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한국의 고령화 그늘이 짙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몇 년째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압도적인 1위다. 노인들의 반 이상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얘기다. 하지만 취업에 나선 노인 근로자의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일부 업체에선 이러한 노인들의 약점을 잡아 ‘열정페이’ 수준의 대우를 해주는 곳도 있어 충격을 주고 있다.
보건복지부가 진행하는 노인일자리 사업이 양적으로 크게 발전했지만 10년 넘도록 보수가 월 20만원에 머무는 등 질적 발전은 크게 뒤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타 부처서 진행하는 비슷한 사업과 보수 차이도 커 사업간 형평성을 맞추고 사업 효과를 높이려면 노인일자리 보수를 점진적으로 인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도 한다
한동안 젊은이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던 ‘열정페이’를 노인들에게 까지 강요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제기됐다.
국회예산정책처의 ‘노인일자리사업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노인일자리 사업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공익활동의 보수는 2004년 사업을 시작했을 때와 똑같은 월 20만원이다. 물가와 최저임금은 계속 상승하는데 보수는 그대로라 노인들에게 실질적인 소득을 보전해주는 효과는 계속 떨어지게 된 것이다.
보고서는 이 같은 상황이 발생하게 된 이유로 노인일자리 사업이 지나치게 양적 발전에만 치중했다는 점을 제시했다. 지난 2013년 ‘노인 일자리 확대’가 국정 과제로 채택된 이후 2015년까지 연평균 4만6000개의 일자리가 늘어났지만 보수는 변동이 없었다.
특히 법정최저임금이 인상됨에 따라 노인일자리사업도 2010년부터 최저임금제가 적용됐지만 보수를 올리지 않은 채 공익활동의 일자리 참여시간만 줄였다. 결국 2009년 월 48시간이던 공익활동 참여시간은 2015년 월 30시간까지 줄어들었다.
이 같은 상황서 복지부는 2016년부터 노인일자리 사업의 공익활동을 ‘근로’가 아닌 ‘자원봉사’로 사업 지침에 명시해 최저임금을 준수하지 않아도 된다는 근거를 마련했고 올해부터 공익활동 참여시간을 종전 ‘30시간’서 ‘30시간 이상’으로 규정하면서 최저임금 미만의 보수를 지급하게 될 가능성은 더욱 커진 상태다.
월 보수 10년 넘게 20만원
물가 인상·최저임금 별개
노인 일자리 공익활동에 참여하는 노인의 87.4%가 ‘경제적 도움’을 위해 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고 있다고 답한 것을 고려하면 사업 진행 내용과 참가자의 참여 동기가 부합하지 않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몇 년째 65세 이상 노인의 상대적 빈곤율이 약 50%로 압도적 1위다. 노인들의 반 이상은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먹고살기 힘들다는 얘기다. 하지만 취업에 나선 노인 근로자의 환경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서울연구원이 서울에 사는 65세 이상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방문조사에서 임금근로자 노인의 하루 근로시간은 평균 12.9시간이고 주당 56.4시간 일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인 근로자 30%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고 57%는 근로기간을 정하지 않는 등 근로기준법상 권리를 누리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휴식시간 등에 관한 지침도 없이 일하고 있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주 40시간 근무를 원칙으로 하고 일부 특례업종에 한해 최대 12시간까지 연장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월평균 임금은 122만8000원으로 일반 임금근로자의 월평균 임금(고용부 2014년 통계) 320만원의 40% 미만인 것으로 분석됐다.
일자리도 대부분 단순 노무직에 집중돼있다. 직업별로 보면 경비, 미화원, 택배원, 활동보조인, 가사도우미가 85.4%를 차지했다. 노인들은 현재 일을 하는 이유에 대해 ‘생계비를 마련하기 위해’라고 답한 사례가 62.2%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으로 ‘노후자금 준비’(11.9%) ‘용돈이 필요해서’(8.5%) 등 순이었다.
65세 이상 노인이 참여하는 비율이 90%에 달하는 경찰청의 아동안전지킴이 사업의 월평균 보수는 36만원이다. 65세 이상 노인 참여비율이 48%인 문화체육관광부의 ‘전통스토리 계승 및 활용’의 월평균 보수는 38만원으로 노인일자리 사업 항목 중 하나인 ‘경륜전수’의 약 2배다.
하지만 노인들은 쉽게 이 일을 그만두지 못한다. 나이가 많아 다른 일자리를 찾기 힘들뿐더러 자녀가 있는 경우 ‘부양의무자제도’로 인해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일하는 노인들의 만족도는 65% 수준으로 높게 나타나고 있어 아이러니다.
보고서를 작성한 국회예산정책처 관계자는 “노인일자리 사업은 상대적으로 개별 일자리의 질적 측면보다는 전체 일자리 물량을 늘리는 방향으로 발전됐다고 평가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재정부담을 줄이면서 노인일자리 질적 저하를 방지할 수 있도록 노인일자리 보수를 최저임금이나 물가에 연동해 점진적으로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그냥 버티자
한 사회학과 교수는 “언제까지 ‘일하고 싶다’는 노인들의 열정페이에 기대면 안 된다”며 “이제 노인일자리도 양과 함께 질을 고려해야 할 때다. 단순노무직서 벗어나 그들의 경험과 연륜을 살릴 좀 더 지속적이고 안정적인 양질의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효’니 ‘노인복지’니 거창한 얘기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그것은 엄연히 우리 부모의 모습이고 머지않아 우리의 미래가 될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