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대항마 ‘정세균 대망론’ 추적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6.01 10:46:52
  • 호수 1273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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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정부 2인자끼리 붙을까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대항마를 찾아라. 대권 레이스서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의원의 독주가 이어지는 가운데, 정세균 국무총리가 대항마로 급부상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일요시사>가 심상치 않은 ‘정세균 대망론’을 쫓았다.
 

▲ 정세균 전 국무총리 ⓒ문병희 기자

“대선 생각이 있느냐”는 박병석 당시 청문위원의 질의에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는 “전혀 그런 생각을 갖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총리직에 충실하겠느냐”는 추가 질문에도 정 후보자는 “그렇다”고 말했다. 

두 거대 잠룡
친문 선택은?

지난 1월7일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장’서 나온 질의응답 중 일부다. 전임 국무총리이자 대권주자로 불리는 이낙연 전 총리의 경우처럼, 정 후보자가 총리직을 마치고 대권 레이스에 도전하는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청문회를 통과한 정 후보자는 지난 1월14일 제46대 국무총리로 임명됐다.

정치권은 정 총리의 대권 도전 가능성을 높게 본다. 청문회서 대권 도전을 묻는 질의가 나온 이유도, 그 때문이다. 박지원 전 의원은 지난해 12월18일 정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으로부터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후 가진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서 “(정 총리는)대권의 꿈을 갖고 오래전부터 준비해왔다”고 말했다. 또 총리로 가더라도 대권의 꿈을 접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다. 

21대 총선이 끝났다. 높은 차기 대권주자 선호도를 보였던 이낙연 전 국무총리가 서울 종로에서 당선됐다. 종로는 그동안 ‘정치1번지’라 불리며, 차기 대권을 위한 징검다리 역할을 해왔다. 20대 국회 때까지 종로는 정 총리의 지역구였다.


종로 승리 후 이 총리는 차기 대권 레이스서 독주 중이다. <데일리안>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알앤써치’에 의뢰해 지난달 25일부터 26일까지 이틀간 조사하고 27일 발표한 차기 정치지도자 적합도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 전 총리는 38.4%로 1위를 달렸다. 

2위는 17.4%를 기록한 이재명 경기도지사. 1·2위 간 두 배 이상 격차가 나는 상황이다(자세한 내용은 알앤써치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다른 여론조사기관 결과도 이와 다르지 않다. 경쟁자가 없다.
 

▲ 국회의원 당선인 워크숍에 참석한 이낙연 의원 ⓒ문병희 기자

이 전 총리는 또 한 번의 비상을 노리고 있다. 바로 당권이다. 이 전 총리는 최근 8월 전당대회 출마 결심을 굳혔다. 코로나19에 따른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몸집을 키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안정적으로 운영하는 책임감 있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직접 나서겠다는 결심을 했다고 한다.

이 전 총리의 대권 레이스는 현재 순항 중이다. 문재인정부 초대 국무총리로 대중적 인지도를 쌓은 후 총선서 승리해 도약 발판을 마련했다. 또 당내서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정국의 중심에 섰다. 만약 당권까지 거머쥔다면 그렇지 않아도 독주하고 있는 차기대권주자 후보로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저평가 우량주 비상할까
코로나19 이후 대권 탄력

여러 모로 이 전 총리에게 유리한 상황이지만, 한 가지 불안요소가 있다. 바로 시간이다. 차기 대선은 2022년 3월9일에 열린다. 1년10개월이 남았다. ‘정치는 생물’이라는 말처럼 언제 구도가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을 시간이다.

당권 도전을 굳힌 이 전 총리 입장서 이런 불안 요소에도 휘둘리지 않을 한 방이 필요하다.


또 당권 레이스 과정서 이 전 총리의 이미지에 흠집이 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역대 전대는 총선만큼이나 치열하게 전개돼왔다. 역대 가장 무난했다고 평가받는 지난 8·25전당대회 때도 이해찬·송영길·김진표 등 당권주자들은 선거일이 다가오자 상대 후보에 대한 공세를 펼친 바 있다.

이 전 총리의 대항마로 거론되고 있는 정 총리는 코로나19로 존재감을 키웠다. 시작은 위기였다. 지난 1월 정 총리가 취임한지 6일 만에 국내서 확진자가 발생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본부장을 맡은 정 총리는 현장 시찰 중 상인에게 “손님이 적어 편하시겠다”고 해 구설에도 올랐다. 

하지만 이후 특유의 리더십을 발휘해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확진자가 무더기로 나온 대구에 내려가 3주 동안 현장을 지휘했다. 마스크 5부제를 실시해 마스크 대란을 돌파해내기도 했다.
 

▲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규모로 당정 간 갈등이 불거졌을 때는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장관을 설득한 사람도 정 총리였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같은 노력이 더해져 ‘K-방역’은 전 세계서 벤치마킹하는 모델이 됐다. 만약 이런 상태가 지속돼 코로나19를 종식시킨다면, ‘코로나19 극복 총리’로 불리며 향후 대선 레이스에서 큰 가산점을 얻을 전망이다.

정 총리는 새로운 도약지점을 눈앞에 두고 있다. 바로 ‘그린뉴딜’이다.

대권의 꿈
놓지 않아

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청와대서 열린 ‘2020 국가재정전략회의’서 “경제 위기 극복과 함께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새로운 도약을 위한 ‘한국판 뉴딜’도 준비해야 한다”며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을 앞서 준비하며 미래형 일자리를 만드는 ‘디지털 뉴딜’과 함께 환경친화적 일자리를 창출하는 ‘그린 뉴딜’을 통해 지속가능한 성장의 토대를 만들겠다”고 말했다.

오는 7월 범정부 ‘컨트롤타워’인 수소경제위원회가 출범한다. 수소경제 활성화는 그린뉴딜의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출범은 정 총리의 지시로 앞당겨졌다. 당초 수소경제위원회의 출범은 내년 2월로 예정돼있었다.

정 총리는 코로나19 방역 컨트롤타워였던 중대본의 참석을 줄이고, 경제 행보를 늘리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주 5회 중대본 회의 참석을 주 2회로 줄이면서, 경제 관련 참석을 늘리고 있다는 것. 최근 정 총리는 노사 대표들과 ‘코로나19 위기 극복을 위한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개최했다. 

‘경제총리’를 자처했던 취임 초기로 돌아가려는 의도로 읽힌다. 쌍용그룹 상무이사 출신이자 제9대 산업자원부 장관인 정 총리의 전공 분야가 바로 경제다. 정가 안팎에선 정 총리의 경제 관련 행사 참석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코로나19 총리’서 ‘경제 책임총리’로의 변화를 바라보는 정치권은 정 총리가 이 전 총리와의 민주당 대권후보 경쟁에 뛰어들었다고 분석한다. 총선에 뛰어들어 민주당 압승을 견인, 당권까지 노리는 이 전 총리에게 맞서 전공인 경제 분야에서 성과를 내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는 시선이다.

정 총리는 인사청문회서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주변에서 코로나19를 종식시키고 대선으로 가자는 제안을 많이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최근 묘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민주당 대권주자 선호도 1위와 잠재적 대권주자의 만남이다. 지난달 27일 서울 양재동 더케이호텔 컨벤션센터서 열린 민주당 당선인 워크숍에서다. 
 

먼저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이 전 총리다. 당권 출마 여부가 관심을 받고 있는 이 전 총리의 등장에 취재진이 몰렸다. 사실상 이날의 주인공이었다. 이 전 총리는 민주당 지도부가 앉은 테이블의 상석에 앉았다.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이형석·남인순 최고위원과 같은 테이블이었다.

경제 총리
변신 시도

정 총리의 등장은 그 이후였다. 깜짝 등장이었다. 정 총리의 참석은 사전에 공지되지 않았다. 취재진은 정 총리의 깜짝 등장에 관심을 보였다. ‘정세균계’ 의원들이 일어나서 정 총리를 맞았다.

정 총리는 연단에 올라 “국민께서 많은 의석을 민주당에 주신 것은 집권여당이 위기상황 대응에 책임지고 문제를 해결해 성과를 내라는 엄중한 명령”이라며 “예뻐서 찍어준 게 아니라 책임을 지을 수 있도록 한 것인 만큼 과제가 많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후배들에 대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정 총리는 “전력투구해 목표를 100% 달성하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며 “당정은 서로 협력하면서 국민을 섬겨야 한다. 앞으로 4년간 보람 있는 의정 활동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축사를 마친 정 총리는 테이블을 돌며 당선인들과 일일이 악수했다. 21대 총선 후 정 총리는 가까운 민주당 당선자들 위주로 비공개로 당선 축하 자리를 여러 차례 가져온 것으로 전해진다.

두 사람은 공통점이 많다. 모두 호남 출신이다. 정 총리는 전라북도 진안, 이 전 총리는 전라남도 영광서 각각 태어났다. 이 전 총리는 문재인정부 초대 총리였으며, 후임자는 지금의 정 총리다.

대선이 다가옴에 따라 민주당 내부에선 호남 출신 인사가 정권재창출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호남대망론’을 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민주당 이개호 의원은 최근 언론 인터뷰서 “정권재창출 과정서 호남의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호남대망론의 선두주자이며, 잠재적 대권주자인 정 총리가 호남대망론을 달성할 유력 후보군으로 거론된다. 

과연 ‘포스트 DJ(김대중)’라는 타이틀은 누구의 차지가 될 것인가. 역대 호남 출신 대통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유일하다. DJ 이후 4번의 대선이 치러졌지만,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며, 호남 출신 대통령은 탄생하지 않았다.

“기반은 더 단단해”
묘한 긴장감 연출

대권에 도전할 후보마저도 가뭄이었다. 이 전 대통령과 대결해 패배한 민생당 정동영 전 의원이 DJ 이후 유일한 호남 출신 대권주자였다. 정 총리, 이 전 총리에게 쏟아지는 관심이 클 수밖에 없는 이유다.

두 사람이 대권이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다. 바로 정가서 오랫동안 깨지지 않고 있는 ‘호남 후보 필패론’이다.
 

▲ 청와대 ⓒ문병희 기자

호남의 인구는 영남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 호남 지역 단독으로는 대권주자를 당선시키기 힘들다는 얘기다. 실제 DJ는 충청의 맹주인 자유민주연합 김종필 총재와 DJP연합을 결성한 후에야 대권을 쥘 수 있었다. 호남 출신 대권주자에게는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사실이 역사적으로 검증된 것이다.

정치권은 두 사람에게 필요한 플러스 알파로 ‘친문’을 꼽는다. 두 사람은 공통의 약점 역시 궤를 같이 한다.

정 총리와 이 전 총리는 민주당 내 지지기반이 약하다는 평을 들어왔다. 범정세균계는 30여명 정도로 추산되며, ‘이낙연계’는 21대 총선 이후 세를 불려나가는 단계다. 아직 대권을 말하기에는 부족한 규모다. 대권을 위해서는 민주당 주류인 친문의 도움이 필요하다.

마침 친문 대권주자가 보이지 않는다. 민주당 대선 경선 후보군으로는 이낙연·이재명·박원순·김경수·정세균·김부겸 등이 꼽힌다. 친문 적통이라고 불릴 만한 사람은 김경수 경남도지사가 유일하다. 김 지사는 드루킹 사건으로 불리는 ‘댓글 조작 사건’을 공모한 혐의로 기소돼 2심 재판을 받고 있다. 당장 대권이라는 정치적 미래를 설계할 수 없는 상황이다. 

비공개 회동
보폭 넓혔다

친문계 입장에선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지 않을 수 없다. 만약 김 지사가 대권에 나설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친문은 정 총리와 이 전 총리 중 한 사람을 선택할 공산이 크다. 두 사람은 내각서 문재인정부의 성공을 이끌었다. 결국 친문의 선택이 ‘대망론’을 완성할 마지막 퍼즐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정세균 ‘광폭 회동’ 왜?

정세균 국무총리가 군소정당 당선인들과 회동을 가지는 등 보폭을 넓히고 있다. 이낙연 전 국무총리의 당권 도전과 맞물려 주목받고 있다.

정 총리는 최근 정의당 의원들과 만찬을 가졌다. 지난달 27일 정 총리는 심상정·배진교·강은미·이은주·장혜영·류호정 의원을 총리 공관으로 초대했다.

이 자리서 정 총리는 과거 열린우리당 의장이던 시절 민주노동당(정의당 전신)과 협업한 인연 등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 총리는 군소정당과의 만찬을 계속 이어갈 예정이다. 국민의당·열린민주당 의원들과 만날 계획이라고 한다.

정 총리 측은 대화의 기회가 많지 않은 군소정당을 만나 원활한 국정 운영을 부탁하려는 취지라고 설명했다.

이에 일각에선 정 총리가 내각을 책임지는 총리직의 역할을 십분 활용하는 쪽으로 대권 행보에 서서히 속도를 높일 것이라 분석의 목소리도 나온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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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