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공익재단에 대한 전수조사를 예고한 가운데 첫 타깃으로 영풍그룹이 지목되고 있다. 영풍그룹의 문화재단을 활용 방법은 문재인정부 들어 오너 일가가 공익재단을 활용해 계열사 지배력을 끌어올린 첫 사례이기 때문이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지난 2일, 서울 5대그룹 CEO와 가진 정책간담회서 공익재단이 설립 취지에 부합하는 활동을 하는지 운영실태를 전수조사할 뜻을 내비쳤다. 소통을 표방한 간담회였지만 대기업들에 지배구조 개선을 강력히 압박하는 자리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런 가운데 공정위의 첫 타깃으로 영풍그룹 산하 '영풍문화재단'이 꼽히고 있다.
신의 한 수
영풍문화재단 이사진은 이사장을 맡고 있는 장형진 영풍그룹 명예회장을 비롯해 최창근 고려아연 회장, 한두훈·김용덕 전 영풍 대표 등 10명으로 구성됐다. 장 명예회장이 유일한 상임이사로 이사진 상당수가 전·현직 영풍그룹 임원이다.
자연스레 영풍그룹 오너 일가가 재단 인사권을 쥐는 등 사실상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영풍문화재단은 영풍그룹의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각각 1억원을 기부해 1980년 출범했다. 그룹 계열사 지분을 갖고 있지 않던 재단은 지난 6월 영풍으로부터 가치가 90억원가량으로 추산되는 영풍문고 지분 10%를 증여받았다. 이 증여로 영풍의 영풍문고 지분율은 34%서 24%로 줄었다.
영풍이 영풍문고 지분을 재단에 증여한 것은 순환출자 고리를 끊기 위해서다.
영풍그룹은 ▲영풍→영풍문고→영풍개발→영풍으로 이어지는 핵심 순환출자 고리를 지니고 있다. 재계서는 이 고리를 끊기 위해 영풍이 영풍문고 지분 10%를 영풍문화재단에 넘긴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지분 10%만 넘긴 것은 절세 효과를 노리기 위한 작업이다. 기업이 계열사 주식을 공익재단(성실공익법인)에 증여할 때 계열사 지분의 10%까지 상속·증여세 감면 혜택을 받는다. 증권업계에선 세금 절감을 위해 영풍이 영풍그룹 일가가 운영하는 경원문화재단에도 영풍문고 지분 10%를 넘길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 증여로 오너 일가의 영풍문고 지배력은 더욱 강해졌다. 영풍문고는 장형진 명예회장을 비롯한 오너 일가가 지분 67%를 보유하고 있다. 영풍문화재단 보유분까지 합치면 오너 일가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77%에 달한다.
순환고리 끊고 절세 일석이조
묘수와 꼼수 애매한 경계
이를 두고 영풍그룹이 세금을 줄이면서 지배력을 강화한 ‘묘수’라는 평가와 동시에 증여세를 내지 않으면서 회사 자산을 오너 일가에 무상으로 넘긴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문재인정부 들어 공익재단을 활용해 오너의 지배력을 높인 유일한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영풍그룹의 또다른 공익재단인 경원문화재단의 경우 지난해 전체 수입의 39%만 공익사업에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CEO스코어>에 따르면 경원문화재단의 지난해 총수입은 5억4700만원, 목적사업비는 2억1600만원으로 총수입 대비 목적사업비 비중은 39.5%를 기록했다.
목적사업비는 각 공익재단이 설립목적에 맞는 사업을 하는 데 지출한 공익사업비로 경원문화재단의 지난해 총수입 중 공익사업비 비중은 전년보다 4.4%포인트 감소했다. 지출 비용 자체는 2년 연속 2억1600만원으로 동일했지만 총수입이 늘어나면서 비중이 작아졌다.
경원문화재단은 지난해 이자 2700만원, 배당금 3억400만원 등 수익사업 부문서 3억31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2015년에는 없던 수입이다.
대기업 공익재단을 주목하는 공정위의 인식만 부담스러운 게 아니다. 만약 공정위가 공익재단을 조사하는 과정서 ‘일감 몰아주기’를 들춰낼 경우 그간 이 논란서 자유롭지 못했던 영풍그룹으로선 곤혹스러울 수밖에 없다. 특히 영풍그룹의 비상장 계열사 영풍개발은 이 논란의 중심에 서 있다.
영풍개발은 영풍빌딩을 임대해 수익을 올리는 곳이다. 영풍개발의 지분은 장형진 명예회장의 자녀인 장세준 대표와 장세환 대표, 장혜선씨가 33%를 가지고 있다. 이 회사의 내부거래율은 2013년을 제외하고 최근 10년간 매출의 90%를 넘었다.
한때 이 회사의 매출은 120억원이 넘었지만 2011년부터 서서히 줄어 지난해에는 약 19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일감 몰아주기 규제 대상서 벗어나기 위해 영풍개발 지분을 팔거나 회사를 다른 계열사와 합병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기 위해 계열사인 서린상사가 보유한 영풍 지분 10.36%를 팔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오너 일가와 특수관계인이 보유한 영풍 지분이 73.84%에 달하는 만큼 일부를 매각해도 경영권에는 변동이 없어서다.
주목하는 시선
한편 영풍그룹은 재계 순위 30위권을 차지하며 사세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영풍그룹의 공정자산은 10조9630억원으로 4년 전보다 약 10% 늘었다. 재계순위는 26위를 기록 중이다. 하지만 커진 덩치에 비해 실적은 따라오지 않고 있다. 영풍그룹의 지난해 매출액은 4년 전에 비해 7.4% 감소했고 지난해 당기순이익은 5600억원으로, 8750억원을 기록한 4년 전보다 적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