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개’ SM그룹 좀비기업 대해부

‘M&A 큰손’ 덩치만 크지 속은…

[일요시사 취재1팀] 박호민 기자 = 기업의 간판을 달고 있으나 사실상 수입이 없거나 재무구조가 엉망인 회사들이 있다. 이른바 좀비회사. 그룹 계열사에 이 같은 기업이 많다면 그룹 전체가 유동성 위기에 몰릴 가능성도 높아진다. 재계에선 이런 점 때문에 좀비기업의 퇴출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근 M&A로 덩치를 키운 SM에도 이 같은 우려의 목소리가 있다. 그룹에 숨어있는 ‘좀비기업’ 17곳을 확인했다.
 

SM그룹은 기업인수합병(M&A)을 통해 빠르게 덩치를 키웠다. 공정거래위원회에 따르면 SM은 지난 5월말 기준 65개의 계열사를 거느리고 있다. 자산 기준 8조6160억원 수준으로 어엿한 대규모기업집단에 포함됐다.

경영난 계열
20개에 육박

1988년 광주서 우오현 회장이 삼라건설을 창업하면서 SM그룹의 모체가 탄생했다. 당시 우 회장 나이 36세 불과했다. 삼라건설이라는 사명은 삼라만상서 가져온 것으로 우 회장이 불교 집안에서 자란 영향이라고 전해진다. 

법인 설립을 마칠 무렵 광주서도 아파트 붐이 크게 일었고 이에 따라 삼라건설도 승승장구했다. 1997년 외환 위기가 닥치며 극심한 불황이 찾아왔지만 보수적인 경영을 해왔던 SM그룹은 오히려 기회로 삼았다. 

헐값에 나온 수도권 택지를 집중적으로 인수해 사업을 확장했다.


외환위기는 M&A 기회를 줬다. 외환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된 이후 이전에 잘 나가던 많은 기업들이 매물로 많이 나왔다. 이런 매물 가운데 우량 기업을 골라내서 그룹을 키우면 좋겠다고 생각한 우 회장은 기업 사냥에 나섰다. 

첫 M&A는 진덕산업(현 우방산업)이었다. 기존의 삼라건설이 아파트 분양의 강자였다면 진덕산업은 강남성모병원, 여의도성모병원, 자유의다리-판문점 간 도로공사 등 기반시설과 대형 건축물을 주로 다뤄온 만큼 새로운 사업 영역으로의 진출을 기대할 수 있었다.

이후 3년간은 제조업에 집중했다. 건전지 브랜드 벡셀, 화학 회사 조양, 유리·건설자재 회사인 경남모직, 알루미늄 전문업체 남선알미늄, 스판덱스·화학섬유업체 티케이케미칼 등을 이 시기에 인수했다. 

활발한 인수합병에 힘입어 2008년 그룹 매출 1조원을 돌파한다. 티케이케미칼 인수가 특히 결정적이었는데 6000억대 수준이었던 SM그룹은 매출 8000억의 티케이케미칼을 인수하며 단숨에 1조원을 돌파할 수 있었다.

돈 못 버는 계열사
방치되는 친족기업

2008년 이후에도 꾸준히 인수합병을 계속해 부실기업 전문회생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2015년 6월 말에는 자산총액이 4조원에 달해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집단 지정 요건인 5조원에 육박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SM그룹의 폭풍성장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복잡하게 얽힌 지배구조 상 계열사의 위기가 그룹 전체로 번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SM그룹에는 그룹의 경쟁력을 낮추는 이른바 ‘좀비기업’이 얼마나 될까. 공정위 대규모기업집단 정보포털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SM그룹 계열사 가운데 자본잠식 상황에 놓여있거나 매출액이 없는 곳은 17곳으로 조사됐다.
 

완전자본잠식에 놓인 곳은 11곳으로 재무구조가 부실한 계열사가 많다는 점도 리스크다. 

2009년 설립된 경남티앤디는 매출액이 전무한 데다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놓였다. 섬유제품 제조업을 주요 사업목적으로 두고 있다. 자본총액은 ?19억3100만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81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우 회장은 이곳 지분 46.29%을 가지고 있다(지난해 9월 기준). 이 외에 임원이 38% 지분을 가지고 있어 총 동일인과 관계있는 지분은 84.29%에 달했다.

자본잠식 허덕
전무한 매출

그루인터내셔널 역시 자본총액 -4500만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황에 놓여있다. 자산총액은 2억9900만원 수준. 이 회사는 2013년 6월14일 도매 및 상품중개업을 주 사업목적으로 설립됐으며 종업원수는 4명이다. 

지난해 매출액 13억4100만원, 당기순이익 6200만원을 각각 시현했다. 이곳은 오너 일가의 친족이 14%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델라노체도 사실상 기업활동을 하고 있지 않다. 델라노체는 도매 및 상품중개업을 영위업종으로 2014년 12월8일 설립됐다. 그러나 지난해 매출액과 영업이익이 전무했다. 기업규모를 살펴보면 자산총액, 자본총액, 자본금이 각각 2000만원씩이었다. 

눈길을 끄는 것은 이 곳은 우 회장의 친족이 100% 지분을 가지고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제품 제조업이 주사업 목적인 메디원 역시 경영 사정이 좋지 않다. 2011년 10월14일 설립돼 2014년 7월10일 계열사에 편입된 메디원은 지난해 자본총액이 -3억9400만원을 기록하며 완전자본잠식 상태에 놓였다. 

매출액도 전무했다. 2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는 등 경영난을 나타내고 있다. 종업원은 단 1명이다. 10억원의 자본금이 투입됐지만 현재까지는 그룹 내에서 손해만 끼치고 있는 상황. 메디원의 주식은 에스엠생명과학이 70%의 지분율을 가지고 SM그룹에 편입됐다.

바로코사도 완전자본잠식에 놓인 기업 가운데 하나다. 2000년 설립된 바로코사는 2016년 11월1일 SM그룹에 편입됐다. 종업원은 10명 규모다. 지난해 기준 부채총액 111억9400만원, 자산총액 86억2200만원으로 자본총액은 -25억7200만원이다. 매출은 75억6200만원을 올렸으나 3억94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삼라농원 역시 자본잠식 상태다. 2013년도에 설립된 삼라농원은 농업을 사업목적으로 영위하고 있다. 자산총액 65억6400만원, 부채총액 70억4400만원으로 각각 집계됐다. 자본총액은 -4억8000만원이다. 매출액은 1억6100만원을 기록했지만 1억93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직원은 단 1명이다. 

삼라농원은 우 회장의 딸 우연아씨가 대표로 있다. 이 곳 지분은 우 회장의 친족이 19%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에스씨파워텍은 매출액이 ‘0’인 것으로 나타났다. 당기순이익은 -115억원 수준. 재무상태도 긍정적이지 않다. 10억원의 자본금이 들어갔지만 현재 자본총액은 2억5500만원 수준으로 자본잠식 상태. 

에스씨파워텍은 전문직별 공사업을 주사업 목적으로 2007년1월3일 설립됐다. 우방건설산업이 에스씨파워텍 지분 100%를 소유하면서 SM그룹에 편입됐다. 종업원은 3명 규모로 크지 않다.
 

온양관광호텔도 자본이 바닥을 드러냈다. 지난해말 기준 자산총액 459억3900만원, 부채총액 514억2700만원을 각각 기록했다. 자본총액은 -57억8800만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매출액은 60억3100만원을 기록했지만 270억96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했다. 

숙박업을 영위하는 온양관광호텔은 종업원 64명 수준이다. 2003년 7월29일 설립된 온양관광호텔은 지난해 10월30일 SM 계열사에 편입됐다. 온양관광호텔은 현재 법정관리에 돌입했다. SM그룹은 온양관광호텔 매각에 나설 것으로 보이지만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울코퍼레이션 역시 완전자본잠식 상황.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1억800만원, 부채총액 1억4300만원을 기록했다. 자본총액은 3500만원으로 자본이 바닥을 드러낸 셈. 지난해 3억8500만원의 매출액을 시현했지만 11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하면서 아쉬움을 남겼다. 

한울코퍼레이션의 종업원은 한 명도 없다. 친족이 지분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도 특징이다. 지난해 9월 기준 우 회장의 친족이 한울코퍼레이션의 지분 50%를 쥐고 있다. 30%는 임원이 가지고 있는 상황이다.

한통엔지니어링은 지난해 매출액이 없는 것으로 집계됐다. 사실상 경영에 대한 성과가 전무한 것. 1억3200만원의 당기순손실을 기록한 상황으로 경영 사정이 긍정적이지 않다. 자산총액 50억6200만원, 부채총액 27억8300만원을 각각 기록했으며 종업원은 없다. 

1981년 설립된 한통엔지니어링은 2007년6월18일 SM그룹에 편입됐다. 2010년에 매각을 추진한 바 있으나 매각이 무산된 뒤 현재까지 SM그룹서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지분 구조는 우 회장이 19.96%를 가지고 있고, 삼라 39.93%, 동아건설산업 39.93%를 각각 기록했다.

기원토건도 매출이 전혀 없었다. 당기순이익도 7000만원 적자. 재무구조는 비교적 안정적이다. 자산총액 7억900만원, 부채총액 500만원으로 부채가 거의 없는 상황. 전문직별 공사업을 하는 기원토건의 종업원은 0명으로 사실상 사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쉽지 않은 매각
더 어려운 회생

삼라산업개발은 자본 사정이 좋지 않다.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9억9800만원, 부채총액 28억9700만원을 기록했다. 자본총액 -18억9900만원 완전자본잠식 상태다. 삼라산업개발은 임대업(부동산 제외)을 사업목적으로 1997년 설립돼 SM그룹과 함께 했다. 

우 회장이 지분 47%를 가지고 있으며, 임원 등이 41.33%의 지분을 들고 있다. 회사 관계자의 지분만 88.33%를 기록할 만큼 지분율이 높다.

우방토건도 완전자본잠식 상황에 처해있다. 자산총액은 300만원에 불과하다. 부채총액은 1억2200만원이다. 자본총액 -1억1900만원으로 자본이 바닥을 드러냈다. 2004년 12월1일 설립된 우방토건 역시 2013년 5월29일 M&A를 통해 계열사로 편입됐다. 경영 상황도 우호적이지 않다. 매출액은 전무하며, 1억2300만원 당기순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이코사주류도 자본 상황이 좋지 않다. 자산총액 18억3000만원, 부채총액 202억7500만원으로 자산보다 부채가 월등히 많은 상황이다. 자본총액 -201억1200만원 완전 자본잠식 상황을 맞은 것. 

이코사주류 역시 2016년 12월8일 M&A를 통해 계열사로 편입됐으나 재무구조가 탄탄하지 못한 상황이다. 그나마 매출액이 위안이다. 매출액 170억5600만원, 당기순이익 8000만으로 플러스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것. 이코사주류는 바로코사가 지분 100%로 자회사로 두고 있다.

물고 물리는 계열사
커져가는 리스크

부동산업체 일산프로젝트 역시 재무구조가 부실하다. 2008년7월 설립돼 2016년 11월29일 SM그룹 계열에 편입됐다. 자산은 1억6300만원인데 반해 부채가 202억7500만원에 달한다. 자본총액은 -201억1200만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매출액은 전무하다. 7억9200만원의 당기순손실로 실적 역시 어려운 상황이다.

한국인프라개발도 회사에 돈이 없다. 지난해 말 기준 자산총액 1000만원, 부채총액 5억3500만원으로 부채가 자산을 웃돌았다. 자산총액은 -5억2500만원으로 완전자본잠식. 2016년 계열사에 편입됐지만 지난해 매출액은 없었다. 당기순이익은 -4200만원으로 적자. 한국인프라개발은 SM계열사 동아건설산업이 지분 50%를 가지고 있다.

한류우드개발에이엠 역시 자금 사정이 여의치 않다. 자산총액 6700만원, 부채총액 2억4900만원으로 부채 규모가 자산총액보다 크다. 자본총액은 -1억8200만원으로 완전자본잠식 상황이다. 

수익성도 높지 않다. 지난해 매출이 발생하지 않았으며, 473억원의 당기순손실을 봤다. 현재 동아건설산업이 87.20%로 대주주에 이름을 올렸다. 2008년 설립된 한국인프라개발은 2016년 M&A를 통해 SM그룹에 편입됐다. 직원은 4명이다.

궤도권 순항
연쇄 경영난

재계의 한 관계자는 “SM그룹은 미래를 보고 인수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고 공공연하게 밝히고 있지만 그 성과가 궤도에 오른 것인지는 두고 볼 일”이라며 “부채 비율이 전체적으로 높은 많큼 유동성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연쇄적으로 경영난을 겪을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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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