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M그룹 우오현 회장, 총리 동생에…대통령 동생도 품었다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7.01 08:58:41
  • 호수 122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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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의 친동생 문재익씨가 SM그룹 해운 계열사인 KLCSM서 선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일요시사>는 SM그룹이 이낙연 총리의 동생 이계연씨를 삼환기업 대표이사로 영입한 사실을 단독 보도했다. 권력서열 1, 2위의 동생들을 영입한 우오현 SM그룹 회장의 정치권 인맥에 눈길이 쏠린다. 
 

재계 순위 35위에 올라선 SM그룹이 ‘재벌’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인수합병(M&A)을 무기로 사세를 빠르게 확장한 결과다. 2017년 공시대상기업집단에 처음 편입된 SM그룹은 2년 만에 재계 순위가 46위서 35위로 뛰어올랐다. 

어느새 재계 35위
M&A로 사세 확장

자산 규모도 2017년 7조원에서 2018년 8조6000억원, 2019년 9조8000억원으로 늘었다. 올해 자산 9조8000억원을 기록한 SM그룹은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준대기업(자산 5조원 이상 10조원 미만) 중에서는 가장 높은 순위를 차지했다. 또 최근 SM그룹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설’이 나오면서 큰 이목을 끌었다. 

<일요시사>의 취재를 종합하면 SM그룹에는 대통령과 총리의 친동생들이 재직 중이다. 문재인 대통령의 남동생 문재익씨가 지난해부터 SM그룹 계열사인 KLCSM(이하 케이엘씨SM)서 선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케이엘씨SM은 대한해운의 자회사로 SM그룹 해운 계열사들의 선박·선원 관리 운송 지원 서비스를 담당하는 선박 관리 전문업체다.

우오현 SM그룹 회장은 케이엘씨SM의 사내이사로 등재돼있기도 하다. 
 

▲ 우오현 SM 회장

문씨는 지난해 케이엘씨SM 선장 경력 공채에 모집해 입사한 것으로 파악된다. 문씨는 케이엘씨SM에 소속돼있지만, 현재는 대한해운 선장으로 파견 근무하고 있다는 게 해운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해운업계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대한해운 벌크선 선장으로 일하고 있다. 내부에서는 문씨가 대통령의 친동생이라는 걸 다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많은 해운 기업이 선원 인사나 운송지원을 전담하는 계열사를 가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넷째 동생 문재익  
SM그룹 해운계열사 선장으로 근무

SM그룹 측은 ‘문씨가 SM그룹 해운 계열사에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SM그룹 관계자는 “(문씨가)케이엘씨SM에 선장으로 재직 중이다. 전 직장서 정년퇴임한 이후 선장 공개채용을 통해 입사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당한 채용 절차를 거쳤으며, 문씨가 대통령의 친동생이라는 사실은 채용 공고 과정에 누구도 알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문씨의 정확한 입사 시점은 파악되지 않지만, 해운업계와 SM 내부 인사는 문씨가 지난해 5∼6월부터 근무했다고 전했다. 문씨는 케이엘씨SM으로 자리를 옮기기 전 SK해운에 근무한 바 있다. SK해운 관계자는 “문씨는 지난해 퇴사했다. 정확한 퇴사 날짜는 개인정보기 때문에 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남4녀 중의 장남이고, 문재익씨는 넷째 동생이다. 문씨는 한국해양대 해사학부 78학번으로 평생 상선의 선장으로 일한 것으로 전해진다. 


문 대통령이 참여정부 청와대 비서실장이었던 당시, 동생 문씨를 크게 혼낸 일화는 유명하다.

문씨 있는
KLCSM은?

2007년 3월 문 대통령이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임명되자, 문씨가 승선했던 STX는 그를 해상직에서 육상직 요직으로 발령을 냈다. 당시 이 소식을 들은 문 대통령은 문씨에게 전화를 걸어 “너를 그렇게 대우해도 너희(STX) 회사에 도움 줄 일은 없을 거다. 그러니 다시 배를 타러 나가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형의 호통에 문씨는 회사에 보직 변경을 신청했고, 다시 바다로 나갔다. 

SM그룹에는 총리의 친동생도 근무하고 있다. SM그룹은 지난해 6월26일 삼환기업을 인수했으며, 곧바로 이낙연 총리의 셋째 동생 이계연씨를 삼환기업 대표이사로 선임했다(<일요시사> 1177호 ‘총리 동생의 이상한 취업 내막’ 기사 참조).
 

▲ 이계연 삼환 대표

총리 동생을 영입한 것은 우 회장인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6월 <일요시사> 취재 당시 삼환기업 관계자는 “(계연씨 대표이사 선임은) 회사가 필요하다고 회장님이 판단했다”고 말한 바 있다. 

정치권의 살아있는 권력 1, 2위의 친동생이 한 기업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놀랍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직 대통령·총리 동생이 같은 기업서 근무하고 있는 건 이례적”이라며 “자칫 정치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우려했다.

우 회장은 문재인정부서 활발한 경제 행보를 보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 산업통상자원부 산하 코트라 경제외교활용포털 등에 따르면 우 회장은 2017년 방미 일정을 제외하고는 2017년 중국, 2018년 베트남·러시아·싱가포르·프랑스 등 문재인 대통령의 모든 해외순방 경제사절단에 포함됐다. 지난 3월 문 대통령의 말레이시아 방문 경제사절단에도 이름을 올렸다. 

“정당한 채용
 누군지 몰라”

우 회장은 문 대통령과 직접적으로 대면하기도 했다. 지난 1월22일 청와대서 열린 ‘2019 기업인과의 대화’에서 우 회장은 SM상선 회장으로 참석해 문 대통령에게 해운업 경기 회복과 자생력 강화를 위한 정부 차원의 대책 마련을 요청했다. 

우 회장은 “현재 국내 해운업은 산소 호흡기를 쓰고 있는 것과 같이 어렵다. …개선방안을 마련해주실 것을 요청드린다”고 건의했다. 이 자리서 즉각 문 대통령은 “추후 해양수산부장관을 통해 SM상선과 관련 현황을 듣도록 하겠다. 기업 입장서 속도에 대한 아쉬움이 있을 수 있다”고 답하기도 했다. 
 

이후 해양수산부서 현대상선과 SM상선의 합병을 추진한다는 언론보도가 나왔다. 해수부는 ‘사실 무근’이라고 밝혔지만, 지난 4월까지 해수부장관을 역임한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은 <이데일리>와의 인터뷰서 “극심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해운업계를 살리기 위해 SM상선과 현대상선을 통합해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삼환기업 역시 이계연씨를 대표이사로 선임한 이후 공공사업 수주전서 두각을 나타났다. SM그룹에 따르면 삼환기업은 지난해 8월부터 3개월간 약 3000억원의 공공사업 수주 실적을 달성했다. 이는 지난해 삼환기업 연간 매출(2660억원)을 넘어선 규모다. 업계에선 삼환기업의 약진에 우오현 SM그룹 회장이 직접 영입한 이계연 대표의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낙연 총리 동생은 건설계열 대표 
권력서열 1·2위 친동생 모두 영입

그동안 SM그룹의 급성장을 둘러싸고 뒷말이 무성했다. 10년 사이 급성장한 SM그룹은 재계서 알아주는 M&A 전문기업이 됐다. 특히 박근혜정부부터 문재인정부까지 SM그룹은 법정관리(회생절차) 기업들을 연달아 인수하며, 가파른 성장세를 보였다.

2013년 대한해운 ▲2014년 동양생명과학 ▲2015년 솔로몬신용정보 ▲2016년 성우·태길종합건설·동아건설산업 ▲2017년 경남기업 ▲2018년 삼환기업 등이 그들이다. 

우 회장은 박근혜정부 시절에도 경제사절단에 단골로 참석했다. 박 대통령은 2013년 취임한 이후 같은 해 5월 미국을 시작으로 2016년 9월 라오스까지 총 21차례 경제사절단과 동행했다. 이 가운데 SM그룹이 경제사절단에 참여한 횟수는 15차례나 된다.
 

우 회장이 참여한 경제사절단은 2013년 미국·베트남·인도네시아·유럽, 2014년 인도·스위스·독일·중앙아시아·캐나다, 2015년 중남미 4개국, 2016년 이란·몽골 등이다. 2014년 10월 이탈리아부터는 우 회장의 딸 우연아 부사장도 참여하기 시작했다. 당시 중견기업이었던 SM그룹이 대기업 자격으로 경제사절단에 포함돼 뒷말이 적지 않았다.

“그를 주목하라”
 정치인맥 눈길 


우 회장은 박 대통령과도 직접적인 인연이 있다. 2014년 7월 중견기업연합회 출범식서 우 회장은 헤드 테이블에 함께 앉은 박 대통령에게 자신의 의견을 전했고, 박 대통령은 이에 대해 즉석 수용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려 주변을 놀라게 했다. 이 때문에 우 회장의 행보가 정치권 인맥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냐는 시각이 나온다. 

한 재계 관계자는 “우 회장이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권과 스킨십을 늘려 SM그룹을 키워온 전략을 세운 것이 아니냐”고 분석했다. 


<cmp@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우오현 회장의 기막힌 타이밍

우오현 SM그룹 회장이 남선알미늄 지분 2.27%를 매도하면서 수백억원의 차익을 실현했다. 남선알미늄은 이낙연 국무총리의 동생이 SM그룹 계열사 삼환기업 대표이사로 근무해 ‘이낙연 테마주’로 분류된다. 

지난 19일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우 회장은 지난 11일부터 17일까지 SM그룹 계열사인 남선알미늄 주식 250만644주를 장내 매도했다. 평균 처분단가는 주당 4219원으로 총 105억5000만원어치를 현금화시켰다. 매도 후 지분율은 4.42%서 2.15%로 낮아졌다. 

회사 측은 “신규 사업 진출을 위한 자금 확보 차원”이라고 설명했지만, 투자자들의 시선은 곱지 않다. 최근 주가 급등으로 가격이 ‘꼭지’에 이른 시점에 주식을 매도한 것은 투자금 확보라기보다 차익 실현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남선알미늄은 정치 테마주로 부각되면서 최근 주가가 급등했다. SM그룹 계열사인 삼환기업의 대표이사인 이계연씨가 이 총리의 동생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차기 대선주자 선호도 설문조사서 이 총리가 유력 후보로 떠오르자 남선알미늄 주가는 지난 5월16일 상한가(28.39%)를 찍었다. 

우 회장이 지분을 팔기 전날인 지난 10일 주가는 4310원으로 고점을 찍었다. 올 들어 52%, 저점이었던 지난해 10월보다 344% 오른 가격이었다. 

우 회장이 지분을 매도하기 시작한 지난 11일부터 주가 하락이 시작됐다.

매도 기간(11∼17일) 동안 주가는 4310원에서 4080원으로 230원(5.3%) 하락했고, 지분 매도 공시가 나온 다음 날인 19일에는 전일 대비 75원(1.92%) 떨어진 3835원에 거래됐다. 장 초반에는 한때 7%대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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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