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은 듯 다른 <남산의 부장들> <그때 그 사람들> 전격 비교

화려함 속에 뒷걸음 ‘역사 해석력’

[일요시사 취재2팀] 함상범 기자 = 1979년 10월26일은 대한민국 현대사에서 큰 의미를 지니는 날이다. 무려 18년 동안 집권했던 대통령을 부하가 시해한 사건으로 인한 충격은 당시 대한민국을 발칵 뒤집어 놓았다. 워낙 강렬했던 터라 이 하루를 다룬 재연물은 수없이 많았다. <그때 그 사람들>이 10‧26을 다룬 대표작으로 꼽히는 가운데 <남산의 부장들>이 최근 개봉했다. 과연 <남산의 부장들>은 <그때 그 사람들>보다 무엇이 나아졌을까. 15년 간격이 있는 두 작품을 비교 분석했다. 
 

▲ 영화 남산의 부장들

무려 18년 넘게 집권하며 무소불위 권력을 휘두르던 대통령이 부하가 당긴 방아쇠로 인해 사망했다. 1979년 10월26일, 서울 궁정동 안가에서 울린 총성은 대한민국 현대사를 뒤흔들어놨다. 이 극적인 사건은 지난 2005년 임상수 감독의 <그때 그 사람들>과 2020년 우민호 감독의 <남산의 부장들>로 영화화됐다. 두 작품은 10‧26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전혀 다른 장르와 거리감, 관점을 갖고 있다.

코미디와 누아르

<그때 그 사람들>은 블랙코미디 장르다. 다소 과장된 표정과 억양을 사용한다. 김 부장(김재규) 역을 맡은 백윤식은 비교적 가벼운 톤의 언행을 일삼는다. 다소 툭툭 내뱉으며, 고뇌보다는 직관적인 행동으로 일관한다. 근엄한 표정을 지어도 가볍다. 목소리 톤도 자주 올라가며, 때론 갈라지기도 한다. 의전과장인 주 과장(박선호) 역의 한석규는 가벼운 욕설을 내뱉을 뿐 아니라 다소 저급한 표현을 자주 사용한다. 러닝타임 내내 껌을 씹는다.

차실장(차지철) 역의 정원중은 몸짓이 과하며 대통령 각하(박정희) 역의 송재호는 극단적으로 나약하다. 카리스마는 전혀 없고 여색에 젖은 할아버지로만 표현된다. 전반적으로 연극적인 톤을 가진 인물들 중 그나마 현실감을 부여하는 인물은 민 대령(박흥주‧김응수 분) 뿐이다. 

블랙코미디 장르답게 웃음이 나오는 장면이 많다. 육군본부 앞에서 암구호를 외치는 병사에게 “나 참모총장이야”를 부르짖는 정승화 참모총장(정종진)의 행태가 대표적이다. 사건이 이어지는 과정서 철두철미함보다는 오버스러운 언행으로 스크린을 채운다. 10월26일 오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약 24시간을 그려낸 <그때 그 사람들>은 이날을 매우 가볍게 바라본다.


반대로 <남산의 부장들>은 차갑다. 거리를 두고 있기는 하나 이야기 전개는 숨막힌다.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다. 권력의 이면을 어둡게 표현한다. 카메라는 김규평(김재규) 역의 이병헌, 곽상천(차지철) 역의 이희준, 박통(박정희) 역의 이성민 등의 근육 움직임마저 잡아내려는 듯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목소리는 늘 진하게 깔려있다. 가볍게 행동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대다수 인물들이 다음 스텝을 내다보고, 살얼음 걷듯 조심조심 움직인다. 

웃음기도 쫙 뺐다. 누아르나 스릴러에서조차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 유머러스한 장면을 넣기 마련인데, <남산의 부장들>은 웃음기를 거세했다. 웃기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그림은 세련됐다. 당시 시대상을 그리는 의상이나 건물 등의 고증도 뛰어난 편이고 미장센 역시 훌륭하다. 무거운 톤의 색감을 통해 <남산의 부장들>은 10‧26을 데드라인으로 이전 40일 기간을 중량감 있게 담아낸다.

냉소와 연민

<그때 그 사람들>은 인물들과 철저히 거리감을 둔다. 관객이 인물에게 공감하는 것을 일정 부분 차단한다. 인물의 고뇌가 드러나지 않는다. 임 감독은 관객들에게 ‘이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만을 느끼도록 선을 긋는다. 

그래서인지 특정 인물에게 감정이 이입되지 않는다. 이야기를 전개하는 중심인물인 김 부장의 끝이 좋지 않음에도 불편함이나 미안함은 남지 않는다. 이는 김 부장과 한편인 주 과장이나 민 대령, 반대편서 죽음을 맞이한 대통령 각하나 차 실장에게도 마찬가지다. 냉소적인 태도를 유지하면서, 임팩트 있고 극적인 장면을 우스꽝스럽고 심드렁하게 표현한다. 바늘이 연상되는 목소리를 가진 배우 윤여정의 내레이션은 인물에 대한 차가운 톤을 배가시킨다.

예술의 자유를 누린 <그때 그 사람들>
정치적 중립성만 유지 <남산의 부장들>

<남산의 부장들>은 인물들이 카메라와 가깝다. 관객들이 김규평에게 감정을 이입하도록 만들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있는 김규평은 틈만 나면 사나운 말을 내뱉는 후배 곽상천으로부터 멸시를 받는다. 일을 제법 잘 처리함에도 박통에게 미운털이 박힌 듯 중심 권력서 제외되는 부분 등 김규평에게 동정심을 갖도록 구성했다.


감정이 절정에 치달은 말미, 총성을 울린 뒤 정신을 놓은 듯 불안이 가득한 김규평의 얼굴을 통해 안타까움을 느끼도록 한다.

박통이나 박용각(김형욱·곽도원 분) 등 다른 인물들에게도 감정이 느껴진다. 충성을 다한 대통령으로부터 버림받은 후 복수에 이를 갈고 있는 박용각의 얼굴이나, 미국의 압박에 두려움을 느껴 사자후를 쏟아내는 박통의 분노 등 영화 전반에 감정이 진하게 묻어있다. 
 

▲ 영화 &lt;그때 그 사람들&gt;

두 작품서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 10‧26과 김재규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그때 그 사람들>에서는 김재규를 생각이 단순한 인물로 묘사했고, 10·26도 별생각 없이 저지른 우발적 사고로 판단한다. 주 과장이나 민 대령, 정 참모 총장, 대통령 각하, 차 실장 등 대다수의 인물이 어리석게 보인다. 

이러한 김 부장의 기질은 현재까지도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남산이 아닌, 육군본부로의 ‘U턴’에 대해서도 꽤 명료하게 설명한다. 정 참모총장과 육본에 있으면 권력이 국민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해석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박정희 대통령을 쐈다는 김재규의 주장을 뒤로하고, 이날의 총성을 다음 단계에 대한 고려 없이 벌인 감정적 행위로 바라본다.

결과적으로 김재규의 행위는 당시 보안사령관이었던 전두환을 통해 역사의 시계를 되돌려놨는데, 이에 대한 비판적인 시선이 영화에 깔려있다. 이날 하루를 그저 ‘지리멸렬한 난장판’ 정도로 해석한다. 

바보와 열사

아울러 영화 뒷부분에 대통령의 죽음에 눈물을 쏟는 당시 국민들의 실제 영상을 통해 ‘국민들의 어리석음으로 이런 바보들이 정치놀음을 했다’는 조소도 느껴지게 한다. <그때 그 사람들>이 시대를 앞서간 영화라는 평가를 받는 이유가 이 부분에 대한 해석이 설득력 있고 용감하기 때문이다.

<남산의 부장들>은 이 부분서 <그때 그 사람들>에 못 미친다. 당시 상황을 나열하는 데 집중한 <남산의 부장들>이 10.26에 대한 해석을 포기했다. 15년이 지났음에도 진일보한 해석이 전혀 없는데, 그렇다면 이 영화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전하고자 했던 바가 전달되지 않는다. 1979년 10월26일이라는 커다란 역사를 선택한 우 감독은 역사물서 가장 중요한 ‘연출가의 해석’을 거부함으로 <그때 그 사람들>을 넘지 못하는 길을 스스로 택했다.

극중 김규평은 업무 처리능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오랜 친구를 완벽히 매장할 정도로 결단력과 대담함도 지니고 있다. 미국서 유일하게 지지하는 한국 관료로도 표현된다. 차가운 기질이지만 필요한 순간 인간관계서 뛰어난 스킨십도 갖고 있다. 

그런 김규평이 거사를 치루기 위해 내리는 결단은 급작스럽다. 부마항쟁을 벌이는 시위대를 죽이라는 말에 총구를 겨누기엔 러닝타임 동안 인물이 보여준 조심성이 너무 강했다. 어찌어찌 거사를 치룬 후 정신을 놓은 표정을 짓고, 벗겨진 신발로 인해 피 묻은 양말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장면도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2시간여 동안 쌓아올린 김규평의 기질이 영화 막판에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영화는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으로 거사를 일으켰다는 김재규의 주장을 충분히 수용할 뿐 아니라 일각서 내세우는 ‘김재규 열사’론에 치우쳐 있지만, 이날의 핵심인 ‘U턴의 이유’를 관객에게 설득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지금까지도 미스터리로 설왕설래하는 부분서 한 발짝 발을 뺀 대목은, 미장센이나 고증, 배우들의 엄청난 연기력까지 드러나는 <남산의 부장들>이 ‘걸작’의 반열로는 올라갈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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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