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VS 박지원 사생결단 승부수

  • 신승훈 기자 shs@ilyosisa.co.kr
  • 등록 2017.12.18 10:52:21
  • 호수 114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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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지면 둘 중 한명은 죽는다

[일요시사 정치팀] 신승훈 기자 = 최근 정가의 최대 화두는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론이다. 국민의당이 통합을 주도하고 있는 가운데 찬성파에는 안철수 대표가 반대파에는 박지원 의원이 날선 공방을 벌이고 있다.  국당의 운명을 쥔 두 사람의 노림수는 무엇일까.    
 

지난 10일 나란히 목포를 방문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박지원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 관련 행사에서 각각 상대 지지자들로부터 막말과 야유를 들었다. 안 대표는 바른정당과 통합 추진을 이유로 “간신배”라는 소리를 들었고, 이를 반대하는 박 의원은 날계란을 맞았다. 

계란 맞고 
욕먹은 박·안

DJ 행사 참석자들은 바른정당 통합 문제를 놓고 둘로 갈라졌다. 반대하는 쪽은 안 대표에게 “안철수 물러가라. 김대중을 그렇게 해놓고” “간신배 같은 안철수”라며 야유를 보냈다. 

안 대표는 표정이 굳어졌지만 곧바로 이어진 축사에서 “인내하고 뛰는 것이 마라톤의 본질”이라며 “묵묵히 참고 쌓아가다 보면 어느새 목표에 도달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고 언급했다. 

반대로 통합 찬성파들은 박 의원에게 계란을 던졌다. 안 대표 지지자로 활동 중인 한 여성은 “영혼과 양심까지 팔아먹지 말라”고 소리쳤다. 박 의원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조용히 손수건을 꺼내 계란을 닦아냈다.


이후 기자들과 만나 “내가 맞아서 다행 아닌가”라며 “(안 대표가)목포서 끝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유종의 미를 거둬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국민의당은 당분간 안 대표를 중심으로 한 바른정당 통합파와 박지원 의원을 중심으로 한 반대파로 나뉘어 충돌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안 대표가 통합에 방점을 찍고 있어 이에 반대하는 박 의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난달 30일 박 의원은 호남의원 대다수가 통합에 반대하고 초선 의원들도 통합 반대에 가세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통합 논쟁을 자제할 것을 당부했다. 

구체적 수치도 제시했다. 

그는 “<광주일보> 조사에 따르면 호남 23명 전수조사 시 20명 통합 반대, 찬성 2명, 유보 1명으로 나타났다. 결국 그분들도 지역 정서를 감안한다고 하면 통합 반대로 돌아설 것”이라고 자신했다. 

박 의원은 전당대회를 열더라도 통합이 이뤄질 가능성이 낮으며 전당대회가 열릴 가능성 자체도 희박하다고 예상했다. 

박 의원은 “정치라고 하는 것은 세계 어느 정당도 원내 중심으로, 의원 중심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그렇게 용이하지도 않을 것”이라며 “물론 지역구의 대의원, 대표 당원 이런 것들을 배분하지만 당원의 절대 다수가 호남이기 때문에 그것도 그렇게 용이하지 않다”고 했다. 

바른정당과의 정책연대에 대해서도 부정적 인식을 드러냈다. 


박 의원은 “우리 국민의당은 민주당과 더 큰 정책연대에 서명을 했다”며 “지금까지 해결하지 못했던 광주서 목포까지 제2 KTX 노선을 확정했다. 바른정당과 정책연합을 한 것은 민주당하고도 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13일에는 안 대표에게 직격탄을 날렸다. 그는 “안철수 대표는 명분도 실리도 없는 통합을 중지하고 국민을 위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국민의당이 예산정국처럼, 탄핵정국처럼, 개원정국처럼 하면 국민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며 “명분도 실리도 없는 통합을 중지하고 국민을 위해 국민의당이 앞장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통합 추진을 중단하면 당은 화합하고 지방선거서 이길 수 있다”며 “호남서 다시 한 번 녹색돌풍을 일으켜 전국을 녹색태풍으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외연확대냐 
체제유지냐 

박 의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안 대표는 바른정당과의 통합의 뜻을 굽히지 않고 있다. 특히 호남 방문을 통해 부정적 민심을 접했음에도 통합의 정치적 당위성을 강조·설득하는 방식으로 여론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지난 11일 안 대표는 호남 민심 행보를 마무리 짓는 자리서 “지난 수십 년 동안 한국 정치사를 보면 3당은 큰 선거 직전 외연확장에 실패해 모두 사라졌다”며 “당의 승리를 위한 외연확대의 여러 방법 중 대안은 바른정당과 연대 또는 통합”이라고 자신의 결론을 분명히 밝혔다. 
 

특히 그는 “외연확대에 다른 방법이 있다면 대안 위주로 토론하자고 여러 차례 말했고 의견을 청취했다”며 “이제 종합적으로 중앙당 차원에서 논의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앞선 두 차례 의원총회와 원외위원장 간담회, 호남 민심 행보까지 당 내외 의견을 모두 들은 만큼 조만간 호남 중진들과 통합론을 두고 단판을 짓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안 대표는 통합론에 최대 걸림돌이 되고 있는 바른정당에 대한 호남의 부정적 정서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이어갔다. 

그는 “호남을 돌아보니 많은 분들이 ‘바른정당은 영남당’이라고 오해하던데, 바른정당은 전체 의원 11명 중 7명이 수도권, 1명이 전북, 3명이 영남인 수도권 정당임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바른정당은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에 찬성하고 두 번의 탈당 사태를 겪으면서 반 자유한국당 노선을 분명히 했다”며 “바른정당이 한국당과 절대로 합치지 않을 것이라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고도 했다. 


‘안방’ 목포서 혼난 친·비안 수장들 
안, 정책연대 넘어 선거연대로

최근 안 대표는 한 달 새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를 네 차례 만나면서 스킨십을 늘려가고 있다. 지난 14일에는 부산서 열린 ‘국민통합포럼’에 참석해 선거연대를 합의키도 했다. 양당의 정책포럼인 국민통합포럼은 지난 9월20일 공식적으로 출범한 뒤 매주 토론회가 열렸다.

최근까지 총 12차례의 세미나가 열렸다. 안·유 두 대표는 10월10일 처음 이 행사에 참석한 이후, 지난달 23일 열린 ‘양당 연대·통합 의미와 전망’ 세미나, 이달 7일 열린 ‘양당의 정책연대의 과제와 발전방향’ 세미나에 참석했다. 

특히 유 대표의 제안을 안 대표가 받아들여 양당 대표는 곧 단독회동을 가질 것으로 알려진다.  

14일에 열린 부산서의 포럼은 의미가 남다르다. 양당의 연대 논의가 가장 진척된 곳이기 때문. 앞서 양당 부산시도당은 기자회견을 통해 정책연대·선거연대를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바 있다.

국민의당 배준현 부산시도당 위원장은 “부산 지역 내 양당의 후보가 겹치는 데가 없으면 한쪽으로 밀어주고, 겹치면 경쟁력을 파악한 후 한 사람을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산시당 이후 경남, 충남시도당이 사실상 선거연대를 선언한다. 


안 대표가 유 대표와의 스킨십을 늘려감과 동시에 지역서도 두 당의 연대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안 대표가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속도를 내고 있는 이유는 내년 지방선거를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서 안 대표는 바른정당과 손을 잡아 외연을 확장하고 지지율을 끌어보겠다는 복안이다. 

 

지난 4일 안 대표는 여의도 국회서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내년 지방선거 인재 영입 관련 질문에 답하는 과정서 “전국 선거를 4자구도로 치르는 것에 부담을 갖고 있는 분들이 많다”며 “전국 선거가 최소 3자 구도로 정리되지 않으면 합류하기 힘들다는 분들이 전국에 걸쳐 있다”고 말했다. 

이는 바른정당과 선거연대가 필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다만 단계적 통합에 방점을 찍었다. 그는 “당분간은 정책연대에 집중할 생각”이라며 “통합과 관련해 여러 논의가 있지만 절차와 상대가 있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도부 사퇴론
반발하는 친안계

안 대표가 통합에 서두르는 만큼 반대파의 저항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급기야 안 대표 등 지도부 사퇴론까지 거론되고 있다. 호남출신이자 통합 반대파인 이용주 의원은 지난 12일 “안 대표가 당내 의견을 조율하고 조정할 필요성은 있지만 그게 리더십의 문제로 봉착돼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 의원은 “좀 더 명확한 리더십을 수립할 필요도 있기 때문에 안 대표에 대한 리더십 재신임 문제는 논의될 수도 있는 사안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이보다 앞서 유성엽 의원 등 통합 반대파 진영에서는 안 대표의 리더십 부족 등을 이유로 ‘안대표의 퇴진’ 등을 거론해 우회적으로 당 대표 사퇴를 주문한 바 있다.

실제 유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바른정당과 제대로 통합을 하려했다면 통합해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을 먼저 분명하게 밝히면서 소통했어야 한다”며 “점수가 안 나오면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을 해야지 다른 학교로 전학가겠다는 것과 뭐가 다르냐”고 꼬집었다. 

이처럼 호남 및 통합 반대파들의 반발이 더욱 거세지는 이유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 통합 논의가 연말을 넘기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호남중진을 중심으로 한 통합 반대파는 평화개혁연대(이하 평개연)를 통해 찬성파에 맞불을 놓고 있는 모양새다.

평개연은 지난 13일 광주 김대중 컨벤션센터서 ‘국민의당 정체성 확립을 위한 평화개혁세력의 진로와 과제’를 주제로 향후 국민의당이 나아가야할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토론회에는 천정배, 박지원, 박주선, 정동영, 김동철, 조배숙, 장병완, 이상돈, 최경환, 박주현, 김경진 의원 등 호남지역 의원들이 대거 참석했다. 

이날 최영대 전남대 교수는 발제문서 “안철수 대표가 지난 대선 때 보여준 기대 이하의 토론 성적으로 인해 개혁진영서 더는 미래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지만, 그는 정치적 좌표를 중도보수로 수정해 대통령에 다시 도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평개연 vs 국민통합포럼 세 대결 국면
바른정당 3당 통합론…술렁이는 정가 

또 “안 대표가 당내 화합을 위해 통합을 유보하더라도, 그의 성향상 내년 지방선거 때 바른정당과 선거연대를 시도할 것”이라며 “이 경우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참패를 면하기 어렵다”고 내다봤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평개연은 14일 초선 의원 10명의 모임인 ‘구당초(당을 구하는 초선 의원)'와 오찬회동을 가졌다. 애초에 구당초는 안 대표의 통합 드라이브에 강력히 반발하면서도 당내 갈등이 분열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며 평개연 활동 참여에 유보적 태도를 취해왔다.
 

하지만 찬성이냐 반대냐를 놓고 양자택일 상태에 온다면 구당초 의원들의 성향상 자연스럽게 평개연으로 쏠리지 않겠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최근에는 안 대표의 통합론에 찬물을 끼얹는 보도가 등장했다.

바른정당이 단계적으로 국민의당과 통합을 마무리 짓고 이어 한국당와 통합 논의에 나설 것이란 내용이다. 바른정당은 유승민 대표 체제 이후 기존의 당의 통합로드맵을 재확인한 것에 불과하다는 입장이지만 국민의당 호남 중진 의원들은 이를 토대로 안 대표에게 통합 논의 중단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바른정당 관계자는 “13일이면 유 대표가 약속했던 한 달인데 열흘 정도 더 말미를 달라고 한 것이지 20일에 통합로드맵을 발표하겠다는 것은 아니었다”며 “통합로드맵도 기존의 중도·보수통합 입장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하태경 최고위원도 “선 국민의당 통합 빼고는 다 오보”라며 “통합 노선 디데이를 결정한 적도 없고 한국당과 통합 추진을 결의한 적도 없다. 오직 국민의당과 통합에 있어서만 반대가 없었다”고 말했다. 

통합로드맵
전당원투표 

통합의 방식은 전당원 투표로 결정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친안(친 안철수)계로 분류되는 장진영 최고위원은 “바른정당과의 통합을 둘러싼 논쟁이 당내 대립의 핵심”이라며 “이 문제를 전당원 투표로 결정할 것을 정식으로 제안한다”고 밝혔다.

그는 “박지원 의원이 ‘안 대표 재신임을 물어야 한다는 의견이 팽배하다”고 말했는데 전당원투표 결과에 따라 안 대표와 최고위원 거취도 결정하면 될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shs@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박지원 계란 투척女 정체는?

지난 10일 박지원 의원은 ‘제1회 김대중 마라톤 대회’ 도중 계란을 맞는 봉변을 당했다. 출발 선상에 서 있던 박 의원은 중년 여성이 던진 계란에 오른쪽 빰을 맞았다. 사건 직후 경찰에 연행된 중년 여성은 “박 전 대표가 국민의당을 해체하려고 해 항의하는 의미에서 계란을 던졌다”고 진술했다. 

경찰 조사 결과 중년 여성의 정체는 ‘안철수 연대 팬클럽’ 회장 박모씨로 밝혀졌다. 최근에는 그의 과거 SNS 활동이 공개돼 논란이 되고 있다. 박씨는 과거 단톡방에 고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모욕하는 합성 사진을 올린 것으로 전해진다.

해당 합성사진은 페이스북 민주당 당원그룹에도 공개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해당 합성 사진과 메시지는 박모씨와 안 대표가 나란히 찍힌 사진과 함께 SNS를 통해 빠르게 확산됐다. 

 

<기사 속 기사> 국민-바른 통합 키워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의원 16명은 지난 9월 20일 정책연대를 위한 모임 ‘국민통합포럼’을 공식 출범했다. 이후 양 당은 지난달 3일 국회서 ‘정책협약 발표식’을 열고 ▲방송법 ▲특별감찰관법 ▲지방자치법과 국민체육진흥법 ▲규제프리존특별법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채용절차 공정화법(부정채용 금지법) 등을 ‘6대 정기국회 중점 처리 법안’으로 발표했다. 

국민통합포럼은 정책연대를 통해 ‘패권정치’를 견제하겠다는 취지서 나왔다. 국민의당 이언주 의원은 “두 당이 패권정치와 권력 사유화에 저항해 생긴 정당인 만큼 창당 정신을 함께 되살리고 국민을 통합하자는 취지에서 모였다”고 설명했다.

바른정당 정운찬 의원도 “자유한국당도 패권세력 청산이 안 됐지만, 문재인정부도 패권세력 정치로 가능 것 같다”며 “진정한 민주주의 시대 구현에 힘을 모아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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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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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