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빡세진’ 음주단속 현장 가보니…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7.01 11:25:11
  • 호수 12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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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2잔 마셨는데 0.076%?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한 일명 ‘제2 윤창호법’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강화된 기준으로 대대적인 단속 예고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 적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가 그 긴박한 현장을 찾아갔다. 

▲ 음주운전 단속 중인 경찰

제2의 윤창호법이 본겨적으로 시행됐다. 경찰은 지난 25일 자정부터 음주운전 처벌기준을 강화했다. 강남경찰서는 영동대교 남단, 영등포경찰서는 영등포공원 인근, 마포경찰서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남경 앞에서 단속을 시작했다. 기자는 영동대교 남단 리베라 호텔 인근으로 발검음을 옮겼다. 

예고해도 
줄줄이 적발

자정이 되기도 전에 이미 현장엔 기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주차된 경찰차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 사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음주운전자가 적발되면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거나 자극하는 행위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단속이 시작됐다. 경찰은 영동대교 남단 리베라 호텔 앞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음주단속을 시작했다. 경찰봉으로 차를 정차하거나 이동시켰고, 정지된 차량으로 다가가 “음주 단속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음주 측정기를 들이댔다. 경찰은 오토바이, 택시, 버스 등 구분 없이 모든 차량 운전자의 음주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오전 0시15분경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서 흰색 아우디가 멈춰 섰다. 경찰은 운전자 서모(47)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를 측정했는데 빨간불이 켜지며 경고음이 울렸다. 경찰은 서씨를 차에 내리게 한 후, 경찰차 있는 쪽으로 데리고 갔다. 


얼굴이 붉었던 서씨는 걸어가면서도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등 확연히 술에 취한 모습이 보였다. 경찰은 입안의 알코올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 서씨에게 물을 주면서 입안을 헹구라고 지시했다.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껌을 씹고 있던 서씨는 경찰의 지시에도 불응했다. 서씨의 태도는 반항적이었고, 기자를 향해 입안에 물을 뱉는 시늉을 하는 등 위협적인 모습까지 보였다.

음주측정을 앞둔 서씨는 “난 원래 술을 잘 못 하는데, (오늘은)소주 2잔을 마셨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서씨에게 “도로교통법 44조 1항과 2항에 근거해 음주 측정을 실시하겠습니다. 풍선 부는 것처럼 5초간 불어주시면 됩니다”라며 음주 측정 방법을 고지했다. 

서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6%. 경찰은 “선생님, 0.076으로 면허정지가 나왔습니다. 0.079%까지 면허정지고 0.08%부터는 면허취소”라고 말했다. 서씨는 경찰에게 어깨동무를 시도하는 등 위협적인 액션을 취했다. 이에 경찰은 “팔 내리세요. 지금 뭐 하자는 거에요?”라며 상황을 무마시켰다. 

조사 결과 서씨는 강남구 도산대로의 한 음식점서 회식 후 830m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서씨는 대리운전을 부르고 집으로 가는 귀갓길서도 보조석 창문 밖으로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등 음주측정 결과에 불만을 표출했다. 

임윤균 강남경찰서 교통안전계 경위는 “소주 2잔을 먹고 0.076%가 나오긴 힘들다. 최소 소주 1병은 마셨을 것”이라며 “요즘 소주도 도수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두 잔 가지고 이 정도는 안 나온다”고 말했다. 

취객 상대로 맞는 일 다반사…
미리 앱으로 단속 위치 파악도


취객의 위협적인 행동에 대해 임 경위는 “음주운전 단속을 하다 보면 취객이 경찰을 위협하는 건 다반사고 맞기도 한다. 공무집행 방해로 형사 처벌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한 대 맞고 만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후 경찰들은 영동대교 남단을 지나가는 차량들에 대해 음주단속을 진행했다. 간혹 음주 측정이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음주 단속자가 단속에 걸렸다고 생각한 기자들이 몰렸다가, 정상 수치가 나오면 차량을 보내는 식의 과정이 반복됐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음주운전 단속을 하면서 박카스, 술빵, 만두, 이스트 성분이 들어있는 빵을 섭취했을 경우 물로 입을 헹군 뒤 다시 재측정을 한다”고 귀띔했다. 

약 1시간이 지났을까. 경찰들은 일제히 음주단속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로 단속 위치가 음주단속 애플리케이션(앱)에 노출되었다는 것. 경찰들은 신속하게 강남 청담동 명품거리로 자리를 이동했다.
 

음주단속 앱에 관해 묻자 한 경찰은 “음주운전 단속 앱에 음주단속 위치가 노출되면 경찰들은 자리를 이동한다. 음주 운전자들이 앱을 확인하고 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 일대에 소위 ‘스팟’이라고 말하는 위치가 있다. 이 위치들은 음주운전자들이 멀리서도 보이지 않으면서도 적발 빈도가 높은 곳들이다. 영동대교 남단 리베라 호텔 앞도 코너를 돌아야 바로 경찰이 보이고, 지금 이 위치도 언덕서 올라와야 음주단속 경찰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차 세우고
대리를…

오전 1시30분 청담동 명품거리 구찌 매장 앞 음주단속 현장. 영동대교 방면으로 향하던 하얀색 재규어 한 대가 음주단속 현장을 30m를 앞두고 갑자기 인도로 방향을 틀었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이 급히 뛰어가 차 운전석으로 향했다.

차 안에 있던 운전자 홍모씨(35·여)가 경찰이 내민 음주 측정기에 ‘후’하고 바람을 부니 ‘삐’ 소리가 나며 탐지기 불빛이 연두색서 빨간색으로 변했다. 음주 측정기서 알코올 반응이 나온 것이다.  

경찰의 인계로 자리를 이동한 홍씨는 서씨와 달리 비틀거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홍씨에게 음주측정을 앞두고 한 번만 측정한다고 강조하며, 측정 결과에 이의가 있을 경우 병원을 찾아가 피를 뽑을 수 있다고 고지했다. 

식사 시간
집중 단속

홍씨는 양주 2잔을 마시고 가글로 입안을 헹궜다고 했다. 경찰은 “가글을 했어도 물 300mL, 150mL 등을 마셨기 때문에 다 날아갔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김씨와 동일하게 음주측정을 진행했다. 홍씨의 알코올 농도는 0.110%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경찰은 “남자와 여자, 체질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술을 많이 드신 상태”라고 말했고 홍씨는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는데 오늘은 양주 두 잔을 마셨다”고 대답했다. 


윤창호법에 대해 알고 있냐는 질문에 홍씨는 “잘 모른다. 술을 잘 못 먹는 체질이라 양주 두 잔만 먹었는데도 수치가 높게 나온 것 같다. 아까 경찰이 말씀하신 것처럼 남자와 여자, 체질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 것처럼 마신 양에 비해 많이 나온 것 같다”고 변명했다. 
 

▲ 음주운전 단속 앱

경찰이 왜 차를 인도로 끌고 왔냐고 묻자 그는 “이 근처 술집서 술을 마시고 나오는 길이었다. 대리기사를 부르기 위해 큰 길가로 나왔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당황했다. 경찰을 보고 피한 게 아니라, 대로변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워놓고 대리기사를 부르려고 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찰차 보이자 가글 대리기사 콜…가글 하기도
서울서 총 21건 적발 25일 2시간동안 총 21건

음주 측정 전 가글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홍씨는 “원래 술을 못 마시니까 가글을 한 것뿐이고 가글이 (음주 측정에)도움이 되는지는 모른다”고 항변했다. 

강화된 음주 기준 처벌에 대해서도 홍씨는 “전혀 모른다. 난 원래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다. 10번이면 10번 대리기사를 부른다. 대리기사님에게 ‘우리 집’이라고 말하면 알 정도로 자주 부른다. 그래도 운전석에 앉은 게 잘못”이라고 과오를 시인했다. 

경찰은 “월요일 오전 이 시간대에는 음주단속이 많이 적발되지는 않는다. 클럽이 열리는 다음 날 아침 시간대인 오전 5시서 7시 사이가 특히 많이 적발된다. 특히 수요일이나 주말에도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임 경위는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명피해나 건물 사고를 줄이기 위해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해 특별단속을 시행했다”며 “아침 시간대인 7시 이전과 점심에 반주하는 시간대, 저녁에 술 한 잔하는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단속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오늘부터 시행된 음주운전 측정 치수가 0.03%이기 때문에 술 한 잔이라도 했다면 핸들을 잡지 마시고 대중교통 이용을 하시거나 대리기사를 이용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숙취운전
처벌 가능성↑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5일 오전 0시부터 2시까지 서울 전역서 음주운전 단속을 벌인 결과 총 21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5~0.08% 미만은 6건,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8% 이상은 총 15건이었다. 
 

강화된 ‘윤창호법’이 시행되고 경찰이 대대적인 음주운전 단속에 나선 결과다. 기존에는 혈중알코올농도 0.05%~0.1% 이상이면 각각 면허정지, 취소 처분이 내려졌지만, 개정 후 면허정지 기준은 0.03%, 취소는 0.08%로 강화됐다. 이는 몸무게 65㎏ 성인 남성이 소주 1잔만 마셔도 나오는 수치다. 

음주운전 기준이 강화되면서 출근길 ‘숙취 운전’도 처벌 가능성이 커졌다. 전날 마신 음주로 인해 음주단속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혈중알코올농도를 계산하는 위드마크 공식에 따르면, 체중 60㎏ 남성이 자정까지 19도짜리 소주 2병을 마시고 7시간이 지나면 혈중알코올농도는 약 0.041%가 된다. 자정에 술을 마시고 아침 7시에 운전을 할 경우 면허정지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창호법 뭐길래?

지난해 9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윤창호씨의 이름을 딴 윤창호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및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음주운전 처벌과 기준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25일부터 시행된 제2 윤창호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음주운전 적발기준을 기존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0.03% 이상으로, 면허취소 기준은 0.1% 이상~0.08% 이상으로 강화됐다.

음주운전 처벌 상한도 현행 ‘징역 3년, 벌금 1000만원’서 ‘징역 5년, 벌금 2000만원’으로 높아졌다. 음주운전 적발로 면허가 취소되는 횟수 역시 기존 3회서 2회로 강화됐다. <환>

 

<기사 속 기사> ‘음주단속 앱’ 믿어도 되나?

음주단속 기준이 강화되면서 단속을 피할 수 있는 ‘음주운전 단속 앱’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도에 실시간으로 음주운전 단속 구간을 표시해주는 음주운전 단속 앱은 윤창호법 시행과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다운로드 건수가 100만건에 달한 것도 있었다.

실제 음주운전 단속앱을 실행하면 사용자의 위치와 그에 맞춰 춘천, 원주, 강릉 등 각 도내 지역별 경찰 단속 현황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누구나 쉽게 GPS 위치정보 기능 등을 통해 이용이 가능하며 경찰의 음주단속 위치를 앱 사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제보하는 방식이다.

사용자 위치를 기준으로 반경 3·5·10㎞ 내 경찰 위치 제보와 집중지역 통계 정보를 제공, 춘천지역은 157곳(2000건 이상), 43곳(5000건 이상)이 단속 집중지역으로 분류돼있다.

최근 음주운전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경찰 단속이 강화되면서 해당 앱 누적 사용자만 400만명에 달하고 있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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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