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북미회담 결렬> 한반도 운명은?

결국 다시 문이 나선다

[일요시사 정치팀] 김정수 기자 = 결국 초미의 관심을 받았던 두 번째 세기의 담판은 결렬됐다. 북미는 접점을 찾지 못했다. 트럼프-김정은 두 정상이 하노이에 도착해 연출한 분위기는 긍정적이었다. 그러나 북미는 회담 마지막 날 어긋났다. 북미의 협상이 결렬된 가운데 트럼프 대통령은 다자 간 비핵화 프로세스를 언급했다. 북미의 비핵화 방정식이 점차 복잡해지는 분위기다.
 

▲ 악수 나누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노동신문

2차 북미정상회담의 분위기를 선점한 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다. 김 위원장은 하늘길이 아닌 60시간에 이르는 육로 대장정을 선택했다. 열차의 경적소리를 시작으로 2차 북미회담의 막이 올랐다. 김 위원장은 한국시간으로 지난달 23일 오후 4시30분경 북한 평양역을 출발해 중국 대륙을 종단했다. 열차는 지난달 26일(이하 현지시각) 새벽 중국 난닝역서 잠시 멈춰 섰다.

육로 대장정
회담 신호탄

김 위원장은 역에 하차해 담배를 입에 물었다.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은 크리스털 재질로 보이는 재떨이를 손에 들고 그를 수행했다. 김 위원장은 다소 긴장된 모습으로 휴식을 취한 뒤 열차에 몸을 실었다. 열차는 65시간여 만인 이날 오전 8시10분경 베트남과 중국의 접경지역인 베트남 랑선성 동당역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는 매우 행복하며 베트남에게 감사하다”며 밝은 표정을 지었다. 그는 베트남 정부 관계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고, 동당역서 대기 중이던 전용차에 올라 오전 8시30분경 하노이로 출발했다. 하노이 도착 전 박닌성에 있는 삼성공장을 시찰할 것으로 예측됐지만 중간 경유지는 없었고 오전 11시경 숙소인 하노이 멜리아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었다. 

김 위원장은 도착 6시간 만에 외부 일정에 나서 수행단과 함께 오후 5시경 전용 리무진을 타고 오후 5시7분경 북한대사관에 도착했다. 북한 대사관에선 “만세!” 소리가 우렁차게 울렸다. 김 위원장은 50분 정도 이곳에 머물렀다.


이날 김 위원장의 수행단도 이목을 끌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과 김창선 국무위원회 부장, 김여정 부부장과 함께 김평해 인사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조용원 조직지도부 부부장, 김철규 호위사령부 부사령관 등이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이튿날 “김정은 동지가 26일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해 제2차 조미 수뇌회담(북미정상회담) 실무대표단의 사업 정형을 보고받으셨다”고 보도했다.

김-트, 260일 만에 베트남서 재회
초반 분위기 청신호, 기대감 높여

<중앙통신>의 보도로 미뤄봤을 때, 김 위원장은 전날 오전 11시 숙소에 도착한 뒤 북한 대사관을 찾은 오후 5시 사이에 실무대표단의 보고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오후 9시경 하노이에 도착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타고 20여시간의 비행 끝에 하노이 노이바이 공항에 도착해 숙소 하노이 JW메리어트호텔엔 오후 9시40분경 도착해 짐을 풀었다. 북미 정상은 정상회담 하루 전 모두 하노이에 입성했다.

이튿날 2차 북미회담 일정이 시작됐다. 긴장감이 맴도는 상황서 적막을 깬 건 북한 측이었다. 북한 수행단은 오전 8시경 멜리아호텔을 나왔다.
 

▲ 회담장 안으로 들어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오수용 경제담당 노동당 부위원장과 리수용 외교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김평해 인사담당 노동당 부위원장, 노광철 인민무력상, 김성남 노동당 국제부 제1부부장,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장 등이 모습을 비췄다. 이들은 오전 9시45분경 베트남의 대표적 관광지인 할롱베이에 도착했다. 현지 매체 등은 북한 수행단이 할롱베이서 유람선을 타고 이곳을 둘러봤다고 보도했다.


북한 수행단은 할롱베이에 이어 베트남 북부 최대 항구도시인 하이퐁도 시찰했다. 하이퐁은 외국인직접투자 기업이 밀집해 있는 곳으로 베트남 경제 성장의 견인차로 손꼽히는 지역이다. 북한 수행단은 이곳에서 대규모 산업단지 등을 방문했다.

이들의 일정은 김 위원장의 경제성장 의지를 반영한다. 북한 수행단은 관광지구와 개발경제지구를 시찰했다. 김 위원장은 한국과 미국, 그리고 중국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경제 성장에 대한 의지를 강력하게 피력한 바 있다.

외부일정 적극
경제성장 의지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30분경 하노이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 호텔서 만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15분경, 김 위원장은 오후 6시20분경 각각 전용차를 타고 이곳에 모습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인공기와 성조기가 교차된 회담장서 만나 악수를 했다. 지난 1차회담 후 260여일 만의 재회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1차 북미회담 이상으로 성공적이고 더 진전을 이룰 것”이라고 분위기를 띄우는가 하면 “김 위원장은 위대한 지도자”라고 치켜세우기도 했다. 김 위원장도 “불신과 오해의 눈초리, 적대적인 것들이 우리가 가는 길을 막으려고 했지만 우리는 잘 극복했다”며 “보다 훌륭한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라 확신하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화답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6시40분부터 약 20분간 단독회담에 들어갔다. 북미 핵담판에 불이 붙기 시작하면서 이목이 집중됐다. 두 정상은 단독회담 이후 친교 만찬에 나서기 전 긍정적인 입장을 드러냈다.

김 위원장은 “흥미로운 이야기를 많이 했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아주 특별한 관계”라고 호응했다.

북미 정상의 단독회담 이후 시작된 만찬은 북미의 신뢰를 반영한다. 지난 1차 북미회담서 만찬은 일정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번 2차 북미회담서 새로 포함된 것이다.

만찬에는 북미 참모가 각각 2명씩 배석했다. 북한 쪽에서는 김영철 부위원장과 리용호 외무상이, 미국 쪽에서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믹 멀베이니 백악관 비서실장 대행이 배석했다. 북미는 만찬 뒤에도 실무 접촉을 통해 합의문 조율에 나선 것으로 전해졌다.

훈훈 분위기
돌연 급반전

북미 회담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28일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본격적인 핵담판을 위한 채비에 나섰다. 회담 장소는 두 정상이 전날 만났던 메트로폴 호텔이었다. 먼저 길을 나선 건 트럼프 대통령이었다. 그는 오전 8시25분경 JW메리어트 호텔을 나서 오전 8시40분경 회담장에 먼저 도착했다. 뒤이어 김 위원장도 멜리아호텔을 출발해 회담장으로 이동, 오전 8시46분경 회담장에 도착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모두발언을 통해 회담의 기대감을 키웠다.


김 위원장은 “이제는 (우리의 노력을) 보여줄 때가 됐다”며 “최종적으로 훌륭한 결과가 나올 수 있도록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어떤 합의 이후에도 우리는 계속 만남을 지속할 것”이라며 “경제대국이 될 수 있는 북한의 가능성을 강조하고 싶다”고 밝혔다.
 

▲ 손 흔들어보이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트럼프 대통령은 “속도가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며 거듭 속도 조절론을 꺼내들면서도 “중요한 것은 핵실험, 로켓 실험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두 정상은 곧 단독회담을 시작했다.

이들은 오전 9시35분경 조그만 산책길을 통해 회담장 밖으로 나와 이동하면서 밝은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곧 김영철 부위원장과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만나 담소를 나눴다. 이들은 미소를 띠며 확대회담을 위해 실내로 들어갔다.

그러나 훈훈했던 분위기는 확대회담서 급반전됐다. 확대회담에는 두 정상과 함께 북한 측 인사로 김영철 부위원장과 이용호 외무상, 미국 측 인사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폼페이오 국무장관,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이 배석했다. 확대회담 이후 북미 정상은 오찬을 함께하고 서명식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러나 확대회담이 약 한 시간 넘게 지연되면서 분위기가 심상치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막판 핵담판 무산, 갑자기 왜?
추후 다자회담 가능성…시기는?

새라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은 “북미 오찬은 없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찬에 이어 북미 서명식도 취소됐다. 샌더스 대변인은 오후 4시 예정이었던 트럼프의 기자회견이 2시간 일찍 앞당겨져 진행될 것이라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후 1시25분 기자회견을 위해 회담장을 떠났고 김 위원장도 회담장을 나서 숙소로 돌아갔다. 

트럼프 대통령의 단독 기자회견은 예정된 시간보다 15분 정도 지난 뒤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 생산적인 시간을 가졌다”면서도 “지금 시점에서는 아무 것도 서명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만 “김 위원장과 굳건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며 관계까지 부정하지는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북한은 대북제재 전체의 해제를 원했으나 우리는 제공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북한이 핵 시설 폐기를 말했지만 받아들이기 어려웠다고 덧붙였다. 결국 북미는 비핵화 조치와 상응 조치에 접점을 찾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관심이 모이는 건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한 ‘비핵화 프로세스’다.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과 중국, 러시아, 일본 등을 언급하며 다자 간 비핵화 프로세스를 강조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프로세스를 위해 오늘 합의에 서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2차 북미회담이 결렬되면서 문재인정부의 움직임은 가빠질 예정이다. 당장 한미정상회담과 함께 남북정상회담이 주목을 받고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차 북미회담 전후로 워싱턴과 평양을 방문했다.
 

▲ 문재인 대통령

청와대는 현재 한미정상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북정상회담은 지난해 말 무산된 김 위원장의 답방과 맞물려 추진력을 얻을 가능성이 높다. 한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은 순서에 차이가 있을 뿐 비슷한 시기에 모두 열릴 공산이 크다. 시기는 오는 3월 말에서 4월 초로 점쳐진다. 

북미 합의 결렬
문 대통령 등판

트럼프 대통령은 추후 협상 의지와 함께 다자 간 비핵화 프로세스를 언급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강조한 다자 간 프로세스 역시 이 시기에 맞춰 본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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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