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판 검사내전 막전막후

지들끼리 물고 뜯고 ‘체통을 지키옵소서’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검찰 안팎이 시끄럽다. 청와대, 법무부와 대립각을 세우더니 최근에는 검사들 사이서도 묘한 기류가 감지된다. 상명하복을 조직 시그니처로 삼았던 검찰 내부에 항명 사태가 일어난 것. 외부의 적과 싸우다 내전이 발생한 모양새다.
 

항명은 명령이나 제지에 따르지 않고 반항함, 또는 그런 태도를 뜻한다. 엄격한 명령체계가 존재하는 조직서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지시를 무시했을 때 항명하다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법에 있던
복종 문화

검찰은 윗사람이 명령하면 아랫사람은 따라야 한다는 상명하복이 법조항으로 명문화된 역사가 있는 조직이다. 1949년 검찰청법이 제정됐을 때부터 2003년 개정되기까지 검찰청법 7(검사동일체의 원칙)에는 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한다고 명시됐다.

검찰총장을 피라미드의 정점으로 전국의 검사들이 상사의 명령에 복종하는 시스템은, 50년 넘게 조직을 지탱하는 근간으로 작용했다. 정부도 검찰의 강력한 기수문화를 이용해 기수파괴 인사를 단행, 검사 수십명의 옷을 벗기기도 했다.

20031230일 검찰청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면서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삭제됐다. 검찰청법 7(검찰사무에 관한 지휘·감독)검사는 검찰사무에 관해 소속 상급자의 지휘·감독에 따른다. 검사는 구체적 사건과 관련된 제1항의 지휘·감독의 적법성 또는 정당성에 대해 이견에 있을 때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상사의 지휘와 감독에 따라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 강도가 완화됐다. 또 수사검사가 상사의 지휘와 감독에 다른 의견이 있을 경우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권한도 생겼다. 그럼에도 복종이라는 표현이 담긴 검사동일체의 원칙은 여전히 검찰조직의 대표적인 시그니처로 유지돼왔다.

상갓집서 “네가 검사냐”
상명하복 조직문화 균열

최근 항명이라고 부를 만한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검찰 조직문화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이번 항명 논란에는 검찰총장과 핵심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 반부패강력부장 등이 관련돼있어 조직 안팎의 관심이 집중되는 모양새다.

발단은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취임 5일 만에 단행한 검찰 고위간부 인사다. 법무부는 지난달 8일 검찰인사위원회를 열고 대검검사급(검사장) 간부 32명의 승진·전보 인사를 단행했다. 청와대의 선거개입·감찰 무마 의혹 수사를 지휘하던 한동훈 반부패강력부장과 박찬호 공공수사부장을 비롯, 윤석열 검찰총장의 대검 참모진이 모두 갈렸다.
 

▲ 추미애 법무부장관 ⓒ나경식 기자

검찰 핵심요직인 서울중앙지검장, 반부패강력부장, 공공수사부장, 법무부 검찰국장 등 이른바 빅4에는 각각 이성윤 법무부 검찰국장, 심재철 서울남부지검 1차장, 배용원 수원지검 1차장, 조남관 서울동부지검장이 이동했다. 이날 법무부의 인사를 두고 정치권은 검찰 대학살’ ‘공정한 중용등 엇갈린 의견을 쏟아냈다.

그로부터 닷새 만인 지난달 18일 양석조 반부패강력부 선임연구관이 서울 강남의 한 장례식장서 조국 전 장관 사건 처리를 두고 직속상관인 심재철 반부패강력부장에게 조 전 장관이 왜 무혐의냐” “당신이 검사냐며 반말 섞인 항의를 한 일이 일어났다.

심 부장은 반부패강력부장으로 승진하고 사흘 뒤 윤 총장 주재로 열린 유재수 감찰 무마 의혹과 관련해 조 전 장관 기소 여부를 놓고 열린 회의에 참석해, 조 전 장관의 무혐의를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사발령 후
갈등 심해져

추 장관은 법무부 대변인실을 통해 대검 간부 상갓집 추태 관련 법무부 알림입장문을 내고 검찰 간부들을 질타했다. 추 장관은 대검의 핵심 간부들이 예의를 지켜야 할 엄숙한 장례식장서 술을 마시고 고성을 지르는 등 장삼이사도 하지 않을 부적절한 언행을 했다법무검찰의 최고 감독자인 법무부 장관으로서 대단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검사들이 여러 차례 장례식장서 보인 각종 불미스러운 일들이 아직도 개선되지 않았다이 같은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검찰의 잘못된 조직문화를 바꾸고 공직기강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양 선임연구관은 지난달 23일 단행된 검찰 중간간부 및 평검사 인사서 대전고검 검사로 보임됐다. 사실상 좌천성 인사라는 평이다.

윤 총장과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은 기소 건마다 갈등을 빚고 있다. 두 사람은 최강욱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 기소 건을 두고 충돌했다. 최 비서관은 법무법인 청맥의 변호사로 일하던 201710월 조 전 장관 아들 조모씨의 인턴활동 확인서를 허위로 발급해 대학원 입시 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수사팀은 지난달 14일부터 최 비서관을 기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 지검장은 결재하지 않았다. 이 과정서 윤 총장이 이 지검장에게 여러 차례 직·간접적으로 최 비서관을 기소하라고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럼에도 이 지검장이 윤 총장의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자, 결국 지난달 23일 송경호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최 비서관을 재판에 넘겼다.

윤 총장과 이 지검장의 갈등은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으로 비화됐다. 법무부는 검찰이 최 비서관을 불구속 기소한 것에 대해 적법한 절차를 위반한 날치기 기소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적법절차의 위반 소지가 있는 업무방해 사건 기소 경위에 대해 감찰의 필요성을 확인했다며 감찰 카드를 꺼내들었다.

법무부·지검장
총장까지 협공?

대검은 검찰청법에 따라 검찰사무를 총괄하며 전체 검찰 공무원을 지휘·감독하는 검찰총장의 권한과 책무에 근거해 최 비서관에 대한 기소가 적법하게 이뤄졌음을 알려드린다고 반박했다. 검찰사무의 최고 감독자가 검찰총장이기 때문에 윤 총장의 승인을 받은 공소제기는 문제없다는 주장이다.

윤 총장과 이 지검장은 청와대의 울산시장 하명 수사·선거개입 의혹 사건의 주요 피의자에 대한 기소 여부를 두고 또다시 충돌했다. 송철호 울산시장, 황운하 전 울산지방경찰청장, 백원우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 박형철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 장환석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는 13명의 기소 여부를 두고 이 지검장이 홀로 반대 의견을 낸 것이다.
 

▲ 윤석열 검찰총장 ⓒ나경식 기자

지난달 29일 대검 청사서 윤 총장과 이 지검장, 서울중앙지검 수사팀 등이 참석한 회의가 열렸다. 이날 회의서 이 지검장은 기소해야 한다고 의견을 낸 다른 참석자들과 달리 소환조사 등 수사를 보완해 신중하게 결정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입장을 보였다. 또 전문수사자문단, 부장검사 회의 등 회의체에 이 사건을 올리자고 했다.

이 지검장을 제외한 다른 참석자들은 증거와 법리 등에 비춰 기소가 충분한 상태고,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정한 선거관리를 위해 신속한 기소가 필요하다고 했다. 결국 윤 총장은 이 지검장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고 13명의 기소를 결정해 지시했다. 기소는 차장 전결로 처리됐고 대검 회의록에 이 지검장의 이견도 남겼다.

앞서 법무부는 지난달 28최근 검찰 사건처리 절차의 의사결정 과정을 둘러싼 논란이 발생하고 보도되면서 국민들로서는 불안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라며 검찰이 사건처리 과정서 검찰청법과 위임전결 규정 등의 절차를 준수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다.

서울중앙지검장 ‘나홀로 반대’
법무부 차관 향한 작심 비판 글도

이어 형사사건에서는 실체적 진실규명 못지않게 절차적 정의가 중요하다중요사안의 처리에 관한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위해 부장 회의 등 내부 의사결정 협의체와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등 외부 위원회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것을 당부했다고 덧붙였다. 법무부는 이 같은 내용이 담긴 공문을 대검을 비롯해 전국 66개 검찰청으로 보냈다고 밝혔다.

이 지검장의 이견은 법무부 공문의 취지와 궤를 같이 한다. 반면 윤 총장은 중간간부 인사 발령이 이뤄지는 3일 전까지 울산 사건을 처리해야 한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고위간부 인사를 통해 이미 대검 참모진이 모두 교체됐고, 중간간부 인사서도 실무책임자가 상당수 교체되는 것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검찰 내부 갈등은 이걸로 끝이 아니다. 지난달 29일에는 후배 검사가 법무부 차관을 작심 비판하는 글이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에 올라왔다. 정희도 대검찰청 감찰2과장은 법무부 차관께라는 제목의 글에서 법무부가 검찰에 의사결정을 할 때 내·외부 협의체를 적극 활용하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검찰청법을 위반한 위법행위라고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 이성윤 서울중앙지검장

이어 정 과장은 장관은 정치인이지만 차관은 정치와는 거리가 먼 순수한 법률가라며 이런 위법에 눈감지 말고 직을 걸고 막았어야 한다고 김오수 법무부 차관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여러 차례 자리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말하셨다. 더 이상 법률가의 양심을 저버리지 말아달라고 요구했다.

정 과장은 현재 방영 중인 드라마 <검사내전>도 언급했다. <검사내전>은 지방서 일하는 검사들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그는 윗사람이 바뀌면 많은 변화가 생긴다. 어떤 사람은 그 변화에 순응하고 어떤 사람은 저항하며 끝까지 길들여지는 것을 거부하고 어떤 사람은 잘 대처해 자신을 지킨다는 이선웅 검사(이선균)의 독백을 인용했다.

항명하면
좌천된다?

검사 됐으면 출세 다한 거다. 추하게 살지 마라초임시절 어느 선배에게 들은 이야기다. 위법에 순응하지 않겠다. 가짜 검찰 개혁, 정치 검찰은 거부하겠다법률가의 양심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거듭 당부했다. 정 과장은 지난달 13일에도 검찰 고위간부 인사를 두고 검찰총장을 허수아비로 만들기 위한 인사라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이번 중간간부 인사로 청주지검 형사1부장으로 전보 조치됐다.
 

<jsj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석열 검찰총장 미래는? 2년 임기 채울까

1988년 검찰총장 임기제가 도입되면서 2년 임기가 법으로 보장됐다. 하지만 임기를 채운 총장은 윤석열 검찰총장의 전임인 문무일 전 검찰총장 포함 8명에 불과하다. 임기제 도입 후 취임한 총장들의 평균 재임기간은 16개월이 채 안 된다. 심지어 5~6개월만에 물러난 총장도 여럿 있다.

임기 채운 총장 8명뿐

문 전 총장의 전임인 김수남 전 총장은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시키고 자진 사퇴했다. 당시 김 전 총장은 임명권자를 구속했다는 점에서 도의적 책임을 진다고 했다. 채동욱 전 총장은 국정원 댓글사건을 수사하다 혼외자 논란이 불거지면서 7개월 만에 물러났다. 윤 총장은 여러 논란에도 불구하고 사퇴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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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