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철의 부동산테크 필승전략<33> 연령별 투자 요령

늙어가는 대한민국…언제 어디가 좋을까

대한민국의 고령화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2005년 65세 이상 노인인구는 12.3%에 불과했으나 2025년에는 27.8%로 증가할 예정이고, 2026년에는 노인인구 1000만명 시대가 도래한다고 한다. 특히 7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2005년 3.0%에서 2025년 7.9%, 2035년 13.0%로 늘어나 2030년에는 지금의 노인인구보다 많은 비중을 차지할 전망이다. 1000만 노인인구라는 초고령화 시대를 맞이해 연령별 투자 요령을 알아봤다.

고령화 속도 빠르게 진행…2026년 노인 1000만명
연령대 맞는 부동산 선택해야 안정·효율 극대화
“생애주기별 차별화 전략으로 승부”

고령화 사회에 접어들면서 안정적으로 월세가 나오는 임대용 부동산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회 초년생부터 신혼부부에 이르기까지 늘어난 수명을 대비해 미리 노후를 대비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렇다면 연령대에 맞는 부동산 투자는 어떻게 해야 하며, 투자전략 및 주의사항은 무엇이 있을까.

부동산은 여전히 생애재무설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 가운데 하나다. 부동산이 타 재테크 상품과 다른 매력은 실거주와 수익 창출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모두 달성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실물자산을 갖고 있으므로 불경기 때 자칫 휴지조각이 될 수 있는 주식 채권 등 유가증권보다 안정성이 높다. 호경기 때 물가가 상승하더라도 자산 가격이 함께 올라가므로 인플레이션에 따른 위험을 회피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부동산 투자의 효율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생애주기별로 차별화된 전략을 펼치는 게 바람직하다.

20대 후반∼30대 초반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미혼직장인이 대부분인 이 연령대는 대부분 집이 없고 자금을 가지고 있거나 동원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해 부동산 투자에 나서기는 무리다. 부동산 재테크에 성공하기 위해서는 부모님과 함께 사는 등 거주비용을 줄이는 것이 한 방법이다.

이 시기에는 내 집 마련을 단연 최우선 과제로 삼아야 한다. 주식이나 펀드 등에 공격적으로 투자하기보다는 예/적금 등 안전한 재테크로 종자돈을 불려 나가는 게 좋다. 처음 받는 월급으로 어떻게 첫 단추를 꿰느냐가 중요한데 새내기 시절 부동산에 관심이 없다 보면 내 집 마련의 꿈은 점차 멀어질 수밖에 없다.
대기업에 다니는 박경한씨(32)에게 지난해는 영원히 잊지 못할 해가 됐다. 직장 동기들보다 한 해 빨리 과장으로 승진한 데다 서울의 24평형짜리 아파트 청약에 당첨되는 행운을 누렸기 때문이다.

그는 신입사원 때부터 청약통장을 만들어 월급의 50% 이상을 부지런히 저축했다. 박씨가 부모 도움 없이 내 집 마련에 빨리 성공한 것도 청약통장 덕이 컸다. 청약통장에 돈을 불입하면서 내 집 마련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경제신문을 꾸준히 구독하는 등 부동산 정보 수집에도 열을 올렸다. 철저한 자금계획을 세워 종자돈을 마련해 갔다.

박씨처럼 사회 초년병 세대의 경우 청약통장을 잘 활용해야 한다. 물론 최근 수도권 지역에서 늘어나는 미분양 아파트 탓에 청약통장 무용론이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서울 강남을 비롯해 수도권 핵심 지역에 보금자리주택(공공주택)과 민간건설 주택의 공급이 확대될 예정이어서 앞으로도 청약통장을 쓸 곳은 많은 편이다. 청약통장을 이용해 새 아파트를 분양받을 경우 우선 분양가가 적정한지, 앞으로 개발호재 등 상승 여력이 있는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현재 보금자리주택 등 공공주택 공급 확대에 따라 분양가는 점차 하향 안정화 추세에 접어들고 있다. 당분간 분양가의 움직임을 관찰하면서 신중하게 청약에 나서는 게 좋다. 청약통장으로 내 집 마련을 할 때는 입주시점까지의 금융비용 등 기회비용을 감안해 분양내용, 중도금 등과 관련된 사항을 꼼꼼하게 체크해야 한다.

30대 중반~40대 초반

30대 중반∼40대 초반은 목돈을 불리는 시기에 해당한다. 직장에서의 위치나 수입이 어느 정도 올라가 있고 자녀도 어려서 재산을 불리기에 좋은 시기다.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했다면 이때에는 무엇보다 금융상품을 이용해 목돈을 먼저 불린 후 주택부터 마련하는 것이 좋다. 40대에는 자녀들이 상급학교에 진학해 학업에 더 많은 자금이 들기 때문에 30대에 내 집 마련의 기회를 놓치면 훨씬 많은 부담이 생기게 된다.

근로자우대저축 비과세 금융상품에 가입해 절세효과를 보면서 총소득의 50% 정도를 저축하는 것이 유리하다. 주거래 은행을 만들어 집중적으로 이용하면 긴급자금이 필요할 때 보다 쉽게 대출할 수 있고, 고객 기여도에 따라 각종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이렇게 알차게 모으다 보면 30대 후반기에 내 집을 장만할 기회가 왔을 때 그동안 모은 목돈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 초기 재개발지역 내 소형 주택지분을 매입했다가 일정 기간이 지난 다음 분양 받으면 최소 2∼3년 안에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

일반 아파트 매매시세보다 20% 이상 싸고, 조합원 자격으로 분양을 받으므로 로열층을 우선적으로 배정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특히 직장과 가까운 도심 재개발 지분은 반드시 눈여겨볼 만한 재테크 상품이다. 아파트 분양권도 시세차익은 물론 내 집 마련의 기회를 준다. 떠도는 소문만 믿고 매입하기보다는 안정성 위주로 투자하고, 단기차익보다는 실수요 입장에서 접근하면 투자위험을 줄일 수 있다.

내 집 마련 시 목돈이 필요한 도심 아파트를 고집하면 ‘장기전’에 실패할 수 있다. 현재 자금은 그리 넉넉하지 않지만 미래를 보고 투자할 때는 되도록이면 주거비용을 줄이는 방법을 찾는 것이 좋다. 이 경우는 아파트보다는 빌라나 소형 단독주택을 먼저 고려해볼 만하다.

다만, 저가로 매입해야 환금성 면에서 유리하므로 경·공매, 또는 은행의 유입 물건 등 취득원가를 낮춰서 매입한 다음 시가보다 싸게 내놓으면 쉽게 팔 수 있다. 내 집이 있다면 좀 더 다양한 전략을 세울 수 있다.

40대 중반∼50대 초반

부동산 투자가 가장 왕성한 연령층은 바로 40대 중반∼50대 초반 세대다. 이들 중에는 과거 내 집 마련에 성공해 부동산 투자에 자신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여윳돈이 있다고 해서 기획부동산에 속아 터무니없는 가격에 부동산을 매입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따라서 상가든, 토지든, 주택이든 전문가의 도움을 얻어 철저한 수익 및 비용 분석을 한 뒤 투자해야 낭패를 보지 않는다.

먼저 상가에 투자할 때는 우수한 상권인지부터 검토해야 한다. 상권 활성화 여부에 따라 임대수익과 자본수익이 좌우된다. 물론 기존 상권이 유리하겠지만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높은 신흥 상권도 가격만 적당하다면 매입해도 괜찮다.

자금계획도 철저하게 세워야 한다. 시장이 불확실한 때는 여유자금을 갖고 투자하는 게 원칙이다. 만약 대출을 끼고 투자한다면 금융비용을 감안한 임대수익이 연 4∼5% 정도는 나와야 한다. 중·소형빌딩의 경우엔 수억원에 달하는 거액이 들어가는 만큼 세금을 비롯해 매입자금이나 수선비 등도 세심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


50대 중반∼60대 초반


자녀들이 분가하고 본격적인 노후생활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로, 최근 50대는 그동안 모은 재산을 지키기 위한 투자방법에서 재산을 늘리는 투자방법으로 전환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 시기에는 투자의 규모가 크고 한 번 실패하면 회복하기가 힘든 만큼 다양한 형태에 분산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한데 자칫 고수익을 위해 무리해서 규모가 큰 부동산에 돈을 모두 투자할 경우 상속문제와 각종 세금문제 등에 걸리고 환금성도 떨어지게 된다.

30∼40대에는 적극적인 투자전략으로 목돈 불리기에 나서야 하지만 본격적인 노후생활을 준비해야 하는 50대로 들어서면 무엇보다도 안정성이 우선되어야 하므로 임대수입이 보장되는 다양한 소형 물건에 투자하는 것이 좋다. 여유자금이 다소 부족하다면 상대적으로 자금 투입이 적은 펜션 임대사업이 좋다. 펜션은 부부가 함께 전원생활을 하면서 안정된 현금을 벌어들이기 용이하다.

하지만 일정규모 이상의 펜션은 숙박업으로 분류되기 때문에 주의를 요한다. 또 경매를 통한 소형 물건 낙찰, 즉 지하 매물이 유망하다. 비록 지하 물건이지만 취득가가 매우 싼 데다 임대수요가 충분해 틈새시장으로 꼽힌다.

청년층, 내 집 마련이 최우선
중년층, 목돈 최대한 불려야
장년층, 재산 늘리기에 중점
노년층, 상속이냐 처분이냐


반지하 빌라, 지하상가, 대형 빌딩 내의 지하 구분사무실 등이 이에 해당하는데, 지하라고 우습게보면 안 된다. 지하이기 때문에 낙찰가가 60% 미만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지역에 따라 임대가는 투자 원금 이상 형성되는 경우가 많아 수익률 30∼40% 이상을 올릴 수 있으며 아무리 목 좋은 곳이라도 지하라는 이유로 5000만원 미만에 매입할 수 있고 경쟁률도 아주 미미하다.

20평형 이하 소규모 다세대 주택을 매입한 후 월세를 놓는 것도 한 방법이다. 투자금액은 1억원 안팎이 적당하며, 상가에 투자할 때에는 기존 상권이 형성된 곳의 점포가 괜찮다. 자금 여유가 많은 투자자들은 재개발 아파트단지 내 상가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외국인 임대주택사업, 다가구주택, 상가주택은 투자규모가 크지만 입지에 따라 임대수익이 높다.

전철 역세권 등 요지에 위치한다거나 소형 부동산이라면 월 100만원 이상의 높은 소득이 보장되고, 싸게 매입했다가 되팔 경우 시세차익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소형 아파트, 도심 오피스텔이나 원룸주택도 임대수익이 높은 상품으로 집 수선 등 세입자 관리가 손쉽고, 월세 비중이 높아 위험 부담이 낮다.

그러나 규모가 큰 임대용 부동산은 구입가격만 비싸고 입주자들이 자금 부담을 느껴 세가 나가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오피스텔은 고정 수입은 있지만 시세차익 가능성이 낮다는 단점이 있다.

직장에서 은퇴해 전원주택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자녀들이 찾기 쉬운 농가를 싸게 구입하면 전원형 주택으로 안성맞춤이다. 5000만원 안팎의 주택이 많고 텃밭이 딸린 경우라도 1억원 미만에 매입할 수 있다. 이러한 물건을 매입할 때는 환금성이 높은 수도권 지역이나 관광지 주변의 부동산을 구입하는 것이 현명하다.

60대 중반 이후

60대 중반 세대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부동산 처분에 있다. 노후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부동산을 팔거나 역모기지론을 받아 현금 확보를 원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다. 시간을 충분히 갖고 자녀들에게 물려 줄 것인지, 아니면 처분할 것인지 고민하게 된다.

이들 세대에서 가장 큰 이슈는 상속 및 증여다. 현행법상 최고 세율이 50%인 상속·증여세를 어떻게 줄일 것인지가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상속세를 줄이기 위해서는 미리 증여를 해두는 게 좋다. 현행법상 증여 후 10년이 지나면 상속 재산으로 합산 과세하지 않기 때문에 세금을 상당히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상속·증여세는 누진세율을 적용하기 때문에 세금이 높은 편이다. 증여세를 줄이려면 일단 금융자산보다 부동산으로 증여하는 것이 유리하다. 부동산 가격이 싼 시점(저평가된 시점)에 증여할 경우 과세표준을 줄여 세금을 덜 낼 수 있다.


장경철은?

- 스피드뱅크, 조인스랜드, 닥터아파트 부동산칼럼니스트
-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한국경제 부동산 기사 제공
- 프라임경제 객원기자
- 한국창업부동산정보원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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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