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멀쩡하던 길이 사라졌다. 누군가에게는 삶의 터전이 되던 길이었다. 하지만 천안시의 행정 실수로 길이 없어졌다. 이곳은 몇 년 전 천안시가 ‘주민 통행 편익 증진과 주거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예산을 들여 포장공사를 진행했던 길이다. 그렇기에 주민들은 더욱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자신들이 해주고 자신들이 훼손한 것이다. 과연 무슨 사연일까.
피해자 김모(60)씨는 몇 년 뒤 천안에 집을 짓고 살기 위해 동남구 성남면 봉양리 일원에 작은 집터를 구했다. 경기도 고양시에 사는 김씨는 얼마 되지 않는 땅이지만 귀농한다는 생각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기대감은 천안시의 행정 실수로 송두리째 날아갔다. 개인 돈까지 들여 마을 진입로 도로포장을 하는 데 협조했으나 돌아온 건 허탈함과 분노 뿐이었다. 길이 갑자기 사라졌기 때문이다.
허탈함과 분노
장마기간 폭우 때문에 잘 있던 길이 사라진 게 아니다. 김씨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0월께 김씨 땅 일부를 천안시와 성남면서 ‘주민 통행편익 증진과 주거환경 개선’을 위한 도로포장을 한다며 ‘토지 사용 및 기공 승낙서’ 신청을 김씨에게 해왔다.
행정당국은 당시 김씨를 포함한 주위 땅 주인 6명에게 승낙서를 받아갔다. 한명이라도 빠지거나 거부할 경우 도로포장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승낙서에는 ‘토지 무상사용을 승낙하고 공사 시행에 이의가 없으며 공사로 인한 형사상·민사상 문제제기, 보상청구, 권리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도로포장을 한 지 2년6개월 만에 도로 일부가 끊어졌다. 승낙서를 제출했던 땅 주인 2명이 민원을 제기해 일방적으로 성남면서 도로포장을 부숴버린 것. 실제로 포장공사 당시 서류를 제출했던 토지주들 중 누구하나도 통지를 받지 못했고 김씨도 인근 주민의 연락을 받고서야 알게 됐다.
포장공사는 허락…막을 땐 무소식
현장에 가봤나? 묻지도 않고 훼손
행정당국은 도로의 중간 부분을 훼손해 자동차 통행이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김씨는 “기술도 좋게 두부모 들어내듯 싹둑 잘라내 차량 통행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며 “토지 농사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2년 넘도록 써온 길이다. 2명이 이의 제기했다고 해서 천안시는 예산을 들여 길 중간을 잘라냈다. 한마디 말도 없이 부숴버렸다”고 분노했다.
김씨를 더욱 분노케 한건 천안시와 성남면 전·현직 담당부서 관계자의 무책임함이었다. 최초 포장 당시 예산부족으로 성남면 산업계 A팀장이 “사비를 들여 김씨 땅 포장을 하면 나머지는 시에서 다 포장하겠다”고 말했다는 것.
김씨는 사비 300만원을 들여 도로 포장하는 데 협조했다. 그러나 도로 포장이 훼손되고 김씨에게 돌아온 대답은 ‘죄송하다’ ‘후임자가 잘 몰라서’ ‘억울하면 알아서 김씨 땅 포장도로도 부숴라’는 내용들이었다.
김씨는 “민원을 제기한 건 작년 4월부터다. 지친다”며 “책임질, 책임져야할 사람도 없는 무책임한 행정당국에 너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억울하면 부숴”
김씨는 자신의 땅에 사비로 포장한 도로를 철거할 예정이다. 이에 대해 성남면 산업건설계 관계자는 “도로 포장이 끊긴 곳은 땅 주인 2명이 ‘도로포장에 포함되지 않은 땅’이라고 주장해 일부를 끊어낸 것”이라며 “김씨 민원을 최대한 해결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해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