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8차 화성사건의 나비효과

이춘재 두고 검경 힘겨루기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지난 9월 중순 이전까지만 해도 이춘재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였다. 그가 ‘국내3대 미제사건’으로 꼽혔던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일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은 더더욱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불과 3개월 만에 이춘재는 검·경 갈등의 뇌관으로 떠올랐다. 이춘재로부터 시작된 나비효과를 <일요시사>가 쫓아가봤다.
 

▲ 재심 기자회견 갖는 박준영 변호사

경찰은 지난 17일, 이춘재의 신상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명칭도 이춘재 연쇄살인사건으로 변경했다.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브리핑서 이춘재가 자백한 14건의 살인사건 중 DNA가 확인된 5건 외에 DNA가 확인되지 않은 9건의 살인과 9건의 성폭행(미수 포함) 사건도 그의 소행으로 보고 추가 입건했다고 밝혔다.

9월부터
급물살

경찰은 지금까지 한 번도 이춘재의 신상을 공개적으로 밝힌 적이 없다”며 신상공개위원회를 열어 그의 이름과 나이 등 신상을 공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8일 화성시의회는 경찰과 언론사는 지역 전체에 부정적 인식을 갖게 만드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이라는 명칭을 이춘재 살인사건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이춘재 살인사건(이하 이춘재 사건)19861차 사건이 일어난 후 현재까지 역대 최악의 장기미제 사건으로 기록돼있었다. 당시 사건에 동원된 경찰 연인원은 205만여명으로 단일 사건 가운데 최다였다. 수사 대상자는 당시 21280명이었으며 무려 4116명의 지문을 대조했다. 사건의 베일이 벗겨지기 시작한 시점은 첫 사건이 발생한 지 무려 33년 만이다.

1986915일부터 199143일에 이르기까지 화성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 태안읍사무소 반경 34개 읍·면서 1371세 여성 10명이 살해당했다. 살해 과정서 대부분 스타킹이나 양말 등 피해자의 옷가지가 이용됐고 끈 등을 이용해 목을 졸라 살해한 교살이 7, 손 등 신체 부위로 목을 눌러 살해한 액살이 2건이었다.


피해자들은 인적이 드문 논밭길이나 오솔길 등에 숨어 있다 나타난 범인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버스정류장서 귀가하는 여성들이 대상이 됐다. 당시 경찰은 성폭행 피해를 가까스로 면한 여성과 용의자로 추정되는 사람을 태운 버스운전사의 진술로 몽타주를 만들었다. 이춘재가 등장하기 전까지 이 몽타주는 이춘재 사건의 가장 대표적인 이미지였다.
 

▲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모티브가 됐던 영화 &lt;살인의 추억&gt;

피해자들의 진술에 따르면 범인은 마른 체격에 165170의 키, 스포츠형으로 짧게 깎은 머리, 오똑한 코에 쌍꺼풀이 없고 눈매가 날카로운 갸름한 얼굴의 20대 중반 남자였다. 특히 손이 부드럽다는 언급이 있었다. 화성사건을 다룬 봉준호 감독의 영화 <살인의 추억>서도 손에 대한 얘기가 나올 만큼 범인의 특징은 널리 알려진 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인은 잡히지 않았다. 200642일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범인의 윤곽은 오리무중이었다. 모방범죄로 분류돼 범인이 잡힌 8차 사건을 제외하고 나머지 9건은 영구미제로 남는 듯했다. 범죄 심리학자들은 범인이 이미 사망했거나 수감 중일 것이라고 예측했다.

DNA로 33년 미제사건 해결
처음 칭찬 일색이었지만…

이춘재 사건의 실마리는 올해 중순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경기남부경찰은 지난 7월 이춘재 사건 현장의 증거물서 채취한 여러 DNA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에 감정 의뢰해 한 달여 뒤 이춘재의 것과 일치한다는 회신을 받았다. 918일 언론을 통해 이 사실이 알려지자 경찰은 919일 이춘재 사건의 용의자를 특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이춘재는 범죄 심리학자들의 예측대로 1994년 처제를 성폭행한 뒤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고 부산교도소에 수감 중이었다. 경찰은 이미 공소시효가 만료돼 이춘재에게 죗값을 물을 수는 없지만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실체적 진실의 발견을 위해 수사를 완료하겠다고 밝혔다.

30여년 전 사건 현장서 채취한 DNA로 이춘재 사건의 범인을 특정하면서 과학수사의 쾌거등 찬사가 쏟아졌다. 하지만 과거가 드러날수록 당시 수사기관의 민낯이 훤히 드러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모방범죄로 분류됐던 8차 사건과 초등생 김모양 실종사건 등으로 경찰이 수세에 몰리는 모양새다.


이춘재는 조사 과정서 14건의 살인과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털어놨다. 문제는 이춘재가 모방범죄로 분류됐던 8차 사건 역시 자신이 저질렀다고 자백한 점이다. 8차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윤모씨는 19891심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20년간 복역한 뒤 20098월 모범수로 감형 받아 출소했다.
 

▲ 민갑룡 경찰청장

8차 사건은 1988916일 경기도 화성시 태안읍 진안리 한 가정집서 당시 13세 박모양이 성폭행 당하고 살해된 채 발견된 사건이다. 경찰은 당시 사건 현장서 발견된 체모에 대한 방사성 동위원소 분석을 거쳐 인근 농기구 공장서 근무하던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해 자백을 받았다. 윤씨는 소아마비 장애인이었다.

윤씨는 상소하는 과정서 경찰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아 허위로 진술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춘재의 등장으로 8차 사건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윤씨는 재심 전문변호사로 알려진 박준영 변호사와 함께 지난달 13일 수원지법에 재심청구서를 제출했다.

이춘재 자백
경찰의 민낯

박 변호사는 형사소송법 420조가 규정한 7가지 재심 사유 중 새롭고 명백한 무죄 증거(5) 수사기관이 직무상 범죄(1호 및 제7) 등을 재심청구의 이유로 들었다. 새롭고 명백한 무죄 증거로 박 변호사가 제시한 것은 이춘재가 피해자의 집 대문 위치, 방 구조 등을 그려가면서 침입 경로를 진술한 점을 들었다.

또 윤씨가 범인으로 검거될 당시 주요 증거였던 국과수의 감정서가 취약한 과학적 근거에 기반해 작성됐고 주관이 개입됐다고 주장했다. 여러 전문가들이 국과수의 방사성 동위원소 검토 결과에 오류 가능성을 제시한 점을 근거로 들었다. 그러면서 수사기관의 직무상 범죄에 대해서는 경찰이 윤씨를 불법 체포하고 감금했으며 구타와 가혹행위를 저질렀다고 강조했다.

초등학교를 중퇴한 윤씨가 글씨가 서툴고 맞춤법을 잘 모르자, 경찰이 자술서에 적어야 할 내용을 불러주거나 글을 써서 보여주며 작성을 강요했다고 설명했다. 윤씨 측은 당시 경찰이 참 무서운 수사를 했다고 밝혔다. 경찰은 지난달 158차 사건의 진범이 이춘재라고 잠정 결론을 내린 상태다.

수사본부는 8차 사건에 참여한 경찰관 51명 중 사망한 11명과 소재가 확인되지 않은 3명을 제외한 총 37명을 수사해, 당시 형사계장 등 6명을 직권남용 체포·감금과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직권남용 권리행사 방해, 독직폭행, 가혹행위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또 수사과장과 담당검사를 직권남용 체포·감금 등의 혐의로 입건했다.

30여년 전 하굣길에 실종됐던 초등생 김모양 사건도 이춘재의 범행으로 밝혀지면서 점입가경이다. 19897월 초등학생 김양이 실종됐다. 입고 있던 치마와 메고 있던 가방은 발견됐지만 시신은 끝내 찾지 못했다. 경찰은 이 사건을 가출로 처리했다. 가족들은 계속해서 딸의 행방을 찾았지만 이춘재가 김양을 살해했다고 자백하면서 망연자실 상태에 빠졌다.

문제는 살인사건이 가출사건으로 바뀌는 데 경찰이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된 점이다. 경찰은 지난 17일 김양 실종 사건의 담당 형사들을 사체은닉 혐의로 입건했다. 수사 당시 형사계장과 형사 1명은 이춘재 사건의 진범 검거에 부담을 느끼고 실종 학생으로 추정되는 유골을 발견하고도 은폐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조작? 오류?
자존심 싸움

수사본부는 한 지역 주민으로부터 “1989년 초겨울 형사계장과 야산 수색 중 줄넘기 줄에 결박된 양손 뼈를 발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이춘재는 김양의 양 손목을 줄넘기로 결박했다고 자백한 바 있다. 하지만 형사계장은 유골의 존재를 김양의 가족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가족을 조사하는 과정서 줄넘기에 대해 물었다고 한다.


이춘재 사건의 나비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최근에는 8차 사건의 국과수 결과를 두고 검찰과 경찰이 한 판 붙었다. 검찰은 국과수 감정서가 조작됐다고 주장하고 있고 경찰은 오류가 있었다는 입장이다. 갈등은 검찰이 지난 118차 사건을 직접 조사하겠다고 나서면서 시작됐다. 이미 수개월에 걸쳐 8차 사건을 조사해온 경찰에 검찰이 끼어든 모양새가 됐다.
 

▲ 윤석열 검찰총장

수원지검 형사 6(전준철 부장검사)는 지난 128차 사건의 국과수 감정서가 허위로 조작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체모에 대한 방사성 동위원소 감별법 분석을 실제로 실시한 한국원자력연구원 감정 결과와 국과수의 감정서 내용은 비교 대상 시료 및 수치 등이 전혀 다르다고 설명했다.

국과수가 한국원자력연구원에 여러 차례에 걸쳐 수많은 체모의 중금속 성분 분석을 의뢰해 감정 결과를 회신한 뒤, 윤씨의 체모 분석 결과와 비슷한 체모를 범인의 것으로 조작했다고 보고 사실 관계를 확인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국과수의 감정서는 윤씨를 범인으로 지목하는 데 결정적인 증거로 사용된 바 있다.

그러자 경기남부경찰청 수사본부는 17당시 모발에 의한 개인식별관련 연구를 진행한 국과수 감정인이 과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자신의 연구 결과를 법과학분야에 도입하면서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시료 분석 결과값을 인위적으로 조합·첨삭·가공·배제해 감정상 중대한 오류를 범한 것이라고 반박했다. 검찰의 조작 주장에 경찰이 오류로 맞선 셈이다.

검찰은 경찰의 발표 당일 재반박에 나섰다. 검찰은 경찰의 발표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8차 사건 국과수 감정서는 일반인 체모를 감정한 결과를 범죄현장서 수거한 체모에 대한 감정 결과인 것처럼 허위로 작성하고 나아가 수치도 가공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재차 밝혔다.

국과수 감정서 두고 반박·재반박
수사권 조정 위한 기관들 큰 그림?


경찰은 지난 18일 또 다시 취재진 설명회를 열어 검찰은 당시 국과수가 한국원자력연구원 보고서상 ‘STANDARD’(표준 시료)는 분석기기의 정확성을 측정하기 위한 테스트용 표준 시료이고, 윤씨의 감정서에만 이를 사용하는 수법으로 감정서를 조작했다고 주장하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STANDARD는 테스트용 모발이 아닌 현장에서 발견된 체모라는 것.

검찰과 경찰이 8차 사건 국과수 감정서를 두고 상대의 입장을 반박·재반박하는 방식으로 맞서면서 자존심 싸움으로 번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정부 들어 검·경수사권 조정 문제를 두고 수면 아래서 갈등을 빚어왔던 두 기관이 이춘재 사건을 통해 정면으로 맞붙고 있다는 분석이다.

수사권 조정 문제를 둘러싼 검찰과 경찰의 갈등은 해묵은 논쟁이었다. 수사권 조정 흐름은 문재인정부 들어서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자 때부터 검찰의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조국 전 법무부장관은 민정수석시절인 지난해 1월 검·경 수사권 조정이 포함된 권력기관 구조개혁안을 발표했다.

이후 지난해 6월 정부는 검경 수사권 조정 합의문을 발표했다. 송치 전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고 경찰에 1차적 수사종결권을 주는 등 경찰 재량을 대폭 강화하는 동시에 검찰은 기소권과 함께 일부 특정 사건에 관한 직접 수사권과 송치 후 수사권, 보완수사 요구권 등 경찰에 대한 통제장치를 확보했다. 현재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법안)에 올라타 있다.
 

일각에선 조국 전 법무부장관 사건으로 청와대와 각을 세운 윤석열 검찰총장이 경찰의 김기현 전 울산시장 측근비리 수사를 둘러싸고 또 다시 대립하는 모양새를 보면서 ·경 수사권 조정 국면서 우위를 차지하려는 노림수가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이춘재 사건에 검찰이 개입한 것도 그 연장선상이라는 분석이다.

최근 검찰은 국회에 의견서를 제출하면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 수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검찰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수시를 시작하고 종결할 권한을 가지면 수사 공백이 있을 수 있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패스트트랙
국회는?

민갑룡 경찰청장은 검찰의 이 같은 움직임에 반발했다. 민 청장은 지난 16일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사서 진행된 정례간담회서 패스트트랙 안의 대의가 손상돼선 안 된다수정이 가능하다면 그간 사법개혁특별위원회서 잠정 합의된 것 중 빠진 부분이 반영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사권 조정안이 수정된다면 검찰의 권한 확대가 아닌 경찰의 수사 가능 범위를 늘리는 방향으로 수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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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중동발’ 한국 경제 파장 막전막후

[일요시사 취재1팀] 한상진 기자 = 미국이 이스라엘과 함께 이란을 공격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28일 실행에 옮겼다. 이 같은 결정 배경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이란 핵 보유 가능성 차단’ ‘이란 정권교체’ ‘중동지역 미국 영향력 강화’ ‘석유 패권 우위’ 등이다. 아울러 이란 석유의 상당 부분을 수입하는 중국 견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지난해부터 이란과 8차례에 걸쳐 핵 협상을 진행했다. 이란 측에서 트럼프정부에 큰 사업적 이익을 제안하기도 하면서 상당한 진전을 봤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이란이 핵 능력에 대한 완전한 포기를 약속하지 않으면서, 미국은 이란 수뇌부 제거 없이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공습 이틀 후인 지난 2일(현지시각) 37년간 이란 최고 지도자로 군림해 온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사망했다. 공습 결정 여러 요인 하메네이는 지난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혁명수비대 및 국방 관련 요직을 거치며 권력기반을 다졌다. 이후 국회의원과 이슬람공화당 지도부를 역임했고, 지난 1981년 대통령에 선출돼 두 차례 연임하며 정치적 입지를 강화했다. 그는 엄격한 이슬람 율법에 따라 대내적으로 여성, 종교적 소수자를 탄압하며 억압적인 정책을 펼쳤다. 이란 내에서 발생하는 시위에 대해서도 잇달아 강경하게 진압했다. 지난 2009년 강경파인 마무드 아마디네자드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반발하는 시위를 비롯해, 지난 2022년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붙잡힌 22세 쿠르드족 여성 마흐사 아미니가 의문사하며 촉발된 대규모 반정부 시위 등을 강경하게 진압했다. 특히 올해 초 대규모 반정부 시위에서는 이슬람혁명수비대(IRGC)와 바시즈민병대를 동원해 무차별적 유혈 진압을 밀어붙였다. 이 시위는 이란 핵개발에 따른 서방의 제재가 수년간 이어지며 경제난이 누적됐고, 테헤란 상인들의 항의가 대규모 반정부시위로 번진 것이었다. 이란 당국은 이 사태로 인한 사망자를 3117명으로 집계했지만, 외부에서는 3만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메네이의 사망으로 이란 내 정치 지형은 크게 변할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군사행동이 끝난 후 이란인들에게 “여러분의 정부를 장악하라”고 촉구했다. 미국이 직접 나서 정권교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올해 초 있었던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의 불길이 다시 붙으면 친미 정권 수립으로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는 분위기다. 트럼프정부는 글로벌 에너지 패권을 추구하고 있다. 이번 공습으로 이란산 원유에 대한 일정한 영향력을 갖게 될 가능성이 있다. 베네수엘라산 원유처럼 직접 모든 것을 통제하지는 않더라도, 향후 이란의 정치적 주도권을 잡는 세력이 원유 문제에서 미국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타협할 가능성이 크다. 미·이 전쟁 여파 국내 강타 금융, 산업 등 전방위 요동 이렇게 되면 이미 세계 최대 산유국인 미국은, 세계 최대 석유 매장량을 보유하고 있는 베네수엘라에 이어 중동지역 원유 생산에도 관여하게 된다.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훨씬 넘어서는 시장 영향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은 우리 경제 전반에 큰 영향을 끼쳤다. 우선 증시가 크게 출렁였다. 지난 3일 코스피가 역대 최대 낙폭(452.22포인트)을 기록했고, 상장사 전체 시가총액은 하루 사이 377조원 넘게 줄었다. 주요 코피스 종목도 일제히 하락세를 보였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유가증권시장 시가총액은 이날 종가 기준 4769조4000억원으로 전 거래일인 지난달 27일 대비 376조9396억원 감소했다. 삼성전자는 시가총액이 전 거래일 대비 약 126조6803억원 감소했다. 주가는 이날 9.88% 급락하며 5거래일 만에 20만원 선을 내줬다. SK하이닉스도 100만원 선이 깨지며, 시총이 86조9497억원(11.50%) 줄었다. 이 밖에 현대차(-11.72%), LG에너지솔루션(-7.96%), 삼성바이오로직스(-5.46%) 등 주요 기업들의 시총 감소분이 상대적으로 컸다. 반면 방산주는 급등하는 모습을 보였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주가가 19.83% 오른 143만2000원, 한화시스템은 29.14% 오른 14만6700원을 기록하며 사상 최고가를 경신했다. LIG넥스원은 11.15% 오른 68만8000원을 기록하며 상한가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코스피 지수는 투자심리가 악화하며 7.24% 급락한 5791.91에 거래를 마쳤다.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다.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의 전면전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유가증권시장에서는 외국인이 5조1708억원을 순매도하며 지수를 끌어 내렸고, 기관도 8817억원 매도 우위를 보였다. 미국과 이란 전쟁의 여파로 인한 불안감이 이날 장 마감까지 이어지며 매도세를 자극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로 인해 지난 3일과 4일 이틀 연속 매도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도호가 일시중지)가 발동되기도 했다. 금융권 직격타 코스피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된 건 지난달 6일 이후 한 달 만이다. 지난 4일 오전 9시25분 기준 코스피 지수는 189.43포인트(3.27%) 내린 5602.48에 거래되고 있다. 지수는 199.32포인트(3.44%) 내린 5592.59에 개장했다. 코스닥지수는 35.83포인트(3.15%) 내린 1101.87에 거래 중이다. 지수는 전날보다 25.62포인트(2.25%) 내린 1112.08에 개장했다. 환율 역시 급등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 이후 중동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위험 자산 회피 심리로 원·달러 환율이 한때 1500원을 돌파했다. 1500원 돌파는 지난 2009년 금융위기 이후 17년 만이다. 4일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2.9원 오른 1479.0원에 개장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날 오전 0시20분쯤 원·달러 환율이 야간 거래에서 심리적 저항선인 1500원을 넘어섰다. 환율은 1506원까지 올랐다가 다시 1500원 밑으로 하락했다. 미국·이스라엘의 이란 공습으로 시작된 중동 사태가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자, 안전자산 선호 심리가 강화돼 환율이 급등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내 산업계도 고환율에 따른 환경 변화에 촉각을 세우고 있다. 통상 원·달러 환율이 오르면 수출 단가 측면에서 이익을 줄 수 있지만, 원자재 수입 가격 상승과 결합할 경우 실질적인 부담이 커지게 된다. 반도체와 조선 업종은 단기 방어가 가능하다는 평가가 나오지만 항공과 철강은 비용 부담이 직격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수출 주력 품목인 반도체의 경우 현재 시장의 공급 제약 국면이 지속되고 있다. 이에 따라 원가 상승 일정 부분을 제품 가격에 반영할 수 있는 상황이다. 조선의 경우 수주 산업인 만큼 이미 3년치 이상의 일감을 확보하고 있어, 고환율 영향은 적을 것으로 보인다. 기존에 수주한 선박을 건조해 선주사에 인도하는 구조라, 이미 3~4년치의 수주 잔고를 확보한 상태다. 따라서 현재 환율 흐름에 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아울러 조선 업계 특성상 달러로 수주 계약을 체결하기 때문에 단기적 관점에서 환율 상승은 실적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 자동차의 경우 양날의 검이다. 미국 수출 및 매출이 늘어나고 있어 달러 강세가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질 수 있는 반면, 자동차 한 대에 수백개 이상의 부품이 들어가는 만큼 원자재 부담이 상존한다. 다른 업종 대비 상대적으로 부담은 덜하지만, 역시 환율 시장의 상황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업종 별로 희비 교차 항공의 경우 항공기 리스료, 정비료 등 주요 비용이 달러로 결제되는 만큼 업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특히 3~4월은 항공업계 전통적 비수기다. 개학과 함께 공휴일이 적어 여객 수요가 일시적으로 둔화되기 때문이다. 항공기 이용률이 낮은 상황에서 환율 상승은 수익성 악화로 이어질 수 있다. 아울러 소비자 부담도 확대돼 수요 위축이 나타날 수 있다. 보통 항공사들의 유류할증료는 1개월 시차를 두고 항공권 가격에 반영된다. 다음 달에 항공권을 구매할 경우 인상된 유류할증료가 적용될 가능성이 있다. 철강업계는 중동 정세 불안으로 인해 에너지 가격이 크게 상승하는 가운데, 고환율 부담까지 겹치며 이중고를 겪고 있다. 철강은 업종 특성상 환율 상승으로 수입 원자재 가격이 올라도 이를 철강 제품 가격에 즉시 반영하기 구조다. 그만큼 수익성이 악화할 수 있다. 정유업계에는 환율 상승이 단기적으로는 긍정적이다. 달러 상승에 따라 비용이 증가하지만, 수출할 때에도 높아진 달러가 적용돼 비용 부담이 상쇄된다. 특히 이전에 저렴하게 사들인 원유에 대한 재고 평가이익 인식은 재무적 개선으로 이어진다. 원유 재고 평가이익은 정유사가 보유한 원유(재고) 가치가 시세 변동으로 장부상에 이익으로 올라가 실적에 반영되는 현상을 뜻한다. 유가 상승 시 저가로 산 원유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다. 기름값도 급등세를 보였다. 지난 4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 자료에 따르면 이날 오후 7시 기준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 판매가격은 전날보다 L당 56.9원 오른 1845.4원으로 집계됐다. 서울 휘발유 평균 가격이 1800원을 넘어선 것은 지난해 12월18일(1802.7원) 이후 약 2개월 반 만이다. 주가·환율·유가 변동 산업계 직결 모건스탠리 “수출지향 한국 더 민감” 같은 기간 전국 평균 휘발유 가격 역시 L당 61.6원 상승한 1784.6원을 기록했다. 경유 가격 상승 폭은 더 컸다. 서울 지역 경유 평균 판매가는 1811.2원으로 전날보다 103.8원 뛰었다. 전국 평균 경유 가격도 1741.8원으로 하루 만에 1700원을 돌파했다. 싱가포르 석유 제품 시장가에 연동된 국내 주유소 가격은 통상 2∼3주 차이를 두고 국제 유가 변동이 반영된다. 다만 전쟁 확산 우려 등에 따라 주유 수요가 늘고 환율 변수까지 겹치면서 가격 상승 압력이 더욱 커지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달 28일 미국·이스라엘이 이란과의 전쟁을 시작한 이후 국제 유가는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지난 2일 이란혁명수비대(IRGC)가 호르무즈 해협 통과를 시도하는 선박을 공격하겠다고 공식 경고하면서 호르무즈 해협이 사실상 봉쇄됐기 때문이다. 호르무즈 해협은 전 세계 원유 물동량의 약 20%를 차지하고 있다. 정부도 미국·이스라엘과 이란 간 전쟁을 틈타 기름값을 과도하게 올리는 주유소들을 제재하기 위해 ‘최고가격 지정’ 작업에 착수했다. 주유소 담합 조사 등 시간이 필요한 조치에 앞서, 즉각적인 가격 통제에 나선 것이다. 또 주유소 담합 적발 시 ‘가격 재결정 명령’을 내리기로 하는 등 유가 잡기 총력전에 나섰다.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지난 5일 민생물가 특별관리 관계 장관 태스크포스(TF)를 주재하고 ‘중동 사태에 편승한 시장교란 행위 근절 방안’ 등을 논의했다. 구 부총리는 이날 “현재 국내 석유류 수급 상황은 안정적이며 국제 가격의 국내 반영 시차 등을 고려할 때 아직 국내 가격에 실질적 영향을 줄 시점은 결코 아니다”며 “석유류 최고 가격의 지정 등을 포함해 가능한 모든 행정 조치를 활용해 철저히 대응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앞서 이재명 대통령이 임시 국무회의에서 석유 판매가격의 최고 가격 지정을 지시한 데 따른 후속조치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한 가운데,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입산 석유·가스 의존도가 높은 아시아 국가들이 전쟁에 따른 경제적 여파가 심각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한국 경제가 중국보다 원유·천연가스 가격 상승에 따른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지난 2일(현지시각) 모건스탠리의 아시아 수석 이코노미스트 체탄 아야 등은 전날 보고서를 통해 이같이 전망했다. 보고서는 “아시아 국가들은 제조업 비중이 높고 수출 지향 경제인 만큼 유럽이나 미국에 비해 유가 변동에 더 민감하다”고 설명했다. 이러다 진짜 대전 터지면… 이어 석유·가스 무역적자 수준을 근거로 한국을 포함해 태국·대만·인도 등이 상대적으로 성장 측면에서 하방 위험에 노출돼있다고 지적했다. 다만 “이번 전쟁에 따른 아시아의 전체적 여파는 유가 상승 수준과 고유가 지속 기간에 달려있다”면서 “현재까지는 관리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진단했다. <jins.h@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