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각비로 드러난 레진코믹스의 민낯

작가 쥐어짜는 ‘웹툰 공장’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는 지체상금, 이른바 지각비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작가가 계약서에 명시된 마감 기한을 어길 경우 수익의 일정 부분을 위약금으로 물리는 제도다. 2015년 8월부터 본격 시행된 이 제도는 2년4개월 동안 숱한 논란을 낳았다. 논란이 지속되자 레진코믹스는 제도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내년 2월부터 지각비를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이 과정서 드러난 레진코믹스의 민낯을 <일요시사>가 들여다봤다.
 

‘레진(Lezhin)’을 필명으로 쓰던 블로거 한희성씨와 개발자 권정혁씨가 설립한 레진엔터테인먼트는 2013년 유료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이하 레진)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업 초기부터 도입한 부분 유료화 모델은 ‘웹툰은 공짜’라는 세간의 인식을 뒤엎고 성공을 거뒀다. 레진은 서비스 첫 달 매출 1억원을 돌파한 후 월 20∼30%의 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양적으로 빠르게 팽창했다.

유료서비스 도입
양적으로 급성장

네이버, 다음과 함께 3대 웹툰 사이트로 자리매김한 레진이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섰다. 지난 5년간 누적된 문제가 동시다발적으로 터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레진에 연재 중인 혹은 연재했던 작가들은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레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레진은 입장문 발표 등으로 대처하고 있지만 그에 대한 반박이 SNS를 통해 실시간으로 이뤄지는 등 오히려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급기야 지난 7일에는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 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 ‘웹툰 플랫폼 레진코믹스에 대한 세무조사를 부탁드립니다’는 청원이 제기됐다. 

대학을 갓 졸업한 젊은 작가라고 자신을 소개한 청원자는 ▲정산CMS 오류 ▲지체상금(지각비) ▲해외 서비스 정산 미지급 등의 문제가 레진에서 발생하고 있다며 세무조사를 요구했다. 해당 청원에는 지난 14일 기준 4만8000여명이 참여했다.


청원 내용 중 지체상금 이른바 지각비 제도는 2015년 8월 본격적으로 도입된 이후 2년4개월여 동안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된 사안이다. 

작가들의 계약서에 따르면 레진은 논의 없이 콘텐츠가 제공되지 않거나 지연될 경우 작가에게 벌칙금을 청구할 수 있다. 벌칙금은 지연이나 무단 휴재가 발생하는 건마다 콘텐츠 제공 대가, 즉 수익의 3%씩 차감하며 최대 9%를 초과할 수 없다고 돼있다.

예를 들어 일요일에 웹툰이 공개되는 작가는 서비스 2일 전인 금요일 오후 3시까지 작품을 보내야 한다. 만약 이 기한을 초과할 경우 첫 번째는 벌칙금이 없지만 두 번째부터는 월 수익의 3%, 세 번째는 6%, 네 번째는 9%를 지각비로 물린다. 

월 수익이 200만원이라면 최대 18만원까지 지각비로 책정될 수 있다는 뜻이다. 레진은 정산 시 지각비를 차감한 돈을 작가에게 지급한다. 

서비스 지장 없어도 마감 늦으면 지각
최대 9%까지 징수 1000만원 낸 작가도

문제는 지각비가 발생하는 시점과 상한선이다. 작가는 자신의 서비스 요일에 정상적으로 작품을 업로드할 수 있는 상황이라 해도 레진서 정한 마감 기한에 늦으면 지각비를 물어야 한다. 

다시 말해 매출상의 손해가 전혀 발생하지 않음에도 작가는 정산상의 불이익을 받는 셈이다. 만화계 한 관계자는 “레진의 지각비 제도는 출근시간이 9시로 정해진 아르바이트생에게 왜 7시까지 오지 않느냐고 따지는 꼴”이라고 꼬집었다.
 


지각비의 최대 액수가 정해지지 않은 점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레진은 지각한 주가 아닌 작가가 벌어들인 해당 월 전체 수익에서 최대 9%까지 지각비를 제하고 있다. 월 수익에 따라 지각비가 결정되는 구조이기 때문에 수익이 많으면 차감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실제 최근 한국만화가협회(이하 만화가협회)에 접수된 지각비 관련 제보 중에는 레진서 위약금으로 물린 지각비 액수가 1000만원에 이른다는 신고도 있다.

레진의 지각비 제도 관련 만화가협회의 법률 자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덕수의 김성주 변호사는 “작가의 지각으로 연재가 늦춰졌다면 그에 대한 페널티는 사후에 설정할 일”이라며 “작가 스타일이나 작품에 대한 고려 없이 일률적으로 특정 시점을 적용해 이중의 제어장치를 둔 것은 작가들 입장에서는 부당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속적으로 부당성이 제기되자 레진은 지난달 9일 입장문을 통해 내년 2월1일부터 지각비를 폐지하겠다고 밝혔다.

만화가협회와 한국웹툰작가협회(이하 웹툰작가협회)는 레진의 지각비 폐지 결정을 반기면서도 지난달 30일 ▲부당하게 지각비를 징수당한 작가들에 대한 보상 방법 ▲레진코믹스 운영상 과실 또는 서비스의 오류 발생으로 인해 작가들이 피해를 입었을 경우 보상정책 유무와 위 보상정책을 계약서에 명시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 ▲지각비 폐지 시점을 2월1일로 설정한 경위 등 3가지 사항에 대한 추가 답변을 요구했다.

웹툰작가협회의 공개 질의에 레진은 2주 만인 지난 12일 답변을 전해왔다. 가장 논란이 되는 사안은 지각비 폐지 시점이다. 

레진은 11월에 낸 입장문서 내년 2월1일을 지각비 폐지 예정일로 잡은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지각비 관련 부분은 계약서에 명시돼있기 때문에 작가들과 별도 서면으로 합의서를 작성해야 한다’ ‘지각비가 운영되지 않는 상황서 오류를 막기 위해 제도를 보강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등이다. 웹툰작가협회에 보낸 답변도 동일하다.

월 20∼30%
성장의 이면

하지만 지난 14일 레진 관계자에게 나온 답변은 입장문과 미묘한 차이를 보였다. 

레진 관계자는 지각비 폐지와 관련 “내년 2월1일부터 작가님들과 변경합의서 체결합니다. 관련해 보다 상세한 내용은 추후 작가님들께 전체 공지 드릴 예정입니다”라는 입장을 전해왔다. 

내년 2월1일에 일괄적으로 지각비가 폐지되는 게 아니라 그날부터 작가들과 개별적인 합의가 이뤄진다는 뜻으로 해석이 가능하다. 작가와의 합의 과정서 발생할 수 있는 지각비에 대해 묻자 “세부 사항은 협의 중에 있다”는 말만 돌아왔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레진이 지각비 폐지를 결정한 것은 사측도 어느 정도 문제를 인지했다는 뜻”이라며 “그런데 그 조항을 폐지하는 데 3개월, 그 이상 소요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별도의 합의서를 통해 ‘기존 계약의 효력은 그대로 유지하되 지각비 조항에 대해서는 특정 시점부터 효력을 없애기로 한다’ 등의 취지로 충분히 진행이 가능하다”고 덧붙였다.

“계약대로 진행”
양측 얘기 달라

레진이 작가들의 지각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면서 정작 자신의 실수에는 관대하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레진은 웹툰작가협회가 질의한 보상정책 유무와 계약서 명시에 대해 “올해 2월부터 서비스 운영상 과실에 대해 작가들에게 개별적으로 연락을 취하고 상호 합의하에 만족할만한 보상을 진행 중에 있다”면서도 “보상 정책은 계약서에 전부 명시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웹툰작가협회의 첫 번째 질의에 대한 레진의 답변도 논란이 될 전망이다. 레진은 “계약 진행 과정서 작가들에게 지각비에 대해 설명했고 그들도 인지한 상태서 계약이 이뤄졌기 때문에 부당하다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전했다. 

작가가 레진과의 계약 조항에 동의해 서명했기 때문에 지각비 징수가 잘못된 게 아니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일요시사> 취재 결과 레진이 계약을 맺은 웹툰 에이전시와 계약서 변경 없이 작가에게 지각비를 징수했다는 의혹이 드러났다. 즉 작가와 레진, 에이전시 간의 계약상 합의가 이뤄지지 않은 상태서 지각비 차감이 진행됐다는 것.

레진은 2015년 8월 이후 에이전시에 지각비 제도 도입과 시행을 알렸다. 그러자 에이전시는 2015년 10월 ‘[작가님 전체 공지 메일] 레진코믹스 원고 마감 시점 관련 페널티 관련...’이라는 제목의 이메일을 작가들에게 보냈다. 

이메일에는 11월1일부터 ‘이틀 전 오후 3시 마감 규정이 엄수돼 진행’ ‘페널티는 최대 9%’ ‘월 1회는 영향을 받지 않는다’ 등의 내용이 포함돼있다. 레진과 직접 계약을 맺은 작가들의 지각비 조항과 동일하다.

논란 계속되자 폐지 결정
합의 시작은 3개월 뒤부터

이 문제는 2014년부터 2016년까지 해당 에이전시를 통해 레진에 작품을 연재한 A작가를 통해 알려졌다. 

실제 A작가는 2016년 지각비 조항에 따라 정산액을 차감당한 경험이 있다. 그는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 물어볼 생각을 못했는데 최근 논란이 불거진 걸 보고 그때 지각비 조항이 포함된 계약서를 받지 못한 게 떠올랐다”고 전했다.

에이전시는 A작가의 문의에 “페널티에 대한 공지 그 자체(2015년 10월에 보낸 메일)가 계약의 효과로 진행됐던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며 “자사도 레진 측으로부터 페널티에 대한 내용을 공지로 전달받았다”고 밝혔다.
 

A작가가 에이전시의 답변에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이자 추가 이메일이 이어졌다. 

에이전시는 “지각비 적용과 관련해 레진과 자사, 자사와 작가님 사이에 문서화된 계약서를 주고받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당시 (작가가) 별도의 이견을 피력한 적이 없었기에 최근 문제 제기에 당황스럽다”고 덧붙였다.

작가들의 계약서에 따르면 계약의 변경은 서면 합의로만 이뤄질 수 있다. 

김성주 변호사는 “계약서를 꼼꼼히 확인해봐야 하지만 이메일을 통한 공지는 ‘통보’에 가깝다”며 “통보 자체가 계약 내용의 변경에 대한 합의로 보긴 어렵다. 작가들이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레진 관계자는 (에이전시서)우리와 동일하게 지각비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고 말했다”며 “해당 조항이 계약서에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는 입장이다. 반면 에이전시는 계약서에 지각비 조항이 있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변을 주지 못한 상황이다.

지난 2일 SNS에는 레진에 작품을 연재 중인 B작가의 어머니가 사망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B작가는 “지각을 할지도 모른다는 논리에 경영진이 행한 이 얼토당토않은 일에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모르겠다”며 “내가 당신들과의 약속과 책임을 다하기 위해 내 엄마에게 했던 그 모진 말을 용서하기 힘들어요”라고 적었다. 

중증 우울증을 앓고 있던 B작가의 어머니는 지각비 증빙 자료와 관련해 B작가와 말다툼을 벌이고 아파트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B작가는 “당시 그 달(10월)의 첫 번째 지각이어서 지각비 차감대상도 아니었다. 레진은 엄마가 아프다는 증거를 해당 주도 아닌 그다음 주에야 요구했다”며 “나중에 확인해보니 레진은 작가들에게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명확한 기준조차 없었다”고 토로했다. 

이어 “엄마의 죽음과 레진의 지각비 제도가 무슨 상관이냐고 질타하는 목소리가 많았다”며 “그렇지만 나는 이번 일이 지각비 제도의 ‘부작용’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명확한 기준 없어
“면제하려 했다”

레진 관계자는 “저희 PD가 (B작가의) 지각비를 면제해 드리려고 증빙서류를 요청한 것 같다”면서도 “매번 지각비에 대한 증빙서류를 요구하는 건 아니다”라고 답했다. 

만화계 한 관계자는 “레진은 유료 플랫폼 중에서도 선두주자였고 친작가주의라는 좋은 이미지로 시작했는데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는지 납득할 수 없다”며 “개선 의지야 레진에 달렸지만 지금까지 내놓은 입장문이나 대처 등을 보면 변화는 기대하기 어렵지 않을까”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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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차례가 뭐죠?” MZ가 바꾼 추석 풍경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우리에게 추석은 차례를 지내거나 귀향을 하는 것이 익숙한 명절이었다. 그러나 최근 몇 년 사이 명절을 보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다. 특히 차례를 지내는 비중은 줄어들고 MZ세대를 중심으로 긴 연휴를 활용한 여행, 단기 아르바이트, 자기계발 등을 하는 것이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 여론 조사 결과에 따르면 추석에 차례를 지내겠다고 응답한 비율은 40%대 초반에 그쳤다. 절반 이상은 차례를 지내지 않겠다고 답한 것이다. 불과 한 세대 전만 해도 당연하게 여겨지던 차례와 제사가 더 이상 필수가 아니게 된 셈이다. 알바 우선 통계청 조사에서도 명절 의례를 간소화하거나 아예 하지 않는 가정이 해마다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차례를 지내는 대신 긴 연휴를 여행으로 보내려는 수요가 뚜렷하게 증가했다. 한국인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여행 중개 플랫폼 스카이스캐너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약 77%가 이번 추석 연휴에 여행 계획을 세웠다고 응답했다. 특히 해외여행 비중이 크게 늘었다. 10년 전 대비 명절 여행에 긍정적인 인식이 37%에서 70%로 2배 가까이 상승했다. 검색 데이터에 따르면, 추석 연휴 기간 인기 여행지는 일본(43.1%)이 1위였고, 이어 베트남(13.2%), 중국(9.6%), 태국(7.5%), 대만(6.2%) 순이었다. 도시별로는 일본 후쿠오카(20.2%)가 가장 높은 검색 비율을 기록했으며, 오사카(18.3%), 도쿄(15.4%), 방콕(8.9%), 타이베이(8.0%)가 뒤를 이었다. 여행을 가지 않고 명절 연휴를 일터에서 보내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긴 연휴를 활용해 “돈을 벌겠다”는 사람들이 늘면서 단기 아르바이트 수요도 급증했다. 당근마켓과 같은 알바 커뮤니티와 플랫폼에는 “추석 알바 구합니다”라는 글이 다수 올라왔다. 한 20대 청년은 “쉬는 날이 길어 잠깐이라도 일을 하려 한다”고 밝혔고, 한 대학생은 “여행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선물세트 포장 알바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특히 명절 기간에는 업무강도가 높아 평균 시급의 1.5배를 지급하는 경우가 많다. 평상시에 근무할 때보다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이 때문에 많은 청년들이 명절 시즌 알바를 노리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 맞춰 구인·구직 플랫폼들은 ‘추석 알바 채용관’을 운영하며 수요를 모으고 있다. 백화점과 대형 마트, 도·소매점과 전통시장에서 단기 인력을 모집하고, 선물용 고기·과일 세트 포장, 택배 상·하차, 진열·판매 등의 일자리가 집중적으로 생겨났다. 절반 이상 “안 지내요” 77%가 여행 계획 세워 지난해 추석 구인 구직 사이트 알바천국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절반 이상(53.9%)이 단기 용돈 벌이를 위해, 22.2%는 고물가로 인한 지출 부담 때문에, 18.2%는 여행 경비나 등록금 등 목돈 마련을 위해 명절 알바를 계획했다고 답했다. 이는 명절을 단순히 휴식 시간으로 보내지 않고, 생계와 목표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활용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집에 머무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기계발하며 추석 나기’가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혼자 추석을 보내는 일명 ‘혼추족’ 중에는 독서나 온라인 강의, 어학 공부, 자격증 준비 등에 연휴를 투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스터디 카페와 도서관을 찾는 이용객이 증가했다는 조사도 나왔다. 일부 출판사나 문화 기획사에서는 명절 연휴에 맞춰 북콘서트 같은 행사를 열기도 했다. 명절이 휴식 기간만이 아닌 스스로를 계발할 수 있는 기회로 활용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양상은 가족 모임에도 영향을 받았다. MZ세대는 가족·친척 모임을 스트레스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한 청년은 “친척들과 모이면 취업·결혼 얘기 등으로 잔소리를 들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자기계발을 하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말했다. 과거처럼 친척 모임에 시간을 할애하기보다, 필요한 경우에만 가족을 만나고 나머지 시간에는 개인활동에 집중하는 방식이다. 연휴를 도심에서 보내는 ‘혼추족’을 겨냥해 유통·외식업계도 다양한 이벤트를 내놓고 있다. 수도권 맛집 가이드, 추석맞이 전시·공연, 집콕형 OTT·게임 프로모션 등이 대표적이다. 편의점과 HMR(가정 간편식) 업체는 명절 한정 도시락·한상 차림 제품을 늘리고, 명절 기간 반값·카드 제휴 할인 등 단기 판촉을 강화하고 있다. 추석 선물 시장도 과거와는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예전에는 굴비·한우·고급 과일 세트 등 전통 품목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실속형·소포장 선물세트가 늘었다. 대표적으로 대형마트에서는 고급 커피·차 세트, 수제 디저트처럼 가볍게 주고받을 수 있는 소포장 구성이 인기를 끌고 있다. “일과 자기계발이 더 유익해” 명절 스트레스 가족 모임 불참 온라인몰에서는 올리브 오일, 참기름, 견과류, 꿀 등 건강 지향 소품목 세트가 매출 상위에 오르기도 했다. 실속형·소포장 선물을 찾는 배경에는 고물가 부담과 1~2인 가구 증가가 있다. 소비자들은 예전처럼 고가 선물을 준비하기보다, 실용적이고 보관이 편리한 상품을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또 명절을 함께 보내는 가족 규모가 줄면서 필요한 양만큼만 담긴 선물세트가 ‘부담 없는 선택’으로 자리 잡았다. 가격 대비 효용을 중시하는 MZ세대 소비자층도 이 같은 흐름을 이끌고 있다. 모바일 선물하기 판매는 전년 추석 대비 두 배 이상 늘었고, 온라인몰도 같은 기간 선물세트 매출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편의점 앱을 통한 선물세트 매출은 연중 대비 100% 이상 신장세가 관측됐고, 패션·라이프스타일 플랫폼의 선물하기 거래액도 두 자릿수 증가를 이어가고 있다. 마켓컬리는 추석 기간 한시 선물하기 서비스를 운영하며 홍삼·화장품 등 선물 품목을 확장했다. 명절 식문화 자체도 간편화 된 흐름이 뚜렷하다. 1인 가구 1012만명, 2인 가구 600만명으로 소규모 가구가 크게 늘어난 가운데, 대형마트의 간편 차례상 매출은 최근 3년 연속 증가했다. 편의점의 냉장·냉동 HMR 매출은 두 자릿수 증가했고, 명절 한정 도시락은 1인 가구 밀집 상권에서 판매 비중이 높았다. 이번 추석에도 이런 흐름에 맞춰 대형 마트는 간편 차례상·냉동 밀키트 대형 할인전을, 편의점 4사는 명절 도시락 출시와 제휴 할인행사를 연달아 내놓고 있다. 밀키트와 같은 간편식의 수요가 증가한 데에는 물가 상승이 영향을 미쳤다. 소비자 설문에선 추석 전체 지출 예산이 평균 71만2000원으로 전년 대비 26%가량 늘었다는 응답이 나왔다. 지출 중에는 부모 용돈·선물 비중이 절반을 웃돌았고, 차례상 비용·내식 비용도 적지 않았다. 품목별로 과일·수산물·햅쌀·송편 등의 차례상 음식 가격 부담이 커지면서, 수입 축산물 고려 비율도 늘었다. 이 때문에 “차례상 형식을 간소화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선택의 시대 추석을 준비하는 한 30대 가정주부는 “지금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서 차례를 안 지내거나 설에 한 번만 지내는 집이 많다. 고물가 시대에 음식을 다 준비하는 것은 부담되는 것 같다. 그런 형식적인 것은 간소화하더라도 차례를 지내는 행위에 의미가 있으니 상관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