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옹성’ 육사 잔혹사

70년 만에 간판 내리는 ‘육방부’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군 수뇌부 인사서 육사 출신이 철저히 배제됐다. 육사 출신의 국방부 장악을 없애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로 풀이된다. 이번 인사 결과에 육사 출신 장군의 ‘공관병 갑질 사건’도 크게 한몫했다는 후문이다. 이뿐만 아니라 육사 안에서 일어난 갖가지 사건·사고들은 육사에 대한 이미지를 크게 손상시켰다. 이미 국민의 신뢰는 바닥을 치는 상태. 높았던 육사의 위상이 끝없이 추락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9일 청와대서 열린 군 장성 진급 및 보직 신고식서 육사 출신들의 불만에 대해 공개적으로 언급했다. 전날 단행된 문재인정부 첫 군 수뇌부 물갈이 인사서 육사 출신들이 상당수 배제된 것을 두고 육사 출신들의 불만이 고조되자 그에 대해 먼저 말을 꺼낸 것이다.

학교 출신 배제
정해진 수순?

문 대통령은 “국방부장관부터 군 지휘부 인사까지 육·해·공군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인사 배경을 설명했다. 문 대통령은 “육사 출신들이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 군의 중심이 육군이고, 육사가 육군의 근간이라는 것은 국민께서 다 아는 사실”이라며 “이기는 군대를 만들기 위해 우리 군의 다양한 구성과 전력은 꼭 필요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8일 문 대통령은 군 수뇌부 대장 8명 중 부임 1년이 안 된 엄현성 해군 참모총장을 제외한 7명의 대장을 교체했다. 이번 인사는 그 규모는 물론 육군·육사 배제, 기수 건너뛰기 등에서 ‘역대 최강의 태풍급’으로 불릴 만하다.

이번 인사서 군 서열 1위인 합동참모의장(합참의장)에 정경두(57·공사 30기) 공군 참모총장이 내정됐다. 정 총장이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과해 합참의장에 공식 임명되면 이양호 전 합참의장 이후 23년 만의 첫 공군 출신 합참의장이 되는 것이다.


특히 정 총장이 합참의장에 임명되면 해군 출신인 송영무 국방부장관과 함께 창군 이래 처음으로 국방부장관과 합참의장을 모두 비육군이 맡게 된다.

또 육군 참모총장에는 김용우 합참 전략기획본부장(56·육사 39기)이, 공군 참모총장에는 이왕근 합참 군사지원본부장(56·공사 31기·이상 중장)이 각각 임명됐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에는 김병주 3군단장(55·육사 40기)이, 1군사령관에는 박종진 3군사령부 부사령관(60·3사 17기)이, 제2작전사령관에는 박한기 8군단장(57·학군 21기)이, 3군사령관에는 김운용 2군단장(56·육사 40기·이상 중장)이 각각 임명됐다.

해군 출신 국방부장관에 합참의장까지 공군 출신 정 후보자를 내세우면서 군 수뇌부의 핵심 요직서 육사 출신이 밀려났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팽배한 분위기가 읽힌다. 이번 인사는 국방개혁을 명분으로 그동안 군의 주류였던 육군, 육사 출신들을 가급적 배제하려는 기조를 보여줬다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참모총장만 간신히…물먹은 수뇌부 인사
학군·3사 등 비육사시대 “대통령 의지”

이는 문 대통령이 청문회 과정서의 논란에도 불구하고 해군 출신인 송영무장관 임명을 고수한 데서 어느 정도 예측됐던 결과였다. 

노무현정부 시절 청와대 비서실장, 민정수석 등으로 근무했던 문 대통령은 참여정부 초기에 육군·육사 출신을 중용한 것이 당시 국방개혁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요인이라고 판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인사서 합참의장과 함께 가장 관심을 끈 것은 육군 참모총장에 1969년 이래 처음으로 비육사가 임명되느냐는 것이었다. 합참의장에 비육군이 임명되면 육군 총장까지 비육사를 임명하기 어렵겠지만 합참의장에 육사 출신 육군이 임명되면 육군 총장에는 비육사가 임명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간신히 한자리
속은 부글부글

결국 육군 참모총장은 육사 출신서 임명됐지만 학군·3사 등 비육사 출신 2명이 야전군사령관에 임명됐다. 과거 정부에선 비육사 출신이 1명가량 야전군사령관에 포함돼있었다. 하지만 박근혜정부 들어선 ‘육사 독식’ 경향이 강해져 논란이 일었었다.
 

이번 인사는 육사 출신이 국방부를 장악한다는 ‘육방부(陸防部)’를 혁파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강력한 의지가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한 소식통은 “육군, 특히 육사 출신들이 육사 배제 흐름에 대해 내놓고 불만을 토로하진 않았지만 속으로 부글부글하면서 이번 인사 결과를 지켜보고 있었다”며 “공군 출신 합참의장에 이어 육군 총장도 비육사가 임명됐다면 어떤 형태로든 불만이 표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국방당국 관계자는 “육군의 경우 서열 및 기수 등 기존 인사 관행서 탈피해 육사, 3사, 학군 출신 간 균등한 기회를 보장하고 능력 위주의 인재를 등용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육사 출신의 축소에는 박찬주 전 2작전사령관의 갑질 논란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 육사 동기들인 37기는 박 전 사령관을 포함해 이번 인사서 모두 물러났다.

더구나 김용우 신임 육군참모총장이 전임 장준규 총장보다 3기수 아래인 육사 39기여서 육사 37기와 38기는 동시에 군복을 벗게 됐다. 육사 37기는 이전 정권서 군단장급(중장) 8명, 대장 3명을 배출하면서 군사정권 시절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한 기수로 부러움을 샀다. 

그러나 결국 총장이나 의장을 한 명도 배출하지 못한 ‘무관의 기수’로 전락했다.

육사 37기의 그늘에 가려 대장을 1명밖에 배출하지 못했던 임호영 한미연합사 부사령관과 조현천 국군기무사령관, 정연봉 육군참모차장 등 육사 38기도 모두 군복을 벗었다. 전역하는 육사 38·39기 가운데엔 군내 사조직인 ‘알자회’ 출신들과 김관진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한민구 전 국방부장관 등 전 정부 군 수뇌부 인맥으로 분류된 사람들도 포함돼있다.

청와대는 갑질 의혹이 있는 후보자는 철저히 배제한다는 원칙에 따라 인사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한 육사 출신 중장이 합참의장 후보에 올랐지만 막판에 공관병 갑질 의혹이 제기돼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생도도 말썽
이미지 추락


이번 인사의 육사 출신 배제는 육사의 위상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계속되는 육사 생도들의 사건·사고도 육사의 위상을 떨어뜨리는 데 한몫했다. 지난 2월 졸업을 하루 앞둔 육군사관학교 4학년 생도 3명이 ‘성매매 혐의’로 퇴교 조치라는 중징계를 받았다. 

최고의 군인이 되고자 4년간 피땀 흘린 노력이 한순간의 잘못된 행동으로 물거품이 됐다.

당시 육군의 한 관계자는 “육사 4학년 생도 3명이 이달 초 정기 외박을 나갔다가 일탈 행위를 했다는 생도 제보가 있어서 사실관계를 확인했다”며 “이들 생도를 형사 입건했다”고 밝혔다.

군 관계자는 “생도 3명이 성매매 알선 등 행위의 처벌에 관한 법률을 위반한 혐의가 있고, 생도 품위 유지를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 징계위에서 퇴교 조치가 내려졌다”고 말했다.

그는 “졸업과 임관을 앞둔 시점이어서 육사에서도 많은 고민을 했지만 법과 규정에 의해 강력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특히 성범죄에 대해서 무관용 원칙에 따라 원 아웃(one out)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계속되는 생도 사건사고
“못 믿겠다” 여론 확산


이번 사건은 익명의 생도가 육본 인트라넷의 ‘생도대장과 대화’에 제보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육사 법무실 관계자는 “퇴교 심의에 회부될 정도로 증거를 확보했다”며 “사관학교법 시행령에 군기 문란과 제반 규정을 위반하면 퇴교 처분할 수 있게 되어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국방부가 익명의 제보 및 투서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놓고 있는데도 사관학교서 졸업을 하루 앞둔 생도에 대해 퇴교 조치한 것은 너무 성급한 조치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이에 육사 관계자는 “아무리 무기명으로 제보를 했다고 해도 제보 내용이 구체적이고 생도 3명의 신원까지 구체적으로 적시돼있어 조사했다”고 말했다. 육사 징계위서 퇴교 처분이 내려짐에 따라 해당자들은 곧바로 학교를 떠났다.
 

지난해 9월에는 여생도가 동기를 장기간 성추행한 사실이 발각되기도 했다. 가해 여생도는 한민구 국방부장관을 보좌하는 ‘장군의 딸’로 알려졌다. 

A 생도(21)는 지난해 3월부터 약 4개월간 같은 생활관을 사용하는 2명의 여자 동기생을 뒤에서 껴안거나 신체의 특정 부위를 만졌다. 그들의 침대에 함께 누워 허벅지를 더듬기도 했다.

당시 육군 관계자는 “피해 여생도들이 처음에는 장난으로 생각했지만 A 생도의 유사한 행동이 몇 차례 반복되자 자제할 것을 요구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다 지난해 7월 A 생도가 ‘자신의 성 정체성에 의심이 간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면서 문제가 커졌다. 피해 여생도들은 상담관을 찾아 방을 옮겨 달라고 요청했다.

육사 측은 뒤늦게 진상조사에 나섰다. 육군 관계자는 “학교 측이 A 생도에게 진상을 확인했다”면서 “본인이 육사 생활에 어려움을 호소했고 자퇴한 뒤 의대를 가겠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전했다.

육사는 즉시 훈육위원회를 열어 A 생도를 자퇴 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 생도의 성추행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육사는 생도들의 일탈 행위에 대해 징계위원회를 열어 처벌한다. A 생도의 경우 이 과정이 생략됐다.

현역 장성인 A생도 아버지의 입김이 작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A 생도의 아버지가 국방부장관을 지근 거리서 업무를 챙기는 실세”라며 “육사 생도들의 교육을 책임지는 생도대장(준장)과 A 생도의 아버지가 육사 동기여서 편의를 봐줬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물론 당사자들은 이 같은 의혹에 대해 부인했다.

육사 측이 소문 확산을 막기 위해 생도들에게 입단속을 시켰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 때문에 ‘A 생도가 왕따를 당해 자퇴했다’는 소문이 돌면서 성추행 피해 생도들이 가해자로 오해받기도 했다.

국민들 비난
어떻게 극복?

나라와 국민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군과 군인에 대해 우리는 깊은 존경심을 갖고 있다. 또한 현대 전쟁의 승패는 군 지휘관들의 리더십에 크게 좌우된다. 이런 지휘관들을 양성하는 곳이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다. 

이를 두고 일각에선 장차 장교가 될 생도들이 이 지경이라면 앞으로 이들에게 군 지휘권을 맡겨도 될지, 이들을 믿고 단잠을 이룰 수 있을지 걱정이 된다는 얘기들이 나온다. 과연 육사는 이 난관을 어떻게 헤쳐 나갈지 그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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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