현수의 역할은 상당히 크다. 관객은 현수의 눈을 통해 이야기를 따라간다. 관객을 사건 안으로 끌어들이는 역할을 하다 후반부에는 현수의 감정에 이입시켜야 하는 중책이다. 사건 중심의 이야기가 갑작스럽게 인물 감정 중심의 이야기로 바뀌는 변주를 매끄럽게 풀어내야 했다.

이게 실패하면 사실 영화의 존재가 사라진다. 아울러 우울감이 기저에 있을 뿐 아니라, 감정의 진폭도 꽤 큰 편이다. 

25년 차 베테랑 배우 김혜수에게도 현수라는 인물은 난제에 가까웠다. 

두려움
부담감

“어떤 촬영장이든 두려움과 부담감이 있어요. <내가 죽던 날>은 특별히 부담됐던 것 같아요. 제가 시나리오를 보면서 느낀 게 있거든요. 그걸 관객도 느끼도록 제대로 연기하고 싶었어요. 현수를 따라가다 보면 사건이 보이고, 그러다 현수의 감정에 이입해야 하는 점이 쉽지는 않았어요.”

영화를 보고 나면 김혜수의 연기에 감탄하게 된다. 그는 어떤 작품에서든 주어진 역할 이상을 해내는 최고의 연기를 선보였다. 이번 영화에서는 특히 영화 속 인물 자체가 된 듯한 연기를 보여주었다. 무의식조차도 김혜수는 현수에 가까웠다. 연기한 모든 부분이 엄청난 흡입력을 갖는다. 중후반부에는 강한 여운까지 남긴다. 

“제가 시나리오를 보면서 커다란 감정을 정확하게 느끼는 것과 그걸 구현해내는 것은 다른 문제인 것 같아요. 촬영장에서의 변수가 워낙 많기 때문이기도 하고, 당일의 컨디션도 있고요. 최대한 부차적인 것들을 걷어내는 데 집중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죠. 영화에서 제일 중요한 건 사건의 진실보다는 세진과 현수의 감정이에요. 살고자 하는 의지를 가진 세진과 현수의 마음이 나타나야 해요. 화장이 옅고 제 얼굴이 푸석한 것은 당연하고, 작은 것까지 모두 현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김혜수에게 있어 필모그래피에 해당하는 모든 작품이 특별하지 않겠냐마는, <내가 죽던 날>에는 그에게 유독 더 특별한 점이 있다. 인간 김혜수에게 있어 정말 힘든 시기에 만나 힐링이 된 작품이기 때문이다. 
 

▲ 배우 김혜수 ⓒ워너브러더스코리아

김혜수는 지난해에 ‘빚투’ 논란에 휘말렸다. 모친이 지인들로부터 13억원에 달하는 거액을 빌리고 갚지 않은 일로 인해서다. 차근차근 일을 정리해 갔기 때문에 큰 파장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뿐 김혜수의 마음에는 상처가 깊게 패였다. 현수의 대사처럼 “나 괜찮지 않은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연예인으로 사는 삶을 포기할까도 고민했단다. 

굳이 털어놓고 싶지 않았을 이야기이기도 할 텐데, 김혜수는 담담하게 꺼내놨다. 

“작품이라는 게 운명적인 부분이 있어요. 기묘하게도 저 스스로 굉장히 절망감에 휩싸여있을 때 만난 작품이에요. 이 작품은 제 것이었던 것 같아요. 현수와 세진이 처한 상황이 꼭 제가 처한 상황 같았어요. 현수나 세진이나 모르고 당하잖아요. 저도 똑같은 말을 한 적이 있어요. ‘난 정말 몰랐다. 내 인생이 이렇게 될 줄은’이라고요. 그렇게 저 역시 잘 몰랐고, 그래서 벌 받는다고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모르는 것으로 책임을 피할 수도 없어요. 책임도 져야 하고요.”

어머니 빚투
은퇴 고민도

영화 속에서 현수가 친구에게 토로하는 장면이 있다. “억지로 잠이 들면 꼭 꿈에서 내 시체가 나와. 저걸 누가 좀 치워졌으면 좋겠는데, 아무도 치워주지 않아”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 대사는 김혜수가 직접 썼다. 애초 대본에 없었지만, 현수가 처한 상황이 김혜수와 너무 부합해 기꺼이 자신의 속 얘기를 꺼내놓은 것이다. 

“꿈에서 제 시체가 보이는데 아무도 안 치워주는 거예요. ‘치워주지’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괴로웠던 순간에 반복적으로 꿨던 꿈이에요. 당시 제가 심리적으로 그런 상태라는 걸 알았죠. 처음부터 그 신에 그 대사를 쓸 생각이었던 건 아니었는데, 연기하다 보니까 그 대사가 현수의 감정을 정확히 표현한다고 생각했어요. 저처럼 현수도 불안정한 상황이고, 대사에서 무의식적으로 드러나는 감정이잖아요. 원래 있던 신에 그 부분을 추가한 거죠.”


짧은 대화 속에서 그가 겪은 고통이 전달됐다. 적지 않은 시간을 고통스럽게 보낸 듯했다. 

“저도 위기가 참 많았죠. 많았어요. 그렇다고 그런 위기를 늘 이겨내고 극복한 건 아닌 것 같아요. 극복하려고 뭘 했다기보다는, 해야 할 것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거죠. 그렇게 시간이 지나가고 나면 되는 건데, 그 순간은 힘들죠. 대내외적으로 위기가 있었어요. 그래도 늘 괜찮다고 생각했어요. 긍정적이라서가 아니라 그 정도는 괜찮았어요. 그런데 작년에 처음으로 ‘괜찮지 않구나’라는 걸 느꼈어요. 그리고 현수 역시도 그 지점에서 출발한 게 아닌가 싶었어요.”

그럼에도 이렇게 담담하게 말할 수 있는 건 그 힘든 시간을 이겨냈기 때문에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사람이 참 이기적인 것 같아요. 고통스러운 순간에는 누가 용기를 주고 힘내라고 해도 사실 소용이 없어요. 들리지 않거든요. 그럼에도 지속해서 저에게 힘을 주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제 곁에 있어 주면서, 제가 스스로 저를 포기하지 않도록 지켜준 친구들이었어요. 저는 운이 좋은 거죠.”

덕은 쌓은 만큼 돌아온다는 말이 있다. 힘든 시기에 친구들의 기운을 받을 수 있었던 것에는 그가 주위 사람들에게 보인 위로가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주변 배우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김혜수의 위로를 받았다고 소개한 사람들이 적지 않다. 

25년 베테랑 “촬영장은 여전히 두렵다” 
“작은 손길이 가진 힘, 누구나 행복하길”

“누군가 저로 인해 도움을 받았다고 하면 감사한 거죠. 어떤 의도를 갖고 그 사람을 대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그냥 진심으로 대했어요. 고맙다는 말을 들으려고 상대를 대한 건 아닌 거 같아요. 저에게 감사함을 느끼는 것만으로도 제가 감사하죠.”

전혀 다른 삶을 살던 누군가로부터 좋은 영향을 받고, 그 힘으로 용기를 얻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내가 죽던 날>은 누군가가 내민 작은 위로의 손길이 얼마나 강력한 생명력을 갖는지를 설명한다. 영화가 가진 묵직한 여운은 김혜수에게도 위로를 줬다. 
 

▲ 배우 김혜수 ⓒ워너브러더스코리아

“상처를 받았을 때 모두가 극복하는 건 아닌 거 같아요. 영화가 회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잖아요. 말 없는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강력한 희망을 주게 되는지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저뿐만 아니라 모두에게 힘든 순간들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모두가 그것을 극복했다기보다는 그 시간을 잘 버텨낸 것일 수도 있어요. 저 역시 마찬가지고요. 순천댁은 자신이 받은 상처를 극복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자신과 닮은 상처를 보듬어주면서 누군가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잖아요. 그러면서 본인의 상처를 치유하기도 하고요. 저 역시도 그 메시지를 마음에 새기면서 잘 버텨낸 것 같기도 해요.”

힘들었던 순간 만난 <내가 죽던 날>로 인해 김혜수는 동년배 이정은을 만났다. 자신을 포용해주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의미라고 표현했다. 

“이정은 배우에게 인간적인 면을 많이 봤어요. 어떤 특별한 말을 하지 않아도, 무언가 아픔을 품어주는 느낌을 받았어요. 무언의 손길을 내밀어줬어요. 매우 특별할 뿐만 아니라 처음 겪는 일이었어요. 누군가로부터 위로를 받는다는 거요. 정말 소중한 경험이에요. 실제 우리 영화의 결과와 상관없이, 이 작품을 한 것이 저에게는 특별한 의미로 다가와요.”

김혜수는 코로나19 시국에도 SBS 드라마 <하이에나>와 영화 <내가 죽던 날>을 찍으며 바쁜 나날을 보내왔다. 그러나 그의 일상에도 코로나19에 의한 힘겨운 시간들이 존재했다.

작은 손길
큰 생명력

“코로나19 때문에 저도 집에만 있었어요. 파자마만 입고, 게으르게 있는 편이에요. 추해요. 최근에 대중음악 강의를 들었어요. 각 시대 유명 예술가들의 음악을 온전히 듣고 감상하면서 토론하는 자리였어요. 일상적으로는 굉장히 흥분되는 일이었어요. 그나마 다행이었죠. 다들 여러모로 힘든 시기를 보내실 거예요. 잘 버티면 지나갈 거예요. 우리는 다 행복해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순천댁처럼 주위 사람들에게 작은 손길을 내밀다 보면 이 어려운 시국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