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총수 등기임원 ‘문어발 겸직’ 백태

회장님 대표 명함 없어도 문제 많아도 문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재벌기업 오너 일가의 과도한 등기임원 겸직이 논란이 되고 있다. 겸직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면 해당 계열사의 자율경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부정적 시선이 팽배한 탓이다. 반면 책임경영 강화 차원서 무조건 나쁘게 볼 필요가 없다는 주장도 있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공개한 국내 30대 그룹 상장·비상장사 등기임원 겸직 현황 조사 결과를 보면 2개 이상 회사에 등기임원으로 등재된 오너 일가는 총 51명이었다. 경영활동에 참여 중인 오너 일가 구성원 89명 가운데 절반 이상(57.3%)이 2개 이상 계열사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다.

곳곳에 보이는
오너 일가 이름

오너 일가의 등기임원 겸직이 가장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은 GS그룹다. GS 창업주는 8형제를 뒀다. 고 허정구 전 삼양통상 명예회장, 고 허학구 전 LG전선 부회장, 고 허준구 전 GS건설 명예회장, 고 허신구 전 GS리테일 명예회장, 고 허완구 전 승산 회장, 허승효 알토 회장, 허승표 피플웍스 회장, 허승조 GS리테일 부회장이 이들이다.

GS그룹의 많은 후손은 등기임원으로 경영에 참여한다. GS 일가의 계열사 등기임원 등재율은 34.8%다. 30대 그룹 평균(21.1%) 대비 높다. 

GS그룹 오너 일가 가운데 계열사 등기임원에 가장 빈번하게 이름을 올린 인물은 허광수 삼양인터내셔날 회장이다. 현재 허광수 회장은 ▲삼양통상 ▲삼양인터내셔날 ▲옥산유통 ▲켐텍인터내셔날 ▲보헌개발 ▲삼정건업 ▲지에스아이티엠 ▲경원건설 등의 등기이사로 등재된 상태다. 


이외에도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이 5개, 허연수 GS리테일 대표가 4개 계열사에서 등기임원이다. 또한 허동수 GS칼텍스 회장이 3개, 허세홍 GS글로벌 대표가 3개, 허용수 GS EPS 대표가 3개, 허창수 GS그룹 회장이 3개 계열사에서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다. 
 

LS그룹 오너 일가는 4인이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다. 구자용 E1 회장이 5곳으로 가장 많고 구자균 LS산전 회장,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은 LS엠트론 부회장이 3곳으로 동일하다. 

LS그룹은 구태회 전 LS전선 명예회장의 아들인 구자홍 LS니꼬동제련 회장과 구자엽 LS전선 회장, 구자철 예스코 회장을 포함해 구평회 전 E1 명예회장의 아들인 구자열 LS 회장과 구자용 E1 회장, 구자균 LS산전 회장 등이 계열사 경영을 나누어 담당하는 ‘형제경영’ 체제를 이어가고 있다. 

받는 돈이…
연봉 때문?

한진그룹에선 조양호 회장이 6곳의 계열사에서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고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이 5곳, 조현민 진에어 부사장이 4곳서 등기임원직을 수행하고 있다. 조원태 사장과 조현민 부사장 모두 조양호 회장의 자녀다.

현대자동차그룹 역시 오너 일가 구성원 3명이 등기임원을 겸직 중이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이 5곳으로 가장 많았고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과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은 4곳의 계열사 등기임원직서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 

롯데그룹을 비롯해 효성그룹, OCI그룹, 금호아시아나그룹에선 등기임원을 겸직하는 오너 일가가 2명씩인 것으로 나타났다. 롯데그룹에선 신동빈 회장(9곳)과 신영자 롯데장학재단 이사장(6곳)이 계열사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렸다. 롯데그룹과 마찬가지로 효성그룹서도 조현상 사장과 조현준 회장이 각각 6곳의 계열사 등기임원이다. 


OCI그룹 오너 일가 가운데 이복영 삼광글라스 회장이 4곳, 이화영 유니드 회장은 3곳의 계열사 등기임원을 겸직하고 있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박삼구 회장과 박세창 사장은 각각 3곳의 계열사 등기임원이다.

이외에 하림그룹(김홍국 회장), LG그룹(구본준 LG 부회장), 영풍그룹(장형진 회장)은 등기임원을 겸직하는 오너 일가가 1명씩이다.

30대 그룹 오너 절반 이상 임원 직함 2개
나온 이름 또 나오고…장단점은?

30대 그룹 오너 일가 중 등기임원에 가장 많이 등재된 인물은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다. 김 회장은 현재 ▲하림 ▲하림홀딩스 ▲팜스코 ▲팬오션 ▲하림식품 ▲농업회사법인익산 ▲엔에스쇼핑 ▲제일사료 ▲선진 등 12개 계열사에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렸다. 

김홍국 회장에 이어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30대 오너 일가 가운데 등기임원 겸직 2위에 호명됐다. 신동빈 회장은 ▲롯데지주 ▲호텔롯데 ▲롯데쇼핑 ▲캐논코리아비즈니스솔루션 ▲에프알엘코리아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롯데건설 ▲롯데칠성음료에서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을 비롯한 5명은 6개 회사에서 등기임원을 맡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을 포함한 4명은 5곳,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외 5인이 4곳에서 등기임원직을 겸직 중이다. 3곳의 계열사에서 등기임원에 이름을 올린 30대그룹 오너 일가는 구본준 LG그룹 부회장을 비롯한 10명이다.

오너 일가 구성원들이 계열사 등기임원에 겸직하는 것에 대해서는 찬반이 팽팽하다. 과도한 겸직은 해당 계열사의 자율경영에 방해가 될 수 있다는 부정적 시선과 책임경영 강화라는 긍정적 시선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등기임원 겸직에 반대하는 가장 큰 주체는 국민연금이다. 지난해 국민연금은 주주에 올라 있는 상장사 정기주주총회에서 반대한 총 361개 안건에 반대표를 던졌다. 이 가운데 그룹총수의 사내이사 선임 안건도 다수 포함돼있다. 

국민연금이 이사선임에 반대한 오너 일가는 신동빈 회장(롯데케미칼, 롯데칠성음료)과 조양호 회장(한진칼, 한진), 김홍국 회장(선진, 팜스코), 조원태 사장(한국공항, 한진칼, 한진) 등 4명이었다. 이들 안건은 연금의 반대표와 관계없이 모두 통과됐지만 해당 그룹들에겐 분명한 경고 메시지로 받아들여졌다. 

겸직 두고
찬반 팽팽

올해 정기 주주총회서 국민연금의 등기임원 겸직에 대한 반대 입장은 명확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총 600조원 규모의 연기금을 굴리는 국민연금은 투자한 기업의 주총 등에서 적극적인 의결권을 행사해 기업 지배구조를 개선하고 장기 성장을 이끌어내도록 유도하는 기관투자가 의결권 행사 지침 ‘스튜어드십 코드’를 올해 안에 도입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오는 3월 임기가 만료되는 30대 그룹 오너 일가 등기임원은 22명이고, 이 중 4명을 뺀 나머지 18명(81.8%)이 2개사 이상 겸직하고 있다. 이들에 대해서도 국민연금은 올해 주총서 반대표를 던질 가능성이 크다.


반면 그룹 총수의 원활한 경영을 위해선 다수 계열사 임원 겸직이 불가피하다는 반론도 나온다. 오너 일가의 계열사 임원 겸직 시 상근 여부, 적정한 보수지급 여부를 따져보는 게 먼저라는 것이다. 

실제로 상장사 임원 보수 공개가 시작된 지 4년이 지났지만 재벌 총수 4명 중 1명의 연봉이 불투명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장회사인 지주회사나 주력 계열사의 등기임원으로 이름을 올리지 않고 있어 연봉 공개 대상서 제외됐기 때문이다. 
 

2016년 사업보고서 기준 대기업집단 26곳의 총수 26명 중 7명은 지주회사나 주력 상장 계열사의 등기임원으로 등록돼있지 않았다.

7명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이재현 CJ그룹 회장, 이준용 대림그룹 명예회장, 박현주 미래에셋그룹 회장 등이다.  

등기임원이 아닌 총수들은 일선서 물러나 자녀가 실질적인 총수로서 역할을 하거나 회사에 상장사가 없는 경우 등이 해당한다. 이건희 회장은 아들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등기임원으로 등록돼있고, 이준용 명예회장의 경우 아들인 이해욱 대림산업 부회장이 등기임원이다. 

현재 연간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상장사 등기임원은 의무적으로 보수를 공개하게 돼있는데 미등기임원인 총수들은 대상서 제외된다. 


여기저기서
직함 몇 개?

다만 올해부터는 이들 연봉도 공개될 것으로 보인다. 국회는 지난해 자본시장법을 개정해 '2018년부터 연봉 5억원 이상을 받는 상장회사 미등기임원과 직원이 회사 내 연봉 상위 5위 이내인 경우에는 보수 내역을 매해 반기마다 공개'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등기이사를 맡지 않고 연봉 공개를 피해온 총수 일가 역시 보수를 공개해야 한다.

재계 관계자는 “오너 일가가 계열사 등기임원을 맡는 경우 경영 의사결정에 직접 책임을 지는 책임 경영 강화라는 장점도 있다”며 “등기임원서 제외되면 오히려 불투명한 경영 환경에 대한 불만이 더 커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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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