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골프채 한 자루가 아파트 한 채 값

오래된 앤틱을 대할 때 가장 일반적인 궁금증은 ‘얼마나 할까?’하는 생각일 것이다. 현존하는 수백년 전의 나무로 된 골프클럽은 얼마나 할까? 골프채 가격을 보러 소더비경매장으로 한번 들어가 보자.

2007년 9월, 소더비 골프채 경매사상 최대에 달하는 652자루의 나무 골프채가 한꺼번에 매물로 쏟아졌다. 총 경매가는 자그마치 400만달러, 한화로 50여억원에 달했다. 소더비 측이 챙긴 커미션만 해도 25퍼센트에 달하는 10여억원이 넘었다. 

특별한 몸값

그 많은 골프채를 내놓은 주인공은 단 한 명, 제프리 엘리스라는 골프용품 수집가였다. 워싱턴주의 골프역사학자였던 그는 지난 30년간 수집한 희귀 소장품 다수를 하루아침에 경매에 내놨다. 이유는 단순했다. “아내가 병에 걸린 데다 집을 떠나 있을 때 혹시 불이라도 나지 않을까, 도둑이라도 들지 않을까 하며 늘 노심초사했다”는 것이다.

더 이상 스트레스를 받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

뜨거운 열기 가운데 진행된 경매에서, 스코틀랜드 장인이 만든 18세기 롱 노우즈 퍼터인 앤드루 딕슨이 세계 최고가를 경신했다. 낙찰가는 18만1000달러(한화 약 2억원)로 익명의 한 수집가에게 팔렸다. 이전까지 최고가는 1999년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우에서 진행됐던 크리스티 경매의 17만4900달러(한화 1억9000만원)로, 1780년에 제작된 퍼터였다. 


두 번째로 고가에 팔린 채는 아이언.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15만9000달러(한화 약 1억8000만원)에 낙찰됐다. 제작자는 미상이었으며 헤드 앞부분이 도끼 자루같이 생긴 ‘스퀘어 토우 아이언’의 형태로 불리는 세계 최초 아이언 중 하나였다. 퍼터와 아이언 두 자루가 서울 주변의 신도시 아파트 값과 맞먹는 셈이었다.

한숨 돌린 경매는 19세기 골프채로 넘어간다. 1820년에 제작된 톰 모리스 시니어의 드라이버 차례다. 18세기와 다른 점은 일단 샤프트가 17세기까지 사용됐던 물푸레나무가 아닌 호두나무의 히코리 재질로 만들어졌다는 점이다. 가격은 뚝 떨어진 1만달러(한화 약 1100만원)에 낙찰. 헤드 윗면에 ‘T. Morris’라고 찍혀 있고, 샤프트의 길이는 44인치다. 

18세기 롱퍼터 2억원 
시대 넘는 명품의 가치

당시 드라이버는 샤프트 길이가 47인치까지도 있었다. 역사적으로 캘트 족의 후손인 스코틀랜드인은 건장하고 큰 키로, 21세기 드라이버만큼이나 긴 나무샤프트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드코스의 헤드프로이자 클럽 제조 장인이었던 톰 모리스가 만든 드라이버는 특별했다. 훅과 슬라이스를 방지하기 위해 헤드 앞면을 안으로 파인 곡선으로 다듬었으며, 헤드 앞부분의 파손을 방지하기 위해 양의 뿔을 깎아 밑바닥에 인서트형식으로 끼워 넣었다. 

헤드 무게를 조정하기 위해 헤드 밑면에 세 개의 나사를 박아 넣은 것 등은 백 년 뒤를 내다본 발상이었다. 고운 양가죽으로 감은 그립은 누구에게나 평생 보물로 모셔두고 싶은 충동을 일으킨다.

여러 아이언 클럽 중 페이스 면이 매끈하고 오목하게 파인 것들이 많은데, 이들은 모두 컨케이브(Concave)라 불리는 해저드나 샌드에서의 탈출용 레스큐(Rescue) 클럽이었다. 이는 필드와 길거리 구분이 없던 당시, 교통수단이었던 마차의 바퀴자국으로 파인 축축한 땅에 처박힌 볼을 쳐내기 위한 현대적 의미의 하이브리드 클럽이다.


20세기 초로 넘어가면서 클럽은 기묘한 모양을 하면서 더욱 다양해졌다. 1300만원에 낙찰된 자이언트 니블릭은 헤드 지름만 15센티미터에 달해, 팬케익이나 피자를 뒤집는 프라이팬 같은 느낌의 대형 헤드를 지녔다. 

그 밖에 샤프트가 안 달렸으면 말발굽이라고 우겼을 모양의 천만 원대 말발굽 퍼터도 있었고, 페이스 면이 둥그런 작은 절구 모양의 퍼터도 나왔다. 아래가 톱니 모양을 한 삼지창 같은 모양의 벙커 탈출용도 수십 자루에 달했으며, 한 자루의 아이언으로 모든 아이언클럽을 대신할 수 있도록 헤드 뒷면에 나사를 만들어 각도를 조절하게 한 아이언도 있었다.

수백 자루의 나무골프채는 며칠간 그렇게 소더비에서 새 주인에게 팔려나가면서 골프채 경매의 신기원을 기록했다.

경매장 수놓은 수집품
30년간 모은 652자루

이날 소더비에서 진행된 골프채 경매품 가운데 특이한 아이언 하나가 있었다. 헤드 한가운데에 둥그렇게 골프공 크기의 구멍이 뚫린 클럽이었다. ‘로이의 프레지던트 아이언’으로 불린 이 클럽은 1880년 제임스 앤더슨이라는 장인이 만들었다.

스코틀랜드 로얄 머슬버러 골프클럽의 열성적인 멤버였던 로이는 1879년 앤더슨에게 물속에서도 쳐낼 수 있고, 샌드용으로도 쓸 수 있는 클럽을 하나 만들어달라고 했다.

세인트 앤드루스시 인근 앤스트루더골프장의 장인인 제임스 앤더슨은 물과 샌드 겸용 클럽을 만드는 방법을 골똘히 생각하다 기발한 착상을 하게 된다. 헤드 한 가운데 구멍을 뚫으면 물과 모래의 저항을 받지 않고 볼만 쳐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회심의 클럽을 완성시켰다. 그는 이 클럽이야 말로 최고의 발명품이 될 것으로 판단했다. 

마침 5년 전 영국왕실협회도 ‘냇가에 들어간 볼은 한 벌타가 된다’라는 새로운 룰을 발표한 시기였다. 벌타를 피하기 위해 골퍼들은 물속에서도 볼을 쳐내야 했던 관계로 이 구멍 뚫린 클럽은 곧 최고의 인기를 구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구멍 뚫린 채가 발명됐다는 소문이 퍼지자 골퍼들은 앞다퉈 주문을 했다. 앤더슨은 이 주문만 소화해도 벼락부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한껏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단조클럽으로 만들기 위해 쇠를 두드리며 제작에 몰두할 무렵, 필드에서 갑자기 안좋은 소식이 들려왔다.

스코틀랜드 특유의 물이 고인 깊은 항아리 벙커에서 이 클럽을 사용했던 골퍼들이 볼이 엉뚱한 방향으로 튀어나간다고 불평하기 시작했다. 구멍을 통해 저항 없이 물이 통과하는 것은 좋은데, 볼이 닿는 헤드 면이 너무 적어 정확한 가격이 힘들었던 것이다.

시타용으로 단 6자루만 시중에 나온 상태에서 클럽 생산은 제동이 걸리고 말았다. 30대 중반에 모처럼 최고의 장인이 됨과 동시에 벼락부자를 꿈꿨던 앤더슨은 그만 좌절했다. 설상가상으로 세금 문제 등이 겹쳐 골머리를 앓던 그는 홧병으로 50세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귀한 대접


이 클럽은 후에 R&A 수장인 저스티스 제너럴에게 증정되면서 ‘프레지던트 클럽’이라 불렸다. 아이러니하게 앤더슨이 남긴 클럽은 단 여섯 자루였지만, 마치 잘못 제조된 주화나 화폐처럼 골동품의 관점에서는 구하려야 구할 수 없는 희귀한 클럽이 돼버렸고, 오늘날 한 자루당 2000만원대에 이르는 귀한 대접을 받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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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국민의힘 해산’ 민주당 딜레마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민의힘이 위태위태하다. 끝나지 않는 내부 총질에 “이럴 바엔 해산하라”는 날 선 비판까지 나온다. 이 모습을 바라보는 더불어민주당은 만감이 교차한다.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자니 보수 결집이, 그대로 놔두자니 개혁에 걸림돌이 되는 딜레마의 연속이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윤 어게인(Again)’과 전한길씨의 싸움으로 자리 잡았다. 누가 대표가 되더라도 ‘내란 정당’이라는 꼬리표를 떼기에는 역부족이다. 이에 발맞춰 국민의힘 해산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덩달아 높아지고 있다. 내란 수괴와 45명의 적 국민의힘 해산 요구는 지난 6·3 조기 대선 정국서부터 불거졌다. 서부지검 폭동 사태와 헤어 나오지 못한 탄핵의 강 등 내란 사태가 지속되자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정당해산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탈당하기 전 당시 민주당 박찬대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은 윤석열을 비호하고 내란에 동조하며 국가적 위기와 사회적 혼란을 키운 씻을 수 없는 큰 책임이 있다”며 제명을 촉구했다. 윤 전 대통령을 수호한 45명의 의원을 ‘인간 방패’라고 꼬집으며 제명을 요구했다. 민주당이 호명한 45명은 국민의힘 ▲강대식 ▲강명구 ▲강민국 ▲강선영 ▲강승규 ▲구자근 ▲권영진 ▲김기현 ▲김민전 ▲김석기 ▲김선교 ▲김승수 ▲김위상 ▲김은혜 ▲김장겸 ▲김정재 ▲김종양 ▲나경원 ▲박대출 ▲박성민 ▲박성훈 ▲박준태 ▲박충권 ▲서일준 ▲서천호 ▲송언석 ▲엄태영 ▲유상범 ▲윤상현 ▲이달희 ▲이상휘 ▲이만희 ▲이인선 ▲이종욱 ▲이철규 ▲임이자 ▲임종득 ▲장동혁 ▲조배숙 ▲조은희 ▲조지연 ▲정동만 ▲정점식 ▲최수진 ▲최은석 의원이며 이들이 내란 정당의 주축이라고 봤다. 대선후보 마감을 앞두고 국민의힘이 새벽을 틈타 ‘후보 바꿔치기’를 시도하던 때에는 보수 진영에서도 쓴소리가 나왔다. 당원이 뽑은 김문수 후보의 선출을 취소하고 전 국무총리던 한덕수 무소속 예비후보를 입당시켜 당의 대선후보로 등록한 것이다. 밤사이 일어난 촌극에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니들이 저지른 후보 강제 교체 사건은 직무 강요죄로 반민주 행위고 정당해산 사유도 될 수 있다”며 “기소되면 정계(에서) 강제 퇴출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도 모르고 윤통(윤석열 전 대통령)과 합작해 그런 짓을 했나”라며 “그 짓에 가담한 니들과 한덕수 추대 그룹은 모두 처벌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 전 시장은 지난달 자신의 온라인 소통 플랫폼 ‘청년의 꿈’에서 한 지지자가 국민의힘 복당 등에 대해 질문하자 “해산될 정당에 다시 들어갈 일은 없을 것”이라며 국민의힘 해산 가능성에 힘을 실었다. 민주당은 통합진보당(이하 통진당)이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에 의해 위헌정당해산심판으로 해체된 사례를 예로 들며 해산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2014년 12월 헌재는 통진당이 “북한식 사회주의 혁명 노선을 추종하며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협한다”며 재판관 8대 1의 의견으로 정당해산을 결정한 바 있다. 정당해산의 주요 원인은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 음모 사건이었이다. 알면서 잡은 썩은 동아줄…속내 복잡 남은 건 ‘내란 정당해산’ 심판대뿐 당시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해산 청구 이유에 대해 “통진당의 강령 목적이 우리 헌법의 자유민주주의적 기본 질서에 반하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추구하고, 핵심 세력인 RO(지하 혁명 조직)의 내란 음모 등 그 활동도 북한의 대남 혁명 전략에 따른 것으로 분석됐다”며 헌법의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민주당은 실행되지 않은 예비 음모 혐의와 내란 선동만으로 통진당이 해산됐는데, 내란을 실행한 자를 옹호한 국민의힘의 죄는 통진당보다 더 크다고 보고 있다. 지난해 12월3일 이후부터 새로운 정권이 들어서기까지, 국민의힘은 내란에 동조했을 뿐더러 극우 단체와 함께 저항권 행사를 선동했다고도 주장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의원이던 당시 국회에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헌법재판소법 개정안을 발의한 바 있다. 그는 민주당 최전방에서 국민의힘 해체를 요구했던 만큼 이제는 당 대표 직권으로 개정안을 밀어붙일 가능성이 제기된다. 헌법재판소법 제55조에 따르면 “정당의 목적이나 활동이 민주적 기본 질서에 위배될 때에는 헌법재판소에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며 주체는 ‘정부’로 명시하고 있다. 정 대표가 발의한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정당해산심판 청구 요건에 ‘국회 본회의 의결이 있을 때’라는 요건이 추가돼 해산심판 주체가 ‘국회’를 포함하게 된다. 당시 정 대표는 한 라디오를 통해 “국민의힘이 제1야당이라 법무부가 직접 나서기엔 부담이 있을 수 있다”며 “그렇기 때문에 국회가 의결을 통해 정당해산 청구를 국무회의 심의 안건으로 올리는 방식이 현실적”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사면으로 정치권에 복귀한 조국혁신당 조국 전 대표도 국민의힘 정당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조 전 대표는 “윤석열 파면과 대선 패배 이후에도 여전히 친윤(친 윤석열)계가 당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여전히 계엄과 내란에 대해서 옹호하는 정당”이라고 강조했다. 민주당 정 대표가 정당해산을 주장한 데 대해서는 “정당해산을 하려면 12·3 내란과 관련해 국민의힘 지도부가 조직적으로 관여했음이 확인돼야 한다. 적어도 1심 판결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뼈아픈 공포탄? 개헌 저지선인 100석을 겨우 넘긴 국민의힘이지만 민주당발 정당해산만큼은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거센 풍파를 겪었던 보수가 재건할 새도 없이 또다시 무너진다면 그야말로 회생 불가능한 상태에 빠질 것이란 우려에서다. 최근 전 정부와 국민의힘을 옥죄는 특검이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자 정당해산의 신호탄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국민의힘은 최근 통일교와 자당 간의 연결고리를 좇는 특검 수사를 언급하며 “국민의힘과 특정 종교를 억지로 결부시켜 정당해산의 빌미를 인위적으로 조작하려고 하는 정치 보복일 뿐”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최은석 수석 대변인 역시 “여당 대표가 정당해산을 입에 올리자 (특검이) 곧장 달려든 모습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권의 ‘행동대장’ ‘'친위부대’로 전락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전당대회 기간 동안 “우리도 자칫 통합진보당 꼴이 될 수 있다”며 우려를 내비쳤다. 그는 자신의 SNS를 통해 “불법 계엄은 어떤 변명도 통하지 않는, 헌정사 최악의 법치 유린”이라며 “그것을 옹호하거나 침묵하는 사람이 대표가 된다면, 그 즉시 우리 당은 ‘내란 정당’으로 낙인 찍히고 해산의 길로 내몰릴 수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연일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공포탄이 실탄으로 바뀔지는 미지수다. 내란 정당인 국민의힘은 10번 100번도 해산해야 한다지만 막상 야당에 칼을 겨누자니 여당으로서의 현실적인 고민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실제 정당해산심판이 이뤄진다면 오히려 국민의힘이 똘똘 뭉치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 특검이 국민의힘을 포위하자 전당대회를 앞두고 사분오열 흩어졌던 보수가 잠깐이나마 하나가 돼 단체 농성에 나서는 등 결집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정당해산은 이 대통령이 강조하는 통합 정치와도 거리가 멀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을 뿌리 뽑기 위함이라고 주장하지만, 대화는커녕 당 대표끼리 악수조차 못하는 상황에서 곧바로 해산 청구를 했다가는 여당이 의석수로 야당을 찍어 누르는 듯한 모습으로 비쳐질 것이란 분석이다. 서로 실책에 기대는 반사이익 구조도 문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정부여당 지지율이 떨어지긴 했어도 국민의힘이 저런 식으로 행동하는 한 국민은 이들을 야당이 아닌 내란 세력의 현재 진행형으로 볼 것”이라며 “고질적인 문제지만 한국 정치는 반사이익 구조를 벗어날 수 없다. 정당해산으로 국민의힘이 사라진다면 과연 민주당에 득이겠느냐”라고 의아해했다. 뿔뿔이 흩어질까 이어 “지금 민주당의 모든 정책, 개혁은 내란 세력 척결이라는 원포인트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며 “내란 세력이 사라지면 민주당의 날카로움이 돋보이지 않는, 오히려 개혁의 동력이 떨어지는 모순적인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정당해산심판을 청구하기 보다 구심점을 잃고 자중지란을 겪고 있는 야당을 그대로 두는 게 더 낫다는 설명이다. 정당해산이 말로만 그쳐도 문제다. 지난 민주당 전당대회서 강성 당원들은 시원하게 개혁을 외치고 날카롭게 국민의힘을 찌른 정 대표를 당의 수장으로 세웠다. 정당해산을 소리 높여 주장하는 정 대표가 막상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다면 그 실책은 고스란히 민주당이 떠안게 된다. 국민의힘 스스로 분열의 길에 접어들면서 또 다른 선택지가 주어졌다. 친윤·친한(친 한동훈), 찬탄(탄핵 찬성)·반탄(탄핵 반대)으로 단단하게 굳어 심리적 분당 상태에 빠진 국민의힘이 자진해서 해체하는 방법이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국민의힘의 분열을 기회로 보고 있다. 편 가르기의 결과로 당이 쪼개져 자진 해산한다면 민주당은 정당 해체 심판을 청구하는 수고로움을 덜 수 있다. 혹시 모를 지지율 역풍과 보수 결집 등의 고민도 해결된다. 장동혁 당시 대표 후보가 정당해산 프레임을 같은 편에 덧씌우면서 공세 수위를 높인 것이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그는 탄핵 찬성파인 안철수·조경태 후보를 겨냥한 듯 “소신이라는 이유로 사사건건 당론을 어기고 급기야 탄핵까지 찬성했던 분들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민주당 대표)와 짬짜미해서 당을 해산시킬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진짜 해산돼야 할 위헌 정당은 국민의힘이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헌법 질서를 파괴하고 일당 독재를 하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전당대회를 앞두고 탄핵에 찬성한 이들과 차별화를 두기 위한 강력한 한 수를 던진 셈이다. 이 과정을 지켜보던 민주당은 “분당이나 정당해산을 피하려면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하라”고 지적했다. 상처만 남은 전대 이대로 알아서 해산?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민의힘은 전당대회를 분당대회로 이름을 바꿔라”라며 “윤석열 재입당 공약과 전한길의 선동 사태는 친길(친 전한길)파와 반길(반 전한길)파의 분당 예고편 같다. 진정 분당과 정당해산을 피하고 싶다면 이제라도 전한길과 윤 어게인 세력과 결별 하길 권고드린다”고 말했다. 이들의 내부 총질은 전당대회를 앞둔 마지막 토론회서 화룡점정을 찍었다. ‘반탄파(탄핵 반대)’인 김문수·장동혁 후보와 ‘찬탄파(탄핵 찬성)’인 안철수·조경태 후보 간의 살벌한 대치가 이어지면서 정당해산 카드를 꺼내기도 전 스스로 분당 수순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1, 2차 토론회와 마찬가지로 김 후보와 조 후보는 비상계엄 문제를 놓고 대립했다. 김 후보는 “비상계엄은 잘못됐고 헌법재판소에서 탄핵이 될 만큼의 불법성이 있다”면서도 “헌재 판결은 받아들이지만 그 자체가 모든 면에서 완전하다고 받아들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조 후보는 “강성 지지층인 윤 어게인을 의식한 발언”이나며 “우리나라는 민주주의 국가이지 ‘윤주주의’ 국가가 아니지 않는가”라고 받아쳤다. 그러자 김 후보는 “민주당 조경태 의원이 말하는 것은 그렇다고 할 수 있지만, 조 후보는 국민의힘 의원”이라며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토론 단골 주제인 유튜버 전한길씨도 화두에 올랐다. 장 후보는 내년 치러질 재보궐선거에 만일 공천을 한다면 한동훈 전 대표와 전씨 중 누구를 택하겠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열심히 싸우고 있는 분에 대해서는 공천을 줄 수 있다”며 전씨를 택했다. 반면 조 후보는 “오늘 토론회를 보면서 상당히 마음이 아픈 게 장 후보가 재보궐선거에 공천할 후보로 전씨를 선택한 것”이라며 “전씨는 윤 어게인을 주창하는 분이고 그분이야말로 내란 동조 세력”이라고 마지막까지 비판했다. 당 대표 선출서 갈등이 최고조에 올랐던 만큼 선거가 끝난 이후에도 쉽사리 봉합되지 않고 있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라는 대목을 앞두고 치열한 계파 싸움이 예고되면서 당의 앞날이 불안정하다는 평이다. 여의도 안팎의 이야기를 종합하면 민주당은 특검 수사 진행 상황에 따라 정당해산 압박 수위를 조절할 것으로 예상된다. 내란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민주당은 국민의힘을 향해 언제든지 정당해산이라는 카드를 쥐고 흔들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어느 쪽도 진퇴양난 한 야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정당해산에 대해 가능성 없는, 반민주적 행위라고 주장하지만 내심 불안해하는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빈말이라도 ‘할 테면 해 봐라’라는 식의 이야기를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처럼 당 간판만 갈아 치워서는 국민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걸 본인들이 가장 잘 알 것”이라며 “‘먹히는 개혁안’을 찾아야 한다. 같은 편끼리 지지고 볶다 자진 해산하나, 민주당 손에 이끌려 강제 해산하나 불명예스럽긴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것’으로 뭉친 국힘 서로를 거칠게 비판하던 국민의힘이 당원 명부를 놓고 결집했다. 김건희 특검팀이 ‘2022년 통일교 입당 의혹’과 관련해 국민의힘 중앙당사 압수수색을 시도하자 하나로 뭉쳐 이를 저지한 것이다. 국민의힘은 “국민의 정치적 활동과 일상생활을 감시하겠다 것”이라며 크게 반발했다. 이들은 조를 편성해 24시간 중앙당사에서 비상 체제를 유지했고 결국 특검팀은 국민의힘과 절충점을 찾지 못해 압수수색은 불발됐다. 국민의힘은 특검팀의 압수수색 시도를 “야당 탄압” “정치 보복”으로 규정하고 농성을 이어갈 예정이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