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대기업 오너 일가의 계열사 등기이사 겸직이 심각한 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막강한 지분율을 가진 총수 일가의 문어발식 이사 겸직으로 제왕적 경영에 따른 기업 사유화는 물론, 부실 경영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기업 오너 일가 3명 중 1명이 최소 3개 이상의 계열사서 등기이사를 겸직 중인 것으로 조사됐다. 지난 17일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에 따르면 공정거래위원회서 지정한 60개 대기업집단서 등기이사에 등재된 오너 일가는 지난 11일 기준 총 201명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3개 계열사 이상에서 등기이사에 등재된 오너 일가는 전체의 32.8%인 66명으로 집계됐다.
문어발 겸직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전체 67개 계열사 가운데 절반에 가까운 32곳(47.8%)의 등기이사를 겸직하고 있다. 이어 신동빈 롯데 회장(9개), 이태성 세아홀딩스 대표·허서홍 GS에너지 전무(각 8개), 김홍국 하림 회장·우연아 대한해운 부사장·우명아 신화디앤디 사내이사(각 7개) 등이 ‘톱10’에 올랐다.
GS그룹의 경우 허서홍 전무가 지난해 4개서 올해 8개, 허철홍 상무는 1개서 5개로 각각 4개씩 등기이사 겸직수가 늘어났다. 이에 4세 경영에 속도를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지난해까지 등기이사를 맡았지만 현재는 등재된 곳이 없는 오너 일가는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조양래 한국타이어월드와이드 회장,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이웅렬 전 코오롱그룹 회장, 김신연 전 한화이글스 대표,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등 총 22명인 것으로 조사됐다.
김재철 동원그룹 회장은 지난 16일 회장직서 물러났으며 동원엔터프라이즈 사내이사서도 제외될 예정이다.
이 중 단연 눈이 띄는 것은 SM그룹 오너 일가의 이사 겸직이다. SM그룹은 화학섬유 등 화학소재, 건설 및 엔지니어링, 건설자재, 2차전지 등 에너지 관련업, 자동차 부품, 전자금융, 화장품, 헬스케어, 리조트사업 및 해운업 등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삼라건설이 전신으로 우방그룹 인수 등 다수의 M&A(인수합병)를 통해 몸집을 키웠다.
다수의 등기이사를 겸직한 오너일가 중 SM그룹 일가만 5명이 포함됐다. 최승석 SM그룹 경영관리본부장, 박흥준 경남기업 대표, 우연아 대한해운 부사장, 우명아 신화디앤디 사내이사는 모두 인척관계다.
우 회장 32개 계열 대표 겸직…부실경영 우려
SM 오너일가 대거 경영 참여…사유화 논란도
CEO스코어에 따르면 박흥준 대표는 그룹서 빠른 속도로 승진하며 중용되는 인물이다. 1978년생으로 40대 초반임에도 지난해 정기임원인사서 전무를 달고 올해 경남기업 대표이사까지 올랐다. 박 대표가 등기이사로 등재된 계열사는 경남기업을 비롯해 대한상선, 태초이앤씨, 에스씨파워텍, 우방 등 12곳이다.
최승석 본부장은 지난해 연초 대비 등기이사 겸직 수가 가장 많이 늘어난 인물이다. 6곳서 24곳으로 18곳이나 급증했다.
우 회장의 과다겸직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우 회장은 지난해 6월 조사서도 겸직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우 회장은 68개 계열사 가운데 절반이 넘는 32개 업체의 등기이사로 등재됐다.
우 회장은 등기이사로 재직하면서 성과 보수 등을 포함한 연봉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총 32개 회사 중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8개 회사를 대상으로 우 회장이 지난해 받은 연봉을 조사한 결과, 확인된 개인별 보수지급액만 12억9500만원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대한해운서 상여금 2억4600만원을 포함해 총 7억원을 챙겼으며, 남선알미늄서 상여금 1억6000만원을 포함 총 5억9500만원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SM그룹 관계자는 “M&A를 통해 신규 편입된 회사가 많았고 책임 경영 차원서 등기이사를 맡은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문어발식 겸직은 우리나라 특유의 족벌경영 체제서 심각한 부작용을 낳는 경우가 많다. 계열사를 동원해 일감 몰아주기를 통한 편법승계나 오너 일가에 부당한 이익을 주는 케이스 등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문어발식 겸직은 소수 오너 일가가 계열사를 쥐락펴락하는 기업 사유화의 한 단면”이라고 말했다.
집안 챙기기
CEO스코어는 “등기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기업의 의사결정 권한과 책임을 동시에 갖기 때문에 ‘책임 경영’을 위해서는 오너 일가가 참여할 필요는 있다”면서도 “그러나 지나친 겸직은 이사회의 독립성을 저해할 뿐만 아니라 ‘집안 배불리기’라는 비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