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의 건국대 사태’ 검찰 책임론 추적

  • 박창민 기자 cmp@ilyosisa.co.kr
  • 등록 2018.06.04 10:09:41
  • 호수 1169호
  • 댓글 0개

뭐가 그리 무서워 발 빼기 바빴나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제2의 건국대 사태’를 두고 검찰 책임론이 급부상했다. 2014년 김경희 전 이사장은 법인 자금 횡령 혐의로 불구속 재판을 받으며, 대법원서 집행 유예가 선고됐다. 당시 검찰의 배려(?)로 수사가 용부사미가 됐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이 배경에 김 전 이사장 시절 석좌교수로 임용된 법조계 거물들이 뒷배 노릇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제2의 건국대 사태가 불거지면서 김 전 이사장을 둘러싼 법조계 거물들이 또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4월26일. 학교법인의 재산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은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에 대해 대법원이 집행유예를 확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이사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검찰 거물들
석좌교수로

김 전 이사장은 법인재산인 스타시티 펜트하우스를 무상으로 사용함으로써 약 11억4000만원을 법인에 부담시켰다는 혐의를 받았다. 또 판공비·해외출장비 등 3억6500만원의 법인 자금을 개인여행 경비나 딸의 대출원리금 변제 등에 사용한 혐의도 있다. 법인 소유의 골프장 사용료 6100만원을 면제받은 혐의 역시 불거졌다.

당시 건국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유현경 여사 측은 교육부에 건국대 특별감사를 신청했다. 교육부는 김 전 이사장을 총 27가지의 불법행위를 한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고발했다. 유 여사는 건국대 설립자 상허(常虛) 유석창 박사의 셋째 딸이며 김 전 이사장의 시누이다. 

그런데 유 여사 측은 당시 동부지검이 김 전 이사장 수사를 축소했다고 주장했다. 


유 여사는 “최근 김 전 이사장을 수사했던 관계자로부터 ‘법인 계좌를 들여다보기 위해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윗선서 묵살당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이 재판 과정서 김 전 이사장에게 골프 접대를 받았던 동행인들을 익명 처리하기 위해 공소장을 변경하는 이례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언급했다.

과연 유 여사 측은 어떤 근거로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걸까. 우선 제2의 건국대 사태로 불거진 건국대 임대보증금 문제(본지 1167호 ‘건국대 7000억원 증발 공방전’ 참고)다. 문제의 요지는 김 전 이사장 시절 건국대가 ‘학교법인 기본재산 관리 안내’에 따라 금융기관에 예치, 보존해야 할 임대보증금 수천억원을 임의대로 사용했다는 것. 

4년 전 김경희 전 이사장 수사 용두사미
당시 제대로 했다면…“현 상황 없었다”

그동안 임대보증금 사용으로 인한 재정 위험 경고가 꾸준히 제기됐다. 이 문제는 김 전 이사장을 수사할 당시 수습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동부지검이 학교법인계좌를 압수수색하지 않아 임대보증금 문제는 그대로 묻혔다. 

당시 검찰 내부와 유 여사 측은 지속적으로 법인 계좌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지만, 이와 관련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은 특수 사건서 법인계좌를 보지 않은 것은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입 모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동부지검 형사6부(일선 지검에선 통사 형사6부를 특수부라고 칭한다)서 진행한 특수 사건”이라며 “법인계좌를 들여다보는 것은 특수 수사의 ABC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걸 하지 않았다는 것은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동부지검 수사팀의 김 전 이사장 공소장 변경도 ‘검찰이 사건을 축소했다’라는 비판을 받기 충분했다. 지난 2015년 10월26일 서울동부지법형사합의 11부 심리로 열린 김 전 이사장 결심공판서 검찰은 김 전 이사장 공소장에 기재된 골프장 무료 라운딩 동행인의 이름을 익명으로 바꾸겠다며 공소장 변경신청을 했다. 

김 전 이사장은 정·관계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골프 접대’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수사 전 영입
인맥 풀가동?

동부지검의 뒤늦은 공소장 변경을 두고 김 전 이사장에 대한 구명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정·관계 유력 인사를 감싸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이사장은 검찰 출신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 김학용·김도읍·주호영 당시 새누리당(현재 자유한국당) 의원 및 국가정보원·교육부 고위 관료들에게 골프 접대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법조계에선 이를 두고 ‘이상한 일’이라고 입 모았다. 통상적으로 공소장 변경은 공소를 유지하기 위해 혐의 사실을 변경하거나 적용 법조를 변경하는 경우에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동부지검 수사팀이 공소장 변경으로 범죄행위에 관련된 관계자의 이름을 덮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김 전 이사장을 직접 수사한 검사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현재 변호사 개업을 한 O 변호사는 “(내가)직접 수사와 공판 항소심을 다 했다. 할 만큼 했다. 당시 수사 관련해서 추가로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답했다.

동부지검이 석연치 않은 눈초리를 받으면서까지 김 전 이사장을 배려(?)한 이유는 뭘까. 당시 김 전 이사장 수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윗선서 눌렀다. 김 전 이사장 시절 석좌교수로 임용된 법조계 거물들이 검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복수의 건국대 관계자와 검찰 내부에선 당시 수사 외압이 없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정관법조계 출신 고위인사 임용
우연의 일치? 혹시 연관성 있나

‘말도 안 된다’라고 강력히 주장한 이유는 뭘까. 당시 김 전 이사장 주변 인맥을 보면 이런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시 검찰 수사를 대비해 김 전 이사장이 정치권과 법조계 인맥을 풀가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이사장은 김앤장, 태평양, 율촌, 세종 등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을 선임했다. 특히 건국대 석좌교수로 임용된 검찰 고위직 출신 법조계 거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건국대는 안대희(전 대법관)·박희태(전 국회의장)·조영곤(전 서울중앙지검장)·박영수(전 서울고검장) 등을 석좌교수로 임용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특수통 검사들에게 ‘대부’격으로 불린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만 25살에 최연소 검사가 됐다. 검찰 입문 이후 부산지검 특수부장과 대검 중수1, 3과장, 서울지검 특수1, 2, 3부장을 역임하는 등 ‘정통 특수통’이었다. 부산고검장, 서울고검장, 대법관 등을 지낸 인물로 법조계 거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안 전 대법관은 김 전 이사장과 누이동생 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복수의 건국대 관계자들은 “김 전 이사장이 사석서 안 전 대법관을 ‘대희야’라고 불렀다. 안 전 대법관도 김 전 이사장을 ‘누나’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시작 그럴 듯
끝은 흐지부지

실제로 안 전 대법관은 건국대 법학대학원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김 전 이사장의 골프 접대 리스트에도 등장했다. 김 전 이사장 공소장의 범죄알림표에 따르면 현직 대법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2011년 9월 건국대 골프장서 골프를 쳤다.

2012년 7월 대법관서 물러난 지 8개월 만에 건국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한 달 뒤인 2013년 4월20일 김 전 이사장과 골프를 친 것. 리스트에 ‘동반자’로 표기돼있다. 

또 당시 건국대 동부지검 수사팀에 있었던 C검사와 김 전 이사장 수사 직전까지 동부지검 차장검사로 있었던 L검사는 안 전 대법관 로펌인 법무법인 ‘평안’서 함께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박희태 전 의장은 정치 검사들의 롤모델이다. 1958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으며, 제13회 사법고시 시험에 합격해 오랫동안 검사로 재직했다. 당시 검찰의 주요 요직을 거치며, 5년 가까이 검사장 생활을 했다. 이후 정치에 입문해 6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장(2010년 6월∼2012년 2월)까지 지냈다. 


박 전 의장 역시 건국대 석좌교수였으며, 김 전 이사장과 가까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의장은 총 4차례 김 전 이사장과 골프를 쳤다. 골프친 시기를 보면 국회의장에 선출되기 전(2010년 3월)과 후(2011년 9월)에 각각 1번씩이다.

법인계좌 보지 않고
결심 때 공소장 변경

특히 김 전 이사장은 박 전 의장이 국회의장으로 임명된 직후인 2010년 7월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서 만찬을 함께했다. 이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임명된 후에 두 차례(2013년 4월과 10월) 김 전 이사장과 골프를 쳤다.

건국대 내부서 당시 박 전 의장의 석좌교수 임용은 큰 논란이었다. ‘돈봉투 사건’으로 그가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박 전 의장은 지난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서 고승덕 의원에게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돌린 사실이 드러나 지난 2012년 2월 국회의장직을 중도사퇴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게다가 박 전 국회의장은 로스쿨 석좌교수로 재직하던 지난 2014년 9월 한 골프장 캐디를 성추행했다가 1심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건국대는 지난 2015년 3월 박 전 의장의 로스쿨 석좌교수 재임용을 강행했다. 

총학생회 등 학내 반발에 부딪혔고, 궁지에 몰린 박 전 의장이 재위촉을 사양하면서 석좌교수 재임용은 철회됐다. 

2014년 3월 김 전 이사장은 갖은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가 이뤄졌다. 그런데 이때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박영수 특별검사(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를 석좌교수로 임용했다. 조 전 지검장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사건 수사 당시 국정원 직원의 체포와 압수수색을 저지해 ‘수사 외압’ 논란의 장본인이었다. 

선배들 앞서 
꼬리 내렸나

이 때문에 당시 정관계 출신 고위인사를 석좌교수로 채용해 자신의 인맥으로 활용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김 전 이사장의 비리로 2014년 촉발된 건국대 사태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그로부터 4년 뒤 제2의 건국대 사태가 불거질 조짐이다. 

건국대 비대위 측은 “과거 검찰이 건국대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가 더욱 망가졌다”며 “제2의 건국대 사태의 원죄는 검찰에 있다”고 지적했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