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신문고-억울한 사람들> (68)경찰 모욕죄 걸린 서씨

무단횡단 했다가 전과자 신세?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일요시사>가 연속기획으로 ‘신문고’ 지면을 신설합니다. 매주 억울한 사람들을 찾아 그들이 하고 싶은 말을 담고 있습니다. 어느 누구도 좋습니다. <일요시사>는 작은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일 겁니다. 이번에는 무단횡단을 했다가 전과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프리랜서 작가 서모씨의 이야기입니다.
 

경찰에게 욕을 하면 무슨 일이 생길까. 프리랜서 작가 서모씨는 지난 10월 경찰을 상대로 욕을 했다가 모욕 혐의를 받아 현행범으로 체포돼 조사를 받았다. 무단횡단을 하다 경찰에게 적발된 후 실랑이를 벌이다 일이 커졌다. 서씨는 모욕죄가 인정돼 벌금 100만원을 선고 받았다. 범칙금 2만원짜리 무단횡단을 했다가 전과자가 되게 생긴 셈이다. 서씨는 무단횡단을 한 것도 맞고 경찰관에게 욕을 한 것도 맞지만, 이건 너무 과하다고 토로했다.

갑자기 나타나

사건은 지난 10월에 일어났다. 서씨는 1011일 금요일 오후 635분경 지인들과 만나기 위해 서울 인사동 화랑가로 가던 중이었다. 당시 서씨는 약간 취한 상태였고 방송용 카메라를 메고 있었다.

약속 시간이 촉박했던 서씨는 서울 종로3가 사거리의 횡단보도를 빨간불 상태서 무단으로 건넜다. 서씨에 따르면 1011일에는 광화문 인근서 집회가 진행되던 중이라 차량 통행이 뜸했다. 차가 없는 틈을 타 신호가 바뀌기 전에 횡단보도를 건넌 것이다.

청계천 쪽 끝점서 피카디리 극장 쪽 끝점까지 건넌 서씨는 집회 행진 관련 교통관리를 하고 있던 서울혜화경찰서 교통과 소속 교통안전경찰관에게 무단횡단을 적발당했다. A 경찰관은 서씨에게 주민등록증을 요구했고, 범칙금 2만원을 통고했다.


무단횡단을 했을 경우 도로교통법 제102항과 5항에 따라 횡단보도가 없는 곳에서 무단으로 건넜을 때 3만원, 횡단보도로 건너긴 했지만 빨간불이었을 때에는 2만원의 범칙금이 부과된다.

서씨는 A 경찰관의 요구에 주민등록증을 제시했고 범칙금 통고처분이 끝난 후 자리를 뜨려 했다. 하지만 A 경찰관의 상급자로 추정되는 B 경찰관이 등장했다. 서씨에 따르면 B 경찰관은 현장서 벗어나려는 그에게 갑자기 나타나 여기서 무단횡단을 하시면 어떻게 합니까라는 뉘앙스로 윽박지르고 훈계했다.

서씨는 B 경찰관의 말에 했다고 한다. 그는 “A 경찰관의 요구에 응했고 범칙금 통고처분을 받았다. 그럼 다 끝난 일 아닌가?”라며 가뜩이나 약속시간에 늦어 마음이 급했는데 B 경찰관이 나타나 훈계를 시작해 화가 났다고 설명했다.

빨간불에 건너다 단속 걸려
실랑이 벌이다 경찰에 욕설

이어 내게 말하는 경찰관을 향해 왜 다 끝난 일인데 이러냐고 따지자 경찰관이 대뜸 공무집행방해죄로 처벌할 수 있다고 말했다 B 경찰관이 A 경찰관에게 휴대폰으로 서씨를 촬영하라고 지시했다는 것.

서씨는 경찰이 공무집행방해죄를 언급하고 휴대폰으로 촬영하는 모습에 격분했다. 실제 A 경찰관이 서씨를 찍기 시작하자, 서씨도 어깨에 메고 있던 방송용 카메라로 경찰관들을 찍었다. 이 과정서 서씨는 XX, XX들아,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욕설 섞인 말을 했다.

서씨의 욕설을 들은 경찰관들은 그를 현행범으로 체포,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를 벌였다. 서울중앙지법은 서씨에게 벌금 100만원의 약식명령을 내렸다. 서씨는 현재 100만원의 벌금형을 인정할 수 없다며 정식재판을 청구한 상태다.
 

▲ 본 사진은 특정기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

그는 이 사건의 1차 원인이 내 무단횡단서 비롯됐다는 점은 인정한다. 하지만 사건이 이렇게 커지게 된 2차 원인은 B 경찰관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당시 A 경찰관에게 미안합니다. 수고하세요라는 말까지 했다. 거기서 끝났다면 일이 이렇게 되진 않았을 것이라고 하소연했다.

무단횡단에 대해 통고처분을 했다는 사실에 분개해 욕설을 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또 불특정 다수가 지나다니는 길에서 큰 소리를 말해 공연히 피해자들을 모욕했다는 내용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자신은 B 경찰관을 향해서만 욕설을 했을 뿐 A 경찰관에 대해서는 거친 언행을 한 적이 없다는 주장이다. 서씨는 경찰관들과 실랑이를 벌일 당시 사건 현장에는 나와 경찰관들뿐이었던 걸로 기억한다고 덧붙였다.

모욕죄는 공연하게 사람을 모욕함으로써 성립되는 범죄다. 모욕죄로 처벌을 받을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친고죄, 즉 피해자가 고소를 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다.

모욕죄가 성립되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특정돼야 하고 모욕적 발언이 불특정 다수에게 퍼질 가능성(공연성)이 있어야 하고 상대방의 사회적 평가를 떨어뜨릴 만큼 경멸적 표현이어야 한다는 세 가지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다 끝나 가려는데 다른 경찰이 윽박”
벌금 100만원 선고받고 정식재판 중

서씨와 경찰관들의 주장은 공연성 부분서 엇갈리고 있다. 서씨는 경찰관들만 있는 자리서, 경찰관들은 서씨가 불특정 다수가 지나다니는 길에서 욕설을 했다는 입장이다. 실제 서씨와 비슷한 상황서 공연성 여부로 판결이 달라진 사례가 있다.

2013년 한 시민이 자신의 승용차가 없어졌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전화를 받은 경찰관은 술에 취한 시민이 주차 장소를 착각할 수 있다고 판단해 상황을 꼬치꼬치 캐물었다. 그러자 이 시민은 경찰서를 찾아와 욕설을 퍼부었다. 경찰은 모욕죄 등의 혐의를 적용, 이 시민을 현행범으로 체포했다. 당시 경찰서에는 전화를 받은 경찰관과 동료 2명이 있었다.
 

1심 재판부는 이 시민의 모욕죄를 인정, 벌금 100만원을 선고했다. 하지만 항소심에선 벌금이 50만원으로 줄어들었다. 시민이 욕하던 당시에 주변에 누가 있었는지 여부로 공연성을 판단한 것이다.

전화를 받은 경찰관에게 욕할 당시에는 주변에 경찰관만 있었다. 항소심 재판부는 “2명의 경찰관들은 시민이 발설한 내용을 함부로 전파하지 않을 것이라 기대할 수 있는 직무상의 관계라는 점 등을 들어 공연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하지만 또 다른 경찰관에게 욕설을 내뱉을 당시에는 경찰관 외에도 민원인 등이 있었다. 그 부분에서는 공연성이 인정돼 벌금 50만원이 선고됐다. 대법원 역시 항소심 재판부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며 상고를 기각, 욕설을 한 시민에게 벌금 50만원이 확정 선고됐다.

공연성쟁점


서씨는 욕을 한 건 분명히 잘못했다. 하지만 그건 2명의 경찰관 앞에서 상대적인 약자이자 혼자인 저를 지키기 위한 자기방어였다선처를 호소하기 위해 두 차례에 걸쳐 근무처를 찾아 갔지만 경찰관들을 만날 수 없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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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