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S·G저축은행 수상한 영업 추적

“걸리면 끝장”구원군 행세로 점령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상호저축은행법 1조에는 ‘서민과 중소기업의 금융 편의를 도모한다’고 명시돼있다. 저축은행은 서민에 대한 금융 지원을 주목적으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하지만 저축은행은 전혀 다른 길을 걸어왔다. 고위험 투자금융에 대한 배팅은 예사고 기업 대출에 열 올리는 모습도 더 이상 낯선 광경이 아니다. 대출을 빌미로 기업의 존폐를 결정짓는 결단을 내리기도 한다. S저축은행과 G저축은행 역시 예외는 아니다. 
 

T사는 최근 가장 잘 나가는 정보기술(IT)기업으로 꼽힌다. 네트워크 구축 사업을 진행하는 T사의 올해 상반기 연결기준 당기순이익은 465억원에 이른다. 그러나 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된다. 자체 사업으로 벌어들인 당기순이익은 절반에도 못 미치는 195억원에 불과하다. 
 
무서운 두얼굴
입닦고 손털어

나머지 이익분은 누가 책임졌을까. 100% 자회사인 S저축은행과 G저축은행의 활약이 지대했다. S저축은행 대주주는 2012년 8월23일자로 T사(100%)로 변경됐다. G저축은행은 지난해 2월 70억원에 T사 품에 안겼다. 

두 회사의 상반기 당기순이익은 각각 238억원, 217억원에 달했다. 특히 G저축은행의 행보는 놀라움 그 자체다. 2015년 순손실 3억원을 기록했던 G저축은행은 T사에 인수된 지난해 262억원 흑자로 돌아섰다. 

물론 저축은행 본연의 임무인 서민금융 대출은 S·G저축은행 실적 고공행진의 큰 축이다. 하지만 수익으로 연결된 비중으로 따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기업대출 의존도가 훨씬 높다. 기업을 대상으로 한 고금리 대출 사업에 집중 투자한 덕분이다.  

S사의 유가증권 담보대출은 전체 대출의 34.29%, G저축은행은 26.15%를 차지하고 있다. 유가증권 담보대출은 크게 ‘주식연계대출(스탁론)’과 ‘주식담보대출’로 나뉜다. 


스탁론은 저축은행이 증권사와 연계해 개인들의 증권계좌와 예수금을 담보로 저금리(약 2∼6%)이고, 주식담보대출은 주로 기업들의 보유 지분을 담보로 한 10∼18%대 고금리 대출이다. S·G저축은행의 기업 대출은 대부분 주식담보대출일 것으로 예상된다. 

업계 관계자는 “G저축은행은 T사에 인수된 이후 유가증권담보대출 비율이 급증했고 흑자로 전환됐다”며 “S저축은행의 고금리 대출 사업을 G저축은행도 그대로 이어받은 구조”라고 언급했다. 

흥미로운 점은 올해 들어 대주주의 반대매매로 피해사례가 속출한 회사서 S·G저축은행의 이름이 연이어 거론됐다는 사실이다. 이 무렵부터 S·G저축은행에 대한 주목도가 한층 높아졌고 몇몇 회사는 S·G저축은행의 ‘반대매매’ 타깃이었다는 뒷말까지 나오는 형국이다.

1년 만에 적자서 200억 흑자로
피해 보기 전 발뺌…편법 대출?

지난 2월6일 코스닥상장사 W사의 최대주주인 SA사가 보유주식 전량을 반대매매 당한 것이 뒤늦게 확인됐다. 필수 공시 지침인 최대주주변경을 수반하는 주식담보대출 계약도 6개월 이상 하지 않았다. 
 

당시 SA사는 주식 등의 대량보유상황보고서 공시를 통해 W사 지분 5.47%(주식수 422만 4946주) 전량이 반대매매 됐다고 밝혔다. 담보권 실행자는 S저축은행과 G저축은행 등이었다. 반대매매로 W사 최대주주는 SA사에서 개인으로 변경됐다. 

SA사가 대대주에게 반대매매를 당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S저축은행은 지난 2015년 11월 W사 주식 171만1963주를 담보로 대출에 나섰다가 지난해 6월3일, 주식 반대매매에 나섰다. G저축은행은 지난해 3월 100만7194주를 담보로 맡았다가 3개월 만에 모두 처분했다. 


지난 8월14일 코스닥 상장법인인 C자산관리서 배임·횡령 혐의가 제기됐다. 이로 인해 주가가 추락하면서 C자산관리 회장이 대출하느라 담보로 잡혔던 지분이 반대매매로 출회됐다. 

곧바로 6개 주식담보 대출을 해준 금융기관이 주가 하락에 따른 기준가격 미달을 이유로 담보제공 주식 103만9900주에 대한 반대매매를 진행했다. 이 과정서 S·G저축은행이 거론됐다. 

이틀 뒤인 16일에는 주가가 29%이상 급락하자 삼성증권, S·G저축은행 등 3개 금융기관이 담보주식 245만8843주에 대한 반대매매에 나섰다. 16일 종가는 역대 최저가인 901원이었다. 결국 지난 9월18일부터 주식거래가 정지됐다. 

ST사도 반대매매로 곤혹을 치렀다. S저축은행은 대주주인 김씨가 담보로 제공해 온 주식 830만주 가운데 647만주를 반대매매로 처분했다. 김씨가 가진 지분도 11.55%서 2.59%로 줄었다. ST사는 C자산관리와 동일한 날짜인 18일부터 주식거래를 정지당했다. 

형님께 배운
고금리 대출

S저축은행은 I사에도 돈을 빌려줬다가 반대매매로 회수에 나섰다. 6월14∼16일 세 차례에 걸쳐 대주주부터 담보로 받은 주식 98만주 가운데 82만주를 팔았다. 반대매매가 이뤄진 사흘 동안에만 주가가 12% 넘게 빠졌다. 

반대매매가 이뤄지면 투자심리는 싸늘해진다. 대주주가 경영권을 지킬 최소자금도 없다는 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물론 회사 내부서 문제가 불거질 경우 투자자 입장서 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에 피해 최소화를 위해 투자자가 주식을 처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처럼 비춰지기도 한다. 
 

문제는 반대매매 후 선뜻 납득하기 힘든 일이 종종 발생한다는 데 있다. SU건설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S·G저축은행은 지난 3월21일부터 양일간 담보로 잡았던 SU건설 주식 1279만주를 반대매매했다. 이 기간 주가는 단숨에 39% 넘게 내렸다. 

그렇다고 SU건설과 S·G저축은행의 관계가 끝난 건 아니었다. 

이후 S·G저축은행은 바뀐 SU건설 최대주주에게 대규모 대출을 실행했다. 지난 8월25일자 SU건설 전자공시 내용을 보면 S·G저축은행은 SU건설 최대주주인 M파트너스에게 주식 1953만4987주를 담보로 142억원을 대출해줬다. S·G저축은행의 대출액수가 각각 70억원, 72억원이다.  

대출이 이뤄지기 직전인 지난 8월18일 기준 SU건설 주식은 종가 836원을 형성하던 상태였다. 이를 토대로 계산하면 1953만4987주의 평가액은 약 163억3124만원이다. 담보율을 115%로 책정해 대출을 승인한 셈이다. 

금융권서 주식담보대출 실행 시 담보비율이 통상 170∼200% 수준임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조건이다. 


다만 M파트너스라는 회사가 과연 이 같은 거액을 대출받을 만한 자격이 있느냐에 대해서는 견해가 엇갈린다. M파트너스는 자본금 1억7500만원, 자본총액 2억원에 불과한 외형을 지니고 있다. 

혼란 주고
잇속 챙기기

S·G저축은행은 자본금의 800배에 가까운 금액을 선뜻 내주자 몇몇 금융권 관계자는 편법에 가까운 대출의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만약 반대매매로 주식이 갑자기 풀리면 외부 세력이 회사 주식을 대량으로 사들여 대주주가 교체되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하는데 저축은행이 이 같은 고리의 한 축을 담당한다는 것이다.

S·G저축은행 측은 항간에 떠도는 이 같은 의혹에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공시자료서 나타나지 않지만 대출은 정상 승인 절차를 거쳤고 담보율 역시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S저축은행 관계자는 “법규상 S·G저축은행의 대출 한도는 각각 100억원이고 이 기준에 따라 대출이 이뤄졌다”며 “담보율이 낮은 건 M파트너스서 유상증자를 할 때 이 부분을 담보로 잡았기 때문인데 이런 부분은 공시의무사항에 포함되지 않는다. 이 과정서 표면상 오해의 소지가 생겼다”고 해명했다. 

이렇게 되자 1980∼90년대 ‘명동사채’ 시장의 행태를 저축은행이 넘겨받았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들린다. 당시만 해도 M&A 시장서 특정 회사를 인수하는데 100억원이 필요하다면 본인 자금 10억원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을 명동 사채로 끌어들이는 게 일반적이었다. 
 


명동의 사채업자는 높은 이자와 주식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는 형태가 현재의 최근 몇몇 저축은행의 자금 대출과 묘하게 비슷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 실제로 몇몇 차입자들은 S·G저축은행이 주식담보대출을 진행하면서 18%에 달하는 고금리를 유지했다고 입을 모은다. 

금융권 관계자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명동 사채가 기업 M&A에 절대적인 자금 융통책으로 사용됐다는 건 사실에 가까운 비밀”이라며 “불법 대출에 대한 정부 차원의 단속이 강화되면서 명동 사채가 거의 자취를 감췄지만 그 자리를 대신하고 나선 게 바로 저축은행”이라고 지적했다.  

사채 따로 없네…반대매매 논란
회사 흔들고 전환사채로 잇속

반대매매로 인한 피투자사의 피해 가능성은 꺼지지 않은 불씨나 마찬가지다. ‘전환사채(CB, 채권+주식으로 전환할 수 있는 선택권)’를 통한 주식담보대출이 거듭됐기 때문이다. 

2016년 말 기준 감사보고서 분석 결과 S저축은행이 전환사채를 발행한 상장법인은 27개, G저축은행이 전환사채를 발행한 상장법인은 총 16개에 달한다. 이들이 전환사채를 발생한 기업 가운데 일부는 두 회사로부터 동시에 대출을 받기도 했다. 

G저축은행은 전환사채 발생 총 규모가 260억원대라고 밝힌 상황이다. 최근 주식담보대출 비중을 낮추던 S저축은행의 전환사채 발행 규모는 이보다 조금 낮은 수준으로 파악된다. 

다만 S·G저축은행을 통해 M&A 시장으로 자금이 흘러가는 양상은 9월말을 기점을 더 이상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S·G저축은행이 지난달부터 M&A를 위한 자금 대출 업무를 중단한 까닭이다. 

하지만 올해 9월말까지도 주식담보대출은 꾸준히 이어졌다. 전자공시를 통해 확인 결과 올해 들어 S저축은행은 11개 업체, G저축은행은 12개 업체에 주식담보대출로 자금을 지원했다. 

확인된 대출금액만 S저축은행이 451억원, G저축은행은 707억원 수준이다. G저축은행 측 관계자는 올해 9월까지 승인된 자사 주식담보대출의 총 규모가 1700억대로 지난해보다 약 200억원 증가했다고 밝힌 상황이다. 

심지어 국내 M&A 시장서 발생하는 계약의 8할을 S·G저축은행이 담당해 자금을 융통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저축은행서 자금을 끌어들였다가 2년 이내 상장폐지된 회사의 상당수가 S·G저축은행과 연관돼있다는 소문도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실제로 S·G저축은행이 대출을 승인한 업체 가운데 3개사는 주식거래중지 상태다.

손만 대면
죽어나간다

한편 S·G저축은행은 이 같은 세간의 부정적인 인식에 억울함을 토로하고 있다. 10% 중반대 대출이자율을 두고 명동사채라고 비난하는 목소리는 금융권의 생리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는 입장이다. 

S·G저축은행 관계자는 “투자에 필요한 자금을 효율적으로 충당해주던 역할이 부정적으로 비춰지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당장 기업투자를 줄이기로 한 회사 방침이 본격 시행되면 피해를 입는 건 자금 융통에 어려움을 겪어야 하는 기업이고, 명동 사채시장이야 말로 환호성을 지를 것”이라고 말했다. 


<djya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반대매매란?

반대매매란 고객이 증권사의 돈을 빌리거나 신용 융자금으로 주식을 매입했는데 빌린 돈을 약정한 만기기간 안에 변제하지 못할 경우 고객의 의사와 상관없이 주식을 강제로 일괄 매도 처분하는 매매를 말한다. 

통상 미수거래일 때에는 3일, 신용거래일 때에는 1∼5개월 정도를 상환 기한으로 정한다. 이 기간에 상환하지 않거나 담보 가치가 일정 비율 이하로 하락할 때에는 증권사에서 임의로 반대매매를 한다. 

반대매매에는 현금 미수금 변제를 위한 현금 반대매도와 미상환 융자금 상환을 위한 신용매도 상환이 있다. 미수 발생 당해 종목(복수 종목을 매수한 경우에는 종목 번호가 빠른 것부터 결제되므로 종목 번호가 나중인 것이 미수 발생 당해 종목이 됨)을 우선적으로 하게 된다. 

동일 종목이 없는 경우에는 장내·외를 구분하지 않고 종목 번호가 빠른 것을 하게 된다. 반대매매 금액은 미수 원금에 제 비용(반대매매 이후 결제 시점까지 연체료)을 더한 금액(단, 매도 처분에 소요되는 제 비용은 제외)이며, 전일 종가 하한가를 기준으로 산정된다. 

이때 거래정지 종목은 선정 대상서 제외된다. 복수 종목에 대해 미수가 발생하면 종목별 미수 금액을 대조, 해당 미수 금액과 반대매매 금액이 최적화되게 계좌별 반대매매 금액을 산정하게 된다.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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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