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제2의 건국대 사태’를 두고 검찰 책임론이 급부상했다. 2014년 김경희 전 이사장은 법인 자금 횡령 혐의로 불구속 재판을 받으며, 대법원서 집행 유예가 선고됐다. 당시 검찰의 배려(?)로 수사가 용부사미가 됐다는 비판이 끊이질 않았다. 이 배경에 김 전 이사장 시절 석좌교수로 임용된 법조계 거물들이 뒷배 노릇을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제2의 건국대 사태가 불거지면서 김 전 이사장을 둘러싼 법조계 거물들이 또 다시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4월26일. 학교법인의 재산을 사적으로 유용한 혐의를 받은 김경희 전 건국대 이사장에 대해 대법원이 집행유예를 확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권순일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 업무상 횡령, 배임수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이사장에게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검찰 거물들
석좌교수로
김 전 이사장은 법인재산인 스타시티 펜트하우스를 무상으로 사용함으로써 약 11억4000만원을 법인에 부담시켰다는 혐의를 받았다. 또 판공비·해외출장비 등 3억6500만원의 법인 자금을 개인여행 경비나 딸의 대출원리금 변제 등에 사용한 혐의도 있다. 법인 소유의 골프장 사용료 6100만원을 면제받은 혐의 역시 불거졌다.
당시 건국대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인 유현경 여사 측은 교육부에 건국대 특별감사를 신청했다. 교육부는 김 전 이사장을 총 27가지의 불법행위를 한 혐의로 서울동부지검에 고발했다. 유 여사는 건국대 설립자 상허(常虛) 유석창 박사의 셋째 딸이며 김 전 이사장의 시누이다.
그런데 유 여사 측은 당시 동부지검이 김 전 이사장 수사를 축소했다고 주장했다.
유 여사는 “최근 김 전 이사장을 수사했던 관계자로부터 ‘법인 계좌를 들여다보기 위해 여러 차례 요청했지만 윗선서 묵살당했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검찰이 재판 과정서 김 전 이사장에게 골프 접대를 받았던 동행인들을 익명 처리하기 위해 공소장을 변경하는 이례적인 행태를 보였다”고 언급했다.
과연 유 여사 측은 어떤 근거로 이 같은 주장을 하는 걸까. 우선 제2의 건국대 사태로 불거진 건국대 임대보증금 문제(본지 1167호 ‘건국대 7000억원 증발 공방전’ 참고)다. 문제의 요지는 김 전 이사장 시절 건국대가 ‘학교법인 기본재산 관리 안내’에 따라 금융기관에 예치, 보존해야 할 임대보증금 수천억원을 임의대로 사용했다는 것.
4년 전 김경희 전 이사장 수사 용두사미
당시 제대로 했다면…“현 상황 없었다”
그동안 임대보증금 사용으로 인한 재정 위험 경고가 꾸준히 제기됐다. 이 문제는 김 전 이사장을 수사할 당시 수습할 기회가 있었다. 그런데 동부지검이 학교법인계좌를 압수수색하지 않아 임대보증금 문제는 그대로 묻혔다.
당시 검찰 내부와 유 여사 측은 지속적으로 법인 계좌를 들여다봐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지만, 이와 관련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복수의 검찰 관계자들은 특수 사건서 법인계좌를 보지 않은 것은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입 모았다.
한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동부지검 형사6부(일선 지검에선 통사 형사6부를 특수부라고 칭한다)서 진행한 특수 사건”이라며 “법인계좌를 들여다보는 것은 특수 수사의 ABC로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다. 이걸 하지 않았다는 것은 수사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 동부지검 수사팀의 김 전 이사장 공소장 변경도 ‘검찰이 사건을 축소했다’라는 비판을 받기 충분했다. 지난 2015년 10월26일 서울동부지법형사합의 11부 심리로 열린 김 전 이사장 결심공판서 검찰은 김 전 이사장 공소장에 기재된 골프장 무료 라운딩 동행인의 이름을 익명으로 바꾸겠다며 공소장 변경신청을 했다.
김 전 이사장은 정·관계 유력 인사들을 상대로 ‘골프 접대’를 했다는 의혹을 받았다.
수사 전 영입
인맥 풀가동?
동부지검의 뒤늦은 공소장 변경을 두고 김 전 이사장에 대한 구명 로비 의혹을 받고 있는 정·관계 유력 인사를 감싸주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공소장에 따르면 김 전 이사장은 검찰 출신인 박희태 전 국회의장과 안대희 전 대법관, 김학용·김도읍·주호영 당시 새누리당(현재 자유한국당) 의원 및 국가정보원·교육부 고위 관료들에게 골프 접대를 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법조계에선 이를 두고 ‘이상한 일’이라고 입 모았다. 통상적으로 공소장 변경은 공소를 유지하기 위해 혐의 사실을 변경하거나 적용 법조를 변경하는 경우에 이뤄지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동부지검 수사팀이 공소장 변경으로 범죄행위에 관련된 관계자의 이름을 덮으려 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당시 김 전 이사장을 직접 수사한 검사는 ‘최선을 다했다’고 말했다. 현재 변호사 개업을 한 O 변호사는 “(내가)직접 수사와 공판 항소심을 다 했다. 할 만큼 했다. 당시 수사 관련해서 추가로 말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답했다.
동부지검이 석연치 않은 눈초리를 받으면서까지 김 전 이사장을 배려(?)한 이유는 뭘까. 당시 김 전 이사장 수사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또 다른 검찰 관계자는 “윗선서 눌렀다. 김 전 이사장 시절 석좌교수로 임용된 법조계 거물들이 검찰 수사에 외압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복수의 건국대 관계자와 검찰 내부에선 당시 수사 외압이 없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입을 모았다.
정관법조계 출신 고위인사 임용
우연의 일치? 혹시 연관성 있나
‘말도 안 된다’라고 강력히 주장한 이유는 뭘까. 당시 김 전 이사장 주변 인맥을 보면 이런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당시 검찰 수사를 대비해 김 전 이사장이 정치권과 법조계 인맥을 풀가동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이사장은 김앤장, 태평양, 율촌, 세종 등 대형 로펌의 변호사들을 선임했다. 특히 건국대 석좌교수로 임용된 검찰 고위직 출신 법조계 거물들이 눈길을 끌었다. 건국대는 안대희(전 대법관)·박희태(전 국회의장)·조영곤(전 서울중앙지검장)·박영수(전 서울고검장) 등을 석좌교수로 임용했다.
안대희 전 대법관은 특수통 검사들에게 ‘대부’격으로 불린다. 서울대 법대 재학 중 17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만 25살에 최연소 검사가 됐다. 검찰 입문 이후 부산지검 특수부장과 대검 중수1, 3과장, 서울지검 특수1, 2, 3부장을 역임하는 등 ‘정통 특수통’이었다. 부산고검장, 서울고검장, 대법관 등을 지낸 인물로 법조계 거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안 전 대법관은 김 전 이사장과 누이동생 할 정도로 절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진다. 복수의 건국대 관계자들은 “김 전 이사장이 사석서 안 전 대법관을 ‘대희야’라고 불렀다. 안 전 대법관도 김 전 이사장을 ‘누나’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시작 그럴 듯
끝은 흐지부지
실제로 안 전 대법관은 건국대 법학대학원 석좌교수를 지냈으며 김 전 이사장의 골프 접대 리스트에도 등장했다. 김 전 이사장 공소장의 범죄알림표에 따르면 현직 대법관으로 재직하고 있던 2011년 9월 건국대 골프장서 골프를 쳤다.
2012년 7월 대법관서 물러난 지 8개월 만에 건국대 로스쿨 석좌교수로 임용됐다. 한 달 뒤인 2013년 4월20일 김 전 이사장과 골프를 친 것. 리스트에 ‘동반자’로 표기돼있다.
또 당시 건국대 동부지검 수사팀에 있었던 C검사와 김 전 이사장 수사 직전까지 동부지검 차장검사로 있었던 L검사는 안 전 대법관 로펌인 법무법인 ‘평안’서 함께 근무 중인 것으로 확인된다.
박희태 전 의장은 정치 검사들의 롤모델이다. 1958년 서울대 법대에 진학했으며, 제13회 사법고시 시험에 합격해 오랫동안 검사로 재직했다. 당시 검찰의 주요 요직을 거치며, 5년 가까이 검사장 생활을 했다. 이후 정치에 입문해 6선 국회의원으로 국회의장(2010년 6월∼2012년 2월)까지 지냈다.
박 전 의장 역시 건국대 석좌교수였으며, 김 전 이사장과 가까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의장은 총 4차례 김 전 이사장과 골프를 쳤다. 골프친 시기를 보면 국회의장에 선출되기 전(2010년 3월)과 후(2011년 9월)에 각각 1번씩이다.
법인계좌 보지 않고
결심 때 공소장 변경
특히 김 전 이사장은 박 전 의장이 국회의장으로 임명된 직후인 2010년 7월 한남동 국회의장 공관서 만찬을 함께했다. 이후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임명된 후에 두 차례(2013년 4월과 10월) 김 전 이사장과 골프를 쳤다.
건국대 내부서 당시 박 전 의장의 석좌교수 임용은 큰 논란이었다. ‘돈봉투 사건’으로 그가 실형을 선고받은 상태였기 때문이다. 박 전 의장은 지난 2008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서 고승덕 의원에게 300만원이 든 돈봉투를 돌린 사실이 드러나 지난 2012년 2월 국회의장직을 중도사퇴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게다가 박 전 국회의장은 로스쿨 석좌교수로 재직하던 지난 2014년 9월 한 골프장 캐디를 성추행했다가 1심서 징역 6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건국대는 지난 2015년 3월 박 전 의장의 로스쿨 석좌교수 재임용을 강행했다.
총학생회 등 학내 반발에 부딪혔고, 궁지에 몰린 박 전 의장이 재위촉을 사양하면서 석좌교수 재임용은 철회됐다.
2014년 3월 김 전 이사장은 갖은 비리 혐의로 검찰 수사가 이뤄졌다. 그런데 이때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박영수 특별검사(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를 석좌교수로 임용했다. 조 전 지검장은 국정원 대선 개입 의혹사건 수사 당시 국정원 직원의 체포와 압수수색을 저지해 ‘수사 외압’ 논란의 장본인이었다.
선배들 앞서
꼬리 내렸나
이 때문에 당시 정관계 출신 고위인사를 석좌교수로 채용해 자신의 인맥으로 활용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결과적으로 김 전 이사장의 비리로 2014년 촉발된 건국대 사태는 용두사미로 끝났다. 그로부터 4년 뒤 제2의 건국대 사태가 불거질 조짐이다.
건국대 비대위 측은 “과거 검찰이 건국대를 제대로 수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학교가 더욱 망가졌다”며 “제2의 건국대 사태의 원죄는 검찰에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