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 골프의 역사

500년 전부터 돈 걸었다

내기는 인간의 본능이기도 하다. 무언가를 걸어야 무언가를 얻을 수 있는 게 인생이다. 골프도 마찬가지다. 참가비를 내고 대회에 참여하는 것도 일종의 내기로 볼 수 있다. 내기 골프의 역사를 확인했다.
 

내기 골프에 대한 공식기록은 500년 전부터 있었다. 15세기 말 스코틀랜드의 왕세자였던 제임스 4세는 골프를 무척 좋아했다. 하지만 절대 그냥 골프를 치지 않았다. 단 한 푼이라도 내기를 걸어야 했다. 

무시

하지만 그는 드러내놓고 골프를 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선대왕인 할아버지 제임스 2세가 골프금지령을 내렸고, 아버지 3세가 대를 이어 지켜왔기 때문이었다. 중세의 유일한 낙이었던 골프를 못 치는 국민들의 마음은 어땠을까. 선대왕들과는 달리 제임스 4세는 골프가 치고 싶어 견딜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귀족들이 몰래 치는 골프를 보며 골프 스윙을 얕봤다. 왕위에 오른 지 3년 째 되던 1491년 어느 날 그는 귀족들하고 내기를 했다. 어깨 너머로 배운 스윙으로 그는 옆에 서 있던 캐디에게 드라이버를 달라고 했다. 어드레스 자세를 한 그는 멋진 자세로 힐끔 전방을 주시한 뒤, 있는 힘을 다해 휘둘렀다. 

스코틀랜드 왕세자
“한 푼이라도 걸려야”


아뿔싸. 볼은 30야드 앞에 굴러 처박혔다. 무안한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던 그는 다시 한 번 힘껏 스윙을 해보았다. 첫 번째보다 조금 멀리 나갔지만 역시 50야드 안쪽이었다. 함께 내기를 한 귀족들은 웃지도 못하고 죽을 맛이었다.

왕이 듣기로는 드라이버를 치면 평균 150야드 이상은 족히 나간다고 했다. 은근히 화가 난 그는 골프채를 던져버리고는 시중들에게 “귀족들에게 내기에서 진 돈을 지불하라”고 전한 다음 머쓱해서 궁전으로 들어가 버렸다. 스코틀랜드 왕실 문서에는 ‘제임스 4세가 내기 골프를 쳤고, 승부에서 진 뒤 3실링을 왕실 국고에서 지불했다’는 공식 기록이 있다. 
 

훗날 그는 내기와 골프를 무던히도 좋아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에딘버러의 골프장에서 한 달 내내 골프만 쳤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이다. 그는 활을 만드는 장인에게 골프채를 주문하곤 했다. 당시 골프채를 만드는 전문가는 따로 없었지만 활을 만드는 장인들은 물푸레나무 같은 재료를 가지고 골프채를 만들곤 했다. 스코틀랜드 왕실 문헌에는 ‘제임스 4세가 퍼스(PE- RTH) 지역에서 활을 만드는 장인에게 클럽 세트를 주문하고 14실링을 지불했다’고 기술되어 있다.

502년 제임스 4세는 내기와 골프를 즐기기 위해 스스로 골프금지령을 해제시켜버렸다. 금지령이 풀리면서 골프는 일반 대중뿐 아니라 왕과 귀족들, 교회의 주교들까지 즐기는 놀이가 됐다. 귀족들은 큰 액수의 돈을 내기에 거는 경우가 많았고, 일반인들은 빵이나 작은 물건을 걸기도 했다. 내기 골프는 스코틀랜드 전체에서 성행됐다. 

왕위 오른 지 3년부터
귀족들과 내기 시작

정작 제임스 4세 자신은 금지령을 풀고 불과 10년밖에 골프를 치지 못했다. 11년 만에 잉글랜드와의 평화 협정이 깨지면서 군사를 이끌고 참전한 플로딘 전투에서 전사했기 때문이었다.

광적일 정도로 골프를 사랑했던 제임스 4세는 골프의 역사에 있어서는 골프가 다시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한 지대한 공을 세운 왕이었던 동시에 현대인들이 내기를 걸고 골프를 칠 수 있는 명분에 어느 정도는 공헌을 한 인물이었다. 제임스 4세의 손녀인 메리 여왕 역시 할아버지의 피를 이어 받아 내기에 강한 면모를 보여줬다.
 


메리는 곧잘 시녀들과 내기를 걸고 골프를 쳤던 것으로 전해진다. 1561년 여왕은 시중을 드는 여집사장인 세톤에게 “날씨가 좋아 지난주에 잃었던 돈을 도로 찾고 싶다”면서 필드에 나갈 준비를 시켰다. 비슷한 실력의 두 사람은 늘 내기 골프를 했는데, 이날 여왕은 글래스고 골프장에서 벌어진 내기에서 져 걸고 있던 금목걸이를 대가로 지불해야 했다. 

19세기 중엽의 스코틀랜드 골프는 돈을 걸고 상대방에게 이길 때까지 치는 매치플레이가 성행했다. 귀족들은 최고의 프로골퍼들을 골라 돈을 걸고 2인1조의 시합을 벌였다. 갤러리들은 돈을 배팅하고 우승 확률을 점치느라 난리들이었다. 

알렌 로버트슨과 톰 모리스, 윌리 팍과 윌리 던 등 이른바 내기 4인방은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었고, 이 중 저격수로 이름난 알렌은 내기 골프에 제격이었다. 단 한 번도 돈이 걸리지 않은 경기는 하지 않았고, 상대방에게 돈을 내준 적도 없었으며, 진 적도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도박사

그는 일부러 못 치는 척하면서 배팅을 두 배 이상 올려 돈을 따는 수준이었다. 그때부터 영국에서 도박사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그들은 알렌의 상대를 찾느라 바쁘게 지냈던 것으로 알려진다. 수백년간 성행했던 내기 골프는 프로골퍼를 배출했고, 오늘날의 프로들은 어마어마한 상금을 벌어들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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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단독 입수] 노상원 수사 기록 ②부정선거에 꽂힌 내막

[일요시사 취재1·정치팀] 오혁진·박희영·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가 발생한 지 6개월이 지났다. 특검이 출범하면서 관련 수사도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현재까지 여러 언론을 통해 핵심 인물들의 수사 기록이 일부 보도됐다. 그러나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에 대한 내용은 구체적으로 언급된 바 없다. <일요시사>는 경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단의 ‘노상원 수사 기록’을 단독으로 입수해 공개하기로 했다. “부정선거 증거가 차고 넘치고 나중에는 드러날 것이다.”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이 수사기관에 진술한 내용이다. 그가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처럼 부정선거 음모론에 꽂혀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노 전 사령관은 윤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사실상 수년 전부터 망상에 빠져있었다고 볼 수 있다. 같은 생각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에 참여하기 시작한 건 2년 전부터로 추정된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노 전 사령관 수사 기록에 따르면 그는 부정선거 음모론 집회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의 집회에 여러 차례 참여했다. 노 전 사령관이 전 목사와 개인적으로 알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다만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에게 집회에 참여할 때마다 당시 분위기와 참석자들이 윤 전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 텔레그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했다. 1년간 ‘극우 집회’를 분석한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그는 “문상호, 정성욱, 김봉규 등과 만날 때 주로 어떤 말을 했느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 “선관위를 얘기했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선관위가 부정선거의 온상이라고 김용현 전 장관이 많이 말씀하셨다. 나에게도 여러 번 선관위의 부정선거에 대해 알아보라고 지시했고 네이버로 찾아도 봤다”고 말했다. “부정선거를 주로 누구에게서 들었냐”는 경찰 측의 질문에는 “관련 집회에 여러 번 참여하면서 들었고 특정 인물이 누구인지 실명을 거명하긴 그렇다. 나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를 해야 해서 스스로 공부도 많이 했다. 여론조사 조작이나 선거 부정은 합리적인 근거가 있다”고 했다. 전 주도 윤 지지자 극우 집회 직접 참석 김과 텔레그램으로 부정선거 자료 공유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의 근거로 “선관위 산하에 여론조사심의위원회가 있다. 여론조사기관은 여론조사심의위에 등록해야 한다. 여론조사기관의 갑이다. 여론조사심의위원회는 9명으로 위원장 이대영 사무총장과 강성봉 등이고 그 밑에 쭉 있는데 7명이 진보 계열 인물이다. 여론조사기관이 편향되어 있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고 주장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자들이 주장하는 임시선거사무소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그는 “네이버에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2021년 국회의원 선거 때 동작구 선거사무소가 있는데 옆을 임대해서 임시선거사무소를 만들었었다. 언론에 나오니까 발뺌했었고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자 김 전 장관이 더 많은 자료를 보내 줬었다”고 했다. 노 전 사령관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며 “결국에는 다 까질 것이다. 전산은 한 번 까지면 되돌릴 수가 없다. 폭파하거나 고물상에 갖다 버리지 않는다면 전산은 결국 까진다. 북한이 쳐들어온 것도 아니고 서울 상공에 포를 쏜 것도 아니지만 윤석열 전 대통령께서는 선관위의 부정선거가 확실하다고 생각하시고 정국이 전시에 준하는 사태라고 민감한 상황이라고 보신 것 같다. 그런 상황이 아닌데도 그렇게 행동한 건 그만큼 절박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2시간짜리 호소였다. 만약 국회 결정을 윤 전 대통령께서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유혈사태가 났을 것”이라고 윤 전 대통령을 옹호했다.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 초, 선관위가 서버 교체를 검토했다가 교체하려 했던 것을 두고 “윤 전 대통령께서 어디에선가 확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들으셨을 것 같다. 서버 조작이 있었기에 그 서버를 우리가 확보하려 할 때 선관위 측이 폭파했을 수도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의 군검찰·검찰 피의자 신문조서를 보면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8월 초 ‘정보사 군무원 간첩 사건 수사 결과’를 보고받는 자리에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을 포함한 정치인 등 인물들에 대해 “비상대권을 사용해 이 사람들에 대해 조치를 해야 한다”며 “현재의 사법체계, 형사소송법, 방탄국회 및 재판지연 아래에선 이런 사람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조치’ ‘2시간짜리 계엄’ 겹치는 윤·노 발언 "서버 확보하려 했다면 선관위가 폭파했을 것” 주장 윤 전 대통령이 “비상대권을 사용한 조치”를 언급한 건 한두 번이 아니다. 그만큼 이 대통령과 자신의 의견을 거스르는 인물들에 대한 복수심이 극에 달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노 전 사령관도 마찬가지다. 노 전 사령관은 경찰에 “김용군(대령)과 구삼회 등에게 ‘이재명은 죄가 7개인데 봐주고 지연시키고 구속도 안 되고 당 대표까지 하는데 더불어민주당이 감사원장, 중앙지검장, 판사 등을 모두 탄핵하려고 하는 게 과연 올바른 세상이냐’고 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 윤 전 대통령과 노 전 사령관이 언급한 말이 일치하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12일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했고 비밀번호도 아주 단순해 ‘12345’ 같은 식이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노 전 사령관도 “선관위가 헌법기관인데 스스로 깨끗해야 하거나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하는데 황제·세자 채용 등 문제가 나왔다. 각종 할 수 있는 최악의 것은 다 저질렀다. 그리고 전산 해킹이 언급될 때 서버 본체를 보여준 것도 아니고 일부 샘플만 살짝 보여줬는데 얼마든지 전산 조작이 가능하고 해킹에 얼마나 취약하면 비밀번호가 ‘1234’냐. 이미 그런 게 다 나왔다. 그렇게 떳떳하면 왜 본체를 못 열어주나”고 말했다. 그러나 조태용 국정원장은 같은 해 12월 검찰 조사에서 “선관위 시스템에 보안상 취약점이 발견됐지만, 부정선거에 관한 단서는 전혀 포착하지 못했다”는 내용으로 보고했다고 진술했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윤 전 대통령과 직접 비화폰으로 연락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보고 있다. 실제 노 전 사령관도 지난해 12월2일 자신의 지인에게 윤 전 대통령과의 친분을 과시했다. 노 전 사령관은 당시 “나 같은 경우는 브이(V, 윤 전 대통령 지칭)하고 이렇게 좀 도와드리고 있다. 원래 한 4~5년, 3~4년 전에 알았다뿐이고 그래서 이제 뭐 이렇게 여러 가지로 좀 도와드리고 있다. 비선으로”라고 했다. 친분 과시 노 전 사령관은 안산 ‘롯데리아 회동’에 참석했던 구삼회 전 육군 2기갑여단장에게도 “며칠 전에는 김용현과 함께 대통령도 만났다. 갈 때마다 대통령이 나한테만 거수경례를 하면서 ‘사령관님 오셨습니까’라고 한다. 내가 이런 사람이다. 대통령과 장관 같이 만난다. 나는 벌써 여러 번 만났다”고 했다. <hounder@ilyosisa.co.kr> <hypak28@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