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속이 빤히 보였던 SM그룹의 <일요시사> 길들이기가 수포로 돌아갔다. 회장님의 치부를 들춰낸 죄를 묻고자 갖가지 방법을 동원했지만, 본인들이 원했던 결말은 현실 속에 존재하지 않았다. 언론의 입에 재갈을 물리려던 속내만 여지없이 들통난 꼴이다.
최근 들어 언론을 대하는 대기업의 대처법은 이전과 많은 부분에서 다른 양상을 나타낸다. 기사에 주목하기보단, 기사에 담긴 사실 자체에 불편함을 쏟아내며 언론중재위원회를 찾는 사례가 부지기수다. 언중위를 거치는 수순은 그나마 양반이다. 몇몇 대기업은 앞뒤 정황을 따지기보다는 사법적 판단을 앞세우려 한다.
빤히 보이는
불편한 속내
이렇다 보니 언론사와 기자는 꼼꼼해질 수밖에 없다. 취재 과정에서 사실 여부를 몇 번이나 검토해야 하고, 상반된 입장에 대한 반론권을 충분히 보장하고자 애쓴다. 거의 모든 기사 속 내용이 사실이더라도, 한 단어 혹은 한 문장에 담긴 표현의 어긋남을 인정하고 반론보도를 수용하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다.
그럼에도 기사를 사이에 둔 언론사와 대기업 간 시시비비는 끊이지 않는다. 이쯤이면 기사의 정확성과 공정성은 대기업 입장에서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사실 여부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본인들의 치부를 공개한 언론과 기자의 펜을 어떻게든 길들이겠다는 목표만 강해질 뿐이다.
<일요시사>에 대한 SM그룹의 노골적인 괴롭힘 역시 비슷한 맥락이었다.
<일요시사>는 2019년 10월18일 ‘<단독> SM그룹 후계열쇠 쥔 회장님 내연녀의 정체’라는 기사를 송고했다. 해당 기사는 우오현 SM그룹 회장과 사실혼 관계인 김모씨에 초점을 맞췄고, 한발 더 나아가 우 회장과 김씨 사이에서 태어난 우기원씨가 그룹에서 영향력을 넓혀가는 과정에 주목했다.
당시만 해도 김씨의 정체는 베일에 싸여 있었다. 그룹 계열사 지분을 다량 보유한 인물치곤 노출된 정보가 극히 미미했던 까닭이다. 어떤 계기로 SM그룹과 인연을 맺었고, 계열사 지분을 취득했는지에 대해서도 제대로 알려진 게 없었다.
이런 가운데 <일요시사>는 SM그룹 전·현직 관계자를 비롯한 다수의 취재원과 접촉해 취합한 증언을 토대로 김씨와 우 회장의 사실혼 관계를 파악했다. 당시 우 회장은 본처인 신모씨와 혼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수년 동안 ‘두 집 살림’을 해왔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었다.
경영 개입 ‘사모님 실체’ 단독 보도
그동안 게시된 기사 모두 모아 고소
물론 우 회장의 사생활은 법적으로 문제될 것은 없었다. <일요시사>가 지금껏 알려지지 않은 SM그룹 총수의 이야기를 보도하는 데 열중하기보다는, 우 회장의 사생활이 후계구도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줄 것인지에 주목한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실제로 당시 지분 구조만 놓고 보면 김씨는 SM그룹 승계 작업의 큰 축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었다. 김씨는 ▲동아건설산업 ▲삼라 ▲삼라산업개발 ▲경남디앤티 등 SM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주요 계열사 지분을 확보한 상태였다.
김씨가 보유한 계열사 주식은 신씨와 그의 딸들보다 많았고 <일요시사>는 이를 두고 김씨에 대한 우 회장의 두터운 신뢰를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인식했다. 당시 신씨의 경우 SM그룹 관련 지분이 단 1주도 없었다는 점에서 김씨와 극명히 대비되는 모습을 보였다.
신씨의 세 딸이 보유한 SM생명과학 지분 역시 기원씨에 비하면 부족한 수준이었다.
우 회장과 김씨의 관계를 조망하고, 두 사람의 관계가 승계 구도에 어떤 방식으로 영향을 줄지 주목한 해당 기사에 대해 SM그룹 측은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는 데 인색했다.
당시 SM그룹 관계자는 “회장님의 사생활이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것도, 확인해 줄 수 있는 것도 없다”고 입을 다물었다. 승계에 관한 질의에도 “후계구도에 대해선 아직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했을 뿐이었다.
사실혼 들통
개념은 어디로…
이처럼 <일요시사>의 질의에 명확한 답변을 꺼렸던 SM그룹은 정작 해당 기사에 대한 주목도가 높아지자 상식 밖의 행동을 꺼내 들었다. 의도가 뻔한 ‘언론 길들이기’에 나선 것이다.
지난해 5월 SM그룹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및정보보호등에관한법률위반(명예훼손)’ 및 ‘출판물에의한명예훼손’을 이유로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를 검찰에 고소했다. 해당 기사가 온라인에 공개된 지 7개월가량 지난 시점이었다.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2019년 7월1일자로 송출된 ‘<단독> SM그룹 우오현 회장, 총리 동생에…대통령 동생도 품었다’와 2019년 12월2일 <일요시사> 홈페이지에 등록된 ‘<단독> SM그룹-한미동맹친선협회-K사 기막힌 동거 내막’, 2018년 7월30일 보도한 ‘<단독> 총리 동생의 ‘이상한 취업’ 역시 같은 이유로 고소 절차를 밟았다.
‘SM그룹 우오현 회장, 총리 동생에…대통령 동생도 품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남동생 문재익씨가 2018년부터 SM그룹 계열사인 KLCSM에서 선장으로 근무 중이라는 내용이 핵심이다.
‘총리 동생의 이상한 취업’은 이낙연 전 총리의 셋째 동생인 이계연씨가 2018년 삼환기업 대표이사로 선임됐다는 내용이 포함돼있다. 지난 30년 동안 건설업에서 일한 경험이 없었던 계연씨가 삼환기업의 적임자인지 의문을 표한다.
의도 뻔한
꼬리물기
‘SM그룹-한미동맹친선협회-K사 기막힌 동거 내막’은 과거 김씨의 개인회사로 인식됐던 K사에 관한 기사였다. 이 회사는 우 회장의 친여동생 우현의씨가 운영하는 사단법인 한미동맹친선협회와 같은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었다.
기사가 작성될 무렵 K사의 대표이사는 이모씨였고, K사는 이씨의 개인회사로 탈바꿈했다. 하지만 <일요시사>는 취재를 통해 K사가 SM그룹의 영향력 아래 운영되고 있을 가능성을 다뤘다.
<일요시사>는 K사(2009년)와 한미동맹친섭협회(2010년)는 설립할 때부터 같은 사무실을 썼다는 점을 주목했다. 한미동맹친선협회는 SM그룹의 특수관계사였고, 현의씨는 한미동맹친선협회 회장이자 SM그룹 대외협력 총괄사장을 맡던 상태였고, 우 회장은 한미동맹친선협회 고문이었다.
앞에서 열거한 기사들은 세간에 공개되지 않았던 SM그룹 내부 사안을 다룬 <일요시사> 단독 보도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국민의 알 권리에 충분히 부합할만한 내용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SM그룹이 고소를 앞세웠다는 건, 최대한의 압박을 통해 어떻게든 기사의 생명을 단절시키겠다는 의도기 자명했다. 이 같은 SM그룹의 의도는 상식을 벗어난 행동에서 또 한 번 여지없이 드러났다.
SM그룹은 앞서 열거한 네 편의 기사 이외에도 ▲17개 SM그룹 좀비기업 대해부(등록 2018년 6월15일) ▲우오현 SM그룹 회장, 1인 36역(등록 2018년 6월1일 겸직왕) ▲<탄핵 후폭풍> 좌불안석 친박기업 백태(등록 2017년 3월10일) ▲박근혜와 특별한 SM그룹, 왜?(등록 2016년 12월19일) 등 SM그룹을 언급한 대다수 <일요시사> 기사를 문제 삼았다. 작성 시기가 4년을 훌쩍 넘긴 기사를 걸고넘어지는 일도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자본 권력 앞세운 대기업 무리수
노골적인 ‘재갈 물리기’ 수포로
이 과정에서 해당 기사를 작성했던 기자들은 물론이고, 편집인과 발행인까지 경찰 조사를 받아야 했다.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논조를 나타낸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또 ‘SM그룹 후계열쇠 쥔 회장님 내연녀의 정체’를 작성한 기자에게 ‘이 기사로 인해 다른 기자들마저 송사에 휘말린 것’이라는 심적 부담을 짊어지게 하려는 얕은 수마저 엿볼 수 있다.
물론 개인이든 집단이든 누구나 소송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본래의 목적에 부합하지 못한 소송은 단순 횡포에 불과하다. 의도가 뻔한 겁주기식 고소와 소송 돌입을 계획했던 SM그룹의 행위야말로 ‘전략적 봉쇄 소송’의 본질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이 같은 행위는 커다란 위험요소를 내포한다. 무엇보다 힘을 가진 자의 심기를 거슬렀을 경우 적잖은 고초가 뒤따른다는 공포심을 조성할 수 있다.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싸우다 오히려 억대의 손해배상 소송을 당하고, 억울함을 호소하는 약자가 되레 범죄자로 전락하는 광경은 더 이상 낯선 모습이 아니다.
당연하게도 SM그룹의 <일요시사> 길들이기는 수포가 돼 버린 상황이다. 지난달 13일 서울방배경찰서는 SM그룹이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사안에 대해 일제히 ‘불송치(혐의 없음)’결정을 내렸다. 법률상 범죄가 성립되지 않아 처벌할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한 셈이다.
SM그룹이 지난 1년간 <일요시사>에 재갈을 물리고자 심혈을 기울였던 모든 작업이 소득 없이 끝났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제 공은 SM그룹으로 넘어갔다. 단지 본인들이 불편하다는 속내를 내비치며 언론을 상대로 무력행위를 거듭해 온 SM그룹이 자정의 노력을 갖지 않는다면 지금껏 불거진 구설 이상으로 세간의 의혹이 확대될 수밖에 없다.
당연했던
‘혐의 없음’
언론계 관계자는 “바른 보도를 추구하는 기자들은 대기업 입장에서 언제나 위협의 대상이다. 덕분에 기자를 향한 고소·고발이 일상화되는 양상”이라며 “재력이 펜을 꺾으려는 경향은 갈수록 심해지고 있으며, SM그룹이 벌인 이번 행동 역시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