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철의 부동산테크 필승전략<39>한옥의 재발견

웰빙 거주공간…별장같은 세컨드하우스 ‘열풍’


서울지역에 ‘한옥 열풍’이 불고 있다. 한옥 밀집지역을 아파트 단지로 재개발하던 과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기존 한옥을 고쳐 짓는 것은 물론 낡은 양옥을 헐어내고 한옥을 신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3.3㎡당 3000만∼5000만원…집 한채 수십억 호가
건축비는 1000∼1500만원 수준 “아파트 2배 이상”

서울시에 따르면 누하·가회·성북동 등 한옥 밀집지역에서 서울시의 융자·보조를 받아 한옥을 개량하거나 신축하는 사례는 2008년 7건에 그쳤으나 지난해 43건으로 늘었다. 올 들어선 1분기에만 14건이 접수됐다.

개량·신축 작년 43건
올 들어선 1분기 14건

투자 열기가 뜨겁다 보니 투자 지역도 확대되고 있다. 기존의 경복궁 동쪽 가회동 일대의 ‘북촌’을 벗어나 ‘서촌’이나 계동 현대건설 앞쪽의 운현궁 일대로까지 번지고 있다.

경복궁 서쪽에 위치한 서촌은 행정구역상 종로구 옥인동, 체부동, 누하동, 필운동 일대로 조선시대에 아전이나 역관이나 의관 등 중인들이 주로 모여 살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2009년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지난해 지구단위계획이 수립되면서 최근 들어 북촌을 잇는 한옥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서촌 일대 한옥은 1900년대 이후 지은 생활형 개량 한옥이 대부분이다. 현재 이 곳에는 600여 동의 한옥이 남아 있다. 서촌 일대에서만 리모델링 또는 신축이 진행 중인 한옥이 10여 동에 이른다.

아직까지 한옥에 투자하는 이들은 주로 강남 큰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쓸만한 한옥의 경우 가격이 수십억원을 호가하기 때문이다. 북촌의 경우 현재 3.3㎡당 가격은 3000만원대에서 최고 5000만원대까지 이르고 있다. 강남 단독 주택지의 가격이 3.3㎡당 2000∼3000만원 수준인 점을 감안하면 어지간한 재력이 아니고서는 북촌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

이처럼 가격이 뛴 것은 한옥을 찾는 사람은 늘고 있지만, 한옥은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북촌 일대 한옥에 투자하려는 자산가들은 주로 한옥이 개인 취향에 맞거나 개성 있는 인테리어를 통해 자기만의 공간을 갖고자 하는 사람들이다.

자연 경관과 쾌적한 자연 환경에 이끌려 한옥을 주로 여가를 위한 세컨드하우스 개념으로 사 두려는 목적이 강하다. 한옥을 신축할 경우 건축 비용 역시 많이 드는데 실제 3.3㎡당 건축비가 1000∼1500만원 수준으로, 아파트에 비해 2배 이상, 단독주택에 비해서도 높은 편이다.

주로 강남 큰손들이 투자
은평 한옥타운 18억 필요

하지만 아파트와 한옥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한옥은 단층이면서 지붕, 벽 등 기본적인 재료가 많이 들어가는 데다 기본적으로 마당과 같은 외부 공간을 같이 쓰는 개방적 구조라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동일한 건축 면적일 경우 아파트에 비해 쓰는 공간이 넓다는 의미다.

업계에서는 앞으로는 한옥 열풍이 중산층으로까지 확대될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한옥은 아파트와 기본적으로 다른 주택이어서 현대화한다고 해도 어느 정도는 불편할 수밖에 없지만, 이같은 한계에도 불구하고 고유의 멋을 찾는 최근의 흐름을 타고 부유층의 전유물이 아니라 중산층까지 확산될 것으로 예상된다는 것이다.

다만 한옥은 아직은 틈새 상품에 불과한 만큼 투자에는 여전히 신중해야 한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한옥은 환금성이 떨어져 투자용인지, 거주용인지를 분명히 구분하고 낡은 한옥을 리모델링할지, 신축할지, 아예 온전한 한옥을 살지 등을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단기간의 시세차익 보다는 장기적인 안목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한옥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사실 불과 몇 년 전이다. 2008년 서울시가 한옥 선언을 내놓은 이후부터다. 서울시는 북촌 한옥마을 등 경복궁 북측과 서측 1종지구단위계획 구역 등을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 한옥을 보전하거나 신축하면 최대 6000만원의 지원금과 4000만원의 무이자 융자 등 최고 1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도록 했다. 실제 사례를 살펴보면 한옥이 주거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만족도가 상당함을 느낄 수 있다.

서울 누하동 사는 김연희(41)씨는 최근 25년간 거주한 양옥집을 한옥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 앞으로 8개월가량 후엔 66㎡(20평) 규모의 한옥이 들어서게 된다.

김씨는 “지난해 서울시가 이 일대를 한옥권장구역으로 지정하고 8000만원까지 지원하겠다고 발표해 40년 된 양옥을 한옥으로 바꾸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김씨와 같은 동네에 사는 전업주부 이해경(43)씨는 자칭 한옥 마니아로 유명하다. 이씨는 “50년을 살았던 집인데 새로 개축된 한옥에서 지내보니 아주 상쾌하고 한옥은 건강에 좋은 집 같다”고 전했다.

건물면적 63㎡(19평)인 이씨 집은 서울시가 보조금 6000만원, 융자금 4000만원을 지원해 깔끔한 한옥으로 재탄생했다. 20cm 두께의 단열벽에, 환절기에도 거의 불편함을 못 느끼고 지냈다는 게 이씨의 설명이다.

한 한옥 시공업체의 대표는 “한옥 고유의 친환경성과 정서적 친밀감이 부각되면서 시공을 문의하는 투자자들이 부쩍 늘었다”며 “누하동에서만 8가구를 신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옥 등을 전문적으로 컨설팅을 하는 업자는 “낡은 1층 양옥을 헐고 한옥으로 지을 경우 서울시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등을 묻는 집주인들이 많다”고 귀띔했다.

2008년 시 ‘한옥선언’
이후부터 인식 달라져
 
최근엔 공평동 도심재개발구역에 남아 있는 40여 가구의 한옥 주인들도 재개발 대신 한옥밀집지역으로 지정받기 위해 서울시에 관련 절차를 밟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한옥전문가는 “고층 아파트 숲으로 바뀌는 서울 도심에서의 희소성이 부각되면서 한옥이 부동산 경기와 무관하게 가치를 인정받는 트로피에셋(기념비적 자산)으로 인정받기 시작한 것 같다”며 “감소 일로였던 서울 시내 한옥이 다시 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대단히 고무적”이라고 설명했다.

양옥 대신 한옥으로 신축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서울 누하동 주민 김해영씨(52)도 서울시 지원금과 집값 상승에 힘입어 최근 한옥 신축을 시작했다.

김씨는 “한때는 재건축 단지로 빨리 지정돼 새 아파트에서 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건강이나 주거여건 등을 감안해 한옥을 새로 짓기로 마음먹었다”며 “서울시에서 받은 보조금 6000만원도 큰 도움이 됐다”고 했다.

성북동의 한 중개업자는 “한옥은 위치나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 3.3㎡당 1500만∼2000만원 정도에 거래되고 있다”며 “작년 초만 해도 관리비가 많이 들고 생활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양옥보다 300만∼500만원가량 싸게 거래됐는데 지금은 비슷할 정도로 부동산 가치가 많이 올라간 상태”라고 말했다.

부유층 전유물서 중산층 확산
환금성 떨어져 장기 투자해야


한 한옥 전문가는 “웰빙 거주공간이란 인식도 한옥의 수요를 늘리고 있어 가격 상승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최근 서울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오세훈 시장의 ‘서울 한옥선언’발표 이후 지금까지 시에 들어선 보전 대상 한옥은 총 2358가구. 발표 전과 비교해 거의 두 배(1125가구)가 증가했다.

서울 한옥선언은 한옥 주거지를 보전하거나 신규 조성함으로써 시의 미래 자산으로 키운다는 사업 방침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한옥 밀집지역으로 지정되면 금전적 지원도 함께 이뤄진다. 건물면적 66㎡(20평)짜리 한옥을 예로 들면 보조금과 융자금 도합 약 1억원이 지원된다.

개·보수에 드는 비용이 2억5000만원가량인 것을 감안하면, 집 주인이 부담해야 하는 금액은 그만큼 줄어든다. 이에 한옥이 아닌 집을 헐고 한옥으로 신축하는 가구 수가 늘어나는 등 ‘한옥 열풍’이 불고 있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는 아파트 일변도의 뉴타운 지구에도 한옥마을을 조성하기로 결정했다. 오는 2014년까지 은평뉴타운 3-2지구 단독주택부지 3만㎡에 100여 가구의 미래형 한옥마을을 새로 짓는다는 계획으로 알려졌다.

SH공사가 발주하는 현상 공모를 통해 전체 계획안이 선정되면, 이후 제반 절차를 거쳐 시공된다. 서울시는 2018년까지 3700억원을 투입, 총 4500가구의 한옥을 보전·진흥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공사비가 많이 들어 경제성이 떨어지는 사업이 될 것이란 우려가 많은 게 사실”이라면서도 “발주처인 SH공사의 모듈화(집단 공급) 과정을 거쳐, 드는 비용을 평당 1000만원선까지 낮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은평뉴타운에 연면적 211㎡(64평) 규모의 한옥을 지으려면 18억원의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서울시는 한옥 공사비 절감방안을 강구, 필요한 자금을 11억원대로 줄이기로 했다.

현재 한옥을 지을 때 들어가는 공사비는 3.3㎡당 평균 1500만∼1800만원. 국토해양부가 분양가상한제 적용 주택에 대해 책정한 기본형건축비(3.3㎡당 406만∼424만원)보다 최저 3.7배에서 최고 4.2배 정도 비싸다. 이처럼 한옥 공사비가 비싼 이유는 인건비 비중이 높은 데다 기계화된 시공이 불가능하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한옥 공사비 가운데 가장 비용이 많이 드는 항목은 당연 인건비다. 한옥기술자들은 와공(기와공사 인부), 소목장, 대목장 등으로 세분화됐고 인건비도 일당 25만원을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파트처럼 기계화된 시공이 불가능하고 자재 역시 규격화가 어렵다는 점도 공사단가를 높이는 요인이다.

실제 SH공사가 한옥 공사비를 시뮬레이션한 결과 은평 한옥타운 내 264㎡(80평) 부지에 용적률 80%를 적용, 연면적 211㎡(64평) 규모의 한옥을 지으려면 공사비가 12억원가량 투입돼야 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 가운데 서울시가 보조금으로 8000만원과 1% 저리의 융자금 2000만원 등 1억원을 지원하기 때문에 실제 공사에 필요한 자금은 11억원이다. 여기에 땅값이 3.3㎡당 700만원대여서 추가로 6억원대 자금이 필요하다.

SH공사는 당초 단독주택용지로 공급하려던 해당 부지가격을 3.3㎡당 730만∼740만원으로 책정했다. 결국 은평 한옥타운에 연면적 211㎡ 규모의 한옥을 지으려면 18억원의 거금이 필요한 셈이다. 이처럼 막대한 사업비가 은평 한옥타운 조성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 관계자는 “2008년 ‘한옥 선언’이후 보존 대상 한옥을 늘리고 지원을 강화하면서 새로 짓는 한옥이 증가하고 있지만 급속히 확산되지 못하는 것은 역시 경제성 때문”이라며 “공사비가 비싸 보조금과 융자금으로 1억원을 지원받아도 직접 투자비가 만만치 않다보니 투자를 망설이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20평짜리 지으면
1억원까지 지원

이에 따라 사업시행사인 SH공사는 한옥 활성화를 위해 사업비 인하가 필수라고 판단, 땅값 재감정에 나서는 한편 한옥모듈화를 통해 공사비를 3.3㎡당 1000만원 수준으로 낮추는 방안을 모색하기로 했다. 자재를 대규모로 조달하고 한옥모델을 표준화하면 한옥모듈화가 가능해 공사비를 낮출 수 있다는 것이다.

장경철은?

- 스피드뱅크, 조인스랜드, 닥터아파트 부동산칼럼니스트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부동산 기사 제공
- 프라임경제 객원기자
-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