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부 폭로한 내부자들 정체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9.01.07 10:37:21
  • 호수 120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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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 독불장군? ‘누구냐 넌?’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공무원들의 반란이 시작됐다. 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이래로 다수의 공무원들이 내부고발자를 자처했다. 상당한 논란이 있었지만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이번 정부 내부고발자에는 어떤 인사들이 있었을까. 
 

공무원들의 잇단 폭로가 청와대를 뒤흔들고 있다. 이를 두고 상반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선 ‘상명하복’ 문화에 길들여진 공무원 사회서 ‘소신 있는 공무원’이 생겨나고 있다는 반응이다. 다른 시각에선 공무원들의 ‘조직 기강이 흐트러졌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공무원 사회에선 최순실 사건 때 연루된 늘공(늘 공무원)들이 줄줄이 구속된 상황을 교훈으로 소신 공무원으로 거듭나는 과정이라고도 평가했다. 하지만 이들 폭로에 결정적 한 방은 없었다. 

신재민

신재민 전 사무관은 유튜브를 통해 ‘기획재정부가 청와대의 지시로 박근혜정부 때 선임된 KT&G 사장을 교체하려 했다’ ‘청와대가 4조원 규모의 적자 국채를 추가 발행할 것을 지시했다’ 등을 주장해 파문을 일고 있다. 정부는 이런 신 전 사무관을 고발했다.

신 전 사무관은 지난 2일 “저 말고 다른 공무원이 절망하고 똑같은 상황에 처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밝혔다. 

그는 이날 서울 강남구 역삼동 기자회견서 “제가 고시를 4년 준비했고 4년 일하고 나오게 됐다”며 “KT&G 사건을 보고 났을 때의 막막함과 국채 사건을 보고 났을 때의 절망감을 (돌이켜보면)다시는 다른 공무원이 같은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2017년 11월14일 국고채 1조원 조기상환(바이백) 취소와 관련해 “정부가 한다고 하고 안 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한 달 전에 한다고 해놓고 하루 전 취소하면 기업 등에서 누구 한 명은 고통받는다. 납득 못할 의사결정을 거쳐서 취소한 것만으로도 죄송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신 전 사무관은 기재부서 자신에 대해 당시 일을 잘 모른다고 반박하는 것에 대해 “국채 사건의 담당자가 바로 저였고, (김동연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장관 보고를 4번 들어갔다”고 재반박했다. 그는 “기재부서 현재 근무하는 직원 가운데 사건의 전말을 완벽히 아는 사람은 3명뿐”이라며 “제가 사실관계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부총리 보고 현장서 청와대 관계자가 당시 국고국장, 국고과장과 통화하는 것을 지켜봤고 그 지시에 따라 국채 발행이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신 전 사무관은 청와대 인사가 누군지 특정할 수 있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차영환 당시 비서관”이라고 답했다. 

최순실 국정 농단 공무원 줄줄이 구속 
상명하복서 달라진 공무원 사회 반영?

기재부는 신 전 사무관을 공무상비밀누설 혐의와 공공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이날 오후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KT&G와 관련한 동향 보고 문건을 외부에 유출한 행위, 적자 국채 추가발행에 대한 정부 내 의사 결정 과정이나 청와대와의 협의 등 관련 정보를 외부에 공개한 행위를 수사해 처벌해달라는 취지다.

기재부 관계자는 ‘신 전 사무관의 행위가 공무상 취득한 자료를 외부에 무단으로 유출하거나 기재부와 청와대의 내부 의사결정과정에 관해 스스로 판단해 사실과 맞지 않는 내용을 여과 없이 유출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 신재민 전 기획재정부 사무관

형법 127조는 공무원 또는 공무원이었던 자가 법령에 의한 직무상 비밀을 누설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 51조에 따르면 공무원 신분으로 취득한 공공기록물을 무단 유출하는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으로 처벌할 수 있다.


신 전 사무관은 앞서 지난달 29일 유튜브와 고려대학교 인터넷 커뮤니티 ‘고파스’에 올린 글을 통해 ▲공무원을 그만둔 이유 ▲청와대가 KT&G 사장을 바꾸라고 지시한 내용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올해 34세로 고려대 행정학과를 졸업했다. 2012년 행정고시에 합격해 2014년부터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기재부서 외국인 채권 투자 관리, 국고금 관리 총괄, 국유재산관리 총관 업무를 담당했던 그는 지난해 7월 퇴직 후 입시학원 메가스터디와 공무원 강의의 강사 계약을 맺었다. 

김태우

청와대 특별감찰반서 근무하다 비위 의혹으로 검찰에 복귀한 김태우 수사관이 청와대가 민간인 사찰을 했다고 주장했다. 김 수사관은 2017년 9월 주러시아 대사로 내정된 더불어민주당 우윤근 전 의원(현 주러 대사)이 채용 청탁을 받고 금품을 수수한 내용을 작성했다가 쫓겨났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냈던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은 산하 고속도로 휴게소에 입점한 특정 카페 매장의 커피 추출 기계와 원두 등에 대한 공급권을 같은 당 재선 출신 인사에게 운영하는 업체에 몰아줬다고도 말했다. 

이 외에도 김 수사관은 자유한국당을 통해 청와대가 ‘환경부 산하기관 임원들의 사퇴 등 관련 동향’ 이라는 블랙리스트를 작성했다고 폭로했다. 반면 환경부는 이에 대해 김 수사관의 요청으로 제공됐다고 해명했다.

지난달 31일 국회 운영위원회는 최근 불거진 김 수사관의 폭로와 관련해 조국 민정수석을 출석시켰지만 별다른 소득은 없었다. 12년 만에 국회에 출석한 청와대 민정수석을 향한 자유한국당의 ‘최후의 한 방’은 없었던 셈.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12월 임시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한국당의 반대로 김용균법 처리에 난항을 겪자 조국 수석에게 운영위 전체회의 출석을 지시한 바 있다.

이날 조 수석은 시종일관 당당한 태도로 현안질의에 임했다. 현안보고서 그는 “이번 사태 핵심은 김태우 수사관의 비위 행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다”라며 “이 사태 핵심은 김태우 행정요원이 징계처분이 확실시되자, 정당한 업무처리를 왜곡해 정치적 쟁점으로 만들고 자신의 비리 행위를 숨기고자 희대의 농단”이라고 주장했다.

조 수석은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날선 질문에도 조목조목 반박하며 응수했다. 청와대의 민간사찰 의혹에 대해서는 “제가 정말 민간인 사찰을 했다면 즉시 저는 파면돼야 한다”며 강경한 어조로 답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께서 취임 후 처음으로 하신 일이 수백, 수천명의 국정원 요원을 철수시킨 것”이라며 “열 몇 명의 행정요원으로 민간인을 사찰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 여명숙 전 게임물관리위원회위원장

김 수사관의 비위 의혹은 상당 부분 사실로 확인돼 대검찰청 감찰본부(본부장 정병하)가 해임을 요청하기로 했다. 

김 수사관은 총 5가지 징계사유를 받고 있다.

특감반원으로 일하던 당시 감찰한 내용을 언론에 제보해 공무상비밀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혐의와 지인인 건설업자 최모씨의 뇌물공여 수사에 부당하게 개입하려 했다는 의혹 등을 두고 검찰과 김 수사관 측이 법리공방을 벌일 전망이다.


공무상비밀유지 의무위반 혐의는 청와대 고발이 이뤄져 수원지검서 수사 중이다. 또 최씨를 통해 청와대 특감반원 파견 인사청탁을 했다는 의혹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공무원의 비위 첩보를 생산한 뒤 이를 토대로 과기정통부 감사관실 사무관 채용에 부당지원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스모킹건 없이 진실공방만?
공직사회 기강해이 지적도

최씨를 비롯한 사업가들과 정보 제공자들로부터 총 12회에 걸쳐 골프접대를 받았다는 의혹도 징계위가 살펴볼 예정이다. 의혹이 모두 사실로 확인되면 대검 감찰본부가 요청한 대로 김 수사관에게 해임 징계가 내려질 것으로 전망된다.

출국금지 상태인 김 수사관은 전날 직위해제 통보를 받고 업무서 전면 배제된 상태다. 김 수사관은 2002년 검찰 7급 공채로 검찰수사관으로 채용됐다.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범죄정보과서 근무했다. 검찰 근무 땐 삼성 특검 등 대형 사건서 계좌 추적 등을 주로 담당했다.

여명숙

여명숙 전 게임물관리위원회 위원장은 2017년 10월31일 열린 국회 교문위 종합감사에 출석해 “전병헌 청와대 정무수석과 그의 친척·지인들이 속한 게임 언론사, 문체부 게임과와 그의 고향 후배를 자처하는 김모 교수 등이 게임판을 농단하는 4대 기둥”이라고 폭로했다. 그러면서 2011년부터 시행된 게임물 자체등급분류제와 유료 아이템 결제한도, 확률형 아이템 등의 문제가 이들과 연관돼있다고 지적했다.


자체등급분류제는 모바일게임 활성화를 위해 구글과 애플 등 오픈마켓 사업자가 자체적으로 게임을 심의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것이다. 2017년부터는 자체 심의 대상이 청소년이용불가 게임과 아케이드게임을 제외한 모든 게임으로 확대됐다.

당시 여 위원장 발언 이후 당사자들이 즉각 반박하며 법적대응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기본적인 사실관계부터 틀린 명백한 허위 주장이라는 것이다. 전 수석은 교문위원들에게 “여 위원장 발언은 모두 허위”라며 “사실무근인 음해와 심각한 명예훼손으로 국감을 혼란시킨 당사자에 대해 모든 민형사 책임을 묻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여 전 위원장은 최근 자신의 유튜브 채널 ‘개수작(개념수호작전) 티브이’를 개설했다. 지난달 14일 올린 개수작 티브이 1화서 “어쩌다 공직자 생활을 하게 되면서 세금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들이 고의적으로 개념을 왜곡하고 잘못된 정책을 방치해서 보통 사람들의 기회와 삶을 박탈한 경우를 많이 보아왔다”며 “앞으로 저의 경험을 토대로 재미는 별로 없지만 모두가 알고 싶어하는 불편한 진실을 하나씩 전하겠다”고 말했다.

여 전 위원장은 인지과학 및 가상현실 철학 분야 전문가로 게임물관리위원회 제2대 위원장이다. 이화여자대학교서 철학 박사 학위를 획득한 후 스탠포드 대학 언어정보연구소(CSLI)서 박사후과정(Post Doc)을 거쳤다. 이후 서울대학교 융합기술원과 KAIST 전산학과 등에서 인문기술융합 분야의 강의와 연구활동을 했다. 

또 2011년부터 포항공과대학교 창의IT융합공학과서 후학을 양성했다. 게임과 관련해 활발한 학술-연구 활동을 하였고 네델란드 위트레흐트대학과 공동 기획한 ‘게임잼코리아대회’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하는 등 기능성 게임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을 보유했다.

여 전 위원장은 최순실 국정 농단 청문회 당시 증인으로 출석해 직설적인 발언으로 '청문회 스타’로 떠오른 인물이다. 2016년 4월 미래부 문화창조융합본부장으로 취임했다가 5월 사임했다. 이 배경에 대해 여 전 위원장은 청문회 증인으로 나와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장관으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고 말해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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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