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빡세진’ 음주단속 현장 가보니…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19.07.01 11:25:11
  • 호수 12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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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주 2잔 마셨는데 0.076%?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한 일명 ‘제2 윤창호법’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다. 하지만 강화된 기준으로 대대적인 단속 예고에도 불구하고 음주운전 적발은 끊이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가 그 긴박한 현장을 찾아갔다. 

▲ 음주운전 단속 중인 경찰

제2의 윤창호법이 본겨적으로 시행됐다. 경찰은 지난 25일 자정부터 음주운전 처벌기준을 강화했다. 강남경찰서는 영동대교 남단, 영등포경찰서는 영등포공원 인근, 마포경찰서는 서울 마포구 합정동 남경 앞에서 단속을 시작했다. 기자는 영동대교 남단 리베라 호텔 인근으로 발검음을 옮겼다. 

예고해도 
줄줄이 적발

자정이 되기도 전에 이미 현장엔 기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기자들은 주차된 경찰차 주위에 삼삼오오 모여 사전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경찰은 “음주운전자가 적발되면 카메라를 가까이 들이대거나 자극하는 행위를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단속이 시작됐다. 경찰은 영동대교 남단 리베라 호텔 앞에서 지나가는 차량을 음주단속을 시작했다. 경찰봉으로 차를 정차하거나 이동시켰고, 정지된 차량으로 다가가 “음주 단속하겠습니다”라고 말하며 음주 측정기를 들이댔다. 경찰은 오토바이, 택시, 버스 등 구분 없이 모든 차량 운전자의 음주를 측정하기 시작했다.

오전 0시15분경 서울 강남구 영동대로서 흰색 아우디가 멈춰 섰다. 경찰은 운전자 서모(47)씨의 혈중 알코올농도를 측정했는데 빨간불이 켜지며 경고음이 울렸다. 경찰은 서씨를 차에 내리게 한 후, 경찰차 있는 쪽으로 데리고 갔다. 


얼굴이 붉었던 서씨는 걸어가면서도 중심을 잃고 넘어지는 등 확연히 술에 취한 모습이 보였다. 경찰은 입안의 알코올 성분을 제거하기 위해 서씨에게 물을 주면서 입안을 헹구라고 지시했다. 

오른손을 주머니에 넣고 껌을 씹고 있던 서씨는 경찰의 지시에도 불응했다. 서씨의 태도는 반항적이었고, 기자를 향해 입안에 물을 뱉는 시늉을 하는 등 위협적인 모습까지 보였다.

음주측정을 앞둔 서씨는 “난 원래 술을 잘 못 하는데, (오늘은)소주 2잔을 마셨다”고 해명했다. 경찰은 서씨에게 “도로교통법 44조 1항과 2항에 근거해 음주 측정을 실시하겠습니다. 풍선 부는 것처럼 5초간 불어주시면 됩니다”라며 음주 측정 방법을 고지했다. 

서씨의 혈중알코올농도는 0.076%. 경찰은 “선생님, 0.076으로 면허정지가 나왔습니다. 0.079%까지 면허정지고 0.08%부터는 면허취소”라고 말했다. 서씨는 경찰에게 어깨동무를 시도하는 등 위협적인 액션을 취했다. 이에 경찰은 “팔 내리세요. 지금 뭐 하자는 거에요?”라며 상황을 무마시켰다. 

조사 결과 서씨는 강남구 도산대로의 한 음식점서 회식 후 830m 음주운전을 하다가 적발됐다. 서씨는 대리운전을 부르고 집으로 가는 귀갓길서도 보조석 창문 밖으로 담배연기를 뿜어내는 등 음주측정 결과에 불만을 표출했다. 

임윤균 강남경찰서 교통안전계 경위는 “소주 2잔을 먹고 0.076%가 나오긴 힘들다. 최소 소주 1병은 마셨을 것”이라며 “요즘 소주도 도수가 점점 낮아지고 있는데 두 잔 가지고 이 정도는 안 나온다”고 말했다. 

취객 상대로 맞는 일 다반사…
미리 앱으로 단속 위치 파악도


취객의 위협적인 행동에 대해 임 경위는 “음주운전 단속을 하다 보면 취객이 경찰을 위협하는 건 다반사고 맞기도 한다. 공무집행 방해로 형사 처벌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한 대 맞고 만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후 경찰들은 영동대교 남단을 지나가는 차량들에 대해 음주단속을 진행했다. 간혹 음주 측정이 한 번에 이루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음주 단속자가 단속에 걸렸다고 생각한 기자들이 몰렸다가, 정상 수치가 나오면 차량을 보내는 식의 과정이 반복됐다. 이에 대해 경찰은 “음주운전 단속을 하면서 박카스, 술빵, 만두, 이스트 성분이 들어있는 빵을 섭취했을 경우 물로 입을 헹군 뒤 다시 재측정을 한다”고 귀띔했다. 

약 1시간이 지났을까. 경찰들은 일제히 음주단속 현장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바로 단속 위치가 음주단속 애플리케이션(앱)에 노출되었다는 것. 경찰들은 신속하게 강남 청담동 명품거리로 자리를 이동했다.
 

음주단속 앱에 관해 묻자 한 경찰은 “음주운전 단속 앱에 음주단속 위치가 노출되면 경찰들은 자리를 이동한다. 음주 운전자들이 앱을 확인하고 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강남 일대에 소위 ‘스팟’이라고 말하는 위치가 있다. 이 위치들은 음주운전자들이 멀리서도 보이지 않으면서도 적발 빈도가 높은 곳들이다. 영동대교 남단 리베라 호텔 앞도 코너를 돌아야 바로 경찰이 보이고, 지금 이 위치도 언덕서 올라와야 음주단속 경찰이 보인다”고 설명했다.

차 세우고
대리를…

오전 1시30분 청담동 명품거리 구찌 매장 앞 음주단속 현장. 영동대교 방면으로 향하던 하얀색 재규어 한 대가 음주단속 현장을 30m를 앞두고 갑자기 인도로 방향을 틀었다. 현장에 있던 경찰들이 급히 뛰어가 차 운전석으로 향했다.

차 안에 있던 운전자 홍모씨(35·여)가 경찰이 내민 음주 측정기에 ‘후’하고 바람을 부니 ‘삐’ 소리가 나며 탐지기 불빛이 연두색서 빨간색으로 변했다. 음주 측정기서 알코올 반응이 나온 것이다.  

경찰의 인계로 자리를 이동한 홍씨는 서씨와 달리 비틀거리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경찰은 홍씨에게 음주측정을 앞두고 한 번만 측정한다고 강조하며, 측정 결과에 이의가 있을 경우 병원을 찾아가 피를 뽑을 수 있다고 고지했다. 

식사 시간
집중 단속

홍씨는 양주 2잔을 마시고 가글로 입안을 헹궜다고 했다. 경찰은 “가글을 했어도 물 300mL, 150mL 등을 마셨기 때문에 다 날아갔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김씨와 동일하게 음주측정을 진행했다. 홍씨의 알코올 농도는 0.110%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수준이었다.

경찰은 “남자와 여자, 체질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술을 많이 드신 상태”라고 말했고 홍씨는 “술을 많이 마시지 못하는데 오늘은 양주 두 잔을 마셨다”고 대답했다. 


윤창호법에 대해 알고 있냐는 질문에 홍씨는 “잘 모른다. 술을 잘 못 먹는 체질이라 양주 두 잔만 먹었는데도 수치가 높게 나온 것 같다. 아까 경찰이 말씀하신 것처럼 남자와 여자, 체질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 것처럼 마신 양에 비해 많이 나온 것 같다”고 변명했다. 
 

▲ 음주운전 단속 앱

경찰이 왜 차를 인도로 끌고 왔냐고 묻자 그는 “이 근처 술집서 술을 마시고 나오는 길이었다. 대리기사를 부르기 위해 큰 길가로 나왔는데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당황했다. 경찰을 보고 피한 게 아니라, 대로변 잘 보이는 곳에 차를 세워놓고 대리기사를 부르려고 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찰차 보이자 가글 대리기사 콜…가글 하기도
서울서 총 21건 적발 25일 2시간동안 총 21건

음주 측정 전 가글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 홍씨는 “원래 술을 못 마시니까 가글을 한 것뿐이고 가글이 (음주 측정에)도움이 되는지는 모른다”고 항변했다. 

강화된 음주 기준 처벌에 대해서도 홍씨는 “전혀 모른다. 난 원래 음주운전을 하지 않는다. 10번이면 10번 대리기사를 부른다. 대리기사님에게 ‘우리 집’이라고 말하면 알 정도로 자주 부른다. 그래도 운전석에 앉은 게 잘못”이라고 과오를 시인했다. 

경찰은 “월요일 오전 이 시간대에는 음주단속이 많이 적발되지는 않는다. 클럽이 열리는 다음 날 아침 시간대인 오전 5시서 7시 사이가 특히 많이 적발된다. 특히 수요일이나 주말에도 술을 마시고 운전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임 경위는 “(음주운전) 교통사고로 인명피해나 건물 사고를 줄이기 위해 음주운전 단속 기준을 강화해 특별단속을 시행했다”며 “아침 시간대인 7시 이전과 점심에 반주하는 시간대, 저녁에 술 한 잔하는 시간대에 집중적으로 단속할 예정”이라고 언급했다.

이어 “오늘부터 시행된 음주운전 측정 치수가 0.03%이기 때문에 술 한 잔이라도 했다면 핸들을 잡지 마시고 대중교통 이용을 하시거나 대리기사를 이용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숙취운전
처벌 가능성↑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 25일 오전 0시부터 2시까지 서울 전역서 음주운전 단속을 벌인 결과 총 21건을 적발했다고 밝혔다. 면허정지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5~0.08% 미만은 6건, 면허취소에 해당하는 혈중알코올농도 0.08% 이상은 총 15건이었다. 
 

강화된 ‘윤창호법’이 시행되고 경찰이 대대적인 음주운전 단속에 나선 결과다. 기존에는 혈중알코올농도 0.05%~0.1% 이상이면 각각 면허정지, 취소 처분이 내려졌지만, 개정 후 면허정지 기준은 0.03%, 취소는 0.08%로 강화됐다. 이는 몸무게 65㎏ 성인 남성이 소주 1잔만 마셔도 나오는 수치다. 

음주운전 기준이 강화되면서 출근길 ‘숙취 운전’도 처벌 가능성이 커졌다. 전날 마신 음주로 인해 음주단속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혈중알코올농도를 계산하는 위드마크 공식에 따르면, 체중 60㎏ 남성이 자정까지 19도짜리 소주 2병을 마시고 7시간이 지나면 혈중알코올농도는 약 0.041%가 된다. 자정에 술을 마시고 아침 7시에 운전을 할 경우 면허정지 처분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윤창호법 뭐길래?

지난해 9월 음주운전 차량에 치여 숨진 윤창호씨의 이름을 딴 윤창호법(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및 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음주운전 처벌과 기준을 강화하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지난 25일부터 시행된 제2 윤창호법(도로교통법 개정안)은 음주운전 적발기준을 기존 혈중알코올농도 0.05% 이상~0.03% 이상으로, 면허취소 기준은 0.1% 이상~0.08% 이상으로 강화됐다.

음주운전 처벌 상한도 현행 ‘징역 3년, 벌금 1000만원’서 ‘징역 5년, 벌금 2000만원’으로 높아졌다. 음주운전 적발로 면허가 취소되는 횟수 역시 기존 3회서 2회로 강화됐다. <환>

 

<기사 속 기사> ‘음주단속 앱’ 믿어도 되나?

음주단속 기준이 강화되면서 단속을 피할 수 있는 ‘음주운전 단속 앱’이 재조명되고 있다. 지도에 실시간으로 음주운전 단속 구간을 표시해주는 음주운전 단속 앱은 윤창호법 시행과 함께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다운로드 건수가 100만건에 달한 것도 있었다.

실제 음주운전 단속앱을 실행하면 사용자의 위치와 그에 맞춰 춘천, 원주, 강릉 등 각 도내 지역별 경찰 단속 현황 정보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별도의 가입 절차 없이 누구나 쉽게 GPS 위치정보 기능 등을 통해 이용이 가능하며 경찰의 음주단속 위치를 앱 사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제보하는 방식이다.

사용자 위치를 기준으로 반경 3·5·10㎞ 내 경찰 위치 제보와 집중지역 통계 정보를 제공, 춘천지역은 157곳(2000건 이상), 43곳(5000건 이상)이 단속 집중지역으로 분류돼있다.

최근 음주운전 처벌 수위가 높아지고 경찰 단속이 강화되면서 해당 앱 누적 사용자만 400만명에 달하고 있다. <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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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