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세의 골프 인문학>

골프의 모든 것을 바꿔버린 ‘고무공’

‘구타 페르카(GUTTA PERCHA)’로 불리는 고무공은 수백년 동안 사용했던 가죽 페더리볼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만들면서 서민층 골프 인구의 폭발적 증가에 불을 지핀 공이다, 19세기 ‘골프의 르네상스’라 불리는 붐을 일으키는 데 혁명적으로 기여했던 이 볼은 어떻게 탄생하게 되었을까?
 

고무볼의 발명은 우연이었다. 1848년 인도에 거주하는 의사 제임스 패터슨은 스코틀랜드에 사는 동생에게 세라믹으로 만든 코끼리 동상을 선물로 보내면서 깨질 것을 염려해 박스 안에 부드러운 말레이시아산 고무를 함께 넣어 보냈다. 

일부러 상처

동생 영은 선물보다 박스에 담긴 고무가 더 신기했다. 주무르는 대로 모양이 바뀌는 고무를 만지던 그의 머릿속에 반짝이는 아이디어가 스쳤다. 대단한 실력파 골퍼였던 그는 이 고무로 골프볼을 만들어보겠다는 다소 엉뚱한 발상을 했다. 먼저 고무를 골프볼 크기로 잘라 불에 구운 다음 부드러워진 고무를 책상에 놓고 이리저리 굴렸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고무는 동그랗게 굳어 단단해지면서 골프볼 모양이 됐다. 

영은 당대의 기라성 같은 프로골퍼였던 친구 윌리 던과 함께 머슬버러 골프장으로 나갔다. 녹색의 고무볼을 처음 본 윌리는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강한 반발력과 함께 튕겨나간 볼은 예상을 뒤엎고 바운스가 페더리볼보다 2배 가까이 높이 튀어 오르면서 거리도 훨씬 더 나가는 것이 아닌가. 

서민골프의 불 지핀 ‘구타 페르카’
19세기 붐 일으키는 데 혁명적 기여


패터슨 일가는 당장 고무볼 공장을 세우고 생산에 들어갔다. 하지만 골퍼들은 고무공의 사용을 주저했다. 가죽볼처럼 표면에 이음새도 없고 매끄럽기만 해서 익숙해지는 데 오래 걸렸다. 거리는 많이 나갔지만 반발력으로 인해 너무 튀어오르다 보니 잘 못 쳤을 경우 해저드로 쉽게 빠지는 것도 문제였다. 하지만 이 볼은 혁명을 예고했다.

골퍼들은 거리가 많이 나간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만족했다. 또한 가죽볼 한 개 가격이면 고무공 6개 이상 만들 정도로 가격이 저렴했다. 너도나도 고무공을 만들기 시작했다. 고무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 골프클럽도 변화해야 했다. 

가죽볼의 반발력에 맞추기 위해 길게 만들었던 롱 노우즈 헤드 부분은 고무공에 맞추기 위해 뭉툭해졌다. 물푸레나무 같은 무거운 샤프트에 긴 코를 닮은 롱노우즈 골프채가 가벼운 히코리나무에 원형 형태의 오목한 헤드를 가진 골프채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고무공이 클럽의 진화까지 이뤄낸 것.

비싼 가죽볼 때문에 골프는 엄두를 못 내었던 서민들도 하나둘씩 골프채를 들었고, 골프는 대중 속으로 파고들 수 있었다. 골프채를 만드는 장인들 사이에서 프로골퍼라는 새로운 직업도 생겨나기 시작했고, 이들은 내기골프로 돈을 벌기도 했다. 
 

고무공은 페더리 가죽볼의 단점을 많이 보완하면서 방향도 정확했고 찢어지지도 않았다. 가격도 가죽볼의 4분의 1 가격이며 물에 젖을 것을 염려해 페인트를 칠하지 않아도 됐다. 폐단은 물론 있었다. 고무공에 재빨리 적응한 장인들은 프로선수까지 된 반면, 적응치 못하고 기존 가죽볼에 의존하던 장인들은 몰락하기 시작했다.

골프에 혁혁한 공을 세웠던 고무공에 새로운 아이디어가 입혀졌다. 바로 고무볼에 일부러 상처를 내는 행동이었다. 너도나도 고무공을 만들던 초창기, 주물로 찍어낸 볼은 표면이 매끄러웠다. 아직 어느 누구도 무늬를 넣을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영 패터슨의 고무볼 공장에 윌리가 찾아왔다. 그의 손에는 여러 번 사용해서 표면에 상처가 많이 생긴 고무공들이 들려 있었다.

“여보게, 이 공들을 보게. 캐디와 골퍼들이 상처 난 공으로 치면 거리가 더 난다고 하더군.” 


영은 윌리의 충고를 의미 있게 받아들였다. 19세기에는 볼과 공기 저항과의 역학관계에 대한 지식이 없던 차였다. 단지 캐디들과 골퍼들의 경험에 의존할 뿐이었다. 딤플(DIMPLE)은 공기 저항을 줄여주는 역할을 해 볼이 많이 뜨게 한다. 날아가는 볼의 위쪽에는 속도가 빨라지면서 압력이 줄어드는 반면, 아래쪽에는 속도가 느려지고 압력은 올라간다. 볼 앞쪽에 위로 뜨는 양력이 생기게 되면서 볼은 높이, 그리고 멀리 날아가게 되는 이치인 것이다.

동상 보호용 보고 엉뚱한 발상
가죽 페더리볼보다 멀리 나가

영은 볼 창고로 향했고 쓰레기통에 버려진 상처 난 볼들을 주워 모았다. 이제까지 상처 난 볼들은 뜨거운 물 속에 한꺼번에 집어넣은 다음 골프볼 크기로 다시 매끄럽게 만들곤 했었다. 

다음 날 영은 상처 난 볼을 들고 골프장으로 향했다. 직접 실험을 해볼 참이었다. 윌리의 말은 사실이었다. 이제 골퍼들은 매끈한 새공에다 칼 같은 도구를 사용해 일부러 상처를 내기 시작했다.

클럽 진화도

매끄럽고 밋밋했던 고무공에 여러 가지 일정한 무늬의 패턴이 만들어지기 된 계기였다. 이른바 딤플의 시작이었다. 1932년 미국골프협회는 그간 제멋대로 생산됐던 볼 사이즈와 무게를 일정하게 통일했다. 영국은 이보다 앞선 1930년에 볼의 규격을 제한했다. 반발력과 속도는 초당 250피트로 제한했고, 볼의 무게는 1.620온즈, 크기는 지름 1.680인치로 각각 통일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