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무당 하나로 인해 화목하던 집안이 풍비박산 났다. 무당에게 속아 빚더미에 앉은 가족. 과연 이 가족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8년 전 남편의 사업실패로 생계전선에 직접 뛰어들게 된 A씨. 풍족한 집안서 남부럽지 않게 살았던 그녀로서는 난생 처음 겪는 고생이었다. 그렇게 8년 동안 고군분투 했지만 여전히 집안 사정은 나아지지 않았고 어릴적부터 몸이 약했던 아들의 병세는 더욱 악화됐다.
잘못된 만남
그러던 중 A씨는 지인의 소개로 점을 보게 되었다. 그것이 무당 B씨와의 첫 만남이었다. B씨는 A씨에게 “아들에게 귀신이 씌었다. 이대로 두면 아들이 무당이 되거나 중이 될 팔자”라며 본인이 기도를 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했다.
처음 B씨가 요구한 돈은 300만원. A씨는 아들이 잘 되고자 하는 마음으로 굿을 하고자 B씨에게 돈을 전달했다. 하지만 아들의 귀신을 쫓기 위해 B씨가 한 것은 굿이 아닌 단순한 기도였다.
한번으로 끝날 줄 알았던 이 기도는 “중간에 중단하면 아들이 더 잘못된다”는 B씨의 말에 1년 동안 지속됐다. 그동안 B씨가 A씨로부터 가져간 돈은 1200만원이나 됐다.
B씨의 요구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들의 몸이 허약하기 때문에 본인이 따뜻하게 옷을 입거나 편하게 살아야 ‘할아버지(천지신명)’가 아들의 몸을 보살펴준다”며 자신이 사고 싶은 선글라스, 이불, 전기장판 등을 홈쇼핑서 구매한 뒤 A씨의 카드로 결제하게 했다.
또한 본인의 불교만물상 거래처에 A씨를 데리고 가 아들을 위해서 본인이 필요한 물품을 사야 한다며 무당에게 필요한 여러 무속용품을 구매하게 했다.
B씨는 A씨가 거부할 때마다 “아들이 귀신에 씌어 영영 돌아오지 못하고 정신병자가 되는 꼴을 보고 싶냐”며 협박과 강요를 일삼았다. 이렇게 B씨가 개인적 잇속을 챙기기 위해 사용한 A씨의 신용카드 금액은 1500만원에 달했다.
B씨는 계속적으로 돈을 요구했다. A씨가 더 이상 돈이 없다고 하자 카드 현금서비스를 받게 하고 집 담보 대출을 받게 해 추가적으로 2500만원을 더 가져갔고 사채 및 캐피탈을 소개해 줄 수 있으니 자금을 융통할 것을 권유하기까지 했다.
그렇게 현금, 신용카드, 현금서비스, 집 담보 대출로 건넨 금액은 총 5000만원이었다.
A씨는 B씨가 자신의 명의를 도용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어느 날 B씨는 휴대폰 구경을 가자며 한 휴대전화기 판매점에 A씨를 데리고 갔다. 휴대폰 대리점과 B씨는 서로 잘 아는 사이로 보였다.
B씨는 본인의 휴대폰을 사달라고 요구했고 A씨는 거절했다. 하지만 B씨는 부득이 본인 명의로 휴대폰을 구입하겠다면서 상담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매장 직원은 A씨에게 ‘남은 약정기간을 알아봐 주겠다’며 신분증 제시를 요구했고 A씨는 별 생각 없이 잔존 약정기간이 궁금해 매장 직원에게 신분증을 건넸다. 그리고 몇 개월 후 핸드폰 요금을 조회하려고 홈페이지를 확인한 A씨는 자신도 모르는 휴대폰 1개가 더 개통됐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몇 개월 후에는 통신사에서 요금이 미납된 휴대폰 2개가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알고 보니 A씨 명의로 개통된 태블릿PC가 하나 더 있었던 것.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통된 휴대폰과 태블릿PC의 미납요금은 80만원과 120만원이었다.
두 번째 개통된 태블릿PC는 명의도용으로 인정됐지만 처음 휴대폰은 같이 동행했기 때문에 명의도용이 인정되지 않아 미납금 120만원을 부담했다.
1년간 수천만원 탕진 ‘사채’까지 소개
모르쇠와 거짓말로 일관…거짓 증인까지
이 모든 사실은 A씨의 아들에 의해 밝혀지게 됐다. A씨의 아들은 은행에 방문해 업무를 보던 중 자신이 알지 못하는 대출을 확인했다. 놀란 아들은 A씨를 추궁했고 사건이 시작된 지 1년 만에 모든 사실을 알게 됐다.
A씨의 아들은 곧바로 증거자료를 수집해 경찰에 신고했다. 하지만 B씨의 주장은 달랐다. “A씨가 아들을 위해 기도해달라며 자발적으로 돈을 주었다”고 주장했다. 또 “A씨가 꿈을 꿨다며 무속용품을 직접 사가지고 와서 시주했고 휴대폰은 A씨가 직접 승인을 해줘서 개통했다”고 말했다.
결국 이 사건은 검찰서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리됐다. 무속신앙은 종교로 구분되고 기도를 대가로 지불한 돈은 액수에 상관없이 사기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또 휴대폰 명의도용에 관한 건은 계약서에 A씨의 신분증이 복사돼있고 대리점도 A씨가 승인해줬다고 진술해 명의도용(사문서 위조)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봤다.
하지만 A씨의 아들이 휴대폰 계약서를 확인한 결과 A씨의 글씨는 찾아볼 수 없었다. A씨가 직접 작성했다는 계약서에는 A씨의 필체는 찾아볼 수 없었고 B씨로 의심되는 필체만 있을 뿐이었다.
A씨는 자신의 피해 사례와 유사한 판례를 찾아 검사에게 의견서를 제출하기까지 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A씨 아들은 “답답하고 너무 억울하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머니를 속여 사기를 친 것도 모자라 갖은 거짓말로 법도 피해가는 B씨를 용서할 수 없다”며 분노했다. A씨 아들은 B씨에게 같은 피해를 입은 피해자가 또 있다는 사실을 수소문 끝에 알게 됐다.
하지만 연락처와 이름조차 알 수 없는 상황. 아들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겠다”며 현재 항고를 진행 중이다.
끝나지 않은 악몽
이 일로 A씨의 집안은 발칵 뒤집혔고 가족과의 불화로 인해 A씨는 결국 집을 떠났다. 그렇게 1년간 탕진한 돈을 갚으며 세월을 보내고 있는 A씨는 죄책감에 가족들 앞에 나서는 것조차 힘들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